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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36화 (36/171)

〈 36화 〉 무라키토리데(???) 전투(3)

* * *

노부나가는 언덕 위에서 묵묵히 전장을 응시했다.

아아악!

죽여! 죽이란 말이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생명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문명이란 이름의 허접한 울타리는 벗어던지고, 오직 살육과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죽음이 평원에 감돈다.

짙은 혈향이 코를 찌를 듯 풍겼고, 주인 잃은 목이 바닥을 구르다가 말의 발에 맥없이 부서졌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의 전장으로 몬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승리하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지금 그녀가 할 일은 목탁을 두드리며 죽은 생명에게 묵념하는 위선이 아니라, 승리를 위해 더 많은 생명을 전장으로 던지는 것이었으니까.

“선봉이 우세를 점했습니다아!”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쿠웅!

노부나가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에 쥔 화승총을 바닥에 강하게 내리찍으며 외쳤다.

“모조리 죽여버려!”

감히 주제도 모르고 강을 넘은 이마가와의 졸개들아.

너희는 다시 강을 넘을 것이다.

목을 잃은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말이다.

“진군해라!”

“당주님의 명령이다! 돌진!”

그 시각.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본진의 한 축에 선 요시나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진군 명령에 투구를 깊게 눌러쓰고, 푸른빛이 도는 창을 부서질 듯 세게 쥐었다.

‘기다려…! 일영!’

그녀에게 승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한 남자만을 생각할 뿐.

그 남자가 제발 살아있기를 바라며.

“돌겨억!”

요시나리는 고삐를 쥐고 단번에 앞으로 내달렸다.

**

“하아…씨발. 진짜 죽겠네.”

평소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오자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욕은 일본말이 아니라 조선말로 해서 주변에서 들어도 알아챌 사람은 없다는 거다.

“크어억!”

…애초에 신경 쓸 상황도 아니고 말이지.

일영은 달려드는 사무라이의 검을 어깨의 갑옷으로 받아 넘기고 그대로 품을 파고들어 눈을 찔렀다.

그리고 그대로 밀어 넘어트린 후, 검으로 폐를 찔러 죽였다.

“…헉…헉.”

벌써 몇 명을 죽인 거지?

아니. 중요하지 않잖아.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다.

일영은 다시금 밀려오는 적을 무참히 베어 넘기고 주변을 살폈다.

“사, 살려…!”

“끄끍….”

“쿨럭. 하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적을 죽여도, 뒤에서 공격이 날라온다.

죽이고 죽여도 끝은 멀기만 하다.

수많은 잡념과 두려움이 당장이라도 날 잡아먹을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흐릿해진 시야를 애써 다잡아 적을 베어넘기기 위해 내달리는 것이다.

전장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웅장하겠지만, 막상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겐 치열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일영은 그것을 너무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냥 참모 역할로 임관할걸.”

왜 깝쳐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걸까.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는 돌릴 수 없었다.

그때, 앞에서 눈먼 창이 배를 노리고 찔러져 왔다.

“흐읍!”

이미 몸이 찢어질 듯 삐걱거렸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었기에, 다시금 살인을 시작했다. 찔러진 창을 피하고, 창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딸려오는 아시가루의 목에 검을 박아 넣고 그대로 발로 배를 밀어 뽑았다.

푸슉!

검이 거칠게 뽑히며 핏물이 얼굴과 가면에 튀었지만, 눈살을 찌푸릴 여유는 없었다.

“히카게!”

왜냐면, 뒤에서 다급한 시바타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일영은 곧바로 바닥을 한번 굴러 피하곤 황급히 자세를 잡으려 했다.

“죽어어어!”

하지만 자세가 무너진 탓일까. 놈은 곧바로 일본도를 양손으로 잡아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죽음.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기에, 곧바로 검을 들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때.

“히요잇!”

괴상한 소리를 외치며, 측면에서 달려온 이츠키가 온몸으로 일영을 베려던 사무라이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크어억!”

“흐윽!”

당연히 사무라이는 검을 놓치고 옆으로 날아갔고, 이츠키 역시 진심으로 갖다 박았는지 나란히 전장을 뒹굴었다.

“고맙다. 이츠키!”

그리고 일영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놈의 목에 검을 쑤셔 박았다.

“끄르륵….”

당연히 목에 검이 박히고 살 수있는 가능성은 없기에 사무라이는 즉사했다.

“죽어어어!”

이츠키는 넘어지며 벗겨진 투구를 주워 쓰곤 곧바로 다른 적을 죽이려 달려나갔다.

어째 그 모습이 평소 알던 능글맞은 모습이 아니라 광전사와도 같아서,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 단번에 사무라이 둘의 목을 날려버리고 일영에게 다가온 시바타가 말했다.

“위험했습니다.”

“예. 덕분에 살았네요.”

조금 전 다급했을 땐 바로 이름을 불렀으면서, 막상 조금 숨을 고를 틈이 나자 곧바로 존재로 바뀌네.

하지만, 이런 생각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바타는 주변을 끝없이 경계하면서 전황을 살피더니 말했다.

“본대가 진군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살아나갈 수 있어요.”

“…가능할까요?”

시바타는 나름 희망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일영은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이 적이었으니까.

물론 간간히 오다 가문의 깃발을 등에 멘 사무라이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딱히 유의미한 숫자는 아니었다.

‘너무 깊이 들어왔어.’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은 전장에서 가장 치열한 부분인 선봉이다. 당연히 적과 아군이 얽히고설키는 만큼 생환률은 지극히 낮았다.

당장 시바타만 해도 일영이 구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여태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일영이 시바타를 구원하러 오며 데려온 수십의 사무라이가 주변에서 분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한계다.

수십에 이르던 사무라이는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일영과 시바타의 곁에는 이츠키를 비롯해서 채 10명도 안 되는 사무라이가 겨우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퇴각도 힘들어.’

아직 투입되지 않은 병력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 평원에 서 있는 병력만 족히 몇천은 거뜬히 넘는다. 그런데 그 인파를 모두 뚫고 퇴각 한다고? 가능할 리가.

그럼 남은 선택지는 2개뿐이다.

구원이 올 때까지 버티거나.

전투를 끝내버리거나.

‘생각해보니….’

전투에 몰려 까먹고 있었는데, 시바타랑 내기를 했었다.

누가 먼저 적장을 베느냐였지.

‘꼭 베고 만다.’

굳이 총 사령관까지도 필요 없다.

이 전쟁의 선두에 선 선봉장을 베면 끝이다.

전투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가 식고, 덥수룩한 머리를 쓸어넘긴 채 주변을 살폈다.

‘찾았다.’

저 멀리, 한 중년의 사무라이가 괴성을 내지르며 무참히 오다 노부나가의 사무라이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투구나 갑옷이 휘황찬란한 걸 보면 절대 낮은 신분은 아니겠지.

그리고 그 말은, 장대에 매달기에 흠이 없는 머리통이라는 소리다.

“시바타 공.”

“예. 흡!”

일영의 부름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또 다른 아시가루의 목숨을 거두고 답했고, 일영은 손에 쥔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쭉 뻗어 발견한 장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꽤 높은 사무라이인거 같은데. 맞습니까?”

“…저자는.”

시바타는 붉은 한야 가면 너머로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마츠다이라 측의 하타모토입니다. 선봉을 지휘하는 무장 중 한 명인 것 같군요.”

하타모토(??)는 뭐랄까.

친위대의 개념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굳이 이해하자면 서양의 기사 느낌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그래도 나름 관료 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급인 만큼 우습게 볼 자리는 아니었다.

“전투를 끝내진 못해도, 사기를 낮추는 건 가능하겠군요.”

시바타 가쓰이에는 단번에 일영의 뜻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길을 열어보죠.”

푸욱!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곤 곧바로 사무라이 한 명의 목숨을 거뒀다.

*

요시나리가 이끄는 기마 사무라이들은 수없이 많은 핏물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요시나리만큼 많은 수의 적을 죽이진 못했다.

“가주님! 너무 깊이 들어왔습니다!”

“이대로면 잡아먹힙니다!”

그러나 그것을 달리 말하면, 그만큼 요시나리가 무리를 했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녀를 따르는 모리 가(家)의 사무라이들은 그녀를 말리고 싶었지만, 요시나리는 무언가 홀리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적을 벨 뿐이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또 다시 창을 휘두른다.

푸른빛의 섬광이 일순간 전장을 지배하고, 그녀의 창이 한번 원을 그릴 때마다 이름 모를 적의 목이 바닥에 떨어진다.

“괴, 괴물!”

그 모습은 가히 오니라 불리는 시바타 가쓰이에와 비교해도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 그녀의 푸른 창은 그야말로 공포의 상징인 것이다.

대체 얼마나 우리에게 한이 맺혀서 저리도 도륙하는 것일까.

저 여자는 괴물이다.

명성을 날렸다던 사무라이들은 그녀의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고,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닌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 추락한다.

그러나 두려움과 절망을 집어삼킨 적들과 달리, 요시나리를 움직이는 것은 감히 주군의 영토를 침공한 적에 대한 분노도, 권력을 위한 욕심도 아니었다.

‘…일영, 어디에 있는 거야?’

그저 한 남자에 대한 걱정.

자신 때문에 선봉에 서야 했던 남자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노부나가의 생각이 어떻든, 요시나리는 일영이 선봉에 선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우울했던 마음에 유혹한 것도 자신이었고, 그로 인해 둘째 아가씨인 노부유키를 화나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일영이 선봉에 선 것이 과연 자신과 상관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때문에 그가 출전하기 직전까지 찾아가지 못했다.

혹여 자신을 원망하는 건 아닐까?

내가 찾아가는 게, 그에게 더한 부담을 안겨주는 게 아닐까?

수많은 고민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고, 결국 막사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봉이 격돌하는 걸 본 순간, 요시나리는 조금 전 자신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싶었다.

‘적어도 얼굴은 봤어야 했는데.’

그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 것은 그에게 미움받기 싫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라는 여자가 끔찍하게도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확실한 건…!’

지금, 그녀는 그에게 향하고 있다.

혹여 미움을 받더라도,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이 지옥에서 그를 살리기 위해서.

“커헉!”

또 하나의 목을 추수했다.

뒤따르는 사무라이들의 고함이 여전히 울렸지만, 요시나리는 듣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내달리고.

“끄아악!”

다가오는 적의 목을 베고.

“커헉!”

도열을 갖춘 적들을 꿰뚫었다.

푸른 빛이 돌던 갑주는 어느새 핏물이 가득해져 빛이 바랬고, 창을 든 손이 떨린다.

흐아압!

크어억!

사방에서 죽고 죽이는 괴성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달리는 말의 진동이 점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숨이 가빠지는 걸 넘어서 시야가 좁아졌다.

‘얼마나 싸웠지?’

벌써 수십은 족히 벤 거 같은데.

어째서 일영이 보이지 않는 걸까.

설마, 혹시.

이미 죽어버린 걸까.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그가 죽다니, 말이 안 되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가주님!”

문득, 막혔던 귀가 뚫리는 듯 모든 감각이 제자리를 되찾는다.

고개를 돌리자 뒤따르던 모리 가(家)의 사무라이 중 한 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곁으로 말을 몰았다.

“저쪽…저쪽에 저희 측 사무라이들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곧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적진 한가운데에서 분투 중인 십여명의 사무라이.

“…저건?”

선두에서 미친 듯이 적을 베어 넘기는 두 사무라이를 본 요시나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검은 갑주를 입은 사내와 붉은 갑주를 입은 여자.

그건, 누가 봐도 일영과 시바타 가쓰이에였다.

“히랴!”

“가주님!”

그 순간 일영의 검이 적에게 막히고 곧바로 반격당했다.

그 모습을 본 요시나리는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말을 거칠게 이끌고 곧바로 단신으로 그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적은.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존재하지 않았다.

*

진짜 도깨비라도 벤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붉게 물든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휘두르며 일영은 생각했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진지하게 어느 종교든 믿어야겠다고.

갈 땐 가더라도 좋은 곳에 간다는 믿음 정도는 가지고 죽어야 그나마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흐읍!”

“크하억!”

후들거리는 걸 넘어서 슬슬 감각이 사라지는 팔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사무라이를 베었다.

하지만 놈은 너무나 가볍게 일영의 공격을 흘렸고, 곧 괴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일영을 베어 넘기려 했다.

그러나 이미 숱한 죽음의 위협을 겪은 일영은 당황하지 않고 몇 번의 검을 마주한 끝에 사무라이의 목을 꿰뚫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일여엉!”

왼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일영은 순간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요시나리…?’

익숙한 가슴, 아니 얼굴이 적진 한가운데를 미친 듯이 내달려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거의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만을 하며 길을 뚫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 모습은 너무나 위태롭게 보였다.

“요시나리! 젠장…!”

어떻게 이 시끄러운 전장에 그녀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녀가 지금 너무나 위태로운 돌격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일영이 그녀에게 다가가 무어라 경고하려던 그 순간, 요시나리의 뒤로 일련의 사무라이들이 붙어 창을 휘둘렀다.

부웅!

“죽어어어!”

“요시나리이!”

그들은 진심으로 요시나리를 도륙하겠다는 듯 사방에서 창을 찔러왔고, 일영은 곁에서 검을 찌르는 사무라이를 어깨로 밀쳐내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녀의 뒤로 달라붙은 이마가와, 마츠다이라 측 무장이 족히 다섯이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저 상황에서 살아남는 게 가능할리 없다.

더군다나 저렇게 흥분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젠장…!’

가능할 리가 없다.

괴물이 아니라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일영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감히…! 저리 꺼져!”

때로는 사랑에 눈이 먼 여자는 괴물이 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흐아압!”

등 뒤에서 찔러오는 창을 감으로 피한다.

뒤이어 연계되는 공격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 곧바로 창을 크게 휘둘러 거리를 벌린다.

“무, 무슨!”

모든 것이 눈깜짝 할 새에 일어났다.

그러나 요시나리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곧바로 고삐를 당겨 방향을 바꾼 후 감히 앞길을 방해한 사무라이에게 돌진했다.

“마, 막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른 사무라이들이 그녀를 향해 공격을 퍼부으려 했으나,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푸른 섬광과 서서히 아래로 추락하는 시야뿐이었다.

“…미친.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 보고 있던 일영은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말로 나열해서 그렇지, 그녀가 방금 보인 기예는 일영은 물론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등 뒤의 공격을 피하고 순식간에 적 다섯을 벤다는 게 쉽게 됐다면, 전쟁의 역사는 달라졌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일영이 경악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숨을 고르던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저렇게 강했나?’

그녀도 요시나리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요시나리를 자신보다 한 단계 쯤 낮게 보는 경향이 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그 기예를 보자 시바타 가쓰이에는 자신이 오만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저런 기예가 가능할까?’

또 다른 사무라이의 목을 가볍게 썰어주면서 고뇌한다.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과연 요시나리처럼 손쉽게 할 수 있을까?

그건 조금 고민이 필요한 문제였다.

물론 일영이 듣는다면, 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들어와 여태까지 적을 죽이는 당신이나 요시나리나 뭐가 다르냐고 어이가 없어 할게 뻔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히이잉!

요시나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리를 떠는 말을 억지로 이끌어 일영의 앞으로 다가왔고, 마찬가지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말했다.

“…미안해. 조금 늦었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일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잠시 올려보다가, 이내 피식 웃어버리곤 손을 뻗었다.

“고마워. 달려와줘서.”

“……!”

그리고 그의 답을 들은 요시나리는.

“응…!”

환하게 웃으며, 일영의 손을 맞잡아 말 위로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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