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1화 (11/171)

〈 11화 〉 꼬인 인연

* * *

‘잠시만, 사루(さる:원숭이) 라면….’

다름 아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불렸던 별명이 아닌가.

뒤늦게 일영은 자신이 도요토미의 앞길을 막은 것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친듯한 심장 박동을 느꼈다.

솔직히 완전히 예상을 못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잠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원숭이 닮았나?’

그래도 나름 볼만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딘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게 나빠지는 기이한 현상에 일영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본듯한 그녀의 시선이 한동안 일영의 얼굴에 꽂혔다. 그리고 머잖아 노부나가는 물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예?”

“네가 말한 대로, 오다 본가의 버러지들이 모반을 일으키고 시바의 멍청이들이 내게 붙은 현 상황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일영은 그녀의 물음을 잠시 곱씹다가, 이내 고저없는 목소리로 간결하게 답했다.

“간단합니다. 노부토모를 정리하면 노부유키는 몸을 굽힐 겁니다. 그 사이 ‘미노’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후, 노부유키를 굴복시키면 됩니다.”

순간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히라테 마사히데 역시 놀란 눈으로 일영의 뒤통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오다 노부토모가 모반을 일으키리라는 건 사실 예정된 일이었다. 거기에 노부유키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이미 유명한 일이었고.

하지만 중간에 언급한 ‘미노’와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건 마사히데를 비롯한 소수의 가신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을 터.

이번만큼은 오다 노부나가 역시 미묘하게 굳은 얼굴로 일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원래대로 돌아와 그에게 물었다.

“…굳이 노부유키를 가만히 놔두는 이유는?”

“노부토모는 쉽게 무너트릴 수 있는 반면, 노부유키는 지지기반이 강해 비교적 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오와리는 외세의 침략에 취약해지겠죠.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설마, 설마 하는 눈으로 일영을 바라보았고, 일영은 2달간 영지 내부를 훑어 파악한 가설이 옳다는 걸 확신하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노를 통해 대량의 조총을 들여와야 하니까요. 물론 앞으로 있을 이마가와 국과의 전투에서도 필요하기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겠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침내 일영의 말이 끝나자 오다 노부나가는 방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음 지었다. 그런 그녀의 호흡에 따라 풍만한 가슴이 부드럽게 흔들려 일영을 눈을 어지럽게 한 것은 덤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노부나가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합격이다. 사루.”

그러나 그때.

뒤에 서 있던 마사히데는 마치 딸을 걱정하는 투박한 아버지의 얼굴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비록 첩자가 아니더라도 완전히 믿을 순 없습니다. 그러니….”

“아니요.”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런 마사히데의 걱정에도 묘한 광기가 흐르는 웃음을 흘리며 일영의 턱을 조금 더 치켜올리곤 답했다.

“만약 첩자라도 어떻습니까. 이토록 쓸만한 인재를 보았는데요.”

노부나가는 이내 새하얀 손가락을 그의 턱에서 떼어내며 몸을 돌렸고, 일영의 눈에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찰나의 아쉬움이 스쳤다.

이윽고 그녀는 수많은 명검이 진열되어있는 벽으로 향해 한 카타나를 들어 일영에게 향했다.

“가마쿠라 시대, 교토의 명장인 아와타구치 쿠니츠나가 만든 검인 ‘오니마루 쿠니츠나’다. 호조 도키마사가 오니에게 시달렸을 때 그 오니를 베었던 검이라지.”

그녀의 말에 일영은 순간 눈이 커졌다.

저 검은 후대에 일본의 천하오검(?下五)이라 불리는 5대 명검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과거 오다 노부나가가 저 검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어디서 본 것 같기도….’

그런데 왜 저 검을 들고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는 걸까. 일영은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노부나가는 피식 웃으며 그런 그에게 말했다.

“이 검으로 덧없는 권력을 탐하는 노부토모의 목을 베어와라. 생긴 게 오니(도깨비)와 다를 바 없는 녀석이니 썩 어울리는 검이 아니더냐.”

“…다, 당주님. 그 말씀은.”

뒤늦게 그녀의 의도를 간파한 마사히데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부나가는 대부이자 사범인 그에게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절 위해 이곳에 남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증명할 기회를 줘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누가 절 따르겠습니까?”

“그, 그건.”

그녀는 당황하는 히라테 마사히데를 뒤로하고, 얼떨결에 두 손으로 검을 받아 든 일영을 내려보며 말했다.

“요시나리를 대외적인 지휘관으로 임명한 후, 널 부관으로 붙여주겠다. 병력은 조총 부대 300명과 사무라이 200명, 거기에 아시가루 1,000명을 붙여주지.”

‘도합 1,500명인가.’

노부나가의 말에 일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수를 도출하곤 이내 고개를 조아리며 최상의 예를 갖췄다.

“무사 백일영.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천히 몸을 굽혀 일영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댄 오다 노부나가는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백일영. 그러니 날 실망시키지 말거라. 만약 네가 입만 산 버러지라면….”

씨익. 그녀의 붉은 입술과 대조되는 새하얀 얼굴이 호선을 그리며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와 같이 송곳니가 드러나며 덧붙였다.

“내가 직접, 네 목에 이빨을 박아 넣어주겠다.”

그때. 일영은 직감했다.

…실로 위험한 여자를 주군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

“하앙…하읏!”

“헉, 헉!”

온통 휘황찬란한 색으로 가득 찬 좁은 방안은 쾌락과 열락으로 가득 찬 남녀의 신음으로 가득했다.

허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썩 보기 좋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나 굳이 따지자면 남자의 추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다.

그도 그럴 게 새하얗게 얼굴을 분칠한 반반한 유녀의 위로 원숭이를 닮고 키가 작은 남자가 연신 허리를 흔든다면 누가 좋게 보겠는가.

“…하읏. 아흐응!”

그리고 그것은 남자의 밑에 깔려있던 유녀 역시 마찬가지여서, 연신 음부를 쑤시는 자지가 주는 쾌락에 신음을 터트림에도 남자를 등지고 있는 얼굴에는 묘한 불쾌함과 경멸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욕망이 너무 강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성을 파는 것에 무덤덤해진 마음 때문일까.

“끄으으읏!”

“흐에으아응…!”

유녀는 등에 올라타 거칠게 가슴을 틀어쥐고 마침내 뿌리 끝까지 자지를 쑤셔박는 절정의 순간 눈이 풀리며 야릇한 비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꿀렁거리며 안으로 흐르는 정액과 서서히 죽어가는 자지가 느껴지자 유녀는 씁쓸한 얼굴로 어떠한 말도 없이 가볍게 묵례한 후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물론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 치곤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오랜만에 거하게 성욕을 푼 히데요시는 저 정도 앙탈은 가볍게 넘길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역시, 오랫동안 돈을 모아서 비싼 년을 먹은 보람이 있군. 큭큭.”

자고로 영웅은 여색을 즐기는 법이다.

물론 보기에 좋은 외모는 아니라 유곽을 자주 찾긴 하지만, 그래도 꿀리는 건 없었다.

애초에 건장한 남자가 유곽을 찾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상류층들은 유곽에서 모임도 하는데 말이다.

“비록 지금은 유곽에서 만족하지만, 언젠가는 그 계집을….”

그가 말한 그 계집은 다름아닌 현 오와리의 당주인 오다 노부나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유곽이라지만 혹시 몰라 말을 조심하긴 했어도, 히데요시의 눈에는 차마 숨길 수 없는 추악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전 그의 아래에서 신음을 터트리던 여자가 검은 단발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것 역시 우연은 아니리라.

그때였다.

“응?”

곁에 놓인 천으로 대충 수습을 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던 그의 귓가에 어딘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고, 곧 히데요시는 웅성거림이 유곽이 아닌 밖에서 들린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유곽을 나섰다.

그리고 곧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 조센징…?”

다름 아닌 백일영이 하급 사무라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검은 갑옷을 입고, 모리 요시나리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놈. 히라테 공의 눈에 들었다던데?”

“헤…조선에서 온 낭인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내가 어떻게 아냐. 듣기론 따님이신 우에몬 님과 야밤에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는 소리도 있던데.”

그때, 그의 귓가에 유곽 근처에 앉아 술을 마시던 다른 사무라이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히, 히라테 공이라고?”

히라테 공이라면 그 역시 잘 아는 이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의부같은 사람이 아닌가.

“지금 기요스 성을 치러 간다며?”

“얼마 전에 있던 암습이 오다 노부토모의 짓이라고 하더구먼.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 조선 낭인이 이번 모리 공의 부관이라던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비단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기녀들까지도 모두 아는 것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를 듣는 히데요시는 멍하니 멀어지는 일영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뿌드득.

순간,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스스로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곧 열등감이 되고 분노로 치환되어 멀어지는 일영의 뒤통수에 꽂혔다.

‘조센징….’

언제부터일까.

처음에는 조선 출신임에도 항상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깊은 내면에는 외모에서 오는 열등감이 있었으나 스스로 인정하진 못했다.

그리고 놈을 알면 알수록,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나는 출세하려고 발악을 하는데….’

양아버지의 학대를 못이겨 도망친 후 무사가 되기 위해 수많은 가문을 전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다른 이곳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발악을 하는 자신과 달리 놈은 너무나 태평하고, 또한 여유로웠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엔 가벼운 시비로 놈을 적대하던 것이 이젠 진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놈이 먼저 출세까지 해버리자 히데요시는 마음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실핏줄이 도드라진 눈으로 일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짓밟는다. 네놈도, 네놈의 고향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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