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30화 (30/171)

〈 30화 〉 안아줘

* * *

(이전 회차:오다 노부나가 후반부가 수정되었습니다.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이 흘렀다.

극적으로 오다 가문의 두 자매가 손을 잡게 된 후, 머잖아 척후로 보내놓은 닌자들이 속속들이 정보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진행 방향과 적 군세에 대한 추측이 담긴 기밀 정보들이었기에 일영이 보지는 못했으나, 대충 분위기만 살펴도 생각보다 가벼운 싸움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나고야 성에서 출병한 노부나가 군대 3,600은 곧 스에모리에서 출병한 2,000의 군과 합류하여 무라키 신사가 건너편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강가 인근에 진지를 펼쳤다.

일영은 그 진지의 막사 밖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이츠키가 다가와 말했다.

“도련님. 말씀하신 물임다.”

“어. 고마워. 이츠키.”

이츠키는 물이 담긴 호리병을 일영에게 건넸다. 그러곤 곁에 앉아 물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

일영은 그렇게 답하곤 이츠키가 떠다 준 물로 목을 축였다. 말로는 그냥이라고 했으나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대련 전과 후에 이츠키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무라키토리데 전투….’

스윽. 물기가 묻은 입가를 닦고 생각에 잠긴다. 사실 무라키토리데 전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애초에 큰 비중이 있는 전투도 아니었으니까. 생각나는 것 정도는 사이토 도산에게 지원을 받았다는 것과 오다 노부나가 측이 먼저 강을 건넜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이번에는 사이토 도산 측에서 지원해줄 가능성이 제로라고 보는 게 맞겠고….’

그도 그럴 것이, 사이토 도산이 원래의 역사에서 노부나가에게 군사를 지원해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가 사이토 가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가와의 교토 진군을 억제하려는 수작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허나 노부나가가 여자가 된 현재, 사이토 가문이 노부나가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현재 노부나가는 결혼조차 안 했으니까.

즉, 적어도 일영이 알기로 사이토 도산이 현재 오다 가문을 도와줄 이유는 0에 수렴했다. 일영이 알기론 그랬다.

그래. 분명히 그럴 텐데.

“부끄럽지만, 미노의 삼인중이라고 불리는 안도 모리나리라고 합니다. 당주께서 많은 병사를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충분히 많은 병력입니다. 사이토 공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길.”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째서 지원을 온 거지?

일영은 가면 아래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도 모리나리가 누군가. 사이토 가문이 당주로 있는 미노 지역의 제일 중요한 3명의 가신 중 한 명이다. 오죽하면 미노 삼인중이라고 불리겠는가.

그가 데려온 군대의 구성을 살핀 일영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약 150의 사무라이와 350의 아시가루로 이뤄진, 원래 역사에서 지원한 1,000명의 반밖에 안 되는 적은 병력이었으나 어찌되었든 ‘성의’를 보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이토 도산이 노부나가에게 성의를 보인다?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직감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고.

그러나 그때.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일영의 눈에 문득 평소와 달리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요시나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전에 기요스 성의 사무라이들을 모두 죽였을 때보다 더 싸늘한 눈으로 안도 모리나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연히 안도 모리나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었다.

“으음. 요시나리. 오랜만이구나.”

안도 모리나리는 이미 어느정도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 노부나가의 뒤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는 요시나리에게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뿌득.

순간, 그녀의 이빨이 갈리며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일영은 과거 요시나리가 술에 취해서 했던 말을 떠올리곤 습관이 되어버린 듯 한야 가면에 난 상처를 쓸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안도 모리나리는 원수에 가깝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요시나리.”

노부나가의 낮은 목소리가 울리고, 그녀는 요시나리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명령했다.

“잠시 막사로 돌아가 있어라. 호위는 사쿠마와 카와지리로 충분하니.”

“…예.”

그것은 얼핏 보기에 실수를 한 가신을 근신시키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일영은 본능적으로 노부나가가 요시나리를 배려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시나리 역시 마찬가지인 듯, 그녀는 노부나가의 등에 짧게 고개를 숙인 후 자신의 막사로 묵묵히 걸어갔다.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때문에 일영은 곧바로 그녀의 뒤를 쫓으며 이름을 불렀다.

“요시나.”

“어머, 여기서 뵙네요. 히카게 님.”

아니. 정확히는 부르려고 했다. 뒤에서 들리는 능글맞은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방해를 당한 일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무슨 일이신지요.”

아가씨. 라고 불릴 존재는 적어도 이 막사에 그녀밖에 없었다. 노부유키는 일영의 인사에 묘한 웃음을 흘리며 웃었다.

“아가씨라. 당신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

또 무슨 이유로 말을 건 것일까.

일영은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면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뒤에 선 붉은 한야 가면을 보자 일영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시바타 공.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예?”

그러자 되려 당황한 것은 시바타 가쓰이에였다. 노부유키를 앞에 두고 왜 자신에게 말을 건단 말인가. 비록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지만 이건 충분히 노부유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노부유키를 힐끔 바라보며 반응을 살폈다.

“흐응….”

허나 노부유키는 일말의 기분이 상한 내색도 없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언의 허락임을 알았기에 그녀는 어색하게 일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만. 히라테 공께선 괜찮으신지요.”

“뭐, 며칠 말 위에서 고생을 조금 하긴 했는데 다행히 뼈가 상한 곳은 없는지 금방 나아지더군요. 아무래도 운이 따른 듯 합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만약 현대인의 몸으로 그렇게 싸웠었다면 몇 주는 몸져누웠을 텐데, 단련된 몸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옛날 사람이라 뭔가 다른 건지 몰라도 어지간한 상처는 금방 고통이 사라졌다.

그렇게 짧게나마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일영은 그제서야 노부유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절 찾으신 이유는 뭡니까?”

“별건 아니고, 궁금해서요.”

일영의 불순한 태도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하건만, 노부유키는 여전히 싱글싱글 능글맞게 눈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뭐가….”

“정말 제가 끌리지 않나요?”

그리고, 그녀는 일영에게 한 발자국 성큼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자연히 긴 흑발이 잠시 흔들리고 그녀의 정갈한 의복에서 뻗어진 손이 일영의 가슴에 가볍게 얹어졌다. 노부유키는 일영이 순간 굳자 프흣. 하는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 정도면 부인 삼기에 좋은 아내 아닌가요? 아무리 당신이 히라테 가(家)의 양자라고 해도 본질은 조선인인 만큼, 보다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게 좋을 테고 말이죠. 대체 그렇게 거절하는 이유가 뭐죠?”

정략 결혼. 그것보다 더한 보험은 없다. 때문에 노부유키는 내심 일영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째서 이 남자는 자신을 거절하는가.

노부나가에 대한 충성심?

자신을 거둬준 히라테 마사히데에 대한 양심?

아니면 귀여운 밀당?

어떤 것이라도, 노부유키는 그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결국 인간이란 욕망에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유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순간, 노부유키는 물론 시바타 가쓰이에도 일영의 답에 집중했다. 그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죄송하지만.”

곧 내뱉어진 답에 노부유키는 오랜만에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향.

취향이란다.

“그럼.”

일영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굳어버린 둘을 놔두고 자리를 떠났다. 더 할 얘기도 없을뿐더러 요시나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부유키는 일영이 사라진 후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물었다.

“지, 지금. 내가 추하다고 한 거지?”

그것은 단순히 이상형을 말한 일영의 말에 비해 대단한 비약이었으나,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비슷한 뜻으로 받아들였기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답했다.

“…추하다고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부인으로 받아들이기엔 모자라다는 뜻으로 들리긴 합니다.”

“…시바타.”

“예.”

노부유키는 오랜만에 능글맞은 웃음이 아니라 살기가 섞인 조소를 지으며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명령했다.

“머잖아 검을 겨누게 되면, 저놈은 꼭 살려서 데려와. 이 모욕은 내 손으로 갚아줄 거니까.”

“…예. 아가씨.”

**

일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해가 쌓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요시나리의 막사를 찾아갔다.

그녀 역시 적잖이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당연히 주변에는 사무라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이미 일영의 얼굴을 아는 모리 가(家)의 사무라이들은 그의 얼굴을 보자 곧바로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나름 손쉽게 막사 안으로 들어선 일영은, 곧 요시나리를 발견하곤 그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요시나리.”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평소 순박한 웃음을 짓던 것과 달리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간이침대 위에 앉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일영은 답하지 않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와 거의 근접하게 다가선 그때.

“줘.”

“응?”

작은. 마치 혼잣말처럼 느껴지는 중얼거림이 아래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일영이 고개를 내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되묻자, 요시나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아줘.”

그리고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에는,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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