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우둔한 딸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
* * *
흔히들 사이토 도산이란 노인을 가리켜 말하곤 한다.
하극상의 견본이라고.
승려, 기름장수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나라라 불리는 지역을 삼킨 그를 명칭하기에 그보다 좋은 말이 없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허나, 도산은 스스로를 일컫길 살무사라 명했고, 곧 미노의 살무사는 시대의 거두가 되었다.
하극상의 시대다.
또한, 오로지 실력으로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딸을 원망치 않았다.
다만, 자신의 앞에 모인 병력을 보고 무심결 웃게 되는 것이다.
“몇이라 하였느냐.”
“…다, 당주님.”
끝까지 살무사를 따른 충신 중 한 명이 차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허나 그런 그와 달리 곁에 있던 사무라이가 고개를 숙이며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도합 2,700이옵니다.”
2,700명.
도산의 명령 아래에 모인 병력의 전부였다.
사이토 도산은 비록 적은 수이지만, 자신을 끝까지 따르기 위해 온 이들을 훑었다.
불안한 시선이다.
때문에, 도산은 웃었다. 웃으며 서서히 떠오르는 하늘을 응시했다.
남색 하늘이 붉게 변한다.
떠오르는 해처럼, 이 대지에도 또 다른 태양이 뜰 것인가.
‘참으로 기구하구나.’
사이토 요시타쓰. 그 아이가 두 동생을 죽였다. 거점인 이나바야마 성을 점거하고 반란을 획책하였다.
그는 잠시 머물던 전각을 떠났다. 아끼던 아케치 미쓰히데를 풀어주고 노구를 이끌어 전장에 서려 가신들을 불러 모았다.
“내 딸에게 모인 병력이 2만에 달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3천 남짓한 병력과 2만.
붙어볼 필요도 없는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다. 허나, 사이토 도산은 되려 기꺼웠다.
늙어가는 동안 많은 것을 잃는다.
그것은 때로 가신의 지지가 될 수 있고.
일신의 총명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안목이 될 수도 있다.
“언제든 출정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때문에, 그는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정말로 자신의 안목이 저물었는지, 새롭게 떠오를 태양이 과연 태양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예! 당주님!
그의 말에 얼마 남지 않은 충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답을 들은 사이토 도산은 소매를 펄럭이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도망치듯 온 사기야마 성의 전각은 실로 추레했다. 이미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이들이 떠났기 때문인지, 그는 실로 쓸쓸한 공기가 맴도는 방 안으로 들어가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펼쳤다.
붓을 쥐고, 먹을 갈았다.
이윽고 검은 물이 맺히고 붓끝을 살짝 찍어 천천히 글자를 적으니.
「美?を?せる.」
해석하자면미노를 맡긴다.
단 6글자. 허나 그 안에 담긴 것은 후대에 남을 역사가 되리라.
사이토 도산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것을 기요스로 보내고, 너도 그곳의 코우카에게 몸을 의탁하거라.”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키쵸를 돌볼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허나, 사이토 도산이 묵묵히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머금으며 입술을 달싹이자 곧 천장에서 떨어진 닌자 한 명이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닌자의 자질은 부동.
허나, 그의 어깨는 떨렸다.
평생토록 모신 주군을 떠나는 것이다.
그것은 불충이자 나아가 한이 되었기에, 닌자는 떨리는 손으로 도산이 정갈하게 적은 쪽지를 집어 품에 넣었다.
본디 그것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나야 할 닌자다. 허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머잖아 정갈한 도게자를 올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승리하시기를.”
“허허.”
닌자는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사이토 도산은 웃음을 흘렸다. 술 때문인가, 아니면 미약하게나마 남은 충심을 느꼈기 때문인가.
서늘함과 씁쓸함이 가득했던 방 안이 묘하게 달아오른 느낌인 것이다.
스윽.
도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산등성이를 응시했다. 검은 배경 아래 물결처럼 차오르는 경관이 썩 달갑다.
허나, 정작 그의 마음은 언젠가 보았던 당찬 여걸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니.
‘오다 노부나가.’
듣기론, 아직 오와리를 품에 넣지는 못했으나 실로 든든한 가신을 얻었다 했다.
‘히라테가 말미에 괜찮은 양자를 얻었어.’
때때로 남아있는 닌자들이 가져오는 소식들이 기꺼웠다. 더욱이 키쵸를 구원한 것도 놈이라 하였으니….
“내가 정정했더라면, 혼약이라도 보내보았을 터인데. 허허.”
죽을 때가 되니, 유달리 여렸던 딸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는 잠시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 묵묵히 과거를 추억했다.
그리고 정확히 보름 쯤 지났을까.
묵묵히 때를 기다리던 사이토 도산에게 정찰을 나갔던 정찰병이 다가와 외쳤다.
“요시타쓰가 이나바야마 성에서 나와 나가라가와 남해안으로 군을 이동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창가를 바라보며 찻잔을 기울이던 늙은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가.”
정리할 것은 정리하였고, 귀했던 것 역시 모두 지키지 못하였으나 최소한의 위안이 될 정도는 지켰다.
때문에, 노인은 다시 살무사의 이름을 삼켰다.
펄럭.
겨울의 서늘한 공기가 장포를 흔들고, 도산은 무덤덤한 발걸음으로 바닥을 디디며 답했다.
“가자꾸나. 딸이 보고싶으니.”
*
1556년. 미노를 집어삼키기 위한 마지막 전투가 서서히 장막을 걷고 드러나고 있었다.
나가라가와 남해안에 요시타쓰를 뜻하는 가몬이. 북해안에는 도산을 뜻하는 가몬이 펄럭거린다.
도산은 전장을 살피기 위해 언덕 위에 자리한 의자에 앉아 직접 눈앞에 보이는 수적 차이를 응시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때마침, 도산의 뒤에서 갑옷을 차려입은 가신이 고개를 숙였다. 도산은 고개를 끄덕여주곤 그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꾸나.”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다.
횃불은 타들어 가며 연기를 뿜어내고, 머잖아 저 강 너머의 진영이 눈에 담겼다.
‘쉽게 목을 내어줄 것이었다면, 차라리 할복을 택했을 것이다.’
늙은 몸과 어울리지 않는 우직한 갑주가 철그럭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동시에 그는 말에 오른 후 미리 도열하고 있던 1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묵묵히 진영을 떠났다.
다그닥, 다그닥!
일련의 발소리가 건너편에서 보이지 않는 밤을 틈타 길게 돌았다. 머잖아 하류에 도달했고, 그들은 물살이 약한 곳을 따라 강을 건넜다.
뒤에 선 조총 부대가 화약을 집어넣었다.
활에 화살을 먹였고, 동시에 어느 정도 요시타쓰와 진영이 가까워지자 도산은 허리춤에 매여있던 검을 뽑으며 외쳤다.
전군! 돌진하라!
야습이었다.
그의 명령을 받은 1500의 병력이 일제히 평원을 내달리고, 나아가 당황한 듯 흔들리는 진영을 단번에 무너트리고자 쇄도한다.
도산은 늙은 몸을 이끌고 제일의 선두에 서서, 출정 전 가신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야습을 할 생각이다.
야습이라면….
그 우둔한 아이에게 전쟁이 어떤 것인지, 마지막 가르침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다그닥, 다그닥.
내달리는 울림을 따라 도산은 생각한다.
오해를 조금이라도 일찍 풀었더라면, 저 우둔한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았을까.
‘도키 요리아키. 그대가 내게 남긴 복수가 이것인가.’
썩 나쁘지 않은 저주였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한때 나에게 주군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야습이다!
도산! 도산이 직접 군을 이끌고 왔다!
마침내, 그를 본 딸의 가신들이 외쳤다. 그는 직접 검을 휘두르며 살무사가 살기를 내뿜듯 외쳤다.
“이미 오늘 전장에서 죽을 것을 각오했다!”
도산의 뒤로, 그를 따르는 가신들이 미친 듯이 검과 창을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진영에 펼쳐진 막사가 발말굽에 짓밟히고, 동시에 도산은 과거 자신을 주군이라 불렀던 이들의 목을 베어넘기니.
“비록 내가 죽는다 하여도!”
서걱, 툭!
언젠가, 자신에게 헤픈 웃음을 보이며 당신처럼 되고 싶다 했던 무사의 가슴을 베었고.
“사이토 요시타쓰! 나의 딸이 그 이름을 이어 미노를 지키겠지!”
지키지 못한 들 상관 없다.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나의 딸 사이토 요시타쓰.
그 두 아이들이 야망을 품고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볼만할 것이니. 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제야 인정한 그의 진심 때문이었다.
“인정하겠다! 내가 네 녀석을 과소평가하였구나!”
어느새, 돌진하는 발굽이 멎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던 요시타쓰의 병사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반격에 사이토 도산이 이끌고 온 1500의 별동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사, 살려…. 커허억!
아아악!
핏물이 대지를 적신다.
말들이 주인을 따라 쓰러지고, 동시에 미노를 지배하였던 사이토 도산의 깃발이 대지로 추락하여 짓밟히니.
“사이토 요시타쓰!”
어느새 사방이 과거의 수하이며, 현재의 적인 곳에 선 살무사가 머리에 쓴 투구를 벗어 던지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자신의 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동시에, 야습으로 엉망이 된 진영이 침묵으로 맴돌고.
“예. 아버지.”
마침내, 진영의 중앙에 있던 막사에서 실로 광기가 어린 목소리가 울리니.
스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천막이 걷힌다.
그리고, 머잖아 키쵸와 마찬가지로 은발을 가진 여인이 실로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 나왔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아, 이 칭호도 더는 쓰지 못하겠습니다.”
온화한 미소가 머금어지지만, 그녀의 입가가 씰룩였다. 동시에 그녀는 눈가를 살짝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넘긴 채 붉은 입술을 달싹거리니.
“너는 내 아버지가 아니야. 도산.”
그녀의 말에, 나라를 훔친 노인이 허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도 그 낭설을 믿고 있는 게냐. 우둔하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