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20화 (20/171)

〈 20화 〉 아버지?(1)

* * *

오다 노부나가의 말에 자리를 옮긴 일영은 그녀가 직접 따라주는 술을 받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적당한 신하의 예를 갖춰 술을 삼키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사히데에게 말했다.

“역시 대부님의 혜안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이런 자를 찾으셨으니.”

“과찬이십니다. 당주.”

일말의 가식도 없는 노부나가의 말에 마사히데는 늘 그랬듯 무표정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투박한 중년인의 최선임을 알기에 그녀는 피식 웃고는 다시금 일영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이번에 적잖은 공을 세웠으니, 원하는 상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그녀의 말에 제각기 여자나 남자를 끼고 놀던 가신들의 시선이 일순간 일영의 뒤통수로 꽂혔다. 과연 새로이 가신으로 합류하게 된 저 조선 낭인이 바라는 보상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물인가. 여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권력인가.”

노부나가는 한층 흥이 돋았는지, 마치 시를 읊조리듯 나지막이 흥얼거렸다. 그러나 정작 대상이 된 일영은 무표정으로 허리를 숙여 반쯤 도게자(どげざ)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말씀은 감사하오나, 제가 바라는 것은 재물도, 여자도, 권력도 아닙니다.”

“흐응…?”

그의 말에 노부나가는 꽤나 의외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고, 곁에 앉아 홀로 술 대신 녹차를 홀짝이던 요시나리 역시 어딘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일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가신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파장을 일으킨 일영은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

“비록 따르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군을 지휘한 것은 모리 공입니다. 저는 단지 약간의 도움을 드렸을 뿐이지요. 헌데 어찌 염치도 없이 상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상을 내리신다면 모리 공에게 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하하하!”

그의 답에 잠깐이지만 정적이 흘렀고, 그 정적을 깬 것은 노부나가였다. 그녀는 시원하게 웃은 후 눈가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곤 곁에 있는 요시나리에게 말했다.

“요시나리. 네게 재물과 2,000석의 고쿠다카(こくだか : 영지)를 내리겠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가, 감사합니다! 당주!”

고쿠다카(こくだか), 영지란 1석당 한 명의 영지민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즉 요시나리는 2,000명의 영지민이 살아가는 땅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 원래 모리 가문이 가지고 있던 고쿠다카를 합치면 무려 4,000석을 가지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상상치도 못한 파격적인 상에 요시나리는 곧바로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그 과정에서 거대한 그녀의 크기 때문에 다소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어 일부 가신들은 시선을 돌렸지만, 정작 요시나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 날 위해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무표정으로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영의 모습에 볼을 붉혔다.

잘 기억이 나진 않으나 분명 일영에게 가문에 대한 일로 푸념을 했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일부러 모든 공을 자신에게 넘긴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공을 양보하겠는가.

하지만, 일영의 생각은 그녀의 착각과는 전혀 달랐다.

‘벌써 튀면 골치 아프니까.’

가뜩이나 조선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등 뒤가 따가운데, 괜히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면 적이 많아진다.

물론 현대의 직장이었다면 그저 정치질에 당해서 퇴사하거나 왕따 당하는 선에서 그치겠지만, 이곳은 하극상의 시대인 일본 전국시대다. 즉, 잘못 찍히면 곧바로 칼부터 뽑고 보는 미친놈들이 사방에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권력과 재산이 수두룩한데, 작은 권력을 탐하다가 속물로 보이는 것도 사절이다. 노부나가의 반응을 보면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노부나가는 곁에 놓았던 화승총을 잡아 탁. 하고 세우곤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기엔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더냐. 원하는 걸 말해 보거라.”

이미 예상한 말이었기에, 일영은 망설임 없이 생각해둔 소소한 보상을 꺼냈다.

“이츠키라고, 하급 사무라이들 내에서 꽤 두각을 보이던 자가 있습니다. 인망이 좋고 검 또한 꽤 쓰며, 말도 탈 줄 아니 허락하신다면 제 휘하로 두고 싶습니다.”

“고작 하급 사무라이 한 명이라.”

노부나가는 일영의 흔들림 없는 표정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영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미움은 사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헌데, 이유가 무엇이냐.”

“예?”

일영의 되물음에 노부나가는 칠흑과도 같은 단발을 한번 쓸어넘기며 황금빛 눈을 번뜩이곤 물었다.

“조선에서 넘어온 이유 말이다.”

그녀의 말에 순간 연회장에 정적이 흘렀다. 다들 내심 그가 굳이 머나먼 조선 땅까지 흘러온 경위가 궁금했던 것이리라.

때문에, 일영은 쏠리는 관심에 어색하게 웃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친했던 친우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멸문지화라면….”

“예. 가문이 지워지고 피를 이은 혈족 전부가 처형당하는 벌이지요.”

노부나가의 입가에 띄워져 있던 미소가 서서히 저물고, 그녀는 미묘한 감정을 담아 되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지?”

“…정치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답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은 그는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조금 전 자신은 진정으로 친우를 잃은 감정을 느끼며 답했으니까.

‘내가 왜?’

친우를 잃은 것은 이 세계의 ‘백일영’일텐데, 어째서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낀단 말인가.

‘정신 차려라. 백일영. 너는 조선에서 넘어온 낭인이 아니라 현대에서 살던 놈이다.’

아무래도 2달간 이 세계에서 머물다 보니,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다. 잠깐이지만 스스로 진짜 백일영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정치에서의 패배라.”

다행히 노부나가의 적절한 중얼거림에 일영은 뒤늦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일영을 바라보며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조선이나 여기나 소위 정치한다는 것들이 문제지. 아무런 이득도, 가치도 없는 것들에 목숨을 거는 놈들이니까.”

그녀의 신랄한 비난에 중신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난세를 만든 것 역시 중앙 정부를 통치하는 이들의 실정(??)이 아닌가.

작금의 일본은 조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자칭 정이대장군(??大??), 즉 쇼군을 칭하며 정권을 장악했던 놈들이 근 10년에 달하는 내전(오닌의 난)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작금의 난세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기분만 나빠질 뿐이니.”

그녀는 무능한 중앙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듯 손을 저었고, 일영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임으로써 그녀의 말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다.

그때, 다소 싸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히라테 마사히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당주께선 이자를 임관하시려는 마음이 확실한 것입니까.”

그것은 꽤 중요한 이야기였기에, 이번만큼은 일영 역시 그녀의 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여기서 노부나가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데.’

그러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른 다이묘를 찾아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대부님.”

하지만 다행히도 노부나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일영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때.

히라테 마사히데는 무언가 결심한 듯 나지막이 입을 열었고, 곧 충격적인 말이 그의 입에서 내뱉어졌다.

“그렇다면, 이자를 제 양자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당주.”

“…예?”

당연히, 일영은 숙였던 고개를 돌려 히라테 마사히데를 바라보며 새된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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