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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29화 (29/171)

〈 29화 〉 오다 노부나가(수정)

* * *

“치, 치료를 끝냈습니다.”

“나가.”

“예…!”

척 보기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게 분명해 보이는 노부나가의 목소리에 늙은 의원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자연히 방에 남은 일영과 요시나리는 노부나가의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요시나리는 몰라도 일영은 거의 죽을 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뜩이나 온몸이 아파 죽겠는데 노부나가가 화가 난 이유도 전혀 가늠이 안 되니까.

‘설마…시바타 못 이겼다고 이 지랄 하는 거야?’

에이. 설마.

아니겠지.

만약 그러면 진심으로 ‘혼노지’ 해버릴지도 모른다. 사실상 오다 가신의 맹장 하면 누구라도 떠올리는 게 시바타 가쓰이에 아닌가. 당장 비긴 것만 해도 기적인데….

그때,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있는 일영의 등에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요시나리는 척 보기에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일영의 등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크흠.”

왜인지 얼굴이 붉어져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때. 술을 한 모금 더 들이킨 노부나가는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서늘한 목소리로 요시나리에게 말했다.

“요시나리. 넌 나가 있어라.”

“예? 하, 하지만….”

평소였다면 별다른 말 없이 그녀의 명령에 따랐을 그녀였으나, 요시나리는 일영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가 마음에 걸리는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지?”

“죄, 죄송합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현실을 깨닫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녀는 곧바로 도게자를 박았고, 노부나가는 눈짓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운 후 밖으로 내보냈다.

끼릭.

그렇게 단둘이 남게 되자, 노부나가는 반쯤 남은 호리병의 술을 단번에 들이마셨다. 그리곤 일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누가 그런 무모한 대련을 하라고 허락했지?”

“…어음.”

그녀의 말에 일영은 볼을 긁적였다. 설마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일단 최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게 답해보자.

“저는 조선인의 피를 가지고 있으나 현재는 히라테 가(家)의 장남입니다. 더욱이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나 현재 오다 가문은 당주님과 동생인 노부유키 님의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시바타 공의 대련 요청을 거절하기엔….”

“멍청한 놈!”

터엉!

그러나 일영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노부나가는 비어버린 호리병을 거칠게 바닥으로 던져버리곤 일영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때문에 일영은 몸을 뒤로 빼려 했으나 성하지 않은 몸 때문에 한발 늦고 말았다.

“그건 대련이 아니었다! 내가 총을 쏴서 말리지 않았으면 시바타는 몰라도 너는…!”

그건 일영도 뒤늦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중간에 멈췄는데도 이렇게 온몸이 아파 뒤질거 같은데, 마지막 일격을 맞았으면 죽거나 최소한 어디 하나는 제대로 부러지지 않았을까.

“미친 거냐? 시바타 가쓰이에는 단연코 오와리 최고의 맹장이다! 만약 그녀가 널 진심으로 죽이고자 했으면 넌 죽었어!”

“다, 당주님.”

노부나가는 일영을 벽까지 밀어붙이곤 그의 어깨를 거칠게 밀었다. 당연히 등이 아팠으나 이쯤 되면 일영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화를 내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순간 일영의 물음에 노부나가는 미간을 좁히며 아름다운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붉은 입술을 열어 외쳤다.

“그거야 당연히…!”

그러나, 당연히 뒤에 내뱉어져야 할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되려 노부나가는 처음으로 금색 동공을 굴리며 입술을 몇 번 오물거렸다.

생각해보면, 노부나가는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일영의 말대로 그가 대련을 거절했으면 그녀는 몰라도 히라테 가(家)의 위신은 물론 일영의 평판도 적잖이 깎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려 시바타 가쓰이에와 대련해서 비기기까지 했지 않은가. 새로이 가신이 들인 양자가 적대 세력의 맹장과 비등하다는 것은 상을 내릴 일이지 절대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내가 왜 화를 냈지?’

“당주님?”

노부나가는 자신도 모르게 일영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입가에선 그녀의 체액과 섞여 단내가 가는 술내음이 퍼졌고, 그제야 노부나가는 술에 취해 잠시 이성을 잃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대체 왜 일영에게 화를 낸 것인가? 노부나가는 스스로도 답을 알지 못하고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때.

일영은 눈썹을 내리며 그녀에게 성큼 다가와 이마에 손을 올렸다.

“흣?”

갑작스럽고도 불경한 행위에 노부나가는 흠칫 놀랐으나, 일영은 되려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일영은 손이 후끈해질 정도로 뜨거운 노부나가의 이마를 가볍게 쓸고는, 곧 물러서 그녀가 밀쳐서 흐트러진 옷을 여몄다.

“제가 잘못했다면 후에 벌을 받을 테니 일단 쉬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물론 짜증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뭔지는 몰라도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나 보지.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거기에 시바타 가쓰이에도 신경이 쓰이니까.

“그럼….”

“잠시만.”

노부나가는 멍하니 일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영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 순간.

“예?”

노부나가는 그를 붙잡아 멈춰 세우고는 잠시 몇 번 말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술상을 들이라고 말해라. 대련에서 비긴 네게 직접 술을 따라주마.”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일영은 생각했다.

‘…조울증인가?’

**

술상은 생각보다 금방 차려졌다. 평소 노부나가가 술을 즐기기 때문인 게 확실해 보였지만 말이다.

‘환자한텐 술이 안 좋은거 아닌가.’

일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잔에 따라진 술을 한 바퀴 돌렸다. 다행히도 노부나가는 일영에게 술을 권하지 않고 그녀도 홀짝이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묘한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일영이 배고파서 탁자 위에 놓인 생선을 입에 넣었을 때 노부나가는 붉은 입술을 떼어 말했다.

“저 동그란 것은 지구의라는 것이다. 네놈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지구라고 부르고, 저것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국가와 땅을 표시한 것이지.”

그러나 내뱉어진 말은 생뚱맞은 지구의. 그러니까 지구본에 대한 설명이었다. 물론 현대에서 살다 온 일영은 저 지구본에 아직 표기가 덜 된 땅과 국가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렇군요.”

일영이 내뱉을 수 있는 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의 미적지근한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부나가는 잠시 그를 노려보았으나, 곧 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머금고는 물었다.

“조선은 어떤 곳이지?”

“조선. 말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일영은 잠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일영이 이 시기 조선을 직접 눈으로 봤을 리가 없으니.

때문에 일영은 잔에 놓인 술을 한 번 들이키고는 입술에 묻은 술방울을 혀로 훑고는 답했다.

“끔찍하죠. 그렇지만 아름답습니다.”

아마 가장 근접한 답이 아닐까. 어느 국가가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원래 사람 사는 곳은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운 법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세계의 백일영이 느낀 것도 다르진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끔찍하고, 아름답다라….”

일영의 답이 퍽 마음을 울렸는지, 노부나가는 드물게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입을 몇 번 뗐다가 붙였다.

“덥구나.”

이미 회의장에서부터 술을 마신 그녀였다. 물론 노부나가는 몸이 달아오르는 이유가 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없이 일영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술잔에 든 술을 단번에 들이키고는 팔꿈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도포를 스윽 내렸다.

“쿨럭!”

덕분에 일영은 옆에 놓인 물을 마시려다가 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부나가의 새하얀 어깨가 드러나며 그녀의 상체에 남은 것이라곤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가린 흰 붕대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설마?’

일영은 조금 붉게 달아오른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나 남자의 본능은 자꾸만 노부나가의 몸을 훑도록 만들었다.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인지,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도 노부나가의 배에는 어떤 군살도 없었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매끄러운 선이 허리를 감싸고, 그 중앙엔 숙련된 장인이 빚은 듯 예쁘게 갈라진 배꼽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바지를 입었음에도 은근히 들어나는 치골과 적당히 붕대로 조여져 단아하게 모아진 가슴골은 일영에게 애국가를 부르게 하기 충분했다.

“다, 당주님?”

일영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그 순간. 노부나가는 술이 약간 남아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훑은 후 나지막이 말했다.

“왜 화를 냈냐고 물었지.”

“예…그, 그렇긴 합니다만.”

“너는 내 것이다. 내 가신이란 말이다. 헌데 이렇게 다쳤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느냐.”

“하하….”

그녀의 말에는 묘한 느낌이 담겨있긴 했으나 확실히 선을 긋고 있었다. 일영은 그것을 느끼곤 잠시나마 걸었던 기대를 접었다.

한편, 노부나가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어색하게 웃는 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곧 이마가와 측과 전투가 있을 거다. 그곳에서 내가 만족할 만한 공훈을 세운다면….”

노부나가는 잠시 일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창가로 돌리곤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땐, 고작 술이 아니라…더 좋은 보상을 내려주겠다.”

순간, 그녀의 볼이 조금 더 붉게 달아오른 걸 일영은 보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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