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59화 (59/171)

〈 59화 〉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야차가 되겠다

* * *

“…알겠습니다.”

타키가와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일영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당연히 니와 나가히데가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그럼, 니와 공을 부탁합니다.”

“예?”

일영은 되려 타키가와에게 니와 나가히데를 맡긴 후 직접 그들을 감옥까지 끌고가리라 말했다. 때문에 닌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따위의 시선을 타키가와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검은 눈동자가 갈등한다.

하지만, 이미 노부나가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시겠습니다.”

닌자는 상급자의 명령이 떨어지면 단지 수행할 뿐이다. 제압한 닌자들을 포박한 그들은 곧바로 일영을 호위하듯 감싸며 감옥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으음. 뭐가 어떻게 된 걸까요.”

차마 무슨 의견도 내기 전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렇기에 니와 나가히데는 어색하게 뺨을 긁으며 멀어지는 일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흐음.’

묘했다. 특출나다는 말이 아쉬운 무력은 그렇다 쳐도, 조금 전 일영의 기류는 확실히 묘했다. 뭐랄까….

‘분명히 온화한 표정이었는데.’

무심결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때문에, 니와 나가히데는 아예 일영의 등이 멀어질 때까지 묵묵히 그의 뒤를 응시했다.

따라갈까라고 생각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권력과 위상은 자신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훗날 중신이 될 거라 생각되는 이와 이미 중신으로서 당주의 곁을 보필하는 이의 차이가 있으니.

‘뭐, 나중에라도 알 방법은 있으니까요.’

아예 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혹 막는다 해도 알 방법은 족히 몇 개는 되었다.

“그나저나, 옷이 엉망이 되어버렸네요.”

니와 나가히데의 말에 타키가와는 힐끔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옆구리를 찢은 건 둘째로 치더라도 진창에 빠져 무릎과 옷이 더러운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연회장을 돌아가기도 뭐하다.

때문에, 그녀는 타키가와와 시선을 맞추고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씻으러 갈 건데, 함께 가시겠어요?”

어둠이 깔린 밤이기 때문인가.

묘한 웃음과 함께 살짝 불어온 바람이 타키가와의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괜찮습니다.”

*

일영의 명령에 의해 닌자들은 잡아온 놈들을 모두 옥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자 일영은 축축한 옷을 갈아입으며 무심히 말했다.

“입이 무거운 한 명만 남고, 나가.”

일전에 타키가와와 마주했을 때와는 다른 무채색의 하대였다. 때문에 닌자들은 그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을 깨닫고 일영의 말대로 제일 입이 무거운 한 명을 남긴 채 감옥 밖으로 흩어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습격이나 탈주를 대비하여 최소한의 수는 남겨놓은 상태였다.

타닥.

어두운 감옥에 횃불이 일렁인다.

석재로 만들어진 차가운 벽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더러운 옷을 벗고 닌자들이 가져온 수수한 사무라이의 정복을 입은 일영은 감옥에 갇혀 자신을 올려보는 닌자들을 내려보았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일영의 얼굴에 서늘함이 맴돈다.

무심함이 감돌고, 나아가 입술이 달싹거린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가 무엇일까.”

놈들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온 이유라 생각하겠으나, 일영은 달랐다. 현대에서 이곳으로 온 이유를 끊임없이 물었다.

“답이 나오질 않더군.”

신은 답하지 않았고, 이유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어느 순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바꿨다.”

성큼, 감옥 안에 누운 한 남자 닌자에게 향했다. 온몸이 밧줄로 묶였음에도 놈의 눈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전쟁에 나갔지.”

스윽하며 복면을 끌어 내렸다.

또래쯤 되어 보이는 투박한 얼굴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영은 놈의 머리를 틀어쥐고 시선을 맞췄다.

“사람을 죽였어. 그것도 아주 많이.”

혼란스러움에 홀린 듯 요시나리의 품에 안겼다. 애써 웃으며 다녔고, 최대한 혼란스러움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전에 요시나리를 구원한 날 느꼈다.

어느 순간, 자신이 변했음을.

일영의 손길에 질질끌려나온 닌자가 의자에 앉았다. 동시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닌자에게 말했다.

“단검이 있나?”

“…예.”

품에서 작은 단검을 하나 꺼내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 쥐였다. 그러자 일영은 무심한 손길로 그것을 받아들고는 화톳불 위로 날을 올렸다.

은빛으로 빛나던 쇠가 붉게 달아오른다.

동시에, 일영은 두려움에 떠는 청년의 입을 막고 있는 재갈을 더욱 여미며 말했다.

“나는 당주님을, 오다 노부나가를 이 열도의 왕으로 만들 생각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또한, 이젠 사랑하게 된 여인을 위해서다.

소중한 이들이 많아졌다.

동시에, 적이 늘었다.

일영의 번뜩이는 안광이 닌자에게 닿았다.

동시에, 화톳불에서 꺼낸 붉게 물든 칼이 서늘한 공기와 맞닿아 스스스 따위의 소리를 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기꺼이 사람을 죽일 생각이다.”

이성과 지성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직 힘으로만 모든 대화가 이루어지는 전국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현대인의 옷을 벗어 던질 생각이 있었다.

심문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아니, 차라리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읍! 으읍!

입에 묶인 재갈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울린다. 허나 일영은 놈의 재갈을 풀어주지 않았다.

“양쪽 무릎을 지질 생각이다. 상처가 나아도 걷지는 못하겠지.”

단검을 쥐었다.

동시에, 일전의 야차와 같은 얼굴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네놈은 살려 보낼 것이다. 평생을 후회하며 살도록.”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밥벌이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영은 놈을 살릴 생각이었다.

읍, 으으읍!

자비를, 또는 죽음을 원하는 괴성이 울린다.

차라리 주군을 배신할 테니 살려달라는 울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영은 고개를 저었다.

놈은 본보기였다.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푸욱.

으으읍! 으으으윽!

재갈 너머로 괴성이 울린다.

무릎의 관절을 정확히 쑤신 칼날이 하릴없이 놈의 다리를 망가트렸고, 상상을 초월한 고통에 닌자의 입에서 거품이 흘러 나온다.

끄으으윽! 으으읍!

치이이.

고통 섞인 비명과 몸을 떠는 닌자의 모습만이 심문실 안을 가득 채운다. 그 모습에 감옥 안에 묶여있는 닌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고, 일영의 뒤에 묵묵히 서 있는 코우카 류 닌자의 눈에는 두려움이 섞였다.

일전에 보였던 얼굴은 무엇인가.

넓은 등과 온화하게만 보였던 얼굴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두렵다. 두려웠다.

동시에, 무심결 상상하게 된다.

만약 내가 저런 고문을 당한다면 끝까지 주군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의 시선이 이윽고 일영에게 닿았다.

‘…배신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벌써부터 두려운 것이다.

배신한 이를, 저자가 어찌 처리할지.

때문에, 이름 모를 닌자는 다짐했다. 차라리 잡히는 순간 자결하자고.

*

일영은 손에 묻은 핏물을 닦았다.

그의 앞엔 양쪽 무릎이 피투성이가 되어 벌벌 떨고 있는 닌자가 반쯤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을 내렸다.

무릎이 완전히 망가졌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걸어다닐 순 없을 것이다. 일영은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놈을 잠시 바라보다가 곁에 선 닌자에게 말했다.

“무릎을 묶어 구석으로 치워라.”

“…예.”

닌자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실신한 놈을 옮겼다.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묶은 붕대는 금방 핏물에 뒤덮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럼.”

일영의 시선이 돌아갔다.

감옥에 닿았고, 곧 머리가 긴 여자 닌자를 바라보았다.

읍! 으으읍!

자결을 방지하기 위해 입에 문 재갈 너머로 최선을 다해 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제발 그리해달라고.

일영은 무심한 눈으로 문을 열었다.

끼이익 따위의 소리와 함께 열린 감옥에서 그녀를 앉히고, 재갈을 풀어주었다.

눈이 불안하게 떨린다.

당장이라도 혀를 물어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턱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쥐여졌던 단검이 화톳불 위에 얹어진다. 핏물이 타고, 검게 그을린 단검의 표면이 다시 달아오른다.

일영은 그런 단검을 잠시 바라보다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얼굴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름.”

“…아, 아.”

찰나의 망설임.

일영은 망설임 없이 단검을 쥐었고, 그녀의 무릎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단검이 막 무릎에 닿으려던 그때.

“히, 히나코! 히나코입니다!”

일영의 단검이 멈춘다.

그리 못나지 않은, 꾸미면 아름다울 듯한 얼굴에 안도감이 맴돈다. 하지만 그 순간.

“늦었다.”

일영의 손이 빠르게 그어지고, 단검은 망설임없이 그녀의 목을 꿰뚫었다.

끄르륵.

목에 긴 실선이 그어지고, 한발 늦게 뜨거운 단검에 화상을 입은 피부가 일그러진다.

나아가, 핏물을 흘린 히나타는 어째서라는 표정으로 일영을 올려보았으나, 일영은 어느새 몸을 떠는 코우카 류 닌자에게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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