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기요스 성(2)
* * *
히이이잉!
“무, 무슨?!”
밤의 장막을 거두듯 일렬로 쏘아진 섬광에 일순간 놀란 말들이 거친 투레질과 함께 놀라 펄쩍 뛰었다.
그 때문에 선두로 달리던 수십의 사무라이들은 그대로 낙마하거나, 놀란 말을 달래느라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낙마한 사무라이들이 다른 말에 깔려 사상자가 생긴 것은 덤이었다.
“이익!”
다행히 오다 노부토모의 말은 전투 경험이 많은 군마였기에 낙마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떨리는 눈으로 멍하니 전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노부토모는 이 아수라장을 만들어 낸 것이 다름이 아닌 조총이라는 걸 깨닫고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함정이었나!”
그럴 리가 없다. 그 모리 요시나리가 이런 함정을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잠깐.’
그때,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가설이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만약, 다른 놈이 전략을 짰다면…!’
대체 왜 이런 쉬운 결론을 미리 내리지 못했단 말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실질적인 두려움과 편협한 사고가 맞물린 결과일 뿐.
‘잠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다 노부토모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을 멈추고 곧 한 가지를 떠올리며 늙어 주름진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크게 외쳤다.
“멈추지 말고 전진해라! 조총은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단 붙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달라지는 건 없다.
조총은 일반 보병들에게 위협적일지 몰라도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당주님을 따라라!”
“우아아아아아!”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사무라이들은 즉시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아들고 평원을 내달렸고, 그들의 선두엔 다름이 아닌 오다 노부토모가 서 있었다.
그렇게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진지가 빠르게 좁혀지고, 오다 노부토모는 승리를 확신하며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시선에 문득 검은 갑옷을 입은 한 낮선 사무라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곧 노부토모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웃고 있어?”
그리고 그 순간.
타다다다당!
다시금 담장 사이에 견착된 100여개의 조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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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군.”
일영은 말에서 내려 평원을 달려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병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명령했다.
“1열. 재장전.”
그의 명령에 곧바로 1열에 자리한 100여명의 병력이 뒤로 물러섰고, 뒤이어 같은 수의 조총수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물론 훈련을 한 것이 아니라 조금 버벅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일일이 장전을 하는 것보단 훨씬 빨랐다.
“2열. 발포.”
타다다당!
타다앙!
“끄아아악!”
“누, 눈이! 눈이이!”
순식간에 다시 쏘아진 총탄은 근접한 사무라이들의 갑옷을 두드렸고, 운 좋게 갑옷이 가려주지 못하는 얼굴이나 다리에 박힌 총탄은 순식간에 30여명의 사무라이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좋아. 이대로라면….”
잘만하면, 피해가 거의 없이 끝을 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늘 뜻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으아아아아!”
“개자식들아아아!”
2열이 발포를 끝내고 뒤로 물러선 그때, 일부 걸음이 빠른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가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거리가 거리인 만큼 곧바로 3열이 나와 사격을 하고 응전하면 되는 적은 병력이었으나, 이 부분에서 훈련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이, 이런 젠장!”
“으아아아아!”
채앵!
3열의 조총수들이 거의 근접한 적들을 보자 조총을 내던지고 곧바로 검을 뽑아 마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일영은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곧 뒤에서 어딘가 고조된 목소리로 모리 요시나리가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설 때 같은데?”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척 보기에도 굉장히 몸이 달아오른 듯 미약한 홍조까지 띄우며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창을 꽉 쥐고 있었다.
“…쩝. 그런 거 같네요.”
어차피 300명밖에 안 되는 조총 부대로 모든 전투를 끝낼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원래는 오다 노부나가가 구상한 방법인 3열 발사법을 시험해 봤을 뿐.
이제는 사무라이들의 시간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부웅.
모리 요시나리는 군마 위에서 푸른 빛의 거대한 창을 한번 크게 휘둘렀다. 그것은 전장에 나서기 전에 그녀가 하는 버릇임과 동시에, 실로 압도적인 선전포고였다.
“모조리 쓸어버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내 모리 요시나리를 필두로 한 200의 사무라이가 일제히 말에 올라 우왕좌왕하는 적들을 향해 돌격했다.
오다 노부토모에게는 절망적이게도, 노부나가가 일영에게 지원한 200명의 사무라이는 전원 말을 탈 줄 아는 기마 사무라이였다.
“후우.”
일영은 곧바로 말을 내달려 순식간에 잡졸과 사무라이를 구분하지 않고 미친 듯이 목을 베어내는 요시나리의 뒷모습을 묵묵히 응시하다가, 곧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정신 차리자. 백일영. 살아남는 게 먼저야.”
누가 알았을까.
그저 평범하게 역사나 소설, 게임을 좋아하던 자신이 갑자기 이런 이상한 세계로 빨려들어 올 줄은 말이다.
‘사람을 죽인다.’
단어 자체를 보면 현대인의 관점에서 쉬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이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거다. 나라는 주체가 살아 있어야 이 세상의 존재가 성립하는 거니까.
때문에, 일영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목에 늘여 놓았던 도깨비 가면을 써 눈을 제외한 하관을 가렸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처음은 느렸던 걸음이.
나중엔 거세게 뛰는 심장과 같은 보폭으로 바뀐다.
앞으로 내달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의 향취가 코를 찌를 듯 풍겨오고, 곧 일영은 오다 노부나가가 하사해 준 붉은 검집에서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뽑아 들었다.
스릉!
“흐아아압!”
꽤나 으스스한 전설과 달리 너무나 부드럽게 뽑힌 오니마루는 곧 일영의 목을 베고자 거친 기합을 내뱉으며 달려오는 한 사무라이의 목을 부드럽게 스쳤고.
서걱툭.
곧 사무라이는 목을 잃은 고깃덩어리로 전락해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었다.
허공으로 비산한 핏물이 이윽고 일영의 검은 가면에 튀었고, 일영은 자신이 벤 시체를 잠시 응시하곤 이내 앞으로 걸었다.
“아아아아악!”
이름 모를 아시가루가 창을 내지른다. 일영은 창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창대를 잡아 당겼고, 그와 동시에 아시가루의 목에 정확히 검을 꽂아 넣었다.
“끄륽….”
식도에 피가 찬 것일까. 아시가루는 짙은 핏물을 흘리며 그대로 절명했다.
또 한 명을 베었다.
다시금 내지른 검에 이름 모를 청년이 팔을 잃었으며, 아슬아슬하게 피한 검은 일영의 가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손의 떨림이 멈추고, 지독한 혈향(血?)이 코를 저릿하게 찌를 때 즈음.
일영은 마침내 마주한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다 노부토모.”
“허억…허억…네놈은…?”
그는 노쇠한 육신을 이끌고 몇몇 가신들과 함께 처절한 저항을 이어나간 듯, 온몸이 피칠갑이 되어있었다.
허나 일영은 개의치 않고 묵묵히 그를 응시했고, 곧 일영을 발견한 가신 중 하나가 우렁찬 기합을 내뱉으며 거대한 창을 내질렀다.
“이아아압!”
하지만 그 순간.
“흐읍!”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고 느꼈을 때, 일순간 푸른 섬광이 반월 모양으로 그어지고 가신의 목이 떨어졌다.
“무, 무슨!”
뒤늦게 그들은 둘 사이를 스쳤던 푸른 창에 저도 모르게 모리 요시나리가 달려나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일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으아아아!”
전장에서 방심은 곧 죽음인 법.
그는 곧바로 노부토모의 앞을 가로막는 사무라이의 가슴을 베어냈고, 그와 동시에 목을 노리는 검을 고개를 숙여 피한 후 그대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노오옴!”
그제야 노부토모는 목표가 자신임을 깨닫고 다급히 일영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으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서걱툭.
전장에선 익숙한, 역설적으로 노부토모에겐 낯선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 안 돼….”
“당, 당주께서…?”
일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사무라이들을 뒤로한 채, 바닥을 구르는 노부토모의 목과 창 하나를 주워 노부토모의 목을 창날에 끼웠다.
처억.
이내 노부토모의 목이 효시된 창대가 전장의 중심에 우뚝 섰고, 일영은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외쳤다.
“오다 노부토모가! 죽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리 요시나리는 전장의 중심에서 당당히 외치는 일영을 바라보며 미약한 홍조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운 채 곧바로 푸른 창을 치켜세우며 외쳤다.
“적장이 죽었다! 우리의 승리다!”
마침내, 오다 본가가 멸문(?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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