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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46화 (46/171)

〈 46화 〉 작은 일영을 건드리면 좆되는 거에요

* * *

손에 든 검을 꽉쥐며 천천히 앞으록 걸었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나아가는 걸음에 진창이 섞여 무겁기 그지없었다.

배에는 여전히 반쯤 꽂힌 와키자시가 덜렁거렸고, 급히 말을 달려 수십을 베고 산에 오른 육신은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는 스산한 살기가 담긴 눈으로 흐릿한 시야의 초점을 잡아가며 생각했다.

‘…죽였어야 했나.’

처음 히데요시를 봤을 때 일영의 머리는 복잡했다. 미래의 헐겁을 일으키리란 생각에 당장 검을 뽑을까 고민하다가도, 이내 포기한 적이 한 번이 아니다.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다이묘들의 성별이 뒤바뀐 세상에 떨어진 것도 혼란스러웠고, 비슷한 기류를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부분이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놔뒀다.

이유 모를 적의를 보일 때도.

그저 때가 아니겠지, 앞으로 역사에 벌어질 나비효과가 어쩌고 하면서 손을 놓고 있었다.

방심이었고, 방조였다.

그 자신이 히데요시의 역할을 대신하면, 자연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가.

히데요시는 히데요시였다.

일영의 눈에 비친 것은,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추레한 인상의 그저 그런 하급 사무라이가 아닌 어딘가 뒤틀린 야심에 아직 잡아먹히지 않은, 그저 야망이 가득한 사무라이 뿐이었다.

‘멍청했어.’

미약하게 떨리는 왼팔을 들어 빗물에 흘러내려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를 들어 젖혔다. 어느새 짙은 안개는 사라지고, 온전한 히데요시의 얼굴이 눈에 잡혔다.

일영은 핏물이 젖어 끈적한 입술을 떼어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배신했는지 묻지 않겠다.”

아마도 넌.

내가 알던 히데요시가 맞다면.

스스로 그린 미래를 꿈꾸며, 언젠가 이룰 거대한 야망의 초안으로 오늘 일을 대했겠지.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결국 그 역시 역사의 한 대미를 장식한 인물이니까.

꽈악.

일영은 손에 쥔 검이 부서질 정도로 세게 쥐곤,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늘.

너를 베겠다.

그리고 마침내.

일영의 발걸음은 뜀박질이 되어 히데요시를 향해 쇄도했다.

타다닥!

진창이 된 대지에서 흙탕물이 튀어 오른다.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무라이의 검이 허공에서 맞대어져 날카로운 쇳소리가 스산한 숲 속을 울렸다.

채애앵!

일순간 손끝이 떨린다.

동시에, 히데요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배에 칼이 꽂혔으니, 내가 친히 목을 베어주마. 큭큭.”

할복에 빗대어 이죽거리는 그 모습에 이츠키를 비롯한 사무라이들과 여인들은 순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허나 일영은 대답 대신, 히데요시의 검을 따라 주욱미끄러지며 그의 손등을 갈랐다.

“크윽!”

히데요시는 다급히 검을 빼내고 일영의 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내뻗었다. 허나 일영은 아슬하게 그것을 피하곤 다시금 검을 뻗었다.

채앵하는 소리와 함께 멀어진 둘.

“쿨럭!”

일영은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핏물이 입술을 따라 흘러내리고, 히데요시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다시금 그를 향해 내달렸다.

때때로 서로의 머리를 노렸다.

일영의 배에 꽂힌 와키자시를 더욱 깊숙이 박아 넣을 작정으로 손을 뻗기도 했으며, 히데요시의 목젖이 살짝 베여 핏물이 베어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공방을 주고 받기를 몇 차례.

히데요시는 연이은 검격에 부들거리는 팔을 부여잡고 문득 축축해진 손바닥을 느꼈다.

그리고 곧 손바닥이 터졌다는 걸 깨닫자 조금은 질린 눈으로 일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치지도 않는 거냐.”

당장 몸에 보이는 자잘한 검상만 수십 개다.

거기에 왜인지 뽑지 않고 두고 있는 복부의 와키자시가 덜렁거릴 때마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더 쓰린 기분이 들어 눈살을 찡그렸다.

그가 알기론 지난 전투에서 팔에 중상을 입고 요양 중이라고 들었건만, 누가 저놈을 요양 중인 사람이라 생각하겠는가.

“…아.”

그제야 일영은 아직도 배에 검이 꽂혀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와키자시를 뽑으려 했다. 허나 히데요시가 그걸 기다려 줄 리 만무했다.

“흐으읍!”

그런 히데요시를 바라보며 일영은 생각했다.

그는 선을 넘었다.

차라리 이름 모를 무사들을 죽이고 사이토 가문의 미노로 도주했다면, 거리낌이 있을 지언정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히데요시가 저지른 실수는 하나뿐이다.

“모리 요시나리는 내 여자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을 읊으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녀다.

때문에, 일영은 어느새 거의 코앞으로 온 히데요시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복부에 박혀서 덜렁거리던 와키자시를 뽑았다.

“백일여어엉!”

그리고 히데요시가 괴성을 내지르며 일영의 목을 베려는 찰나.

채애앵!

일영은 북부에 비스듬이 꽂혀 있던 검을 뽑아 히데요시의 검격을 흘리고, 그대로 오른손에 쥔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비스듬이 세워 그대로 히데요시의 심장을 꿰뚫었다.

쿨러억!

마치 꼬치가 꼬챙이에 꽂히듯, 히데요시는 자신이 달려오던 모습 그대로 일영의 검에 꿰뚫렸다. 덕분에 히데요시를 살짝 안은 듯 찌른 일영은 서서히 멎어가는 그의 숨소리 사이로 낮게 속삭였다.

“넌 열도를 통일할 남자였다.”

“…무슨?”

“그리고, 욕심과 상황에 내몰려 모든 걸 잃었지. 그래….”

뿌득.

일영이 검을 쥔 손에 핏줄이 도드라지고, 일영은 마침내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검신을 떨리게 박동하는 심장의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검을 비틀었다.

“끄으으으으윽…!”

“오늘처럼.”

그리고 머잖아.

추우욱하고 히데요시의 육신이 무너진 그 순간.

일영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히데요시를 진창 속에 처박았다. 벌레와 흙이 빗물에 섞여 더러운 진창 속에 처박힌 히데요시의 벌린 입으로 흙탕물이 차갔으나, 누구도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

다만, 일영을 볼 뿐이다.

핏물과 빗물, 그리고 흙 따위에 더럽혀진 검은 장포를 입고 일영은 얼굴에 튄 피를 빗물에 닦아내며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2가지 선택지를 줄 것이다.”

그것은 제안이나 선언이 아니었다.

단지 명령일 뿐이다.

“할복하거나.”

순간, 그의 비뚤어진 웃음 속에 벼려진 싸늘한 칼날 같은 미소가 배신한 사무라이들의 얼굴을 베고 지나갔다.

“아니면, 너희와 엮인 모든 것을 죽이고 홀로 살아남거나.”

닌자를 풀 것이다.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을 풀 것이다.

제일 먼저 배신한 놈들과 교류했던 친우들을 죽일 것이고, 사무라이들을 할복시킬 것이다.

가족을 찾아 씨족을 멸족시키고, 아내된 자의 가문 역시 찾아서 불태울 것이다.

그리고 홀로 남은 네놈을 찾아서 사지를 자리고 혀를 뽑아 천천히 펼칠 것이다.

“죽지도 살지 못하게 만들어서 보여주마. 감히 당주님을 배신하고, 내 여자를 건들었으며, 따르면 안 될 자를 따른 너희의 버러지 같은 판단력을 평생토록 후회할 수 있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츠키도와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은 그저 일영의 모습에 압도되어 검을 꽉쥘 뿐이었고, 요시나리는 난생 처음보는 일영의 모습에 멍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쫓을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영은슬슬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미약하게 숨을 헐떡거리는 히데요시의 목을 간단히 베어넘겼다.

툭.

어깨의 높으로 살짝 들어진 목덜미가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하고, 곧 일영은 힐끔 고개를 돌려 그들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직도 못 정했나?”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임을 깨닫자.

사무라이들은 털썩하고 주저앉아 멍하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

겨울에 때아닌 비는 며칠간 이어지다가 어느새 서서히 멎어갔다. 시종들은 빗물에 젖어 눅눅해진 장작을 갈고 새 장작을 넣었고, 사무라이들은 한산한 기운에 옷섶을 여미며 코를 훌쩍였다.

어느새 달빛이 만연한 새벽이 찾아왔다.

노부나가는 기요스 성의 제일 높은 층의 창가에 걸터앉아,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좋군요.”

찌르르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입김이 나오는 시린 공기에 술을 기울이니 달아오른 몸과 사뭇 궁합이 맞았다.

그녀는 다시금 술잔에 술을 채우며, 앞에 앉아 있는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부님.”

그런 그녀의 말에 술이 아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기울이던 히라테 마사히데는 어딘가 엄한, 그러나 애정이 담긴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은 좀 줄이시지요. 건강에 좋지도 않은 걸 뭐 그리 좋다고 마시시는지.”

겉으로 보기엔 잔소리였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이 애정에서 오는 충고라는 걸 모를 정도로 노부나가는 어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옅은 술 내음이 퍼지도록 피식 웃고는 뭐라고 말하려 했다.

그래, 말하려고 했다.

콰아앙!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무라이의 다급한 외침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다, 당주님!”

히라테 마사히데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언제 웃었냐는 듯 특유의 오만하면서도 광기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그녀의 모습에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멈칫한 그였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기가 닌자라며, 당주님을 뵈어야 한다는 놈이 왔습니다. 헌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치료를 하려고 해도 거부하고 계속 당주님을 뵈어야 한다고.”

“…어디에 있지?”

“마당에….”

그녀는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히라테 마사히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았다.

‘당주님, 아무래도.’

‘예.’

비록 말이 오가진 않았으나, 오랜 시간 함께했기에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미노 쪽 일이 잘못된 것이리라.

타다닥!

둘은 곧바로 사무라이를 지나쳐 마당으로 내달렸다. 체면을 생각하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조금 전 닌자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라는 말에 서두르는 것이다.

그렇게 마당에 도착한 둘은, 머잖아 눈에 들어온 닌자의 상태에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허어.”

침묵하는 히라테 마사히데와 달리, 노부나가는 입술을 짓씹으며 짜증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마당에 반쯤 주저 앉아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닌자를 바라보았다.

등에 박힌 화살의 수는 셀 수가 없다.

검을 쥐었을 오른 손목은 잘렸는지 옷자락을 찢어 급조한 붕대로 칭칭 감았으며, 다른 곳 역시 베이고 찢기고 뼈가 드러난 것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

오죽하면 참상에 익숙한 사무라이들마저도 시선을 피할까.

허나, 그녀는 달랐다.

“다, 당주님!”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곧바로 마당으로 발을 내딛자 뒤에서 바라보던 시종이 외쳤다. 허나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닌자에게로 향한 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냐.”

“다, 당주…님…. 쿨럭!”

그제야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닌자가 고개를 들었다. 왼쪽 눈에 핏물이 차 있는 모습을 보면 시야마저 잃은 확률이 높았다.

“늦…지 않아서…다…행.”

그럼에도 이름 모를 닌자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목숨이 다하기 전에 임무를 완료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숨이 쓸모없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습격당했습…니다. 그리고…배신….”

순간, 그의 몸이 살짝 기울었다.

허나 노부나가는 피투성이인 그의 몸을 망설임없이 쥐었고, 그는 노부나가의 손에 겨우 쓰러지지 않으며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히데…요시…배신. 죠닌께서…저희를…기요스와 나고야에….”

횡설수설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하던 그녀는 머잖아 그 말이

습격당했습니다. 낭인들이 배신해서 모두가 쫓기던 와중, 죠닌께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저희를 기요스 성과 나고야 성으로 보냈습니다.

라는 말인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네 이름이 뭐냐.”

노부나가는 마침내 임무를 완수한 그에게 재차 되물었고, 그제야 닌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군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쿠라…. 키우치…쿠라.”

“키우치 쿠라.”

노부나가는 그의 이름을 기억한 후, 천천히 손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동시에.

푸욱소리를 내며 닌자, 아니 키우치 쿠라는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에 사무라이들은 비록 하급 닌자에 불과한 이였으나 일제히 묵념을 표했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음에도 주군에게 충성한 그 모습은 가히 충신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한편, 쿠라의 이름을 마음 한켠에 각인한 노부나가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히라테 마사히데를 바라보았다.

“대부님.”

“예. 당주님.”

분명 기요스와 나고야로 사람을 보냈다고 했으니,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기요스는 내게로, 나고야는 대부님에게로.’

기요스에는 닿았다. 허니 나고야에도 마찬가지로 닿았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으리라. 노부나가의 시선에 히라테 마사히데는 곧바로 가신을 불러 나고야 저택에 사람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그때.

히이잉!

그녀의 거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히 말을 멈추는 소리가 울렸고, 곧 제대로 의복도 갖추지 못한 채 다급히 달려온 사무라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님!”

그는 다름이 아닌 히라테 마사히데의 사무라이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문지방을 넘기가 무섭게 히라테 마사히데를 발견했고,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외쳤다.

“도련님께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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