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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21화 (21/171)

〈 21화 〉 아버지?(2)

* * *

“그렇다면, 이자를 제 양자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당주.”

“…예?”

일영의 목소리가 울리긴 했으나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물론이고 다른 중신들 역시 일순간 침묵할 정도로 히라테 마사히데가 내뱉은 말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히라테 마사히데가 누구인가.

오다 노부나가의 대부이자 후견인 중 한 명이며 그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히라테 가의 주인이다. 그런 그가 양자로 조선인을 들인다는 말은 절대 쉬이 납득 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히라테 마사히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게 총명한 딸이 있다고 하나 아직 나이가 어리고 무술에는 재능이 없어 작금의 위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근심하던 차에 비록 조선인이지만 능력이 꽤나 있으니 허락하신다면 양자로 들이려 합니다만.”

마사히데의 말은 꽤 논리가 있는 듯했으나 중신들에겐 ‘조선인을 중용하기 위해 배경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정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가신들은 반발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제 막 16살이 된 마에다 토시이에는 유독 날카로운 왼쪽 송곳니로 입술을 질끈질끈 씹으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조선인을…차라리 나를 양녀로 들이시지…!”

그녀는 히라테 마사히데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경했다. 그렇기에 더욱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붉은 숏컷을 짜증스럽게 긁으며 일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퍽 잘 먹고 큰 것인지 덩치도 크고 얼굴도 반반했지만 그뿐. 토시이에는 도저히 인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런 그녀의 곁에 앉아 미소년을 끼고 술을 즐기던 남색 장발의 미녀가 후훗. 웃으며 말했다.

“토시이에. 당신의 아버지께서 버젓이 계시거늘 무슨 소리인가요. 한때는 당주님의 시동까지 했으면서.”

“그러니까, 차라리 중용하실 거면 나를…!”

“훗.”

처억.

마에다 토시이에의 말에 남색의 장발을 가진 여인은 손에 쥔 부채를 펄치고 입가를 가리며 잔잔히 웃었다.

그것이 동생의 치기어린 질투를 보며 귀여워하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진 않았기에 토시이에는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여인에게는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생각했다.

‘굳이 모든 가신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한 이유가 뭘까요…흐음.’

그때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저자는 조선인입니다. 히라테 공.”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순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응? 뭐가?”

그녀. 아니.

니와 나가히데의 말에 마에다 토시이에는 막 입에 넣으려던 화과자를 멈추고 그녀에게 되물었으나, 니와 나가히데는 그저 싱긋 웃으며 의미모를 답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냥,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서요.”

**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저자는 조선인입니다. 히라테 공.”

일영은 연회장에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사내는 청년과 중년 그 사이에 있는 남자였다.

‘…누구지?’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저렇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면 주요한 가신 중 하나일 텐데. 허나 일영의 의문은 생각보다 금방 풀릴 수 있었다.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이오. 사쿠마 공.”

“당연히 문제가 되지요. 아무리 가깝다고 한들 타국의 이방인이 아닙니까.”

‘사쿠마?’

다만 일영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쿠마. 이 시기의 사쿠마 씨의 당주라면 한 사내밖에 없다.

‘사쿠마 노부모리!’

노부히데를 섬기다가 노부나가를 섬기게 된 인물로, 말년에 연이은 전투 패배를 이유로 장남과 함께 내쫓기기 전까지 오다 가문에 충성을 바친 인물이 아닌가.

비록 말년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초반에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없어선 안 되는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설마 이걸로…관계가 틀어지는 건 아니겠지?’

역사적으로 히라테 마사히데와 사쿠마 노부모리가 대립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영의 기억 속에 이런 일로 둘이 대립한 사건은 없었다. 당연하다. 그가 이 세계에 개입하면서 생긴 일이니까 말이다.

“타국의 이방인이라…당장 과거 우리는 백제와 가야의 많은 이들과 교류를 하며 때로는 피가 섞이기도 했소. 당장 이름이 난 여러 장인 중에는 백제와 가야의 후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오.”

“일개 장인과 가문의 중신의 양자로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아실 텐데요.”

일영의 속이 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쿠마 노부모리와 히라테 마사히데는 서로를 응시하며 덤덤한,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양자를 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히라테 공의 마음이오. 사쿠마 공의 염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고쿠다카(こくだか)를 내리는 것도 아닌데 문제될 것이 있겠소.”

“카와지리 공. 내 말은…!”

거기에, 히라테 마사히데의 뒤에 있던 남자의 성을 들은 일영은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젠 카와지리 히데타카까지?’

그 역시 노부히데를 섬기던 가신 중 한 명으로 적잖은 위치를 가지고 있는 가신이었다. 사쿠마 노부모리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말년을 할복으로 끝낸다는 것일까.

‘하핫. 좆됐네?’

상황을 조금 객관적으로 보면, 일영은 원치도 않게 히라테 마사히데의 양자로 들어가는 제안을 받은 것도 억울한데 초반에 오다 노부나가를 지지하는 가신들이 그 문제로 말다툼을 하는 것이다. 덕분에 일영은 진심으로 나비효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최대한 막아야 하는데…!’

이제 고작 첫 단추를 끼웠다. 그런데 여기서 오다 노부나가를 지탱하고 지지해야 할 3명이 틀어지면 그야말로 좆된거다.

‘잠깐. 그런데….’

그때, 문득 일영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노부나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노부나가의 입장에선 갑작스럽게 중신들이 말다툼하는 격이니 불쾌할 수도 있을텐데, 그런 것 치고는 그녀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예상이라도 한 듯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태까지 노부나가의 모습에 대입하면 절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었기에 일영은 곧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3명의 중신이 나누는 대화를 경청했다.

“결국, 조선인이라 하나 왜의 언어에 능숙하고 노부토모를 직접 벨 정도로 검에 숙달되었으며 지휘도 꽤 능숙하니 무슨 문제가 있겠소?”

“같은 생각입니다. 모리 공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 저는…당연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쿠마 노부모리는 초반의 반대 의견을 제외하곤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마사히데와 히데타카는 양자로 들여도 괜찮을 이유를 계속 나열했다. 그러자 몇몇 가신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나.’

그제야 일영은 너무나 평온한 노부나가의 표정과 3명의 가신을 바라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연기 더럽게 잘하네. 짜증나게.’

이건 연기다. 일영은 그것을 확신하곤 긴장을 풀고 곁에 있는 요시나리의 폭유, 정확히 갑옷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가슴살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상황은 너무나 간단했다.

‘처음부터 수긍하면 불만이 있을 수 있으니, 사쿠마 노부모리가 가벼운 반대 의견을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히라테 마사히데의 생각을 가신들에게 공유한다.’

거기에 사쿠마 노부모리는 몇 마디를 거들다가 침묵하고, 카와지리 히데타카가 동조하며 자연스럽게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당연히 노부나가는 알고 있었고 말이지.’

이번만큼은 일영 역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과거라고 해도 정치인은 정치인인 것인가.

“…제가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히라테 공.”

결국, 약 10여 분간 짧게 이어진 둘의 언쟁은 각본대로 사쿠마 노부모리가 먼저 가벼운 사과를 건넴으로서 끝이 났다.

물론 상대가 비슷한 급이었다면 그 자체로 권력이 흔들릴 수 있는 문제였으나 상대는 히라테 마사히데였기에 다른 가신들도 별다른 문제 없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어느정도 언쟁이 끝나자, 노부나가는 기다렸다는 듯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물었다.

“그러면 생각한 이름은 있으십니까. 대부님.”

그녀의 물음에 일영은 내심 궁금했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곧 마사히데는 나지막이 입을 열어 말했다.

“일영(??)이라는 한자를 우리 식으로 바꾸어 히카게(ひかげ)라고 하는 것이 어떠련지요. 마침 뜻도 해가 비추어 생기는 그림자라는 뜻이니 당주의 뒤에서 묵묵히 따르는 가신의 이름으로는 제격이라 생각됩니다.”

“히라테 히카게라….”

히라테 히카게.

그 이름을 곱씹은 노부나가는 어느새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을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마치 고양이처럼 할짝거리며 물었다.

“네 답은?”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3명의 중신도.

치기어린 질투를 내뱉던 마에다 토시이에도.

미소년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흥미가 가득한 미소를 짓는 니와 나가히데도.

비단 그들뿐만이 아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가신은 그를 바라보며 묵묵히 답을 기다렸고, 일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현대에 버젓이 살아계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일단 아들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그랬지 않은가.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부르고,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라 부르고,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고.

‘물론 참척(?)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감동적이니 넘기고.’

일영은 스스로 합리화를 깔끔하게 끝낸 후 고개를 세우곤 옅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히라테 가의 장남. 히라테 히카게가 당주께 인사 올립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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