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무라키토리데(???) 전투(4)
* * *
“끙차.”
일영이 요시나리의 말 위에 오른 그때.
뒤늦게 그녀를 뒤따라 온 모리 가(家)의 사무라이들이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크억!”
“커어억!”
덕분에 잠시나마 쉴 틈이 생긴 시바타와 이츠키 등의 사무라이들은 재빨리 상처를 묶거나 무기를 바꿨다.
일영 역시 팔의 상처를 대충 묶고는 앞에서 고삐를 쥐고 있는 요시나리의 배를 살포시 휘어 감았다.
“으읏….”
비록 갑옷에 의해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일영의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은 그녀를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황은?”
일영 역시 그녀의 그런 모습에 피식 웃음 지었지만, 지금은 일단 전투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우리가 우세했어. 애초에 이마가와 본대는 오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겠지.”
사실 이마가와 측의 본대는 언제라도 다시 도하해서 강을 넘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인 만큼 이번 전투는 원정이 아닌, 일종의 위협에 가까웠으니까.
‘그 위협에도 전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긴 한데.’
뭐, 무슨 상관이겠는가.
TS된 것도 아닌, 아저씨에 불과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머잖아 ‘오케하자마’될 텐데 말이지.
그때,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시바타 가쓰이에가 노획한 말에 올라타 둘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
곧바로 무슨 말을 하려던 그녀였지만, 곧 시선이 요시나리의 배를 휘어 감은 일영의 손에 닿자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요시나리를 향해 가볍게 묵례하며 말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모리 공.”
“별말씀을요. 제가 오지 않았더라도 시바타 공께선 살아 돌아오셨을 겁니다.”
어딘가 묘한 기류가 흐르긴 했지만, 일단 서로를 나름 좋게 평가하던 둘이었기에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한편, 일영은 그 사이에 대략적인 전황을 살피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가 우세해.’
아깐 거의 적이 대부분이던 주변은 어느새 오다 가문 측의 병사가 더 많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하긴, 이러니 숨을 돌릴 틈도 생긴 거겠지.
‘어쩐다.’
일영은 고민했다.
이대로 퇴각한다고 해도 전투는 이길 것이다.
선봉도 우세를 점했고, 뒤이어 본대끼리 맞붙는 니노테(ニの手)도 우위에 있으니까 말이다.
“하하하핫!”
그러나 그때, 일영의 시야에 아까 그 하타모토가 아군 사무라이의 목을 들고 웃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갈 땐 가더라도, 저놈 목은 딴다.
‘현재 운용할 수 있는 기마 사무라이들을 다 합치면 대략 20명.’
많지는 않아도 이런 난전에선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병력이다.
때문에 일영은 요시나리의 허리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고는 말했다.
“요시나리. 공을 세워야 한다고 했지?”
“응. 하지만….”
일영의 말에 요시나리는 잠시 입술을 들썩거렸다.
공훈? 어찌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얻어도 모자란 것이 봉토이고, 돈이며, 권력이다.
그러나 요시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일영의 말에 답했다.
“지금은 아니야. 돌아가자.”
반가움에 말하진 못했지만, 일영이 왼쪽 팔에 입은 부상은 결코 작은 상처가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치료가 먼저인 것이다.
하지만, 일영의 생각은 달랐다.
“그러면, 딱 한 놈만 더 잡고 가자.”
“…누구?”
요시나리의 물음에 일영은 구태여 답하지 않고, 그저 손가락으로 일전에 확인한 하타모토를 가리켰다.
그러자 요시나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려 했으나, 곧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딱 저놈까지만이야.”
왜 허락을 해준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그가 하자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수긍했을 뿐.
‘최대한 빨리 죽이고, 전장을 이탈하자.’
일영이 가리킨 하타모토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으나, 놈은 딱 전장의 제일 최전방에 서 있었다.
그걸 달리 말하자면 적잖이 많은 적을 베어 넘겨야 저기까지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이미 일영이 결정한 일이다.
그럼, 뚫는다.
부웅촤륵!
요시나리는 가볍게 창을 한번 휘둘러 묻은 핏물을 털어버리곤, 고삐를 쥐고 외쳤다.
“단번에 뚫는다!”
그녀의 외침에 모리 가(家)의 사무라이들은 물론 이츠키를 비롯한 히라테 가(家)의 사무라이들 역시 일제히 고삐를 쥐었다.
그때,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는 일영과 요시나리는 잠시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고삐를 쥐며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다.
일단 지금은.
전투 중이었으니까.
*
“흐읍!”
“커허억!”
요시나리는 창의 긴 거리를 이용하여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사무라이의 목을 단번에 베어 넘겼다.
“아아악!”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바타 가쓰이에가 함께 달리며 다른 사무라이의 배를 찔러 그대로 허공에서 던져버렸다.
그런 두 여사무라이들의 압도적인 무력을 눈앞에서 본 일영은 흡사 버스를 받는 팀원의 마음으로 요시나리의 배를 더욱 끌어안을 뿐이었다.
“흐읏!”
거기에 때때로 흔들리는 요시나리의 가슴이 팔에 닿는 감촉까지 더해지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행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히카게!”
요시나리가 아시가루를 아시/가루로 만들어버리며 말의 속도를 줄이자, 일영은 곧바로 말 위에서 내리며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발도했다.
“히랴아악!”
그러자 당연하게도 몇 명의 사무라이와 아시가루가 일영을 노리고 창을 찔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뒤에 서 있는 여자는 다름이 아닌 오니 시바타였다.
“하앗!”
“크어억!”
“아악!”
일 합에 두 명의 아시가루가 쓰러지고, 뒤이어 그녀를 노리며 고개를 돌린 사무라이는 일영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일영은 말을 타고 스쳐 지나가는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가벼운 묵례로 감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노옴!”
멧돼지가 울부짖으면 저럴까? 싶은 거구가 일영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려와 단번에 일영을 베겠다는 듯 검을 내리 베었다.
하지만 일영은 바닥을 굴러서 놈의 검을 피하며 본능적으로 느꼈다.
‘역시, 생각보단 약해.’
기요스 성에서 수많은 사무라이를 베어 넘기며 생각했다.
시바타 가쓰이에와 대적하며 생각했고, 다시금 전장에 섰을 때 생각했다.
나.
아무래도, 약하진 않은 거 같다고.
채앵!
“크읏!”
내리찍어 눌러지는 놈의 검을 검신으로 비스듬이 막아 흘렸다.
그러자 하타모토는 기합을 내지르며 단번에 일영을 베어 넘기기 위해 다시금 검을 찔렀지만, 일영은 오히려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주먹으로 목을 강타했다.
“커헉!”
아무리 갑주로 보호가 되고 있다 해도 취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급소를 강타당한 하타모토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그 사이 일영은 뻐근한 팔을 한번 휘두르며 몸을 추슬렀다.
그러나 그때.
곧바로 달려들 거라고 생각한 일영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양손으로 카타나를 꽉 쥔 채 호탕한 목소리로 외쳤다.
“적수구나! 그럼 응당 이름을 밝혀야겠지! 내 이름은…!”
하지만 그에겐 안타깝게도
“안 궁금해!”
일영은 그의 이름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일단 목을 자르고 가져가서 포로한테 누구인지 말하라 하면 될 텐데, 굳이 이름을 들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이런 비겁한!”
일영이 소리를 외치며 앞으로 내달리자, 하타모토는 역정을 내며 다급히 일영의 공격을 막아냈다.
검을 찌르고, 막는다.
베고, 비스듬이 흘리고.
어깨로 상대의 명치를 찍으며, 손을 베기 위해 끝 없이 검끝을 맞댔다.
“허억, 허억!”
“카악퉤.”
어느새 둘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검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 순간.
“크으읍!”
하타모토는 이제 끝내기로 결심이라도 했는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기세로 전장을 내달려 일영에게 빠르게 검을 뻗었다.
‘빨라!’
그 모습은 조금은 투박했던 여태까지와 달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투명한 실처럼, 일영은 눈앞의 스쳐 가는 궤적을 보았다.
순간 느려진 세상 속에서 실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향한 곳은 다름이 아닌 놈의 목.
‘할 수 있나?’
아니.
‘할 수 있다.’
이전에 시바타 가쓰이에와 대련했을 때, 그때 느꼈던 고양감이 몸을 지배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의 몸을 움직이는 건 현대인 백일영이 아니라, 조선 무사 백일영이라고.
“죽어라아아!”
하타모토는 승리를 확신한 듯, 일영의 목을 베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검을 뻗었다.
허나. 일영은 홀린 듯 팔꿈치로 놈의 손목을 찍어 검의 진로를 바꾸고, 그대로 오른손에 쥔 검을 반 바퀴 돌려 눕힌 후 그대로 목에 찔러 넣었다.
“끄륵…!”
사람이 목에 칼이 꽂히면 피로 익사한다는 말이 있던가.
하타모토는 일영의 움직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그를 내려보았지만, 일영은 그저 무심히 검을 한번 더 깊게 찌른 후 뽑을 뿐이었다.
쿵.
자연스럽게 생명을 잃은 하타모토의 육신은 서서히 뒤로 무너져 내렸다.
일영은 곧바로 쓰러진 놈에게 향해 목을 베어냈다.
그러나 그때.
“이 개새끼가아!”
“죽어라앗!”
일영의 빈틈을 노린 듯, 그의 뒤를 점한 2명의 사무라이가 일영을 베고자 검을 뻗었다.
하지만 일영은 무심히 그들을 바라볼 뿐, 검을 들지 않았다.
그 모습이 흡사 목숨을 포기한 그것이었기에 그들은 씨익 미소지으며 그를 베어넘기려 했다.
“커어억….”
“어윽!”
그래. 베어 넘기려 ‘했다’.
“감히….”
“쯧.”
그들을 등 뒤에서 찌른 시바타 가쓰이에와 모리 요시나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녀들은 이런 잡졸 따위가 감히 일영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좁히며 쓰레기 치우듯 놈들을 치우고 일영에게 향했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돌아가자. 일영.”
“돌아가시죠. 히카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