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50화 (50/171)

〈 50화 〉 먹어, 입 벌려

* * *

“말해 보거라. 누가 네놈에게 출진을 명했지?”

살짝 나긋한, 그러나 묘한 살기가 느껴진다.

분명 잔잔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임에도 순간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마치 암 사마귀의 곁에 있는 숫 사마귀의 심정이 이러할까.

일영은 본능적인 살기와 위기를 느끼고 살짝 몸을 멀어지려 했으나, 다친 팔을 쥐고 있는 노부나가의 손에 움직임이 봉쇄된 후였다.

“…어, 그게. 음.”

때문에 일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출진은 당주인 그녀에게도, 가주인 히라테 마사히데에게도 허락받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한 거라곤 뒤늦게 도착할 연통을 하나 보낸 것 뿐이다.

즉, 이런 추궁을 받는다고 뭐라 할 위치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뒤늦게 명분을 찾기에도 이미 요시나리와의 관계 때문임을 모를 노부나가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모를 사람이 있긴 할까.

회전을 앞두고 몸을 나눴다. 그러니 웬만해선 다들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입지였다.

가뜩이나 조선 출신이라고 은근히 좋게 보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충동적으로 움직인 것에 대해 정치적인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다.

비단 일영의 문제뿐만이 아닌, 노부나가 역시 조금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는 것 같구나.”

노부나가는 피식 웃으며 살짝 눈을 가리는 일영의 머리를 얇은 손가락 두 개로 쓸어 눈을 보이게 만들곤, 말했다.

“네가 요시나리 말고 누구를 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게냐.”

“…예? 잠깐, 어.”

누구였더라.

그 당시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상처 때문인지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 분명 귀에 익은 이름이긴 했는데….

잠시만.

‘이코마 키츠노, 키쵸…?’

이코마, 이코마라면.

순간 일영의 눈이 살짝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다름이 아닌 원 역사에서 노부나가의 첩이 아니던가!

순간 그의 눈이 검은 단발에 금안을 가진 노부나가의 얼굴을 스쳤다. 무심결 그녀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부나가가 제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가설까지 돌 정도였지.’

그런 여인을 살린 것이다.

나아가 키쵸가 누구인지도 머잖아 깨달았다. 그리고 어째서 그녀가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때.

노부나가는 살짝 드러난 일영의 눈동자에 자신을 맺히게 만들며 말했다.

“키쵸는 미노의 살무사, 그러니까 사이토 도산이 가장 총애하는 딸이다. 광년이라 불리며 아버지를 부정하는 요시타쓰를 피해 오와리로 몸을 의탁하는 길이었지. 더욱이 이코마 키츠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친우이니 너를 탓하는 가신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공을 세웠으면 세웠지.”

그녀의 말이 귓가를 스치자 묘하게 안심이 되는 듯하면서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원래 노부나가의 성격과는 사뭇 괴리가 되는 탓이었다.

그때였다.

일영이 살짝은 어색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약재는 농담이었다. 여봐라.”

“예. 당주님.”

그녀의 말에 문이 드드득소리를 내며 열렸고, 시종들이 들어와 한 상 가득 정갈히 놓여있던 약재를 들고 밖으로 빼냈다.

그리곤 작은 반상을 들고 들어와 일영의 앞에 놓곤 빠르게 사라졌다.

그야말로 신속, 정확한 솜씨에 일영이 내심 감탄할 때였다.

노부나가는 만족스럽게 상을 살폈다.

쌀을 끓여 미음에 가깝게 만든 음식과 가벼운 찬이었으나, 모두 내상을 입은 일영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 쓴 구성이었다.

특히 반찬은 모두 어설프게나마 조선 식으로 만들었으니, 적잖이 기꺼워하리라.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뒤늦게 시선을 살짝 내린 일영은 당황이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어, 당주님?”

당연한 일이다.

숟가락을 든 것은 일영이 아니라 노부나가였으니까. 때문에, 일영은 설마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말의 주저는 있었다.

에이, 설마. 먹여주겠어.

그러나 누군가 그랬지 않던가.

설마, 하면 반드시 이뤄지는 법이라고.

노부나가의 섬섬옥수에 쥐여진 나무 숟가락이 점성이 있는 미음에 살짝 넣어지고 퍼진다. 움푹 들어간 공간을 새하얗게 채운 그녀는 일영의 입가로 손을 놀리며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 음.”

이번엔 일영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노부나가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때문에, 뭐라 입을 열어 대화라도 해보려던 그때였다.

노부나가의 새하얀 피부와 사뭇 대비되는 붉은 입술이 살짝 달싹거린다.

“먹어.”

“옙.”

명령이다. 어쩌겠어.

일영은 살짝 저린 입을 열어 숟가락을 앙물었다. 그래도 미녀의 수발이 싫을 리가 없기에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끼이익소리와 함께 살짝 다른 공기가 섞여들어오는 감각을 느낀 일영이 숟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렸을 때.

“…일영.”

“아?”

일영은 너무나 익숙한 가슴, 아니얼굴을 보고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은 누가 본다고 해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요, 요시나리. 이건 그러니까….”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가뜩이나 일어난 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 마주해서 그런 것이다.

꼬일 땐 한 없이 꼬인다고 했던가.

일영의 입에서 달그락거리는 숟가락을 따라 요시나리의 눈동자가 위, 아래로 흔들린다. 나아가 그녀는 싸늘하게 굳은 눈으로 일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곁에 앉은 노부나가를 응시했다.

정적이 흘렀다.

두 여자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고, 일영은 본능적으로 좆됨을 느끼고 진심으로 고민했다.

‘할복할까?’

이미 한번 검이 꽂힌 배다. 아마 열쇠 구멍처럼 낭낭하게 들어가지 않을까. 밀어서 잠금해제도 잘 되고 말이야.

내심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불륜을 저지른 적도 없는데 억울하게 몰이를 당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살짝 원망이 담긴 눈으로 노부나가를 보았으나, 노부나가는 일영을 힐끔 바라보곤 서 있는 요시나리에게 말했다.

“앉거라.”

“…예.”

요시나리는 피하지 않았다.

잠깐 갈등하는 듯 입술을 질끈깨물었으나, 머잖아 결심을 내린 듯 굳은 각오가 보이는 눈을 한 채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은 것이다.

그 모습이 흡사 검투를 준비하는 검투사 같기도, 혹은 제 뼈따귀를 뺏기지 않으려 이빨을 으르렁거리는 강아지와 같았다.

반면, 노부나가는 그런 강아지를 살짝씩 도발하는 고양이와 같은 느낌이었고 말이다.

털썩.

요시나리가 노부나가의 반대편에 앉아 일영에게 붙자, 노부나가는 되려 일영의 입안에 밀어 넣어졌던 숟가락을 빼내어 미음에 담갔다.

그 모습에 요시나리의 눈동자가 일순간 흔들렸으나, 그때.

“뭐하는 것이냐. 모리.”

노부나가는 묘한 눈으로 요시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일영은 반찬을 먹지 못했어.”

“…예?”

일영이 되물었다.

그리고, 요시나리 역시 언제 날을 세웠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부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노부나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기에.

그러나….

“아.”

그제야 요시나리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잠시 일영과 노부나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일전에도 했었던 고민이자, 번뇌였다.

일영은 가히 호걸이다.

호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와 제일 오랜 시간 정을 나누고 함께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 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때때로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당장 정력만 해도 그렇다.

밤이 새도록 하고도 쉬이 지치지 않는 남자인데 어찌 홀로 감당을 할까.

일영은 그런 존재였다.

탐이 난다고 한 움금 입에 넣으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럼에도 너무나 반짝여서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인 것이다.

정을 나눈 여인이 위험하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달려온 사내다. 또한, 어찌보면 그녀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음에도 원망은커녕 오히려 우는 그녀를 다독이던 남자다.

때문에, 당주인 노부나가가 그를 노리는 듯했을 때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항거한다고 해도, 결국 그녀가 탐한다면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에.

‘하지만….’

요시나리는 젓가락을 쥐었다.

지금 노부나가가 한 말의 진의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우둔하진 않았다.

지금 노부나가는 요시나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포기할 순 없으니, 그저 이 미련한 남자를 함께 감당해보자고 말이다.

때문에 그녀는 손을 잡았다.

젓가락을 들고, 어설프게나마 조선식으로 차린 나물을 집어 일영의 입으로 가져갔다.

“…요시나리?”

일영의 당황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듯하면서 때때로 둔한 이 남자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일까.

중요치 않다.

때문에, 요시나리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입 벌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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