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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27화 (27/171)

〈 27화 〉 히라테 히카게(1)

* * *

“목검은 조금 시시하니, 날이 세워지지 않은 진검으로 하시죠.”

“예. 뭐….”

일영은 사무라이들이 가져다준 검을 살짝 뽑았다. 날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건 날만 세우면 당장이라도 사람을 벨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는 뜻이고, 맞으면 더럽게 아프다는 뜻이다.

탁. 조금 뽑혔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시바타 가쓰이에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미 금발을 뒤로 정리하며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진심으로 나오겠다는 모습이 아닌가.

때문에, 일영 역시 가볍게 몸을 풀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현재 회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무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기에 지켜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기 싫다….’

진심으로 하기가 싫었다. 막말로 전국시대에 갑자기 떨어졌다고 몸 안에 있던 무사로써의 긍지나 명예가 갑자기 샘솟겠는가. 전쟁터에선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식의 대련은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일영이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는 꽤 여러 가지였다. 거절한다면 일영이 겁쟁이로 몰리는 것은 물론, 그의 양부인 히라테 마사히데를 넘어 노부나가까지도 얕보일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거기에 내가 죽일 놈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지.’

만약 그가 양자가 아니라거나 최소한 유력 가문의 차남이었다가 히라테 가(家)의 양자로 들어갔으면 모르겠지만, 일영은 출신부터 이방인이다. 당연히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에겐 최고의 빌미가 되어주리라.

하지만 문제는….

‘져도 지랄 할텐데. 아오.’

패배해도 비난의 수위가 그리 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기면 그만이지만…쟤를 어떻게 이겨.

무려 오니(おに)시바타로 불리는 여자다. 거기에 여무장들이 남무장들과 다를 바가 없는 세상에서 그녀의 무력이 퇴보한 일도 없을 터. 그래도 날이 세워지진 않았으니 죽지는 않겠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슬슬 시작하지요.”

그때, 간단한 준비를 마친 시바타 가쓰이에가 가면 너머로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땅을 박차고 곧바로 일영의 앞으로 돌진했다.

‘빠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은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벌써 그녀는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두근.

심장이 뛴다. 어색하게 쥐고 있던 검은 몸이 스스로 교정이라도 하듯 다시 쥐어지고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전장의 느낌과는 달라.’

전장에 서 있을 때는 사방에서 무수한 살의와 처절한 죽음이 섞여 사방이 붉게 보였다면, 이번엔 오로지 시바타 가쓰이에. 그녀를 제외하곤 세상이 흐리게 보였다.

온전히 자신을 향해 쏠리는 투기를 받으며, 침을 삼킨다.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판단하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몸을 비튼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일영의 가슴을 스친 시바타의 검격은 곧 허공에서 반원을 그리며 그녀에게로 회수되었다. 그리고 일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흡!”

반 마디의 짧은 호흡을 삼키고 몸을 숙여 그녀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곧바로 검을 발도하여 턱을 노리고 세워 올린다.

“후흣.”

그때. 일영의 귓가로 묘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울린다. 그와 동시에 묘한 소름이 돋아 검을 거두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크읏?”

눈을 감았다 뜬 그 찰나의 순간.

그녀의 어깨가 바로 코앞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무슨…!’

다급히 피하려 했으나, 판단하는 순간 늦은 후였다.

퍼억!

짧고 강력한 울림이 가슴을 때린다. 그녀는 정확히 명치 부근을 노리고 어깨를 찔러옴과 동시에 그대로 검을 찔러 일영의 목을 노렸다.

“도, 도련님!”

뒤늦게 이츠키가 내뱉는 외침이 귓가에 들렸고, 이 상황에서도 일영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만 도련님인가.

“재미있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시바타의 검은 반쯤 베어져 거의 목에 닿아있었고, 몸은 뒤로 기울고 있었다. 죽지는 않아도 꽤 다치리라는 건 확실하겠지. 다만….

‘짜증나네.’

시바타의 목소리에 묘한 실망과 우월감이 차 있어 짜증이 차올랐다. 그 순간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넘어지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큭!?”

어차피 날 없는 검 따위. 손으로 잡아버리고 끌어 당긴다. 그러자 그녀 역시 일순간 자세가 흐트러졌고, 일영은 그대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어, 어?”

설마 검을 잡아끌어 당길 줄은 몰랐는지, 가쓰이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콰앙!

“흐윽!”

두 사람이 뒤로 넘어짐과 동시에 가쓰이에의 몸이 일영의 품에 안긴 자세가 되었다.

“무, 무슨?”

외간 남자의 품에 안긴 게 그렇게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그녀는 가면 안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뻔히 보이는 듯한 목소리로 다급히 일영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 찰나의 당황은.

일영이 숨을 고르고 자세를 잡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퉤.

일영은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어내곤 미간을 좁히고 투덜거리며 말했다.

“방금 공격. 맞았으면 최소 몇 주는 말도 못 했을 거 같습니다만.”

“…피하셨잖습니까.”

“겨우 피했습니다. 거의 맞을 뻔했고요.”

한번 일영의 품에 안겼던 시바타는 어딘가 묘하게 불편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곧 아무 말 없이 다시금 그에게로 돌진했다.

채앵!

당연히 일영 역시 검을 쥐었고, 곧 둘의 검이 맞닿음과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검을 마주한다. 그러나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마치 뱀처럼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손목과 팔, 목과 심장, 머리와 얼굴을 계속해서 노린다.

목을 찌르는 검격을 막으면 어깨가 노려진다. 어깨를 막으면 명치가, 명치를 막으며 복부가 베인다.

이미 둘은 방어하는 공격보다 맞는 공격이 더 많은 상황에서 서로를 무수히 베었다. 만약 날이 세워졌다면 바닥은 핏물로 가득했을 정도로.

‘무, 무슨 대련을….’

그리고 그것은 곁에서 지켜보던 사무라이들이 제일 크게 느끼고 있었다. 보통의 대련이라 한다면 서로 실력을 알아보는 상황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둘은 그야말로 사생결단 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그러나 양측의 사무라이들이 제일 놀라는 부분은 바로 일영. 히라테 히카게의 검술이 예상외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이츠키는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도 잊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태까지 그의 머릿속에 일영의 이미지는 조선 출신의 잘생긴 한량 정도였지만, 이런 모습을 본 순간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즐거워…이거야!’

붉은 오니 가면으로 가린 입꼬리가 끝까지 올라간다. 아름다운 얼굴은 흥분과 열기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이미 그의 품에 잠시나마 안겼던 헤프닝은 잊은 후였다. 그녀는 몸을 두드리는 일영의 검격을 황홀한 쾌락으로 받아들이며 미친 듯이 일영과 검을 마주했다.

모래와 흙으로 다져진 연무장의 땅은 이미 두 사람의 발자국으로 인해 어지럽게 흩날렸고, 두 사람이 흘린 땀은 수증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베고 두드렸을까.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천천히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고, 곧 옅게 숨을 몰아쉬었다.

“후…후우….”

“하아…하아….”

팔이 저릿했고, 손끝이 떨렸으며, 옆구리는 이미 부풀어 오른다. 그럼에도 둘은 대련을 멈추지 않고 각기 천천히 검을 쥐고 당장이라도 앞으로 내달릴 준비를 끝냈다.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격돌이 되고, 둘 중 한 사람. 혹은 둘 다 바닥에 눕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신경전이 오간다.

“습.”

그리고 누군가 먼저 짧은 숨을 내뱉은 그 순간.

타닥!

경쾌한 몇 번의 발자국이 대지에 자국을 남기고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일영은 시바타 가쓰이에의 목을 올려 찍었고, 시바타 가쓰이에는 일영의 복부를 노리고 비스듬이 베었다.

“위, 위험!”

주변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모두가 직감적으로 둘 모두 살의(??)가 담긴 공격을 했음을 깨닫고 외쳤고.

“쯧.”

언짢게 혀를 차는 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타앙!

그와 동시에 마치 벼락과도 같은 소리가 울렸고.

“크윽?”

“흡!”

당장이라도 서로를 베고 찌르려던 둘의 발 사이로 파박!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가 튀며 둘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이 소리는….’

덕분에 정신을 차린 일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곧 나지막이 목소리가 울렸다.

“누가 마음대로 대련을 하라고 했지?”

그와 눈을 마주친 노부나가는 흑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승총을 요시나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은.

“히라테 히카게.”

평소와 달리 묘한 분노를 담아 그를 바라보는 노부나가의 얼굴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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