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28화 (28/171)

〈 28화 〉 히라테 히카게(2)

* * *

회의장 안은 이전의 연회 때와 달리 어떠한 살가운 웃음소리나 대화 소리가 오가지 않았다. 그저 척 보기에도 2개의 파벌로 나누어진 가신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불편한 침묵을 지킬 뿐.

“크흠.”

“…흠.”

노부나가의 곁은 요시나리와 히라테 마사히데, 카와지리 히데타카와 사쿠마 노부모리 등의 중신들이 지켰다. 그에 반해 노부유키 측에서는 밖에 서 있는 시바타 카쓰이에를 제외하면 크게 이름이 있는 중신은 없는 대신 젊은 가신들이 많았다.

그것을 달리 해석하자면, 노부나가는 전대 당주인 노부히데의 장녀라는 명분을 중시하는 중신들은 노부나가를 지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혹은 노부나가의 자질을 의심한 비교적 젊은 가신들은 노부유키에게 붙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서로를 보는 눈은 고울 수가 없었다.

중신들의 눈에 노부유키를 지지하는 가신들은 젊어서 판단력이 흐린 놈들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그저 권력을 탐하는 멍청이들처럼 보일 뿐이었고, 반대로 가신들은 노부나가를 지지하는 중신들이 고리타분한 명분에 집착하는 고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뭐, 피차 살가운 얘기를 할 생각은 없을 테니….”

그런 불편한 침묵을 깬 건 의외로 노부유키가 아니라 노부나가였다. 그녀는 시종이 따른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물었다.

“병력은?”

“궁병 200명에 기마 사무라이 100명을 포함한 사무라이 300명, 거기에 아시가루 1,500명을 동원할 수 있어. 언니는?”

“조총수 300명과 궁병 300명, 기마 사무라이를 포함한 사무라이 500명, 아시가루 2,500명.”

노부유키 진영의 가신들은 생각보다 더 큰 병력을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 의외라는 듯 노부나가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면한 침략을 막는 데에 군사를 모은다고 해도 결국 서로를 겨냥하게 될 군사들이다. 그러니 최대한 아끼는 것이 정상일 텐데.

“흐응…무슨 생각이야?”

그리고 그것은 노부유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도 동원하려면 더한 병력을 들일 수 있었으나 약 3분의 1가량으로 축소했건만, 그녀가 알기론 노부나가가 부른 수는 현재 노부나가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절반에 해당했다.

아무리 이번 전투가 전면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생각만큼 손실이 적지는 않을 터. 헌데도 노부나가는 꽤나 많은 병력을 부른 것이다. 당연히 노부유키 입장에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노부나가의 입에서 돌아온 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아무리 집안이 개판이어도, 그 사이 옆집의 도둑이 집안 살림을 훔치려고 드는 걸 주인으로서 두고 볼 수는 없지. 그건 당연한거다. 노부유키.”

피식.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하며 남은 찻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곤 곁에 서 있는 시종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차는 너무 밍밍해. 술을 가져와.”

“예. 당주님.”

이미 시종에겐 익숙한 일이었기에, 그는 곧바로 미리 준비해둔 술병을 꺼내 그녀에게 건냈다. 그러자 노부나가는 술병을 따고 한 모금 삼켰다.

“…크.”

알싸하고 미지근한 액체가 식도를 훑고 곧바로 배 언저리에 닿는다. 그녀는 그 감각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큼.”

“허어.”

당연하게도 그 모습을 보는 노부유키 측 가신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무리 동생이라고 하나 당주 자리를 놓고 맞붙는 적의 앞에서 저런 행동은 상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노부유키는 익숙하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여유롭게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아참.”

그리고 막 찻잔에 입이 닿기 직전 싱긋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언니 걱정을 참 많이 해. 괜한 짓을 하다가 혹여 다치거나…그러진 않을지.”

“…아가씨.”

그녀의 말에 곧바로 입을 연 것은 노부나가가 아닌 히라테 마사히데였다. 그는 불편한 표정을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으나 은근히 미간을 좁히며 노부유키를 불렀다.

“되었습니다. 대부님.”

그러나, 노부나가는 가볍게 손을 저어 마사히데를 만류한 후 술을 한 모금 더 입에 머금고는 허탈한 자조가 섞인 답을 내뱉었다.

“퍽이나 걱정하시겠군. 어머니께서.”

둘의 생모인 도타 고젠이 노부나가보다 노부유키를 훨씬 싸고돈다는 것은 가신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조차 아는 이야기였다. 당장 거처만 보더라도 당주이자 장녀인 노부나가의 성인 나고야가 아니라 노부유키의 성인 스에모리 성에 있지 않은가.

“어머니 얘기는 그만하고.”

노부나가는 입술에 여운처럼 남은 술방울을 붉은 혓바닥으로 한번 훑고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노부유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아이는 잘 있는 거냐? 노부유키.”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혈육은 한 명뿐이었다. 노부유키도 그것을 알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이치는 잘 있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가끔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 빼면….”

“쯧. 그런가.”

막내인 오이치노카타. 이제 8살이 된 어린 아이에겐 아버지의 죽음이란 쉽게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 노부유키는 드물게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혀를 차는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얘기도 꽤 해. 그 아이에겐 늘 친절하셨으니 말이야.”

사실이 그러했다. 비단 노부나가뿐만 아니라 오이치는 모두에게 늘 사랑받는 존재였다. 만약 둘이 싸우다가 누군가 죽더라도 반드시 오이치는 거둘 만큼 말이다.

“조만간 기요스로 거처를 옮길 생각이다. 그러니 그 전에 한번 보러 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적어도 오이치는 두 자매가 잠시나마 감정의 골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였기에,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노부유키 역시 비꼬거나 계산없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그럴게.”

어린 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일까. 한없이 냉랭했던 회의장 안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려갈 때쯤이었다.

끼이익.

“…가주님.”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온 히라테 가(家)의 사무라이는 자신에게 쏠리는 중신들의 시선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그는 가신들을 지나 노부나가의 곁에 앉아 있는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향해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늘 웬만해선 평정을 유지하던 마사히데는 표정을 굳히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그리고 그 순간.

“…이런 멍청한 원숭이가.”

곁에 있던 노부나가는 미간을 좁히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라테의 사무라이가 작게 말하긴 했으나 그녀에게도 들린 덕분이었다.

“당주님!”

뒤늦게 히라테 마사히데가 옅은 당혹감을 내보이며 그녀를 말리려 했으나, 이미 노부나가는 가신들을 지나 회의장 밖으로 나선 후였다.

“모리 공. 어서 당주님을!”

무슨 일인지 닿지 않아 무슨 일인지 몰랐던 요시나리는 멍하니 노부나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으나, 뒤늦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히라테 마사히데의 외침에 그녀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노부나가의 뒤를 따랐다.

**

“히라테 히카게.”

노부나가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을 응시했다. 이미 주변의 사무라이들과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건만 저 얼빵한 원숭이 놈은 무엇을 잘못한 지도 모르고 그저 멀뚱히 서 있는 것이다.

“다, 당주님. 저희는 그저….”

“닥쳐라.”

그때 시바타 가쓰이에가 뒤늦게 무어라 변명을 하려 했으나, 노부나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으로 가득 찬 연무장에 서 있는 둘을 바라보았다.

갑주를 입지 않은 일영에 대한 배려인지, 갑주를 입고 왔던 시바타 가쓰이에는 갑주를 벗은 상태로 대련을 한 듯 싶었다. 그 때문인지 둘의 상태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영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은근히 드러나는 손목은 벌겋게 부은 걸 넘어서 약간의 검은 빛을 띠었고, 쓸데없이 반반하던 얼굴 역시 곳곳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뿐인가. 이미 몇 곳은 터지거나 찢어졌는지 몸 곳곳에서 핏자국으로 보이는 검은 얼룩이 보였다. 물론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적잖이 엉망이긴 했으나 노부나가의 눈에는 오직 일영만이 보였다.

“멍청한 놈….”

술을 마셨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화가 났기 때문일까. 짜증과 이유모를 분노가 섞인 노부나가의 감정은 온전히 일영을 향해 있었다.

시바타 가쓰이에가 어떤 장수인가.

그녀 역시도 명장이라 인정하는 장수다. 어지간한 사무라이들은 상대도 되지 않아 오니(おに)시바타라고 불리는 년이란 말이다.

그녀도 물론 바보가 아니다.

일영이 조선에서 무인이었다는 것도 알고, 상태로 보아하니 그녀에게 크게 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도 화를 내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일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제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일영의 표정이었다.

“머, 멍청하다니…전 그저.”

저 멍청한 조선 출신 원숭이 기생오라비 놈은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억울하다는 듯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뒤늦게 따라온 히라테 마사히데가 거친 숨을 애써 감추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주님. 일단 치료를 먼저….”

그의 말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애초에 사무라이들끼리의 대련은 종종 있는 일이거니와 일영이 압도적으로 진 것이 아닌 이상에야 오히려 칭찬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당주인 노부나가가 술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니 자리를 파(?)하려는 것이다.

“시바타 공. 상처가 가볍지는 않아 보입니다. 일단 제가 거처를 드릴 터이니….”

“아, 알겠습니다. 히라테 공.”

히라테 마사히데는 그렇게 말하며 시바타에게 눈짓했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곧바로 마사히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순간.

“아니요. 대부님.”

노부나가는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묘한 짜증이 섞인 금안으로 일영을 바라보다가, 곧 눈을 살짝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저 발칙한 원숭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원숭이 놈의 치료는 제 거처에서 하겠습니다. 요시나리. 저 멍청이를 챙겨서 데려와.”

“…예?”

이번에 되물은 것은 히라테 마사히데가 아닌 일영이었다. 그는 드물게 뇌가 정지되어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련에서 진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저렇게 화가 난 건데?

그러나 그 순간.

“요시나리!”

“ㅇ, 예!”

처음 듣는 노부나가의 짜증 섞인 외침에 요시나리는 다급히 일영에게 달려갔고, 일영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를 들춰 메곤 어느새 거처로 향하는 노부나가의 뒤를 따랐다.

“…무슨.”

“으음….”

당연히 연무장은 일련의 소란으로 정적이 맴돌았다. 그들 입장으로서도 일영에게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부나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으니 말이다.

물론.

“…풋.”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노부유키만은 여태까지와 차원이 다른 흥미와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노부나가의 뒤를 쫓으며 단말마의 웃음을 내뱉었지만 말이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