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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35화 (35/171)

〈 35화 〉 무라키토리데(???) 전투(2)

* * *

둥.

심장을 울리듯 낮고 무거운 북소리가 전장을 나지막이 스친다. 그리고 북소리가 멎은 대지 위로 수천의 병력이 천천히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많기도 하네.’

잠시 묵묵히 놈들의 수를 세다가 이내 포기했다. 어차피 곧 저쪽에서 보낸 선봉과 대면하고 죽고 죽일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거기에 이제 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말이지.

일영은 힐끔 고개를 돌려 뒤에 도열한 군세를 살폈다.

비록 일영이 선봉에 끼긴 했어도, 이번 선봉에서의 공은 노부유키가 가져가야 했기에 사무라이들은 물론 아시가루도 모두 노부유키의 병력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일영을 홀로 보낼 순 없다고 판단했는지 노부나가는 그를 따라온 히라테 가(家)의 사무라이들을 데리고 합류하는 것까지는 허락했다.

물론 등을 맡길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은 환영이었지만, 모두가 든든한 건 아니었다. 일영의 바로 뒤에 선 이츠키는 엄청난 군세를 마주하자 눈을 감고 신께 기도하듯 빠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으면 도련님 탓. 죽으면 도련님 탓. 죽으면 도련님 탓….”

“닥쳐. 좀.”

“내가 미쳤지. 미쳤어. 선봉이라니. 내가 선봉이라니…!”

이츠키는 진심으로 좌절하는 듯 말 고삐를 쥔 채 계속 중얼거렸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선봉은 가장 먼저 적과 격돌하는, 달리 말하면 죽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말 아닌가.

정작 저렇게 중얼거리는 이츠키 역시 그것을 알면서도,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자청하여 전장에 선 것이다. 그걸 알기에 일영도 그저 너털웃음을 짓고 넘겼다.

“히라테 공.”

그때, 가볍게 전열을 정리하고 일영의 곁으로 말을 몰고 온 시바타 가쓰이에가 특유의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조총수들의 사격이 끝난 직후 곧바로 돌입할 겁니다. 제가 가장 선봉에 서서 길을 열테니, 그 뒤에서 돌파력이 무너지지 않게 보조해주시길.”

“예. 그러죠.”

가장 위험한 일을 자처한다는 그녀의 말을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거기에 저렇게 말하는 대상이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무려 시바타 가쓰이에 아닌가. 걱정할 이유도, 여유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저는.”

그러나 그때, 일영의 간결한 답에 잠시 침묵하던 시바타는 여전히 앞을 응시하며 무심히 말을 던졌다.

“그대가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일영은 순간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계속 중얼거리던 이츠키도 단번에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굴렸다. 둘의 반응이 어떻든, 시바타는 어떤 미동도 없이 전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전투가 끝나고 겨울이 지나면, 그땐 진검으로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과 눈을 마주했다. 자연히 일영은 그녀 눈에 담긴 호승심을 확인하곤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군요.”

이번 전투가 끝나면, 그 이후는 곧바로 오와리라는 땅을 차지하기 위한 내전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부유키를 따르는 시바타와 노부나가를 따르는 일영은 필연적으로 전장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을 터.

‘곱게 죽기는 글렀나.’

아무래도 지난 대련이 그녀를 단단히 자극한 모양이었다. 전국시대 맹장하면 꼭 한번은 이름이 언급되는 시바타 가쓰이에가 호승심을 불태울 정도로 말이다.

스윽.

전장에 나서기 전, 요시나리에게 돌려받은 가면을 끌어 얼굴에 쓴 일영은 고개를 돌려 곁에 서 있는 시바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내기요?”

내기라는 말에 썩 구미가 당겼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되묻는 시바타에게 일영은 허리춤에 맨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스윽 쓸고는 답했다.

“누가 먼저 적장을 베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일영의 말에 여태까지 무미건조한 눈을 유지하던 시바타의 눈이 살짝 흔들리고, 그녀 역시 손에 쥔 창을 한번 가볍게 돌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철컥.

“1열! 조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돌격! 돌격하는 거다!”

“와아아아아아!”

이마가와 측의 장수가 외치자, 곧 갑주를 갖춰입은 일련의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평원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악한 방패를 들고, 검을 빼들고 언덕을 차지하고 있는 오다 가의 진영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그들이 평원을 반쯤 내달렸을 때, 목책에 견착된 조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앙!

타다앙!

“끄아아악!”

“눈…! 눈이!”

납으로 만들어진 작은 구슬이 허공을 가르고 나약한 육신을 파고든다. 많은 사무라이는 갑옷을 뚫지 못한 납탄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내달렸지만, 그렇다고 아예 피해를 주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화살을 쏴라!”

거기에 2열이 자리를 잡고 견착하는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화살이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비처럼 쏟아졌다. 뒤이어 쏘아지는 납탄이 더해지자, 선두로 내달린 아시가루 중 태반이 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열까지 사격을 마치고 선두에서 내달리는 사무라이들의 철그럭거리는 갑옷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지자, 시바타 가쓰이에는 기다렸다는 듯 창을 으스러질 듯 쥔 채 외쳤다.

“돌격!”

짧고 굵은 한 마디였으나, 그녀의 외침에 당장이라도 내달릴 듯 숨을 고르던 선봉대는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말을 탄 사무라이들은 고삐를 쥐고 박차를 가했다. 대지에 발을 딛고 내달리는 사무라이들은 고동치는 심장을 느끼며 검을 뽑았고, 그 뒤를 따르는 아시가루들은 창을 쥐고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앞으로 달린다. 겨울의 차가운 한기가 갑옷을 뚫고 몸을 스친다. 다가올 죽음의 공포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적이 너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기를 쥔 손이 떨리고, 내달리는 걸음은 무겁다.

눈앞이 검게 변했다.

해는 밝았고 하늘도 맑을진대, 어째서 이렇게 보이는 걸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말로, 이 전쟁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모두에게 든 의문이었고, 모두가 가진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느새 적들의 얼굴마저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때.

“내가 바로!”

마치 전설 속의 오니(おに)가 포효하듯, 귓가를 뚫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들은 아시가루들과 사무라이들은 고개를 들어 흐리고 두렵게만 보였던 앞을 바라본 그 순간.

어둡게만 보였던 선봉대의 가장 앞에 찬란히 흩날리는 금발이 눈을 어지럽혔다.

“내가 바로! 오니(おに)시바타다!”

그리고 마침내 선봉대가 그녀의 정체를 자각한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아!”

“죽여! 죽여버려!”

두 진영의 선봉대가 하나로 합쳐지고, 순식간에 평원은 붉게 물들어갔다.

“물러서지 마라! 이대로 돌파한다!”

시바타 가쓰이에는 복부에서부터 끌어모은 목소리로 아군을 독려하고, 미친 듯이 창을 휘둘렀다.

“크어억!”

“죽어라! 괴…커헉!”

긴 창을 내질러 말 위에 탄 적 사무라이를 낙마시키고, 곧바로 말로 짓밟아 머리를 터트린다.

“살려…!”

“끄아아악!”

당장이라도 목을 벨 듯 뻗어지는 검은 고개를 숙여 피하고, 벌벌 떨면서 앞을 가로막는 잡병의 가슴에 창을 찔러 허공으로 끌어 올린다.

말의 다리가 적들의 피로 물들고, 가면 너머로 흐르는 짙은 혈향이 코를 찌른다. 그럼에도 시바타 가쓰이에는 물러서지 않고 무조건 앞으로 내달릴 뿐이었다.

오니는, 전장의 도깨비는 물러서지 않는다.

한때 섬겼던 주군이 통일한 이 땅을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앞으로 내달리며 수십의 사무라이를 찢고, 베고, 죽였다.

손에 쥔 창대가 핏물에 미끄러지자 검을 뽑았고, 몸에 상처가 늘어도 개의치 않았다.

히이잉!

“으윽!”

그러나 그 순간. 반대편에서 내달리던 사무라이가 죽으면서까지 내지른 창이 그녀의 말의 눈을 스쳤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은 순간적으로 몸을 들어 시바타 가쓰이에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귀신이 떨어졌다!”

“죽여버려! 죽여버리라고!”

아무리 맹장이라고 한들, 한계는 있는 법이다.

그것을 모르는 이는 이 전장에 없었기에 간신히 충격을 간소화하여 바닥에 착지한 시바타 가쓰이에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사무라이들의 칼날을 피해야 했다.

“어딜!”

“끄어어억!”

그러나 오니(おに)시바타라는 명성은 허명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바닥을 굴러 검을 피하곤 그대로 목을 베어냈다.

철퍽.

목을 잃은 사무라이는 그대로 대지로 추락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오직 서로를 죽이기 위한 난전이 시작되었다.

목을 베고.

심장을 찌르고.

얼굴을 짓이기고.

손을 자른다.

말을 탄 사무라이들이 보병들을 사냥하고, 보병들은 속도를 잃은 기병들을 잡아끌어 수십 조각으로 도륙한다.

피가 작은 강이 되어 평원을 따라 흐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시바타는 수십의 사무라이의 목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녀 역시 사람이기 때문일까.

체력의 소모는 점점 심해졌고, 늘 얼굴을 가리던 가면은 반쯤 잘려 가녀린 하관을 드러냈다.

그때.

“시바타아아아!”

지나가는 창에 얼굴을 길게 베여 가죽이 너덜해진 사무라이가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기라도 하는 듯 검을 내질렀다.

“이런!”

시바타 가쓰이에는 다급히 부무장인 와키자시를 꺼내 검을 막았지만, 그로 인해 빈 그녀의 등을 노리고 다른 사무라이가 검을 찔렀다.

“죽어라!”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것을 인지한 시바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생각했다.

‘어깨는 줘야 한다!’

어깨를 준다면 이후 전투에서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미래보다 당장 눈앞의 적을 베는 것이 바로 장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지막까지 한 명의 적을 더 베고 죽을 생각이었다.

“커헉!”

하지만 그녀가 단번에 눈앞의 사무라이를 베어 넘기고 뒤를 돌아 적을 죽이려던 그때. 그녀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끄륽.”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건 그녀의 목숨을 거두기 위한 적이 아니라

“…쿨럭. 큰일 날 뻔했습니다.”

팔을 베인 듯 피를 흘리며, 시바타의 뒤를 노리던 사무라이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은 일영이었으니까 말이다.

스윽철퍽!

일영이 심장에 박아넣은 검을 뽑자 사무라이는 바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졌고, 일영은 대충 바닥에서 주운 카타나와 그녀가 원래 쓰고 다니던 가면과 비슷한 붉은 가면을 건네며 말했다.

“필요하실 것 같아서.”

“…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시바타 가쓰이에는, 멍하니 일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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