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너는 사랑하느냐
* * *
히데요시를 따라 배신한 이들의 수는 대략 30여 명이었다. 그들 중 절반은 히라테 가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절반은 일영에 의해 강제로 기요스로 끌려왔다.
배신자의 처우는 실로 간단했다.
그들은 물고문부터 시작해서,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아 어째서 배신을 했는지 추국당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잖아 입을 여는 이가 생겼다.
히, 히데요시가! 히데요시가 미노의 새 주인께 충성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처음 물꼬가 트이자 그 뒤로는 쉬웠다.
히데요시의 배신에 우선 적으로 동조했던 이들이 추러 졌고, 그들은 또렷이 정신이 차려진 채로 톱으로 천천히 사지를 잘리며 후회와 절망, 분노와 고통 속에서 목숨이 끊어졌다.
남은 이들의 미래 역시도 그리 밝진 않았다.
그들은 검을 쥐지 못하도록 손목의 힘줄이 베인 채 오와리 밖으로 추방당했고, 태반은 산적에게 잡혀 노리개가 되거나 짐승의 밥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처 미노로 돌아가지 못한 추격대를 생포한 오다 노부나가는 대략 100명이 넘어가는 이들을 모조리 고문했다.
뼈를 부쉈고, 힘줄을 잘랐으며, 살을 여몄다.
오죽하면 이코마 키츠노와 키쵸가 그만두고 제발 죽여달라고 읍소하여 목숨을 거둬주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피바람이 분 것이다.
일영이 겨우 목숨을 구한 지 단 보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오다 가문의 본진이 된 기요스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둡기 그지 없었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는가.”
“…예. 히라테 공.”
히라테 마사히데는 실로 복잡한 얼굴을 한 채로 가문의 당주이자 수양딸과 같은, 노부나가의 거처인 천수각을 바라보며 실로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두문불출한 것이 오늘로 칠주야인가.’
노부나가는 잡아 온 배신자들을 모조리 처리한 직후부터 일영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의원이 그러했고, 모리 요시나리가 그러했고, 심지어는 소식을 들은 노부유키가 연통과 함께 상처 회복에 좋다는 약재를 보냈다.
그럼에도 일영은 깨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히라테 마사히데는 잠시 들어가 그의 얼굴을 살필까고민하다가 머잖아 고개를 저었다.
‘제 명일 뿐이다.’
어차피 진정으로 좋아 양자로 삼은 것이 아닌, 단순히 당주인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기에 품은 것일 뿐이다.
양아비로서의 정을 통할 새도 없었으니, 그저 흘러가는 인연으로 대함이 옳으리라.
그는 그런 생각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득,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긴 하나 찰나의 번뇌일 뿐이리라.
그때, 막 몸을 돌린 그의 뒤에 서 있는 소녀가 보였다.
“우에몬.”
“예, 아버지.”
그녀는 히라테 마사히데를 마주하자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나 히라테 마사히데의 눈은 우에몬이 들고 온 작은 바구니를 향해 있었으니.
“아.”
곧 그의 시선을 이해한 우에몬은 살짝 바구니를 덮은 종이를 열어 말했다. 그러자 곧 작은 호리병에 담긴 탕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라버니가 쾌차하는데 혹여 좋을까 싶어….”
히라테는 여전히 정숙한 얼굴로 말하는 우에몬에게 시선을 거둔 채, 그녀를 호위하는 사무라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가씨께서 직접 달이신 겁니다.
이제보니 손에 미처 지우지 못한 거뭇한 얼룩이 있었다. 때문에 히라테 마사히데는 잠시 표정의 변화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돌렸다.
“가자꾸나.”
“예. 아버지.”
그리고 둘은, 나란히 천수각을 올랐다.
*
히라테 마사히데와 우에몬은 혹여 일영이 깨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잠시 머물렀으나, 상처에서 흐르는 고름과 침음성을 견디지 못한 채 천수각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이 떠난 시점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거처인 제일 상층에 남아있는 건 노부나가와 일영, 요시나리 뿐이었다.
서서히 해가 진다.
지평선 너머로 추락하는 해를 양분으로 삼듯 검은 하늘에 달이 차올랐고, 겨울의 침묵이 다시금 세상을 뒤덮었다.
피가 섞여 벌겋게 변해버린 대야에 일영의 피를 닦아 내린 수건이 흔들린다. 아래 깔린 이불을 넘어 다다미 사이로 스며든 붉은 선이 천천히 나아갔다.
“…쿨럭.”
가끔 씩 마른기침만을 내뱉는 일영을 사이에 둔 채, 오다 노부나가와 모리 요시나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묵묵히 잔을 기울였다.
다만, 서로가 달랐다.
노부나가는 찻물이었고, 요시나리는 옅게 희석한 술이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괜찮더냐.”
먼저 입을 연 것은 노부나가였다.
그녀는 무상한 황금색 눈을 흐릿하게 굴리며 물었고, 돌아오는 것은 흐트러진 요시나리의 갈라진 목소리였다.
“…어, 음. 예.”
다친 이를 돌보지 않고 뺨을 쳤다.
웬만해선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일이건만, 요시나리는 그저 멍하니 술잔을 기울일 따름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녀였다.
허나, 지난 보름 동안 술을 입에서 놓지 않은 것이다.
다시금 정적이 둘을 감쌌다.
그리고, 머잖아 요시나리가 입을 열었다.
“말리지 못했습니다.”
갈라진, 그리고 위태로운 숨결이 술 내음과 함께 내뱉어진다. 그녀는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을 떠올리며 마치 죄를 고하듯 말했다.
“말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리지 못했습니다.”
“요시나리.”
“기뻤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순간 노부나가의 동공이 흔들렸다.
동시에, 요시나리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코를 찌르는 혈향이 폐부를 울렸습니다. 제가 알던 그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것은 일영이었다.
허나 일영이 아니었다.
일전의 전장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궤가 달랐다. 그렇기에 기뻤고, 그렇기에 두려웠다.
요시나리는 어느새 바닥을 보여 찰랑거리는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곤, 물결치는 술을 내려보며 창백해진 입술을 떼어냈다.
“이 남자가, 저 하나 때문에 저리도 분노하는구나…. 나는 저 남자에게 그런 의미구나….”
연정은 기쁨이 되었고, 기쁨은 곧 두려움이 되었다.
“그만하자고, 돌아가자고 말했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제게 기다려달라 했습니다.”
7일을 넘겨, 8일을 기다렸다 했다.
그리고 그것을 넘겨, 기다려 달라 했다.
그 속삭임에 머뭇거리고 말았다.
두려웠던 것이다.
“…제가 거기서 그를 잡았다면, 그를 말렸다면, 미움을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나를 위해 달려와 준 이가 부탁한 것이다.
때문에, 그저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우둔하며, 순간의 감정에 휩쓸린 선택이었는지 머잖아 깨닫고 말았다.
스륵.
요시나리의 손이 술잔을 감았다.
동시에, 보름간 참았던 눈물이 뚝, 뚜둑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노부나가는 밍밍하기 그지없는 찻물을 입에 머금었다.
어째서 차를 마시는 건지, 스스로도 딱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눈앞의 광경에 술을 머금을 여흥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요시나리의 모습이 그러했고, 팔을 다쳐 사경을 헤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금 반주검으로 돌아온 일영의 모습이 그러했다.
‘여흥이 없는데 마시는 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입맛이 썼다.
아무래도 시종이라는 것들이 가져온 찻잎이 하등품인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도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때.
휘이이잉소리를 내며 열려 있는 창문으로 새벽바람이 휘날렸다. 본디 열지 않으려 했으나 거듭된 고열과 고름으로 악취가 심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를 흩날리는 바람에 눈을 감으며, 문득 기억을 되짚었다.
얼마나 되었지.
처음 일영에 대해 대부님께 들었을 땐, 그저 흥미로운 첩자로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리도 티나 게 첩자 질을 하는 자가 세상에 있다니. 즐겁지 않은가.
마침 시기도 한창 마음이 복잡할 때였다.
아비로써 바라는 것이 많다 하나, 그래도 피를 나눈 혈육이자 낳아준 아버지였다.
때문에, 술을 마셨다.
그리고 사당으로 걸어가 언젠가 그가 강요한 모든 것에 재를 뿌렸다.
“…인간 세상 오십 년.”
무심결, 그날 읊었던 시구가 떠올랐다.
“천상?上의 하천下?에 비하면 덧없는 꿈과 같을진대.”
한 번 태어나 죽지 않을 자. 누구인가.
그녀는 중간에 말을 멈추고, 나머지 시구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어딘가 복잡함이 담긴 시선으로 일영을 내려보았다.
핏물이 굳어 어쩔 수 없이 잘라버린 머리카락이 꽤나 정갈하다. 핏물과 약물이 섞인 입가는 검붉었으며, 가뜩이나 갸름한 양 뺨은 수척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추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이 아플 뿐이다.
살짝씩 찡그리는 미간이 우려되었고, 흔들리는 숨결이 멎을까 두려웠다.
‘그런가.’
언제부터였는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흥미가 어느새 변질되어 버린 것일 테지.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혼탁한 잿빛 눈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요시나리를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너는, 히카게를…. 일영을 사랑하느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