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기요스 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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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멍청한 버러지들 같으니라고!”
분노로 가득한 노인의 외침이 허름한 건물 내부를 울렸다. 그러나 정작 그 고함을 들은 가신들은 착잡한 얼굴로 오다 노부토모의 시선을 피할 뿐,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했다.
명색이 가문의 주인인 당주가 두툼한 뺨이 흔들릴 정도로 분노하는데, 가신이라는 놈들은 묘안을 내놓기는커녕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다니.
오다 노부토모는 당장이라도 이 쓸모없는 식충이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저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제 살기에 급급한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애초에 시바 가문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꼴에 과거 오와리를 지배했던 가문이었기에 정치적으로 쓸모가 있을까 싶어 받아들였건만, 그것이 후환으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시바 요시미쓰는 제거했지만…제기랄. 그 많은 인원으로 고작 계집 하나 죽이지 못하다니…!’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20여년 전, 방계의 필부라고 생각했던 노부히데에게 허를 찔려 권력을 잃은 것?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신중을 가해 노부나가를 치지 못한 것?
어느 쪽이라도 그의 탓이었기에, 노부토모는 이내 고개를 젓고 가신들에게 물었다.
“그래서…나고야에서 내려오는 병력은 얼마라고?”
이제와서 전면전을 피할 생각은 없다. 일단 기요스 성에서 농성하며 버티면 눈치를 보던 노부유키 측에서 합류할 가능성도 높았고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가신들 역시 같은 생각인지, 조금은 나아진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며칠 전 야습과 불안정한 기반으로 본진인 나고야를 완전히 비우진 못할 테니, 그녀가 기용 가능한 병력은 많아야 2천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버티기만 한다면, 노부유키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래. 일단 노부유키가 일어나기만 한다면….”
노부유키는 이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엄연히 오다 본가의 당주인 자신이 고작 방계의 차녀따위에게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 한없이 굴욕적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 그 아이는 말이 통하니…!’
노부유키는 짐승과도 같은 노부나가와 달리 예의와 정치를 아는 아이였다. 반면, 아무리 생각해도 노부나가는 아니었다.
뿌드득.
‘지 애비의 시신에 향을 뿌리는 짐승같은 년이다. 어차피 그년의 손에 있으면 오와리는 이마가와에게 넘어가든, 사이토에 넘어가든 둘 중 하나일 터…!’
만약 후계가 노부유키였다면 애초에 암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입지를 다지고 말지.
그러나 ‘오와리의 멍청이’라고 불리는 노부나가에게 가문이 넘어간 순간부터, 이 모든 일은 예정된 것이다.
이내 결심을 굳힌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지금 당장 사무라이들을 소집하고, 성 내에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은 모두 모아라! 머잖아 놈들이 도착할 테니.”
그의 말에, 가신들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남은 것은 농성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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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농성인가….”
기요스 성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한 일영은 굳게 닫힌 성문과 해자를 바라보며 예상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들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전면전으로 맞서면 승산이 적으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리라.
그때, 앞서 기요스 성을 훑고 있던 일영의 곁으로 일전의 경갑이 아닌 중갑을 입고 회색 포니테일을 길게 늘어트린 모리 요시나리가 다가와 말했다.
“그…일영이라고 했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네 말대로 오긴 왔는데.”
“그게…크흠.”
일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곧바로 생각한 전략을 말하려 했으나, 말의 가벼운 움직임에도 엄청난 상하 운동을 보여주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순간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압도적인 폭유에서 시선을 돌려 기요스 성과 그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적을 성 밖으로 끌어내야죠.”
“어떻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일영의 말에 모리 요시나리는 짐짓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뭐. 그거야. 이제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일영은 그저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게 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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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이 감도는 기요스 성의 앞에 일련의 군대가 나타나자, 한 사무라이가 외쳤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며칠만 버티면 스에모리 성에서 증원이 올 것이다!”
“…….”
스에모리 성이라 함은, 오다 노부유키의 거점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사무라이 나름으론 사기를 진작시키려 한 말이었지만, 정작 성벽에 활과 돌, 창을 쥐고 서 있는 병사들의 표정은 암담함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태반이 노부토모에 대한 충성심이 거의 없는 농민에 불과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에게 스에모리 성이고 나고야 성이고 알게 뭐란 말인가. 농민들은 그저 이 빌어먹을 가족 싸움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었다.
“그저 하루를 빌어먹고 살면 그만인 우매한 것들 같으니라고….”
그런 분위기를 읽지 못할 노부토모가 아니었기에, 그는 늙어 약해진 이빨에 금이 가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거세게 이를 악물었다.
과거 오다 본가가 오와리를 호령했던 기억이 생생한 그였기에, 농민들로 이루어진 잡병들이 보여주는 자세는 그야말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건방짐인 것이다.
그때. 전장이 보이는 전각의 창가에 갑옷을 입으며 서 있던 그에게 가신이 달려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당주님.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헌데….”
“헌데?”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순간 오다 노부토모의 미간이 좁혀지고, 그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눈을 찡그리며 전장을 살폈다.
“저건…?”
그러자, 과연 가신의 말대로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반이 아시가루에…사무라이들도 말도 타지 못한 중급 사무라이들로 채웠다고…?”
수는 1,000이 조금 넘어 보였는데, 그 질이 상상 이상으로 떨어졌다.
대부분이 아시가루와 잡병이 섞인 데다가 그들을 이끄는 사무라이들도 병력을 이끄는 선두의 30여명을 제외하곤 나머지 100여명은 말도 타지 않은 중급 사무라이가 아닌가.
기본적으로 아시가루와 잡병을 구분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아시가루는 기본적으로 사무라이에 비해선 양산이 쉬운 일종의 하급 병력에 속했다. 물론 수가 많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고작 1천이다.
‘성을 함락하러 오는데, 고작 1천의 병력을…? 그것도 저런 구성으로?’
오다 노부토모는 그야말로 분노와 당혹, 그리고 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압도적인 많은 병력으로 오는 건 생각해봤어도 저렇게 적은 병력은 상상조차 못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날 무시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
물론 함정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이내 노부토모는 고개를 젓고 중얼거렸다.
“지휘관이 모리 요시나리다. 그 멍청한 계집이 함정을 판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가 확신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선두에 선 모리 요시나리의 가몬(가문의 문장) 때문이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용맹하고, 좋게 말해서 순박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멍청한 여자였다. 때문에 그는 함정이라는 가능성을 그대로 치워버리고 현 상태에 가장 합리적인 가설을 세웠다.
‘…노부나가가 요시나리를 믿고 저런 구성으로 보낸 것인가?’
생각해보면 불가능 한 일도 아니다.
아무리 짐승과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결국 군사에는 경험이 거의 없는 애송이가 아닌가.
거기에 최근 일어난 암습으로 인한 두려움에 떨며 본진인 나고야 성의 병력을 보존하고자 했다고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허나….”
오다 노부토모는 어딘가 묘한 이질감에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그때,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한 가신이 그의 의중을 짐작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야밤에 기습하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저들도 행군하느라 지쳐있을 테니, 실행하려면 오늘이 적기입니다.”
“과연…그런가.”
가신의 조언에 오다 노부토모는 묘안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화살이 닿지 않을 정도로 먼 산의 아래에 진지를 짓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국 호부견자(虎??子)로 태어난 것이겠지.’
노부토모는 그렇게 합리화하며, 곧 저문 밤 하늘 아래에서 거행될 야습을 준비하고자 전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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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고.
일련의 병력이 야밤을 틈타 기요스 성을 나섰다.
그렇게 또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슬슬 풀벌레들조차 잠에 들 정도로 야심한 새벽.
모리 요시나리의 진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노부토모는 이내 더 이상 군세를 숨길 수 없다 판단하고 검을 거칠게 뽑아 뒤따르는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에게 외쳤다.
“전군! 진군하라!”
“와아아아아!”
생각보다 적은 병력과 그들의 행색이 사기를 높인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늙은 육신을 이끌고 선두에 선 당주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병력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낮보다 올라간 사기를 과시하듯 함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조용한 진지를 단번에 집어 삼킬 듯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건…?”
제일 선두에서 달리던 한 사무라이는 진지가 거의 보일 정도로 다다르자 마치 담장에 규칙적으로 구멍을 뚫어 놓은 듯 세워진 기이한 구조물을 보고 나지막이 중얼거렸고.
그 순간.
일영은 굳은 얼굴에 일련의 흥분과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제 1열. 발포.”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아아앙!
타다다당!
일순간 격발된 100발의 총탄이 선두로 달려오던 사무라이들과 말, 아시가루들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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