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출정한다
* * *
“사, 사이토 도산이 군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전령의 말에 일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 말은, 본격적인 미노의 내전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같았기 떄문이다.
때문에 가신들의 시선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닿았다. 일신의 분노는 둘째로 치더라도 미노의 혼란은 곧 오와리의 기회였다. 다만….
“아가씨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가씨가 누구인지 모를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가씨. 즉 오다 노부유키를 지칭한 말이었다.
니와 나가히데의 말대로 현재 오와리는 안정되지 않았다. 괜한 무리를 하다가 역으로 오다 가문 자체도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감히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제게 3백의 사무라이와 7백의 아시가루를 주십시오.”
정적만이 감돌던 회의장 안에 무덤덤한 목소리가 울렸다. 머잖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고, 말을 한 남자, 일영은 그들의 시선을 모두 감내하며 말을 이었다.
“비록 큰 공을 세우리라 장담하진 못하겠으나, 미노의 영토 일부나마 오와리에 편입하며 당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단지 1천의 병력이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회전이 아닌 치고 빠지는 전술에선 오히려 적절한 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영은 지그시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노부나가의 시선에 옷섬을 여미며 말했다.
“작금의 상황 속에서 그게 최선입니다. 당주님. 그리고….”
순간, 일영의 시선이 서늘하게 변했다.
“제게는, 갚을 빚이 있지 않습니까.”
갚을 빚.
그 말에 섬뜩함을 느낀 것은 비단 가신들뿐만이 아니었다. 때문에 일영의 부상을 핑계 삼아 단칼에 거절하려던 노부나가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허락하시지요. 당주님.”
후훗하는 웃음과 함께, 니와 나가히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말에 노부나가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니와 나가히데는 무릎 위에 놓은 부채를 손가락으로 쓸며 말했다.
“제가 함께 가서, 우려하시는 일이 없도록 책사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더욱이 도합 1천이면 그리 큰 문제 없이 득을 보고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요시나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허나, 그녀의 말에 답한 것은 다름이 아닌 일영이었다.
“괜찮습니다.”
여태까지 무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때문에, 무심결 노부나가와 요시나리의 마음이 약해지려던 찰나.
일영은 뒤에 서 있는 이츠키를 힐끔 바라보곤 말했다.
“전 단지 지휘할 뿐, 전투는 제 가신이 할 테니까요.”
“…예?”
모두의 시선이 이츠키에게 닿았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중신들은 물론 이름 모를 가신들에게도 눈초리를 받게 된 이츠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나, 일영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저와 함께 숱한 사선을 지난 무사입니다. 비록 아직까진 명성이 모자라 필부로 보이지만, 훗날 이름을 날리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그 말을 하며 옷섬을 펄럭거렸다.
당연하게도, 일영과 이츠키를 보는 시선이 그리 달갑진 않았다.
히라테 마사히데조차 적이 있다.
헌데, 조선 출신인 일영은 얼마나 적이 많겠는가. 때문에 내심 일영이 의도한 부분이기도 했다.
일전에 암습으로 느낀 점이 있었다.
노부나가와 요시나리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자신의 사람을 키울 필요는 있는 것이다.
‘특히, 닌자도.’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데에는 사무라이들만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일단은 이츠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회의장 내부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얼어 붙었다. 몇몇 가신들은 일영의 말에 반대하고자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때.
“…요시나리도 데려가거라.”
이윽고 열린 노부나가의 말에 막 목소리를 내뱉으려던 가신들은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일단은 침묵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일영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요시나리는 노부나가의 시선을 받고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여인의 시선이 맞닿는다.
비록 입으로 내뱉진 않았으나, 왜인지 뜻이 전해지는 것이다.
‘흐응.’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니와 나가히데는 묘한 눈으로 일영을 응시할 뿐이었다.
*
회의가 끝나고, 가신들은 제각기의 파벌과 생각으로 나뉘어져 빠르게 회의장을 떠났다. 그러자 곧 회의장 안에 남은 것은 늘 보던 얼굴들 뿐이었다.
“하아. 정말 미치겠구나.”
오다 노부나가의 뽀얀 발이 일영을 찰 듯 꿈틀거렸다. 동시에 요시나리의 서늘한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때, 중후한 히라테 마사히데의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닌자들을 심문했다지.”
“…예.”
양부의 말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속이 과했다 질책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필요한 일이었기에,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테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뜻밖이었다.
“잘했다.”
“예?”
내심 스스로도 좀 심했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헌데 비단 히라테 마사히데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남아있는 모두가 적절한 조치였다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다.
과연, 난세인 것이다.
한편, 노부나가는 니와 나가히데와 모리 요시나리를 보며 말했다.
“저놈이 검을 뽑으면, 차라리 발로 차서 낙마시킨 후에 억지로 끌고와라.”
아예 상처가 다 나았다면 모를까.
저 상태로 또 중상을 입으면 그땐 진정으로 일/영이 된다. 뒤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충고를 하자, 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는 일단락이 된 직후, 나머지 이들 역시 회의장을 떠났다.
일영은 함께 가려는 여인들을 먼저 보낸 후, 아직 반상 위에 놓인 차를 음미하겠다 말하곤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잖아, 일영이 기다리던 여인이 왔다.
“…히, 히카게님.”
은발에 은안을 가진, 어찌보면 조금 전 자리가 제일 슬프고 무서웠을 여인.
“예. 노히메님.”
일영은 모두가 떠나길 기다린 듯한 노히메를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그녀가 제일 듣고 싶어할 말을 꺼냈다.
“가능하다면, 도산님을 구원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노히메의 얼굴에 눈물 섞인 웃음이 피어났다.
*
출전이 결정되자, 일영은 빠르게 움직였다.
곳곳에 잠입한 오다 노부유키 측 닌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명받은 병력은 제각기 상인이나 농민 따위로 변복해 미노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자, 길을 잘못 들거나 의도적으로 도망친 이들을 제외하곤 모든 병력이 평원에 모였다.
“많군요.”
“네. 천명이 그리 적은 병력은 아니지요.”
일영의 말에 니와 나가히데가 화답한다.
말의 움직임을 따라 남색 장발이 흔들리고, 나아가 평상시처럼 수수한 갑주가 도드라졌다.
“…거참, 상의는 해주시지 그랬습니까.”
그때, 병력의 수를 살피고 온 이츠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런 이츠키의 투정에 일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꼬우면 돌아가던지.”
“…그건 아니지만요.”
갑작스러웠다뿐이지, 일영의 마음을 모를 이츠키가 아니다. 그가 어떤 걸 바라고 있는지도 내심 추측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평소 입던 것보다 더 잘 짜인 장수용 갑옷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쩝. 든든하긴 하네요.”
단순히 히라테 가의 수많은 사무라이 중 하나였던 때와 달리, 현재 이츠키는 일영이 밀어주려는 가신이 되었다. 당연히 입거나 드는 병기의 질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 이츠키와 마찬가지로 병력을 살피고 온 요시나리가 일영을 부르듯 시선을 보냈다.
“잠시.”
“옙.”
“흐응.”
이츠키와 나가히데를 뒤로 한 채 요시나리에게 향했다. 그렇게 그녀와 완전히 가까워지자, 요시나리가 살짝 얼굴을 기울여 일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죽을래?”
서늘한, 그리고 우려가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일영은 내심 몸을 떨며 싸늘하게 굳은 요시나리의 눈을 바라보고 말았다.
많은 걸 담은 눈이다.
특히, 출진하기 전 노부나가에게 온갖 잔소리를 들었을 때도 침묵했던 그녀였기에 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빼도박도 못할 잘못이다.
일영도 그것을 알기에,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아.”
요시나리의 좁혔던 미간이 풀렸다.
마치 장수 풍뎅이와 같은 투구 뒤로 빼꼼 삐져나온 묶음 머리가 흔들리고, 갑옷도 가리지 못한 가슴이 출렁거렸다.
“…이번엔 정말 싸우지 마.”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일영도 내심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두 여자를 걱정시켰는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당연하지.”
그리고 그때.
크흠소리와 함께 니와 나가히데의 헛기침이 울렸다. 일영은 가볍게 요시나리의 등을 쓸어 자리로 보낸 후 고개를 돌렸다.
야심한 밤.
평원을 디디고 선 천명의 병력이 오직 일영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때문에, 일영은 허리에 자리한 오니마루를 쓸며 말했다.
“긴장할 필요 없다.”
길게 말할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단지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현실을 견지시킬 생각이었다.
“오와리를, 우리의 가족을 노리는 미노의 버러지들을 베고 돌아올 뿐이다.”
사이토 도산을 살릴 수 있으면 살린다.
하지만, 살리지 못하면 그뿐이다.
…키쵸에겐 미안하지만.
일영은 마지막 말을 삼킨 후, 말을 돌려 미노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출정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