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미노의 혼란과 급변하는 정세
* * *
“…그런가.”
“예, 예!”
일영의 말에 앞에 앉은 닌자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옥 안에 남아 있던 두 명의 닌자들은 핏발이 선 눈으로 순순히 자백을 뱉어낸 그를 죽일 듯 노려보았으나, 일영은 개의치 않았다.
텅그렁소리를 내며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그는 닌자의 자백을 정리했다.
‘사이토 요시타쓰.’
닌자를 보낸 것은 오다 가문의 가신도, 오다 노부유키 측도 아닌 미노의 사이토 요시타쓰였다. 교차검증까지 끝냈으니 의심할 여지는 없다.
동기는 충분했다.
다름이 아닌, 노히메가 오다 가문으로 망명했으니 말이다. 다만 바로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일영의 표정이 굳었다.
직접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벌써 두 번의 악연으로 엮인 사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으나, 절대 쉬이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그, 그럼 저는….”
그때, 자백을 한 닌자가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리며 일영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일영은 놈의 존재를 깨닫고 답했다.
“아, 그렇지.”
무심한 눈이 닿았다.
그리고, 잠시 턱을 쓸며 고민하던 일영은 머잖아 싱긋 웃으며 닌자에게 말했다.
“큰 공을 세웠다. 네 가족과 지인들도 함께 오와리에 살 수 있도록 안배할 것이니, 모두 읊어 보거라.”
“가,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보답이었는지, 닌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급히 나열했다.
가족과 인근하는 지인들의 이름까지.
모두 세세히 기억한 일영은 뒤에 선 코우카 류 닌자를 힐끔 바라보곤 말했다.
“적어.”
“…예.”
심문하는 곳인 만큼, 기초적인 필기도구는 놓여있었다. 때문에 닌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전 심문하며 나온 이름들을 주욱 적었다.
그렇게 마지막 점을 찍은 순간.
일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다시 가두고, 언급된 이름은 모두 죽여라.”
“…그, 그게 무슨?”
떨리는 시선으로 되묻는다.
제발 내가 들은 게 거짓말이라고 답해달라는 듯, 닌자의 얼굴에 절망과 함께 분노가 섞였다.
이윽고 일영의 시선이 돌아간다.
그는 자신을 올려보는 닌자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그저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아, 아아아악! 개자식아아!
뒤에서 울음섞인 외침이 울리고, 머잖아 닌자는 묶여있는 의자가 부서질 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코우카 류 닌자가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의자가 부서질 수도 있었을 정도로 격렬했다.
때문에, 일영은 감옥을 나서다 말고 잠시 뒤를 바라보았다.
‘…못 해먹을 짓이야.’
좋아서, 살인에 미쳐서 내린 명령이 아니었다. 이건 본보기다. 어차피 미노와는 대립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차라리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하아하고 숨을 내뱉었다.
흰색 입김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고, 일영은 물기가 굳어 살짝 언 머리를 쓸어넘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연회는 곧 끝날 것이니 먼저 올라가 쉬어도 큰 무례는 아닐 것이다.
‘지친다….’
일영의 얼굴에 노곤함이 감돌았다.
*
미노.
언젠가 도키 씨의 이름 하에 지배되던 대지는 이젠 살무사의 영토가 되었다.
화륵.
횃불이 일렁인다.
동시에, 늙었으나 장대한 기골을 가진 노인의 앞에 선 여자가 눈물을 흘렸다.
“…당주님.”
“울지 말거라. 모모마루. 아니, 미쓰히데.”
노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음성이 울린다. 그런 노인의 말에 되려 눈물이 흘렀다.
비록 미노 밖에 알려지진 않았으나, 노인은 위기였다. 아니, 위기라는 말조차 희망적일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노인의 안광이 서서히 꺼진다.
그 자리엔, 닳고 닳아 잊었다 생각한 분노가 가득했다.
“무능하고 아집이 센 아이라 생각했거늘, 내가 오판을 한 것인가.”
가신들의 불만을 해소하여 마음을 잡았다.
노인이라 하나 나라를 훔친 살무사조차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가문을 집어 삼켰다. 결국, 살무사가 할 수 있던 일은 지독히도 아끼던 딸인 키쵸만을 오와리로 빼돌리는 일 뿐이었다.
“오다 노부나가, 그 어린 놈이 바보가 아니길 빌어야 한다니. 허허.”
수차례 맞붙었던 어린 놈이다.
때문에, 말로는 그렇게 하였으나 그리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그는 눈앞에 선 처조카, 아케치 미쓰히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으나, 나는 딸에게 죽을 생각이다. 그러니 엄한 목숨을 버리지 말고 일족을 이끌고 도망치거라.”
“…하지만!”
“어허!”
쿠웅하고 노인의 발이 다다미를 굴렀다.
나아가, 그는 딸이나 다름이 없는 어린 조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얼마나 미련이 남아있다 생각하느냐.”
중후한 음색에 후회는 없었다.
“한낱 서민이었다. 민초였으며, 그야말로 들풀이었지.”
널리고 널린 백성이었다.
단지 기골이 장대하고 외모가 좋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그것뿐이었다.
단지 한 줌의 흙을 가졌다.
때문에, 어린 살무사는 수없이 갈망하고 원하며 빼앗았다.
승려가 되었다.
기름 장수가 되었으며, 도키 가家의 사내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니시무라 간쿠로가 되었다.
나가이 노리히데가 되었고.
말미에는 사이토 도시마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의 인연을 끊어내고 스스로 이 땅의 주인이 되던 날 그는 사이토 도산이 된 것이다.
하아.
숨결에 과거의 편린이 흩어진다.
실로 파란만장하게 생을 종횡한 사내는 어느새 노인이 되었다. 그는 흔들리는 횃불 속, 묵묵히 자신을 따른 소수의 가신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토록 많은 허물을 모두 벗고 마침내 도산이 되었다. 헌데 무슨 미련이 있고 무슨 아집이 있겠는가.”
전국이 혼란하고, 시대가 난세이니.
구 시대의 망령은 새롭게 자라난 호걸들에게 퇴장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일 터.
“허나, 단지 흩어지진 않을 것이다.”
노인의 갑옷이 철그럭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동시에, 꺼져가던 안광에 잔불이 일어나며 노인은 말했다.
“딸을 만나러 갈 것이다.”
생의 끝을 불살라주마.
건방지고도 아둔한 딸아.
네가 진정으로 살무사의 뒤를 잇고자 한다면, 이 아비의 목에 독니를 박아 넣으려무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각의 밖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수십의 사무라이가 말없이 뒤따랐다.
“…아.”
멍한 눈으로 멀어지는 도산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상황이 위태롭다면 목숨을 아껴 후일을 도모하거라. 아사쿠라에게 몸을 의탁하거라.
아케치 미쓰히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멀어지는 살무사의 마지막을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
*
격변하는 정세였다.
오와리 내부의 분쟁도 분쟁이었으나, 미노 측에서 보낸 암살자의 존재는 오다 가문 내부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콰앙!
거친 손길로 탁자를 내려친다.
분노에 떨리는 수염이 흔들리고, 몇몇 가신들은 아예 대놓고 갑옷까지 입고 와 오다 노부나가에게 천명했다.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미노를 무릎 꿇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쇼맨쉽을 보인 이들조차 곧 분위기를 읽고 닥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뿌득.
오다 노부나가의 이빨이 갈렸다.
평소에도 그리 밝지는 않은 그녀의 얼굴이었으나, 오늘따라 유달리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은 가히 심기를 짐작 토록 만들었다.
뿐인가.
저번 일로 중신의 반열에 오른 모리 요시나리는 아예 갑옷을 입고 왔다. 히라테 마사히데 역시 드물게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침묵했고, 니와 나가히데 역시 부채를 정갈히 내려놓고 묵묵히 가신들을 응시했다.
“크, 크흠.”
그제야 몇몇 가신들은 자신들이 쓸데도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걸 자각하고 자중했다. 그때였다.
“니와.”
“예. 당주님.”
오다 노부나가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니와 나가히데 역시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한발 늦은 소식이긴 하나, 뒤늦게 정세가 급변함을 깨닫고 알아본 바로는 이미 미노는 사이토 요시타쓰에 의해 넘어간 상황입니다.”
일전에 지원을 왔던, 미노 삼인방 모두가 사이토 요시타쓰에게 넘어간 후였다. 뿐인가. 더욱 충격적인 말이 이어졌다.
“사이토 도산은 소수의 가신들을 이끌고 현재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시간의 차이가 있으니 지금쯤 맞붙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문득, 모두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키쵸노히메에게 닿았다. 미노는 그녀의 고향이며, 사이토 도산은 그녀의 아버지인 탓이다.
헌데 이상한 점이 있다.
“…빌어먹을.”
바로 오다 노부나가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닌자를 보낸 것은 분노할 만한 일이었으나, 당장 그녀가 공격당한 것도 아니니 저렇게까지 분노할 일은 아닐 텐데.
당연히 가신들은 짐작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녀가 화가 났는지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시선이 살짝 돌아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는 일영에게 닿았다.
‘두 번씩이나.’
벌써 두 번이다.
그 미친년이 제 아비를 죽이던, 아니면 죽여서 술잔으로 쓰던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미친년의 광기에 일영이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는 건 상관이 있었다.
뿌득.
이빨이 갈린다.
그리고 그때.
“다, 당주님!”
콰앙소리와 함께, 파발을 든 사무라이 한 명이 다급히 달려와 그녀의 앞에 엎드리며 외쳤다.
“급보입니다! 사이토 도산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