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예상 밖의 일들
* * *
어어하는 순간 둘은 그대로 연못으로 빠지고 말았다. 달리 반응할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니와 나가히데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도 분명, 둘을 노리고 쏘아진 화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누가?’
책사 특유의 습관일까. 빠르게 이런 일을 저지를 법한 이들을 추려낸다.
일단 오다 가문 아래있는 수많은 가문들.
글쎄, 아귀가 맞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현재 당주의 곁에 남아 있는 이들은 모두 발을 빼기가 힘들다. 혹여 노부유키가 이긴다고 하여도 잘 해봐야 지방 한직, 운이 나쁘면 되려 숙청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히카게를 암살할 이유도 없어.’
그는 단지 총애받는 신하일 뿐, 그를 대신할 이들은 차고 넘쳤다. 차라리 히라테 히카게 말고 히라테 마사히데를 노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일 진대.
그럼 다음은 누구일까.
그녀의 생각이 이윽고 노부유키에게 닿았다.
분명히 동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굳이정도의 감흥이었다. 애초에 노부유키가 이 남자에게 나름의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모르겠다.
니와 나가히데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순간,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다시금 빠르게 감긴다. 그리고 당연히 그 결과는….
풍덩! 하는 소리와 함게 일영과 그의 품에 안긴 니와 나가히데가 반쯤 연못에 빠졌다. 놀란 잉어가 꼬리를 바쁘게 흔들며 진흙 속으로 숨었고, 둘의 모습을 확인한 닌자들이 담을 넘어 그대로 검을 뽑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하지만 지금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네요.”
일영도 동의하는 바였다.
때문에,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연못을 빙 둘러 자신들을 포위한 닌자들을 응시했다.
뚝, 뚜둑하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펄럭거리는 비단옷이 물을 먹어 무거워지고, 나아가 애써 다듬은 머리도 물에 젖어 흐트러진다.
뿐인가.
니와 나가히데 역시 젖었긴 매한가지였다.
물론 직접 진창에 빠진 일영과는 달리, 정말 물밖에 닿지 않아 오히려 색정적인 기운을 뿜는다는 걸 제외한다면 말이다.
허나 닌자들도, 일영도, 그녀도 개의치 않았다.
당장 눈앞에 칼이 들어와 있다.
누가 저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수 있을까.
일영의 시선이 닌자들에게 닿았다.
모두가 담장에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쯧.”
혀를 찼다. 나무 위에서 시위를 당기는 세 명의 닌자를 본 탓이었다. 그리고 일영이 혀를 차기가 무섭게 그들을 둘러 싼 닌자가 휘익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파앗!
허공을 가른 화살이 쇄도한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단번에 일영과 니와 나가히데를 꿰뚫기 위해 뻗어지고, 확실히 하기 위해서인지 닌자들이 곧바로 검을 내질렀다.
“흐읍!”
“핫!”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기 위함인지, 작게나마 들려오는 기합 소리를 제외하면 실로 조용한 공격들이었다. 가히 암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히카게 님.”
그때, 일영의 귓가로 니와 나가히데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숙여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으나, 이미 화살이 닿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반쯤 속는 셈 치고 그대로 연못 아래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이에요!”
니와 나가히데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일련의 수리검(슈리켄しゅりけん)들이 사방에서 뻗어져 일영과 나가히데를 향해 검을 뻗던 닌자들의 등에 꽂혔다.
그리고 그 즉시, 일영은 솟구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닌자의 명치를 주먹으로 찍어 눌렀다.
“커헉!”
마른 기침이 터진다.
동시에 살짝 놓아진 검의 손잡이를 마주 쥔 일영은 곧바로 놈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목을 베어넘겼다.
서걱, 툭.
흙탕물이 된 연못의 물이 붉게 물든다.
한낮 고깃덩어리가 된 육신이 허물어지고, 나아가 일영은 검을 한 바퀴 돌려 유려한 선을 그으며 당황한 닌자들을 응시했다.
상처가 욱씬 거린다.
새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상처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몇 번이지?”
두 번, 아니 세 번인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슬슬 의원한테 살해당하지 않을까싶다가도 이번엔 섹스 때문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일단 이리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일영은 니와 나가히데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녀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일영의 넓은 등 뒤로 몸을 감췄다.
검을 쥔다.
이젠 익숙해진 살인에 대한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곧 전각 지붕에서 속속들이 모습을 보이는 닌자들이 시야에 잡혔다.
무, 무슨.
이전 예상에 없는 전개였던 듯, 우두머리로 보이는 닌자의 눈이 떨렸다. 그와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보내진 닌자의 수가 채 10명을 넘지 않건만 그들을 포위한 닌자의 수는 족히 20명은 되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다.
나무 위에서 활을 쥔 이들조차, 이미 자신들에게 겨눠진 활을 견제하기 위해 마주 시위를 당길 뿐이었다.
정적이 흐른다.
때문에, 그 틈에 일영은 살짝 고개를 돌려 뒤에 선 니와 나가히데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닌자, 그들에 대해 모를 순 없다.
다만 그녀가 어떻게 알았냐라는 것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일영의 물음에 니와 나가히데는 답하기 위해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정작 답이 나온 곳은 그녀가 아닌 전각 위였다.
“밖이면 모를까, 당주님이 계신 내부에는 언제나 저희 코우카 류 닌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일전에 니와 공께서도 한번 목숨을 위협받으셨지요.”
“맞아요. 덕분에 살았죠.”
니와 나가히데는 오와리를 이끌 차기 중신 중 한 명이다. 때문에, 중신이라면 한번 쯤은 겪는다는 암습을 겪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도 코우카 류 닌자들의 활약으로 목숨을 구했고 말이다.
일영의 시선이 무뚝뚝한, 그러나 분명히 보았던 코우카 류의 죠닌(上?: 상급닌자)에게 닿았다.
가문 내부의 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평범한 잠행을 위해서일까.
그녀는 흔히 하급 여시종들이 입는 간단한 옷을 입은 채 전각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급히 지붕을 오르느라 찢은 듯 허벅지 부분이 비스듬이 드러나 있었다. 경사진 대지 때문인지 살짝 도드라진 허벅지가 묘하게 색정적이다.
때문에, 일영은 잠시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다리를 응시하다가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타키가와 카즈마스.”
“…예. 맞습니다.”
일영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 것이 뜻밖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잠시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흐읏!”
삶을 포기한 채, 어떻게든 목적을 완수하려 마음을 먹은 듯 활 시위를 놓은 이의 화살이 일영을 향해 뻗어지자, 그녀는 곧바로 작은 수리검을 던져 화살을 쏜 닌자는 물론, 곁에 있던 닌자들까지 모조리 나무에서 떨어트렸다.
“히라테 공!”
그러나 날아가는 화살까지 막을 순 없었기에, 침음성을 흘리며 전각에서 뛰어내린 그 순간.
흐읍!
숨을 삼킨다.
뻗어진 화살을 예측하여 늘어트린 검을 비스듬이 올려 베었고, 곧 갈라진 화살이 좌우로 나뉘어 벽에 꽂혔다.
파박!
한발 늦게 들린 소리가 귀를 스쳤다.
“괘, 괜찮으세요?!”
나아가,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니와 나가히데가 다급한 목소리로 일영의 안부를 물었다.
“예, 뭐….”
방금 폭발적인 움직임을 했기 때문일까.
분명히 상처가 터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도 있었다.
“제압해.”
뒤이어 타키가와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리자, 전각 위에서 수리검과 독침, 나아가 화살이 뻗어져 연못에 발을 담군 닌자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커헉!
끄아악!
아무리 고통에 익숙하게 훈련이 된 이들이라고 해도, 뼈와 맞닿는 고통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탓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자, 타키가와는 일영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본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일영은 몰랐지만, 타키가와의 주요 호위자는 노부나가와 일영으로 굳어진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닌자 본분을 하지 못했다는 모멸감과 일영에 대한 묘한 두려움으로 미간을 좁혔다.
연못 안에서 꿇은 무릎이기에 고운 다리에 더러운 흙탕물이 묻었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영의 진면목을 본 이후였다.
마치 수라와 같았던 그라면, 이런 일에도 목을 벨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일영의 손길이 그녀의 양어깨를 감쌌다. 때문에 체벌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은 타키가와의 몸이 살짝 떨린 그 순간.
“아, 아니. 왜 여기서 무릎을 꿇으십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영의 당황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때문에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살짝 고개를 들자 당혹감이 섞인 일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죠닌. 모두 제압을 완료했습니다.
뒤에서 코우카 류 닌자들이 기립하자, 그녀는 일영의 손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영에게 물었다.
“…명령을.”
이 자리에서 명령을 내릴 이는 그뿐이었다.
다만, 이미 대처할 바는 정해져 있었다.
연회 도중 일어난 소동이다.
때문에, 곧바로 연회를 중단하고 당주께 알리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타키가와도, 나가히데도, 하다못해 쓰러진 닌자들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음.”
하지만.
“일단 옥에 가두고, 당주님께는 내일 제가 알리겠습니다.”
이윽고 뱉어지는 일영의 말은 모두의 예상을 깨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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