〈 67화 〉 배신자라 불릴 여자(1)
* * *
전쟁이란 마음만 먹는다고 곧바로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무수히 많았다.
병력의 수와 질.
자금과 식량.
나아가, 민심과 전략까지.
많은 것을 고민하고 치러야 할 것이 전쟁이다. 졸속으로 일으킨 전쟁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모르는 이는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없었다.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와 오다 노부유키는 제각기의 가신들과 함께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는 데에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오다 노부나가가 택한 것은 일영과 히라테 마사히데의 조언에 따라 크게 2가지였다.
아시가루의 질적 개선.
조총의 더 많은 수입.
이미 조총의 수입은 이코마 상단 측의 지원으로 많은 수량이 확보된 상황이었다. 아직 사이토 도산이 미노의 주인이었을 때 상단의 길로를 터준 덕이었다.
그럼 남은 것은 아시가루의 질적 향상.
그것을 맡은 것은 다름이 아닌 일영과 요시나리였다.
물론, 일영이 검술이나 창술을 맡은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건 일영보다 잘 하는 요시나리가 있지 않은가.
“자, 모두 집중해.”
애초에 오다 노부나가가 아끼는 사람이라 해서 실력도 없는데 그런 중요한 요직을 맡는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영이 맡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스윽.
일영은 손에 쥔 작은 종이 주머니를 들고 흔들었다.
“화약 주머니다. 휴대하기에 용이하지.”
보통은 호리병에 화약을 가지고 다녔으나, 보다 휴대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물론 일영의 생각이 아닌 역사의 수많은 이들이 고민 끝에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만.’
누군가의 업적을 빼앗았다는 생각에 양심이 조금 찔리긴 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오와리라는 땅은 수많은 풍파를 겪는 땅이다.
당장 사방에서 오와리를 노리는 이들이 수두룩했고, 그가 단편적으로 아는 전투만 몇 개던가.
더욱이 일영은 이 전쟁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왜인지, 시바타 가쓰이에와 오다 노부유키에게 마음이 동한 탓이다.
여인이나 그런 감정이 아닌, 단순히 사람으로서의 감정이 말이다.
“아.”
뒤늦게 일영은 자신이 잠깐 멍을 때렸다는 걸 깨닫고 입으로 종이 주머니의 끝을 깨물고 찢어 화약을 총구에 부었다. 그리곤 총알을 넣고 불을 붙인다.
“자, 견착은 이렇게….”
군필 겸 사격장 애호가로서의 본능으로 과녁을 겨눈다. 이윽고 방아쇠를 당기고, 타앙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된다.
뻗어지는 찌그러진 총탄이 과녁에 꽂힌다.
물론 아직 초창기의 총이라 과녁 안에서의 명중률은 그렇게 좋지 못했으나, 그래도 과녁 안에 들어갔다는 거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본 노부나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허, 조선이 활에 그렇게 환장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런 말이 있다.
본디 조선은 활이고, 중국은 창이며, 일본은 검이라고.
헌데 활이 아니라 원거리 무기였던 걸까.
노부나가는 왜인지 어이가 없어져 일영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일영도 할 말은 많았다.
일단,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한다는 거지같은 군대에서도 사격은 늘 A급이었고, 심지어 취미가 사격장에 가는 거였으니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한때, 미국으로 이민 가는게 꿈이었던 때도 있었다. 하필 총기가 불법인 나라에 태어나서 적잖은 돈을 바쳐가며 사격을 해야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자, 그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존 조총 부대들이 보였다. 그들로선 생경할 수밖에 없다.
장전부터 사격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몰래 연습을 좀 하긴 했지만….’
뭐, 그건 자기관리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 아니겠어.
그래도 저런 표정을 보니까 언젠가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말이 떠오르긴 했다. 입꼬리를 올리고, 조총을 어깨에 이고는 말했다.
“참 쉽죠?”
밥 아저씨.
당신의 명대사는 언제나 주옥같습니다.
일영은 그런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노부나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때.
당주님!
갑작스럽게 훈련장으로 들어온 사무라이 한 명이 노부나가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그 말에 오다 노부나가는 미간을 좁혔다.
“뭐? 누가 찾아왔다고?”
동시에, 일영은 본능적인 직감을 느끼고 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기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설마…. 아직은 아닐텐데?’
물론 기우일 수도 있다. 만일 생각하는 그, 혹은 그녀가 맞다면 아직 오다 가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을 텐데.
그리고 그 순간.
일영과 눈을 마주친 노부나가가 말했다.
“일영. 혹….”
그리 숨길 이야기도 아니다. 또한 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기에 일영에게 물으려는 의도도 있다.
일영의 조언 아닌 조언에 다소 노출이 적게 바뀐 옷이 바람에 흔들리고, 나아가 입술이 달싹 거린다. 그리고 이내 내뱉어진 이름은.
“아케치 미쓰히데라고 알고 있느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예.”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케치 미쓰히데. 본디 미노의 사이토 가의 가신이었으나 사이토 요시타쓰에게 일가가 몰살당하고, 곳곳을 방황하다 오다 노부나가의 충신이 되는 이.
…그리고.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이게 되는 사람.’
일영의 눈에 오다 노부나가가 맺혔다.
동시에, 그는 언젠가 보았던 싸늘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가시지요. 당주.”
그리고 당연하게도.
근처에서 그들을 호위하던 닌자들은 일영의 얼굴을 확인하곤 몸을 떨었다.
오직 그들만이 눈치를 챈 것이다.
다시금, 야차가 눈을 뜰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
노부나가의 뒤를 따라 천수각 입구에 다다르자, 곧 일련의 사무라이들에게 둘러싸여 서 있는 한 여인과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소녀가 눈에 밟힌다.
살짝 은발과 섞인 듯한 핑크빛 머리가 유난히 도드라진다.
동시에, 검은 긴가사로 가린 하관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척 보기에도 미녀라는 걸 알 수 있을 법한 하관이다.
성큼걸어가는 노부나가의 발걸음이 그녀의 앞에 닿았다. 동시에 여인의 손을 붙잡고 선 어린 소녀의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다.
“그래. 네가….”
노부나가는 입을 열었다.
동시에, 진가사를 벗기 위해 뻗은 손길이 챙의 끝자락을 쥐고 바닥으로 내리니.
“예. 당주.”
곧 드러난 핑크빛 장발이 어깨와 목선을 따라 흘러내린다. 입가에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가 보이고, 동시에 살짝 드러난 다크서클이 유달리 눈에 띤다.
“아케치 가문의 미쓰히데라고 합니다.”
그녀의 얼굴을 본 노부나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생각 외로 너무 예쁘지 않은가. 때문에 무심결 일영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순간 아케치 미쓰히데의 눈이 미세하게 떨린다. 동시에 살짝 시선을 돌리자 다름이 아닌 일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순간 미간을 좁혔다.
불쾌감이 차오른 탓에, 죽이고 두개골로 황금 술잔이나 만들어 먹을까라고 고민하던 그녀였다.
헌데, 곧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둘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기류를 말이다.
‘이건….’
순간, 노부나가의 등 뒤에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그제야 보고 말았다. 평소 자신과 요시나리,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땐 한없이 다정하고 유하던 일영의 얼굴이.
서늘하고 냉정하며.
마치, 네년을 씹어 죽여주마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무표정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금 고개를 돌려 아케치 미쓰히데를 보았다. 눈에 평정이 아닌 감정이 깃든다.
그러나, 연모나 흥미 따위의 그것이 아니다.
두려움, 그리고 의문.
어째서 저 남자는 나를 저렇게 보는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때문에 노부나가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몸을 틀어 일영의 시선을 가려주었다.
허어.
동시에, 참았던 숨이 터진다.
그러자 일영도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나, 그렇다고 표정을 바꾸진 않았다.
주변의 분위기도 노부나가와 다르지 않았다.
이츠키는 요즘 자주보는 일영의 흑화에 침을 삼켰고, 요시나리 역시 대체 왜라는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분위기를 삼켰다.
“당주님.”
그때. 일영의 입이 살짝 들썩이고.
“잠시 아케치 공과 대화를 나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 어느때보다 싸늘한, 마치 적을 상대하는 표정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기에.
“…허한다.”
이번에는 노부나가도, 반쯤은 강제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일영은 아케치 미쓰히데를 데리고 접객실로 향했다.
그리곤, 뒤따르는 일영과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에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명했다.
“주변에 사람을 들이지 마라. 혹….”
누군가 죽는 소리가 들려도.
순간, 이츠키는 굳었다. 동시에 사무라이들 역시 언젠가의 비내리는 야산을 생각하며 알겠다 답했다.
드르륵문이 닫힌다.
일영은 말없이 그녀에게 방석에 앉을 것을 권했고, 그녀는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조차 모른 채 살짝 몸을 떨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막 자리에 앉아 발가락을 오므린 그때.
일영은 그녀의 은빛과 핑크가 섞인 눈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물었다.
“왜 아사쿠라로 가지 않았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케치 미쓰히데의 눈동자는 그야말로.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