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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45화 (45/171)

〈 45화 〉 미노의 아가씨(3)

* * *

“역시, 자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타키가와는 품에서 낫을 들어 손에 쥐었다.

“이거면, 확실히 자를 수 있겠지요.”

“이, 이 빌어먹을 년들이….”

그제야 히데요시는 저들이 노린 것이 다름이 아닌 자신의 자지와 고환이었다는 걸 깨닫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공격해애!”

“이야아아아!”

“생포해야 해! 죽이면 안된다!”

히데요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름한 신사를 등지고 서 있는 그녀들을 향해 수많은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족히 수십은 넘는 듯한 그 숫자에, 이코마 키츠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후. 이러면 타산이 안 맞는데.”

이미 상단 소속 사무라이들 태반이 죽고, 겸사겸사 가져왔던 물품들도 모조리 날아갔다. 아무래도 돌아가면 친자매같은 동생에게 돈을 좀 많이 뜯어야 할 듯싶었다.

그래.

‘살아 돌아간다면 말이지.’

그녀는 어딘가 쓴웃음을 지은 채, 자신을 향해 욕정과 흥분이 섞인 눈으로 달려오는 사무라이를 향해 석궁을 조준했다.

그리고 막 쏘려는 그때.

“찾았나.”

온갖 소음과 빗소리, 그리고 함성을 뚫고 어딘가 서늘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꽂혔다.

그리고 그녀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이코마 키츠노는 보고 말았다.

“끄르륽….”

반쯤 잘리다 말아 뼈가 드러나는 낭인의 머리를 쥐고, 이리도 쏟아 내리는 비조차도 채 닦아내지 못한 핏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말이다.

“히야아!”

그때, 한 사무라이가 뒤늦게 그 남자를 발견하고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때문에 이코마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쯧.”

남자는 가볍게 혀를 차곤, 오히려 상대가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품속으로 파고든 후 검을 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목을 쥐고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커헉!”

당연히 충격으로 검을 놓친 사무라이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 순간.

“히데요시와 붙어먹었던 놈인가.”

그는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곤,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발로 안면을 강하게 내리 찍었다.

콰득.

그리고 곧바로.

사무라이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 아니.

일영은 뒤따라 온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을 향해 무미건조하게 명령했다.

“죽여.”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학살이 시작되었다.

“죽여버려!”

“으아아아아아!”

갑작스럽게 나타난 히라테 가의 무사들을 향해 사무라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았다.

아니, 정정하자면 하급 사무라이들의 일방적인 죽음이었지만 말이다.

“아아악!”

“끄아아아!”

당연한 일이다.

낭인이라 불리우는 하급 사무라이들과 달리,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은 태반이 제대로 훈련받은 무사들이었으니.

이츠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무라이에게 역으로 달려들어 배를 걷어찬 후, 균형을 잃은 틈을 타 단번에 목을 베어 넘겼다.

다른 사무라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누가 제일 많이 적을 베었냐 묻는다면, 그 누구라도 일영을 가리킬 것이었다.

“죽어라앗!”

일영은 단번에 머리를 반으로 쪼개질 듯 내리 찍어지는 검을 바닥을 굴러 피하곤, 상대의 다리를 잡아 그대로 넘어트렸다.

“크으윽!”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그대로 진창이 된 바닥으로 넘어진 사무라이는 다급히 부무장인 와키자시를 꺼내 일영을 향해 뻗었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는지 푸욱하는 짧은 피육음이 울렸다. 그제야 일영은 슬며시 시선을 내려 자신의 배를 확인했고, 그 모습에 사무라이는 씨익 웃음을 흘렸다.

“크크.”

적잖이 깊숙이 꽂힌 칼날이다.

아무리 놈이라고 해도 이런 상처에서 멀쩡할 수 있을 리가….

그러나 그때.

일영은 신음을 흘리는 대신,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바닥을 굴러다니는 돌을 쥐었다.

“무, 무슨?”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습에 사무라이는 자신이 배를 찔렀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드득!

“끄아아아아아악!”

일영의 손에 쥔 돌덩이가 그대로 놈의 미간에 꽂혔고, 뇌리를 흔드는 통증에 사무라이는 손에 쥔 와키자시를 놓고 몸은 비틀었다.

그리고, 일영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끄르륽….”

그는 단번에 놈의 목을 베어냈고, 곧 목에 붉은 실선이 일순간 나타났다가 그대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도, 도련님.”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일영의 뒤로 이츠키가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그러자 일영은 고개와 허리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그 모습을 본 이츠키는 마치 사신을 본 것과 같은 기분에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핏물에 젖어 검붉게 변한 옷과 얼굴.

배에 와키자시가 꽂혔음에도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 누가 생각할까.

저 남자가 백일영, 히라테 히카게라고.

그의 손에 직접 죽은 사무라이만 수십명이다. 그것도 오늘. 오늘 말이다.

아직 왼팔이 성한 것도 아닌데.

두렵다.

두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심 일영을 무시하거나, 또는 마지못해 도련님 대우를 해주고 있던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은 뒤늦게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다.

평소에 웃고 다니는 사람이 분노의 일정 선을 넘으면, 어디까지 넘을 수 있는지 말이다.

때문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도련님, 배에 칼이 꽂혔으니’같은 말을 누가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이미 모두가 압도당한 상태에서 묵묵히 일영의 적을 벨 뿐이다.

그리고 그를 멈출 마지막 기회가 끝나자.

일영은 배에 박힌 와키자시를 덜렁거리며 묵묵히 다음 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괴, 괴물.”

“저, 저게 말이 돼?”

점점 다가올수록, 비 내음을 뚫고 지독한 혈향이 풍겨왔다. 그 모습에 달려들 수 있는 간 큰 사무라이가 몇이나 될까.

아니, 이미 많은 사무라이가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에 의해 신사의 진창에 몸을 뉘었다.

자연히 전투는 일시적으로 소강되었다.

그 묘한 공백은 일영의 분위기에 넘어갔다는 말이기에, 히데요시는 마치 오니처럼 얼굴을 구기며 이빨을 뿌득갈았다.

“백일영….”

한편, 요시나리는 서서히 다가온 일영의 상태에 창백한 걸 넘어서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히 그에게 달려왔다.

“아, 아아….”

가까이서 보니, 상태는 고작 심각한 수준이 어쩌고 할 게 아니었다. 복부에 칼이 꽂힌 건 오히려 우스웠다.

“이, 일영.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얼핏 봐도 베인 상처가 한둘이 아니다.

거기에 아직 팔이 성하지도 않을 텐데, 왼팔에도 숱한 자상이 남아있었다.

그때. 뒤늦게 그가 오다 가문의 지원군이라는 걸 깨달은 다른 여인들도 일영에게 다가왔고, 이츠키는 가문의 사무라이들에게 눈짓하여 빠르게 그녀들을 호위했다.

히데요시를 위시한 신사를 포위한 사무라이들.

일영을 위시한 히라테 가의 무사들과 여인들.

묘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일영은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 놀란 눈을 하고있는 여닌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주님을 모시는 닌자들의 수장. 타키가와 카즈마스입니다.”

“아. 그 조선인!”

그제야 이코마 키츠노는 일영의 정체를 깨닫곤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때.

“이, 일영. 이제 싸우지 말고 물러서자. 응?”

요시나리가 울먹거리며 말하자, 그제야 다른 여인들도 일영의 상처를 확인하곤 걱정과 미안함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마, 맞아요. 너, 너무 많이 다치셨잖아요.”

오죽하면 이코마 키츠노의 뒤에 숨어 벌벌 떨던 키쵸가 말할 정도였을까.

가문의 사무라이들의 호위를 받는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일영은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 요시나리의 옆구리를 힐끔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누가 그랬어?”

서늘한, 그리고 갈라진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낯설어서 요시나리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일영을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요시나리는 보고야 말았다.

“대답해. 요시나리.”

일영의 얼굴에 남아있는 건 오직 살기뿐.

서늘한 냉기를 품은 그의 얼굴에 그녀가 기억하는 일영은 없었다.

“이, 일영?”

무심결에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때.

“내가 그랬다. 조센징.”

틈을 찾았다는 듯 이죽거리는 음성이 일영의 귀에 꽂혔다. 그러자 일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놈에게 걸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허나, 이내 무언가 잡아당기는 감촉에 고개를 돌리자 다름이 아닌 요시나리가 울먹거리며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다, 다쳤잖아. 응?”

손끝이 떤다.

요시나리의 시선은 일영의 배에 꽂혀있는 검과 빗물이 피가 씻겨 서서히 드러나는 온몸의 자상에 향한다.

그제야, 일영은 조금은 이성을 되찾은 듯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요시나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으읏?”

자연히 요시나리의 몸이 살짝일영에게 당겨져 품에 안기듯 끌려왔고, 일영은 칼에 닿지 않도록 그녀를 살짝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8일.”

갈라진 목소리, 그러나 이전과 다른 그 목소리에 요시나리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하루 더 기다렸는데 안 왔으니까.”

그리고 그가 내뱉으려는 말이 뭔지를 깨닫는 그 순간.

“…내가 왔어.”

요시나리는 눈을 질끈 감고 일영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일영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줘.”

히데요시를 바라본 일영은 눈을 감았다 뜨고는 이내 말했다.

“…저놈은 내 손으로 죽여야 하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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