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죄많은 남자(2)
* * *
“이, 이제 괜찮아….”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눈물짓는 요시나리를 달래줬을까. 그녀는 조금 진정이 된 듯 일영의 품에서 살짝 멀어졌다.
그리곤 살짝 얼굴을 붉히다가, 뒤늦게 아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당주님이 찾으셔.”
“아, 하긴.”
슬슬 얼굴을 보러갈 때가 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선 눈 몇 번 감았다가 뜬 것에 불과했지만, 주변인들에겐 무려 일주일하고도 하루나 더 누워 있던 거 아닌가.
다만, 살짝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많이 바쁘지 않아?”
이츠키의 말대로라면 기요스 성 이주나 노부유키 견제 등등, 할 일이 넘쳐날 텐데.
혹 지금 찾아가는 게 민폐는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그러나 그때.
요시나리는 그런 일영의 모습에 옅은 홍조를 띄우며 웃었다.
“만약 안 오면, 할복시키겠다고 하셨거든.”
“하, 할복?”
일영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할복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차라리 적한테 목이 베여 죽고 말지, 스스로 폴더폰이 되는 건 지양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래, 가자.”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모를 그가 아니었기에,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요시나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디가?”
“응?”
“아니, 집 안으로 들어가길래….”
아무래도 그녀는 곧바로 가리라고 생각했나보다.
일영은 그런 요시나리의 머리를 툭툭가볍게 손으로 헝클이곤 붕대로 감은 팔과 복부를 대충 가린 도포를 펄럭였다.
“옷은 갈아입고 가야지.”
“아.”
*
옷을 갈아입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의원이 말했듯 조상에게 축복받은 몸인지, 다친 팔이 움직일 때마다 아린 느낌을 받는 거 빼곤 별다른 통증은 없던 것이다.
“자, 가자.”
“응!”
일영은 나름 예를 갖춘 복장을 한 채 밖으로 나왔고, 요시나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거리며 일영의 곁에 붙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뒤로, 언제 나타난 건지 모를 이츠키가 사사삭붙었다.
그 모습을 본 일영은 내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닌자로 키워볼까?’
아까 빠져나가던 눈치와 속도, 테크닉까지 생각하면 이츠키는 사실 사무라이보다 닌자가 더 어울리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정보를 얻어온다는 점도 같았다.
“무슨 생각해?”
“아, 그냥.”
일영은 요시나리의 말에 가볍게 웃어주곤, 이츠키의 직업 전향을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생각이었지만, 꽤나 어울리지 않는가.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걷자, 어느새 나고야 본성이 눈앞에 보였다.
“들어가십쇼.”
사무라이들은 그들을 보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비켰고, 그것에 일영이 약간 의문이 담긴 표정을 하자 요시나리는 일영의 팔에 살짝 달라붙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주님께서 저번 전투의 전공을 널리 알리셨어. 당연히 네 공도 컸으니까….”
“그렇구나.”
아무래도 팔 한 짝 잃을 뻔하긴 했어도, 직접 발로 뛰는 게 좋긴 좋다.
일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노부나가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채 두 걸음을 걷기도 전에, 그들의 뒤로 묘하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입니다. 히라테 공.”
“음?”
고개를 돌리자, 저 한편에서 두명의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명의 여자와 소녀라고 표현하는 게 옳으리라.
남색의 머리카락에 묘하게 처진 눈웃음을 지은 채 다가오는 니와 나가히데와, 왜인지 퉁명스러운 얼굴을 한 붉은 숏컷에 왼쪽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온 마이다 토시이에였다.
일영은 잠시 둘을 어디서 봤다 되뇌이다가, 곧 일전에 양자가 되었던 연회의 막바지를 떠올리곤 그녀에게 답했다.
“예. 오랜만이군요. 니와 공. 마에다 공.”
“후후…. 어르신과 마찬가지로 짓궂으시군요.”
나가히데는 일전에 히라테 마사히데가 반쯤은 농담으로 건넨 칭호를 입에 담는 일영의 모습에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토시이에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일영을 여전히 불만스럽게 바라불 뿐이었다.
‘하긴, 저번에도 내가 양자가 된 걸 꽤 불만스럽게 생각하긴 했지.’
솔직히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일영이라고 후대에 창씨개명이라 평가받을 개명을 하고 싶었겠는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일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와 나가히데는 웃음을 부채로 살짝 가리며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큰 공훈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어르신의 안목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아, 당연히 히카게 님도 대단하고요.”
니와 나가히데의 칭찬에 솔직히 기분이 나쁠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니와 나가히데 역시 요시나리나 노부나가 못지않은 미녀인데다가 두 여자에 비해 뭔가 성숙한 느낌을 풍겼으니까 말이다.
‘이제 20살일 텐데. 거참.’
이런 걸 보면, 나이가 반드시 성숙함의 척도가 아니라는 말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당신, 강하다며?”
다소 당돌한 목소리에 시선을 살짝 내려 토시이에를 바라보자, 그녀는 상대를 경계하는 시바견이라도 된 양, 미간을 좁히며 손에 든 창을 한번 바닥에 찍고는 말했다.
“대련하자!”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일영이 되묻자, 토시이에는 귀가 먹었냐는 듯 외쳤다.
“저번에 시바타 공과도 했다며? 나랑도 하자니까? 대신 내가 이기면 양자 자리는…. 으부웁!”
“이런, 죄송해요.”
니와 나가히데는 늘 들고 다니던 부채를 마에다 토시이에의 입에 쑤셔박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일영에게 대신 사과했다.
그러자 토시이데는 억울하다는 듯 발버둥 쳤지만, 곧 니와 나가히데가 등을 톡톡두드리며 일영의 다친 팔을 가리키자 아차. 한 얼굴로 발광을 멈췄다.
그제야 나가히데 역시 부채를 빼내며, 토시이에의 머리에 손을 턱 얹고는 말했다.
“실례했어요. 이 아이가 어르신을 너무 존경하거든요. 거기에 나름 무인의 피가 흐르는 아이라….”
“시, 실례했어.”
아예 경우가 없는 아이는 아닌 듯, 토시이에는 일영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마 옷에 가려서 다친 팔을 못 본 거겠지.’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대련을 못해 줄 이유도 없다.
거기에 곁에 서 있는 요시나리가 조용한 걸 보면 딱히 나쁜 아이도 아는 것같고 말이다.
뭐랄까…. 원래 우에몬이 했어야 할 투정을 대신 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토시이에가 귀엽게 보였다.
때문에 일영은 자신을 곁눈질로 힐끔 바라보는 토시이에에게 싱긋 웃어주곤 말했다.
“괜찮습니다. 대련은 원하신다면 가능합니다만, 아시다시피 팔이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그 이후도 괜찮으신지요.”
“어, 음. 어…. 응.”
토시이에는 일영이 웃어주자, 그럴 줄 몰랐다는 듯 잠깐 어버버 거리다가 이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여기 계셨군요. 당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일영과 요시나리의 뒤로 꽤 나이가 있는 시종이 찾아와 둘을 재촉하자, 니와 나가히데 침 냄새가 나는 부채 대신 다른 부채를 펼쳐 입 아래를 가리곤 말했다.
“어머, 얼른 가보세요.”
“예. 그럼.”
일영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시종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요시나리는 그런 일영의 뒤를 쫓다가, 이내 살짝 고개를 돌려 두 여자를 무표정으로 노려보곤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으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니와 나가히데는 특유의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배를 맞췄다더니, 모리 공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무, 무서워….”
그녀는 살짝 쫄아버린 토시이에의 머리를 살짝 토닥여주곤, 이내 피식 웃었다.
“뭐, 저희가 히카게 님과 배를 맞출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요.”
설마 그러겠는가.
니와 나가히데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잘생기긴 했지만….’
당장 저 남자와 엮인 여자만 세도 3~4명은 된다. 그리고 그런 난잡한 남자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자, 가서 차나 마실까요?”
“으응.”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
시종의 안내를 따라 노부나가의 거처 안으로 들어가자 꽤나 많은 인기척이 방 안에서 느껴졌다.
일영과 요시나리를 데려온 시종은 나이에 맞게 직급이 높은지, 문 앞에 서 있는 시종들에게 눈짓하여 문을 열게 만들곤 짧게 고개를 숙여 안에 있는 노부나가에게 말했다.
“당주님. 히카게 님을 모셔왔습니다.”
“아, 그런가.”
그의 말에 노부나가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고, 가신들 역시 별다른 말 없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 모습에 일영이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가신들의 얼굴을 확인하곤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중요한 회의는 아니었나보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네임드라 불릴만한 가신들은 한 명도 없었다.
때문에 아마도 기요스 성 이주에 관한 행정 처리가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을 해보는 그였다.
“잘 얘기하고 와.”
“응.”
일영은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고 살짝 물러서는 요시나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녀가 일영을 찾아온 이유도 노부나가에게 대려가기 위함이었기에, 밖에서 대기하는 것이다.
“들어가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 앉자, 곧 대기 중이던 시종들이 빠르게 조금 전까지 다른 가신들이 앉았던 자리를 치운 후 일영의 앞에 작은 다과와 차를 놓아주었다.
그렇게 접견할 준비가 끝나자, 노부나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고는 말했다.
“몸은 괜찮으냐.”
“예. 당주님.”
그녀답게 짧고 간결한 물음이었지만, 왜인지 그 안에 담긴 묘한 걱정을 눈치챌 수 있어서 무심결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당주님께서 실력이 좋은 의원을 붙여주신 덕에 큰 후유증도 없이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구나. 크흠.”
갑작스럽게 웃었기 때문일까.
노부나가는 살짝 일영의 시선을 피하며 차를 홀짝거렸고, 그는 뒤늦게 위화감을 느끼곤 물었다.
“헌데, 오늘은 술이 아니라 차를 마시고 계시는군요.”
평소 노부나가였으면 술을 마시고 있을 텐데, 어쩐 일인지 그녀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물론 원 역사의 노부나가가 술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이 맞겠지만, 이쪽 세계의 그녀는 아닐 텐데….
‘차에 술을 탔나?’
브랜디를 홍차에 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노부나가는 다소 황당하다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왜, 내가 차를 마시면 어색하더냐?”
“어, 음…. 그런 뜻은 아니지만.”
“후훗.”
일영이 당황하자, 그녀는 되려 피식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농담이다. 은근히 맹한 구석이 있구나.”
“…아. 예, 뭐.”
아무래도 상처에 오래 자고 일어났더니 아직 멍한 기운이 빠지지 않은 건가.
평소라면 농담인 걸 바로 알아먹고 능글맞게 받아치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괜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해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그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곧바로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기요스 성으로 이주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소식이 빠르구나. 아니, 생각해보면 모르는 것이 이상한가.”
이주 자체는 전투가 끝나고 시작되었지만, 구상은 전투 전에 다 짜여있었다.
새삼 눈앞의 사내가 조선에서 온 낭인이 아니라, 대부이자 스승인 히라테 마사히데의 양자라는 사실을 되뇌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새삼 깨닫자, 왜인지 모를 안도감에 무심결 옅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당주님?”
당연히 일영은 갑자기 혼자 웃는 노부나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찻잔을 내려놓고는 답했다.
“순조롭다. 큰 변고가 없다면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끝이 날 테지.”
비록 겨울이라고 해도 기요스와 나고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거기에 노부유키도 이주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방해를 하지 않기로 약조했기에 문제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일영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런 일영의 얼굴이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 머리가 더 자란 것인지, 이젠 덥수룩한 것을 넘어서 슬슬 단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통 남자라면 저 정도 길렀을 때 추해 보이기 마련이거늘.’
새삼 그의 외모가 잘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묘하게 심술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살짝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인지는 한 상태지만, 눈치를 챈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거기에, 이미 요시나리와 배를 맞췄지.’
그걸 생각하자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찌 전장에서.’
그래. 관계를 맺는 것이 흠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렇게 점점 일영을 보는 눈이 흉흉해지던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이젠 노부나가 스스로도 대체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다.
사실, 그녀가 술을 마시지 않고 있던 것도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서였다.
그때, 침묵을 깨고 일영이 입을 뗐다.
“당주님. 헌데.”
그리고 그 서두를 듣자 노부나가는 아슬아슬하게 내린 도포의 소맷자락을 무심결에 손가락으로 꽉쥐며 아주 자연스럽게 창문으로 살짝 시선을 피했다.
동시에 평소와 달리 묘하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러나 그때.
까악까악!
창밖에서 때아닌 까마귀 소리가 울리자, 노부나가는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곤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당연히 일영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그는 입술을 몇 번 들썩이는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가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합니다. 다음에 또 불러주시지요.”
일영은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내려놓았고, 척 보기에도 자신을 배려하는 가신의 모습에 노부나가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몸에 좋다는 약재는 대부님을 통해 보내 놓았다. 잘 달여 먹거라. 상은 그 이후에 내리겠다.”
“예. 당주님.”
그는 노부나가를 배려하기 위해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다가, 곧 문이 닫히자 허리춤에 혹시 몰라 묶어두었던 호리병을 따 신경질적으로 술을 마셨다.
“무슨 일이냐?”
그리곤 텅빈 방 안에서 홀로 짜증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혹자가 보면 정신이 나갔는지 의심할 상황이었지만, 그런 그녀의 말을 듣기 무섭게 천장에서 한 인영이 떨어져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의복 자체는 평민의 그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닌자로서 주인을 모시는 자 다운 무뚝뚝함과 아름다운 미모였다.
“이코마 상단의 운송을 호위 중이던 코우가 류 닌자들의 전언입니다.”
“읊거라.”
노부나가의 명령에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화답했다.
“습격, 수는 약 30명, 도주 중, 지원 요망.”
“쯧, 살무사는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그녀는 짜증이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막말로 도산의 딸, 노히메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만 이코마 상단의 단주는 아니었다.
‘키츠노.’
든든한 언니이자, 한때 사랑하나? 라고 착각까지 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친우가 위험하다는 뜻이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대부분 가신이 기요스 성 이주와 혹시 모를 지역 분쟁을 다스리느라 바쁘다는 점이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가고 싶지만….
‘히카게.’
어째서 제일 먼저 이 이름이 떠오르는 걸까.
노부나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환자다. 차라리 적들을 베고 돌아오는 거라면 모를까, 이번 일은 적들을 뿌리쳐도 언제 또 다른 적들에게 습격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결국, 그녀는 손안에 들어온 수많은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곧 결정을 내린 듯 술을 한 모금 입에 머금곤 말했다.
“요시나리를 불러라. 그리고 버림패로 쓸만한 하급 무사들을 새벽까지 모아놔. 가령, 은연 중에 파벌을 만들고 있다거나.”
“예. 당주님.”
그녀의 말에 닌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이내 그녀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홀로 남은 노부나가의 방 안에 요시나리가 들어오자 노부나가는 그녀를 바로 옆으로 불러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요시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눈으로 답했다.
“…예. 당주님. 반드시 데려오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