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죄많은 남자(1)
* * *
일주일.
무려 일주일 만에 깨어난 일영은 모두와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일영은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인 팔의 상처가 아니라도 아플 이유는 많았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전장에서 몇 시간을 싸운 것.
비단 팔의 상처뿐 아니라 온몸에 수십 번은 베인 상처들.
나아가 일주일 간 누워있어 제대로 된 식사는 고사하고 물이랑 소량의 죽만 간신히 먹은 것까지.
오히려 멀쩡하면 괴물인 상황 속에서 일영을 보기 위해 찾아왔던 사람들은 늙은 의원의 강력한 축객령에 내쫓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노부나가가 직접 모두를 물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끄응.”
그렇게 밤이 되었지만, 일영의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으…으으.”
악몽의 여파인 것일까.
아니면 몸이 다 낫지 않아서일까.
정황상 2개 이유가 겹친 것일 확률이 높았지만 말이다.
그나마 위안은 악몽을 다시 꾸진 않았다는 점일까.
“…시발. 죽겠다.”
하지만 욕까지 참을 순 없었다.
오죽하면 늘 의식적으로 입에 붙이고 살던 일본말이 아니라 한국말이 나왔을까.
즉, 진심이라는 뜻이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목을 칼칼하다.
온몸을 괴롭히는 근육통은 상상을 초월했고, 제일 큰 상처였던 팔은…말을 말자.
일영은 전쟁터에서 반쯤은 장난으로 생각했던 일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님, 부처님 살려만 주세요. 딱 공평하게 반반씩 믿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당연히 개소리였지만, 이런 개소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팠다.
그 어느 때보다 현대 의학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
투욱.
고통에 신음만 겨우 내고 있던 그의 머리 위로 조금은 뜨겁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조심스럽게 올려졌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리고 그게 다름이 아닌 물수건이라는 걸 깨닫고 눈을 게슴츠레 뜬 그 순간, 곧 귓가에 잔잔히 울리는 목소리에 일영은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앳된, 그러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하고 절제된 목소리.
그리고 물수건이 너무 뜨겁지 않은지 가늠하려는 듯 수건과 일영의 이마 사이로 스륵 들어오는 작은 손까지.
“데운 물수건입니다.”
“…우에몬?”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이내 약간의 침묵 끝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빼내며 답했다.
“네.”
네. 딱 한마디.
그 한마디에 일영은 무심결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너무 어른스럽다.
조금은 귀여운 구석이 있어도 좋을 텐데.
“끄응.”
지끈거리는 머리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떠 시선을 살짝 돌리니, 예상대로 딱 예를 갖춘 자세로 앉아 자신을 내려보는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매일 깔끔하게 정리라도 하는지 깔끔하고 정갈한 똑 단발.
교토의 귀부인들이나 입을 법한 의복.
늘 무표정이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젖살까지.
그 모습을 오직 달빛을 조명 삼아 눈에 담자, 일영은 내심 주제를 넘진 않을까 하면서도 작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이잖니.”
비록 호위를 서는 무사들이 있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다.
CCTV나 센서도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거기에 대상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귀엽고 속 깊은 여동생인 만큼,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악의를 품는다면 그녀보단 일영이나 히라테 마사히데가 더 순위가 높을 테지만, 일영은 그저 배다른 여동생을 걱정할 뿐이었다.
그러자 되려 우에몬이 약간은 뜸을 들이다가, 이내 답했다.
“…저는 본가의 사무라이들을 믿습니다.”
아마 이 말을 들으면, 히라테 가(家)의 사무라이들의 전투력이 배는 올라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영은 이마를 따듯하게 감싸는 열기와 서서히 감기는 눈꺼풀을 애써 지탱하며 잔잔히 미소지었다.
아마 몸이 붕뜨는 걸 보면 슬슬 잠이 드려는 모양이니, 길게 대화를 나누기엔 무리가 있겠지.
때문에 일영은 움직이지 않는 팔을 천천히 들어, 우에몬의 손 위에 겹치곤 말했다.
“고마워.”
“…….”
순간, 우에몬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흔들렸다.
하지만 정작 그 파문을 일으킨 일영은 그걸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으음…음.”
한결 편해진 듯, 숨을 내뱉으며 서서히 잠에 든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우에몬은 물수건을 덥혀 온 바구니를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곧바로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고는 드르륵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별말씀을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탁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
“으랏챠.”
일영은 개운해진 몸을 일으키며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한숨 자고 나자 언제 열이 났었냐는 듯 몸이 거뜬했다.
물론 팔의 통증과 근육통은 조금 가라앉은 것 외에는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많이 나아지셨군요. 한동안은 죽을 드시고, 상처에 연고만 잘 바르신다면 큰 후유증 없이 나으실 겝니다.”
그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히라테 가(家)에서 머물던 의원이 찾아와 만족스럽게 웃었다.
늙은 의원은 이렇게 튼튼한 것도 선조의 복이라며 일영에게 몸을 아끼라고 조언하곤 곧바로 짐을 쌌다.
큰 고비는 넘겼으니, 돌아가려는 것이리라.
“고생하셨습니다. 사례는….”
“히라테 공께서 차고 넘칠 정도로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주님께서도 해주셨으니, 오히려 과분할 정도지요.”
의원은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가문을 나섰고, 일영은 일주일 넘게 방 안에만 갇혀있던 몸에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고자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밖으로 나선 일영이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요시나리도, 노부나가도, 하다 못해 시바타 가쓰이에나 노부유키가 아니라 이츠키였다.
“도, 도련니임!”
헌데, 녀석의 상태가 조금 많이 이상했다.
이츠키는 누구하나 죽은 것처럼 나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일영을 발견하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으아앙! 도련니이임!”
거기에 팔을 벌린 각도와 속도를 가늠한 일영은 단번에 이츠키가 하려는 행동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면에서 끌어 오른 본능적인 혐오감이 일영이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게 했고.
“꾸엑!”
곧 일영을 꽉끌어안으려던 이츠키는 배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타격감에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BL은 사절이다. 내 인생은 하렘물이라고.”
과거 중·고등학교에서조차 친구들이 포옹이나 조금이라도 과한 스킨쉽을 하려 할 때면 늘 정의의 배빵을 갈겨주곤 했다.
애초에 여자랑 껴안아도 모자랄 판에, 덜렁거리는 새끼들끼리 껴안는다는 게 말이 돼?
“끄윽…수, 숨이.”
“엄살부리지 말고.”
“옙.”
일영의 말에 이츠키는 곧바로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버렸다.
그 뻔뻔한 모습에 일영 역시도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도련님 소리는 계속해주네? 존대도 하고.”
“해야죠. 덕분에 출세까지 했는데.”
이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나름 훈훈한 외모여서 보기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뿐.
딱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보단 낫다 정도의 감흥이었다.
“됐고, 상황은?”
일영은 그렇게 말하며 붕대로 감긴 팔을 당겨 팔짱을 끼며 복도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이츠키 역시 그가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뭐, 기요스 성으로 이주는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투는 당연히 이겼고…특별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오와리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겠지.”
“…예. 그렇겠죠.”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그렇기에, 일영이 몇 달간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최대한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노부나가가 압도적으로 이기게 만들어야 한다.’
나비효과? 어쩌라고.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다.
‘일단 조총을 좀 강화해야 해. 총기 자체는 물론이고 전술적인 측면도 다듬어야겠지. 아니면 아예 미래의 기술을…?’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뇌절은 하지 말자.
아무리 그래도 규격 외의 전술이나 무기를 만들었다간, 자칫 제2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타나서 조선이 정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 나중에 역사책에 최초이자 최고의 친일파. 백일영이라고 적히겠지.’
그건 사절이다.
일단 이 사안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듯싶어, 일영은 곧바로 화두를 돌렸다.
“마츠다이라 측의 피해는?”
“솔직히 괴멸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꽤 큽니다. 아마 부담이 될 거에요.”
이츠키의 말을 들은 일영은 잠시 입술을 질근 씹다가,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에 피식 웃고 말았다.
“참나,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티나게 견제하면 반발이 심할 텐데.”
“그러게요.”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피해를 제일 많이 입은 것은 오다 가문도, 이마가와 가문도 아닌 마츠다이라 가문이었다.
그 말은 즉, 이마가와 측이 이번에 견제한 것은 오다 가문도 있지만 마츠다이라도 있다는 뜻이다.
“뭐,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어차피 머잖아 TS조차 되지 못한 이마가와의 아재는 그의 손에 목이 잘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핍박하던 어린 소녀는 거물로 자라나겠지.
“으음.”
그렇게 말한 일영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때.
“어?”
일영보다 조금 빨리 고개를 돌린 이츠키는 단말마의 탄식을 내뱉었고, 이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단번에 담장으로 내달린 후, 그대로 뛰어넘었다.
“뭐, 뭐야?”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의 기행에 일영은 순간 당황했으나.
“일여엉!”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잡힌 슴가나리. 아니 요시나리를 본 일영은 왜 이츠키가 그런 짓을 벌였는지 깨닫곤 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저 정도는 되야 날 수행할 자격이 있다.
무력도 나쁘지 않은데, 저토록 눈치 빠른 퇴장이라니.
이츠키는 사실 닌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일영은 곧 가볍게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내달려오는 요시나리를 향해 양팔을 벌렸고.
“흐아아앙!”
곧 눈물을 글썽이며 요시나리가 일영의 탄탄한 품에 그대로 골인했다.
“나, 나 너가…히끅! 주, 죽는 줄 알고…!”
곱게 말아 올린 회색 포니테일이 오늘따라 시무룩하게 보인다.
일영은 그런 요시나리의 회색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엉엉 울고 있는 요시나리의 등을 토닥이며 답했다.
“나 안 죽었어. 요시나리.”
뭐랄까.
죄많은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