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난세의 시작
* * *
겨울이 지나고, 얼어붙은 대지도 서서히 녹아가며 싹을 틔운다. 서늘한 입김은 옛말이 되었고, 열도는 또 하나의 1년을 마주했다.
오와리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한낱 농사를 짓는 민초는 물론이고, 주변의 다이묘들 역시 그것을 느끼며 닌자를 보내고 상인들 사이에 간자를 심어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힘썼다.
허나, 오와리 주변의 정세 역시 혼란스럽긴 매한가지였으니….
미노는 새롭게 권좌에 앉은 사이토 요시타쓰의 이름 아래에서 피의 숙청과 함께 권력을 다지는 작업 중에 있었고, 늘 오와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마가와 가문 역시 후방을 든든하게 방비하기 위해 다케다 가문과 호조 가문의 결혼을 중매하고 3국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바빴다.
여러모로, 오와리의 오다 가문에겐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인 시기였다.
만일 이 시기에 자매끼리의 항쟁을 매듭짓고 집안을 안정시킨다면 오와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나.
만일 이 혼란이 잠재워질 때까지 항쟁을 매듭짓지 못한다면, 그 순간 오와리는 아주 맛있는 먹잇감이 되어서 주변 영지들의 배를 불리게 되리라.
때문에, 현재 기요스 성 인근의 절에 모인 가신들의 분위기 역시 가볍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유키.
각기의 주군으로 나뉜 가신들에겐 오와리의 지배자가 누가 되냐에 따라, 그 자신은 물론 가문의 미래까지 결정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오다 노부나가가 이른 시기에 그들을 굳이 절로 불러 모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아.
스님들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차례차례 장례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관에 누워있는 것은 오다 가문내지는 가신 가문의 사람이 아닌 사이토 도산이었다.
부패를 막기 위해서인지,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는 상태의 시신이었으나 그럼에도 죽은 지 시일이 지나 조금은 부패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뿐인가.
비록 수의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으나, 도산의 몸 곳곳은 실로 기워져 있는 상태였다. 오다 가문 측에서 고인을 능욕하고자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발견했을 때부터 그랬기에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준 것이다.
‘…아무리 난세라지만. 쯧.’
오다 노부나가는 어딘가 씁쓸한 입맛에 제사용으로 가져다 놓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물론 뒤에서 일영의 눈초리가 느껴지긴 했으나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때, 문득 가신들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키쵸에게 닿았다. 이미 한참을 울었는지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고 얼굴은 창백하다. 손끝이 떨리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충격이 크겠죠. 참, 요시타쓰 그 아이도 저런 짓을 할 애는 아니었는데.”
뒤에 서 있던 이코마 키츠노 역시 나름의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오와리의 오다 가문과 인연이 있듯 미노의 사이토 가문과도 적잖은 인연을 맺어온 그녀였기에.
“…아.”
문득, 갈라진 입술 사이로 키쵸의 탄식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멍한 눈에 이윽고 눈물이 맺힌다. 그녀는 때때로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주변에 있는 건 낯선 얼굴들 뿐이었다.
이방인.
그게 아마, 지금 키쵸의 기분을 제일 잘 설명한 단어가 아닐까.
안됐어.
아직 어리거늘.
일부 늙은 가신들은 때때로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으나 그뿐. 누구도 먼저 선뜻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몸을 움츠렸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해도,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되어버려 비참해지는 것이다.
그때였다.
“당주님.”
노부나가의 뒤에 있던 일영이 낮게 속삭였다. 그러자 내심 일영의 반응을 살피던 노부나가는 그럼 그렇지 따위의 중얼거림을 내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인파를 헤치고, 아버지의 시신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키쵸에게 향했다.
일영의 그림자가 그녀를 가릴 듯 드리운다.
문득, 시선을 살짝 올린 그녀는 일영이 자신의 앞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히카게 님.”
문득, 미워졌다.
때문에,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영의 옷섶을 쥐었다.
꽉쥔 자그마한 손이 떨린다. 그러나 흔들지도, 당기지도 못한 채 그저 잡고만 있다.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그저 떠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갈라진 입술 사이로 나지막이 목소리가 울린다.
“…데려온다고, 했잖아요.”
분명히 약속했는데, 그런데.
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왜인지 미워지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한없이 이기적임을 알고 있음에도 키쵸는 울었다.
그러나 그때.
턱 하고 올려진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은발의 머리가 헝클어지고, 따스한 온기가 머리에 놓인 손을 따라 흐른다.
“죄송합니다.”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럴 상황이 안 되었다고 변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네 주제를 알라며 호통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영은 그러지 않았다.
단지 사과를 건네고, 덧붙일 따름이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원망하여도 괜찮습니다.”
여인으로서가 아닌, 아비를 잃은 사람의 가려린 어깨를 부여잡았다.
허리를 숙인다.
동시에,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있는 키쵸와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다만, 말해주시지요.”
일영 스스로도 알고 있다. 사이토 도산이 저리 죽은 것이 자신의 탓은 아니라는 걸. 다만, 막을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뇌리에 각인 된 역사가 있지 않던가.
물론, 도산을 살려야 할 이유가 키쵸 말고 달리 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요시타쓰가 상대하기에 더욱 쉬울 수도 있다.
때문에 반쯤은 도산의 죽음을 방관하게 된 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영은 물었다.
“제가 어찌해주시기를 바라십니까.”
가야 할 길에 그녀의 언니가 있다. 비록 그녀의 말이 오다 가문의 향방을 정할 말이 되지는 못하겠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배려 정도는 해줄 수 있을 첨언이 되리라.
“저, 저는….”
키쵸는 일영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눈물이 새하얀 뺨을 따라 흐르고, 흔들리는 은빛 눈이 일영의 얼굴을 담지 못하겠다는 듯 옆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영은 그저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물이 멎고, 입술을 질끈 깨물던 키쵸의 입술에서 옅은 핏물이 맺히기까지 하던 때.
“…죽이지 말아요.”
슬픔과 함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음에 대한 한탄이 섞인다.
아버지가 죽었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니라, 자신의 언니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었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에 대한 키쵸의 답은.
“…물어보고 싶어요.”
어째서 그랬냐고. 꼭 그래야 했냐고.
그렇게까지 권력이 필요했냐고….
어느새, 그녀의 눈에 확신이 담겼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스르륵.
키쵸의 손에 잡혀있던 일영의 옷섶이 풀린다. 동시에 그녀는 눈물을 닦았고, 일영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 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반드시 그리 해보겠습니다. 키쵸.”
노히메(のひめ).
미노에서 온 아가씨.
흔히들 그녀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명칭. 그러나 일영은 말했다. ‘키쵸’라고.
그녀의 눈동자에 일영이 맺힌다. 검은, 아니 살짝 갈색이 섞인 듯한 머리의 남자가 자신에게 반드시 그리하겠다 말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주종의 관계도 아니다.
단지, 어린아이에게 내뱉은 말과도 같은 부질없는 약속이다. 그래, 분명히 그럴진대.
왜인지, 안심이 되는 것이다.
키쵸는 웃었다. 비록 눈물 진 나날 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코와 눈가였음에도,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환하게 웃어주고 싶었다.
“알겠어요. 히카게….”
아니.
“일영.”
순간, 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햇빛이 키쵸의 은빛 머리카락에 부딪혀 부서진다. 일영은 자신을 보며 웃는 키쵸에게 마주 웃어주며 말했다.
“예.”
한편, 그 모습을 보던 이츠키와 마사히데는 문득 앞에 서 있는 여자들의 시선을 바라보았다.
“쯧. 술 가져오거라.”
노부나가는 술을 찾았고.
“…가슴은 내가 훨씬.”
요시나리는 자신의 우위를 확인했으며.
“청춘이네∼.”
“그러게 말이에요.”
이코마 키츠노와 니와 나가히데는 조금은 설렌다는 듯,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쩝. 맞는 거 같지 않습니까.”
종종 술잔을 나누었고, 일영을 보좌하며 히라테 가의 중신이 된 이츠키가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히라테 마사히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허허웃었으니.
“아무래도, 양자를 잘못 들인 것도 같구나.”
늙으면 연륜이 생긴다 하였나.
왜인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이츠키는 두 자릿수는 넘지 않지 않을까 고민했으나 역으로 히라테 마사히데는 생각했다.
두 자릿수는 넘되, 제발 감당만 하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
그리고 그날 저녁.
미노에서 한 명의 닌자가 기요스 성으로 찾아와서 서신을 전하니.
「美?を?せる.」
단 6글자.
해석하자면미노를 맡긴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난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