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떨지 말거라
* * *
한때 미노에 가득 돌았던 소문이 있다.
언젠가, 도산이 아직 도키 가문의 가신이었을 때였다. 그때 도키 요리아키에게는 미모의 첩인 미요시노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도산이 그녀를 내기로 빼앗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둘의 불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허나 도산의 측실이 된 미요시노가 아이를 낳자 미노에는 실로 불경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이토 요시타쓰는 도키 요리아키의 자식이다.
소문이 불거진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겟으나, 실상은 한심한 반대파의 모략일 뿐이었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지 않은가.
헌데, 어긋난 것은 그녀에 대한 도산의 기대가 과해졌을 때였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딸이 아닌가요?
언젠가 업무를 보고 있던 도산에게 사이토 요시타쓰가 다가와 했던 말이다. 그 당시에 한창 부녀관계가 어그러지고 있었을 때였지.
때문에, 도산은 답했다.
쓸데없는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할 일이나 제대로 하거라.
당시엔 그저 일축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허나, 요시타쓰는 그것을 에둘러 말하는 긍정이라 생각한 듯싶었다.
그때부터였던가.
사이토 요시타쓰가 그토록 과격해졌던 것이.
처음에 닌자들이 보고를 올리고, 가신들이 말해도 그저 좋다고 생각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나 도산의 딸이라면, 장차 미노를 물려받을 씨앗이라면 저 정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해지자, 도산의 관심은 점점 동생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지경에까지 온 것이다.
“이 우둔한 것아.”
도산은 웃으며 말했다. 짙은 혈향이 코를 찌르고, 나아가 허탈함과 우스움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그럼에도 도산은 웃었다.
여전히 딸은 우둔했으나….
“네 녀석의 기량을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이토록 많은 군세를 이끌 재목이었던가.
늙은 살무사가 한때 자신의 대지였던, 또한 자신의 군세였던 이들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우둔했구나.”
삶에는 수많은 행간이 있다.
늘그막에 그 행간을 돌아보니, 실로 후회되는 것이 많은 것이다.
하아.
서늘한 숨결에 미련과 후련함, 후회와 성취감이 섞인다.
“맞아. 당신은 날 잘못 알고 있었지.”
아직도 우스운 소리를 내뱉는 딸이 원망스럽지 않다.
단지, 이제야 딸의 진의를 깨달았다.
‘애초에 믿지 않았구나. 허허.’
우둔한 줄 알았더니, 나름의 머리를 쓴 것이었더냐.
도산은 말에서 내렸다.
히잉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태웠던 말이 투레질했고, 동시에 둘러싼 수많은 병력이 그를 중심으로 뒤로 물러섰다.
터억.
하는 발걸음으로 대지를 딛는다.
철그럭하며 흔들리는 갑주가 몸을 두드리고, 도산은 마침내 손에 쥐었던 검을 떨어트린 채 천천히 자신의 딸에게 향했다.
천막 앞에서.
마냥 어린아인 줄 알았던, 허나 이제 어엿한 여인이 된 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산은 그런 그녀에게 성큼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딸아.”
특유의 은안이 흔들린다.
동시에, 노안이 와 잿빛으로 변한 도산의 눈동자에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
“너는, 내 딸이다.”
자, 오라.
사이토 도산의 노구가 넓게 펼쳐지고, 나아가 도산의 발걸음은 거인의 자국처럼 깊게 패인다.
“그러니, 나를 죽일 수 있는 것도 너 일터.”
베어라. 딸아.
사이토 도산은 미소지었다.
동시에, 비록 흔들리긴 했으나 여전히 도산을 증오하던 사이토 요시타쓰에게, 미노 삼인중이라 불리는 안도 모리나리가 슬며시 검을 건넸다.
터억.
검을 쥔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앞까지 걸어온 도산을 향해 걸었다.
터벅, 터벅.
내딛는 걸음에 망설임이 깃든다.
허나, 이내 그녀는 망설임을 버렸다.
어느새 걸음은 뜀박질이 되었고, 뻗어지는 검신이 일순간 갑옷을 지나 살을 꿰뚫으니.
푸욱!
검신에 핏물이 맺힌다.
나아가, 도산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떨고 있는 딸의 등을 감쌌다.
“…떨지 말거라. 쿨럭.”
“…….”
사이토 요시타쓰의 손이 떨린다. 우둔한 것. 주군이 되고자 하는 놈이 가신들 앞에서 떨면 안 되거늘.
스윽하며 몸을 웅크려 검을 쥔 손을 가렸다. 동시에, 실로 오랜만에 품에 안은 딸의 귓가에 속삭였다.
“…불안했더냐. 너조차 믿지 않는 낭설을 내세워 이리 아비를 죽일 정도로.”
“…아.”
정곡을 찔린 것일까.
사이토 도산은 슬슬 옅어지는 고통과 숨결을 느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걱정 말거라. 네 잘못이 아니다. …모두, 이 우둔한 아비의 잘못이니.”
키쵸와 마찬가지로 이 아이도 여렸다. 허나, 그런 성정과는 거리가 먼 사이토 도산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독하게 자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쿨럭.
입가로 터져나온 핏물이 혹여 딸의 옷자락을 더럽힐까. 도산은 잇새 사이로 핏물을 삼키며 서서히 흐려지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노부나가에게 미노를 맡길 생각이었다. 헌데, 이제 와 보니 그것 또한 사족이었구나.”
그래도 너무 원망치는 말거라.
어차피 미노와 오와리는 언젠가고 맞붙어야 할 곳이니.
그래, 이건 말하자면 시험이다.
시험인 것이다….
털썩.
마침내, 사이토 도산의 육신이 완전히 무릎을 꿇었고, 그의 복부에 칼을 박아 넣었던 사이토 요시타쓰는 잠시 그를 내려보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치워라.”
이로써, 모든 가신들은 전율했다.
나라를 훔친 사이토의 밑에서 자라난 옛 주군의 씨앗이 마침내, 도둑의 명을 달리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렇게 믿으면 그뿐인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마침내, 미노의 복수가 끝이 났다고.
그리고.
그 모습을 먼 언덕 위에서 바라보던 일영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돌아간다.”
*
사이토 도산이 죽었다. 일영을 위시한 지원군이 한발 늦게 도착하여 그것을 확인하였고, 일영은 야산에 버려진 도산의 시체를 수습하여 기요스로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퇴각을 의미하진 않았다.
비록 사이토 요시타쓰가 빠르게 미노를 집어 삼켰다고는 하나 거대한 미노의 특성상 지방까지 곧바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고, 그 틈을 노려 일영과 니와 나가히데는 군을 움직여 오와리와 가까운 땅 일부를 편입하였다.
운이 좋게도 꽤 소출이 좋은 곡창지대였기에, 그 자체로도 꽤나 큰 공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츠키! 이츠키!
당연히, 모든 전투에서 선봉에 선 것은 일영이 밀어주고자 다짐한 이츠키였다. 이츠키 역시 일영의 지원에 힘입어 최대한 역량을 다했고, 머잖아 이츠키도 작지만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끝나갈 무렵.
마침내, 기요스에서 일영과 주요 가신들의 복귀 명령을 내렸다.
본디 땅이란 단순히 깃발을 꽂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지배를 해야 먹을 수 있는 자원이었기에, 일대에 대한 지배권이 공고해지자 곧바로 일영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렇게 두어 달쯤 만에 일영은 기요스로 향했다.
히잉.
그리 급할 것도 없었기에, 그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럼에도 오와리 자체가 그리 넓지 않아 며칠이면 다다를 수 있었다.
마침내, 기요스가 보였다.
왔다아!
말 위의 일영을 발견한 아시가루가 외쳤고,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일련의 소동이 일어났다.
끼이익소리를 내며 성문이 열린다.
동시에, 대로로 들어선 일영의 주변으로 일련의 민초들이 몰려들었다.
와아아아!
히라테 히카게!
이츠키!
그리 대단한 승리도 아니건만,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 아마 점령한 지역에 꽤나 풍부히 쌓여있던 곡식을 기요스로 보낸 것이 주요한 듯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대로를 거닐었을까.
머잖아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머무는 본성에 다다랐고, 그들은 일제히 말에 내려 몸소 나와 기다리고 있던 노부나가에게 무릎을 꿇었다.
“당주를 뵙나이다.”
이번 원정의 책임자인 일영이 말하자, 뒤이어 요시나리, 이츠키, 나가히데 역시 노부나가에게 인사를 올렸다.
당주를 뵙나이다.
“되었다. 바로 올라오도록.”
허나, 노부나가는 그들의 인사를 반쯤은 흘린 채 일영에게 곧바로 천수각으로 올라올 것을 명령했다.
때문에 일영은 무릎을 꿇어 더러워진 바짓단을 털었고, 먼저 앞서가는 노부나가를 따라 천수각을 올랐다. 그리고 물러서는 이츠키와 나가히데를 제외한 채, 요시나리가 그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목조 계단을 오른다.
마침내 기요스가 한눈에 보이는 천수각에 오른 노부나가는 기다렸다는 듯 일영의 옷자락을 틀어잡았다.
“어, 어. 당주님?”
당연히 일영은 당황했으나, 뒤따라 들어온 요시나리는 되려 노부나가의 시선을 받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일영의 양팔을 잡았다.
요시나리가 어떤 여자던가.
“요시나리, 너까지?!”
무거운 창을 들고 목을 뎅겅뎅겅 써는 것도 모자라 때때로 창끝에 사람을 매달고 다니는 여자다. 일영은 단단히 고정되어 옷자락이 풀어 헤쳐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스르륵소리와 함께 배를 가리던 옷자락이 풀어진다. 때문에 일영이 내심 ‘씻지도 않았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오다 노부나가는 되었다는 듯, 탁하고 일영의 배를 때리며 말했다.
“음, 상처는 꽤 많이 나았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