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주종덮밥인가?
* * *
“입 벌려.”
“…넵.”
입을 벌리지 않으면 창을 빼들 것 같은 기세에 일영은 순순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요시나리의 젓가락에 집힌 나물이 일영의 입속으로 넣어졌다.
“음?”
그제야, 일영은 눈앞의 반찬이 시금치 무침과 사뭇 비슷하다는 걸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비슷한 반찬인가싶어 고개를 돌려 노부나가를 바라보자 그녀는 짐짓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뱃사람들을 수소문해서 간단하게 차려보았다. 어찌, 입에 맞느냐.”
“아….”
솔직하게 말하면 짰다.
하지만, 일영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맛있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녀가 조선인인 그를 특별히 신경 써줬다는 걸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때문에, 그는 진심으로 고마움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근 보름은 누워있어 수척해진 뺨에 살짝 생기가 돌았다. 잡티 하나 없는 얼굴에 살짝 땀이 맺혔고, 나아가 붙은 머리카락이 눈을 반쯤 가린다.
그의 미소에 노부나가와 요시나리의 눈이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녀들은 일영의 얼굴을 바라보던 시선을 살짝 피하곤 숟가락을 들었다.
“되었다. 밥이나 먹자꾸나.”
“마, 맞아요.”
이번엔 요시나리도 별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젓가락을 들어 일전에 들었던 나물을 한 움큼 쥐었을 뿐이다.
“어…. 요시나리. 너무 많은데?”
“아.”
물론, 그 한 움큼이 나물의 전부여서 일영의 지적에 내려놓아야 했지만 말이다.
*
일영이 깨어난지도 며칠이 흘렀지만, 그는 천수각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노부나가가 허락해주지 않았다.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는 몇몇 지인들을 만나는 것을 말고는 주욱 노부나가와 요시나리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어느덧 밤이 되자, 일영은 곧바로 잠에 들었다. 비록 의식을 되찾고 고비를 넘겼다 하나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기에 잠이 많아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일영이 잠든 것을 확인한 두 여자는 곧바로 시종을 불러 간소한 술상을 차렸다.
조르륵소리와 함께 잔이 채워지고, 늘상 밝아지고 저물기를 반복하는 은빛 달 아래에서 두 여인의 잔이 오갔다.
한잔, 두잔, 세잔….
점점 쌓여가는 취기와 오가는 잔 속에도 내뱉어지는 말은 없었다. 다만, 두 여인들의 귀에는 새근거리는 일영의 숨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몇병이나 비웠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요시나리였다.
“…마음을 정하신 겁니까.”
“그래.”
요시나리의 물음에 노부나가는 답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답한 후 술을 머금었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목덜미가 꿀렁거리고, 요시나리의 말이 이어졌다.
“참, 부덕한 주군이십니다.”
원망이 담겨있었다.
허나, 묘한 안도감 또한 함께였다.
차라리 그녀여서 다행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독식하려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답을 쉬이 짐작할 수 없었기에, 노부나가는 그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
그녀의 사과에 요시나리는 짐짓 놀란 듯 술을 받던 손을 멈췄다. 그리곤 이내 술로 흐트러진 숨결을 내뱉으며 심호흡을 했다.
주군에게 이런 사과를 받다니.
아무리 그녀라 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으음….”
뒤척거리는 일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히자, 두 여인의 시선을 거의 동시에 돌아가 누워있는 일영에게 향했다. 날이 추움에도 더운 건지 일영은 덮은 이불을 반쯤 발로 차고 그녀들을 향해 돌아누워 있었다.
“끄응….”
짙은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동시에 누운 방향으로 살짝 기울어진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고, 살짝 찡그린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훗.”
노부나가는 짐짓 무방비한 일영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요시나리 역시 잠자는 일영의 얼굴을 눈에 담고 머잖아 고개를 돌렸다.
다시금 말 없는 대작이 시작된다.
잔을 채우고, 마시고.
잔을 채우고, 마시고….
그렇게 세네번 쯤 잔이 오갔을까.
“…하.”
묘하게 퇴폐적인, 나아가 살짝은 고통이 섞인 숨소리가 방을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일영이 상처가 있는 배로 손을 뻗어 긁으려 하고 있었다.
“이런.”
“쯧.”
두 여인은 동시에 미간을 좁혔다.
의원이 아니라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상처를 긁으면 덧난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둘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일영의 팔을 잡고 이불을 덮어주려 그에게 향했다.
“으음….”
하지만 그때.
막 손을 뻗는 노부나가의 손목을 일영이 낚아챘다. 그리곤 그녀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일순간 그녀를 끌어 당겼다.
“흐읏?”
때문에, 노부나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영의 앞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주저앉게 되고 말았다.
묘한 자세였다.
일영의 숨결이 그녀의 분홍빛 무릎에 살짝 닿아 흩어지고, 노부나가는 그 감각에 미약하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실로 야릇한 감각인 것이다.
그때, 주춤 일어섰던 요시나리가 노부나가를 힐끔 바라보다가 말없이 일영을 넘어 그의 뒤로 향했다.
“…전 먼저 자겠습니다.”
“응?”
그리곤, 당돌하게도 일영의 뒤에 누워 그에게 밀착하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노부나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지, 지금 뭐하는 것이냐.”
“…어지러워서 자려는 것뿐입니다. 술은 혼자 드시지요.”
누가 들어도 잠은 핑계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노부나가는 어이가 없다는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요시나리는 기어이 한 수를 더 나가고 말았다.
다름이 아닌, 흉기에 가까운 가슴을 일영의 등에 밀착한 것이다.
“으읏….”
긴장했기 때문일까. 살짝 선 유두가 일영의 탄탄한 등에 스치자 요시나리는 아주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노부나가는 입을 벌렸다.
어찌 이리도 음란할 수가.
그녀라고 정사를 경원시하는 건 아니지만, 저건 노부나가가 평소 알던 요시나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아.’
하지만, 그녀는 머잖아 요시나리의 진의에 대해 깨달았다. 지금 요시나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영에게 이렇게 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제일 먼저 그와 몸을 나눴으니까.
일종의 시위이자 묘한 기싸움인 것이다.
때문에, 노부나가는 머잖아 빛나는 금안을 불쾌하다는 듯 좁히며 중얼거렸다.
“당돌하구나. 건방지게도.”
그리곤, 살짝 누워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의 품 안으로 그대로 파고들었다.
“…무, 무슨?!”
때문에 이번에 당황한 것은 요시나리였다. 설마 그토록 도도하던 노부나가가 저런 짓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탓이다.
“흥.”
허나, 노부나가는 주인의 품을 파고들은 고양이처럼 눈을 흘기며 먼저 도발한 저 미련한 대형견을 놀렸다.
하지만 그 순간.
“…음.”
일영의 몸이 살짝 뒤척이고, 그의 다리가 노부나가의 허벅지 사이에 끼워지자 얘기는 달라지고 말았다.
“…어, 아?”
그녀의 매끈한 다리 사이로 튼튼한 남자의 다리가 들어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그녀는 일영과 더욱 밀착한 자세로, 지극히 위험한 자세로 바로 눈앞의 일영을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괜히 술을.’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 충동적으로 놀리고자 한 일이 생각보다 커졌다. 물론 이놈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그녀가 슬며시 몸을 빼내려던 그때였다.
“…당주님.”
“?!”
여태껏 자고 있다고 생각한 일영의 눈이 스르륵떠지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짝 가쁜 숨을 내쉬는 노부나가를 지긋이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일전에 말씀하신 공훈에 대한 상.”
그리고 그 순간.
일영은 천장을 보듯 몸을 살짝 돌려 등 뒤에 있던 요시나리와 노부나가를 동시에 끌어안은 채, 살짝 고개를 돌려 노부나가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때마침.
밝게 밤하늘을 밝히던 달이 구름에 가려져 어둠이 드리웠다.
*
“흐음. 자네. 썩 잘 마시는군.”
“낭인이었으니까요. 술이 아니면 딱히 즐길 취미가 없었습니다.”
기요스에 새로 새워진 히라테 가문의 별장의 중정을 안주 삼아, 히라테 마사히데와 이츠키가 술잔을 기울였다.
신분으로 보면 썩 의외의 조합이었으나, 히라테 마사히데가 이츠키를 부른 것이었다. 이유는 일영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뭐, 처음엔 그냥 흥미로운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주저없이 말해보라는 히라테 마사히데의 말에 이츠키는 별달리 내빼지 않고 자신의 감상을 온전히 내뱉었다.
처음 일영을 만나고.
그를 다시보게 되고.
나아가 점점 충성심이 생기고.
마침내, 현재까지.
모든 이야기를 말했고, 히라테 마사히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온전히 경청했다.
“그랬군.”
히라테 마사히데도 모르는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허나 양자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무사의 입에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째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늘그막에 얻은 양자가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
“음.”
히라테 마사히데의 시선이 점점 흐려지는 달빛에 향했다. 밤하늘의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에 때때로 구름에 가려지는 것이다.
문득, 그는 천수각에서 자고 있을 일영을 떠올리곤 중얼거렸다.
“으음. 지금쯤 잠이 들었겠지.”
“글쎄요.”
허나 그때.
이츠키는 잔을 기울이다가 멈칫하곤, 히라테 마사히데의 말에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천수각 상층을 지긋이 응시하며 말했다.
“어쩌면, 음.”
두 여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츠키는 차마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도 목숨이 귀한 줄은 알았기에.
다만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에이, 설마.’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어떻게 당주와 가신을 한 번에 취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피식 웃었다.
‘그럼 주종덮밥인가?’
이츠키는 모르고 있던 것은 하나 뿐이었다.
일영은, 생각보다 훨씬 미친 새끼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