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0화 (10/171)

〈 10화 〉 사루(さる)

* * *

히라테 마사히데를 따라 노부나가가 기거하는 성으로 들어온 일영은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인가.’

조선의 성들만 주구장창 보았던 일영에게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물론 같은 동양권, 그것도 과거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만큼 아예 다른 양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랄까. 수수한데 화려하다고 해야할까.

현대에 있을 때 일본을 와본 적이 없는 그에겐 나름 신선한 볼거리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문을 지나 오다 노부나가가 기거하는 건물에 들어서자, 곧바로 사무라이들이 히라테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수석 고문, 히라테 공을 뵙습니다.”

“그래. 당주께선 안에 계시나?”

“늘 그렇듯 제일 상층에서 홀로 계십니다. 헌데….”

그때, 일영의 복장을 훑은 사무라이는 의문이 섞인 눈으로 마사히데를 응시했고, 마사히데는 덤덤히 답했다.

“신경 쓸 거 없네. 당주께 드릴 말이 있어 함께 온 것일 뿐이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물론 하급 사무라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녀석이 당주를 뵈어서 할 말이 뭐가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상대는 가문의 중신이자 현 당주의 후견인 히라테 마사히데다. 때문에 사무라이는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 보다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그럼, 수고하게.”

마사히데 역시 사무라이의 그런 태도가 현명하다는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일영을 이끌고 전각 내부로 들어섰다.

한편,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빨리 승진을 하긴 해야하는데. 헛.’

사실 겉으론 하급 사무라이라고 지칭하긴 해도, 그의 신분은 애매함 그 자체였다.

사무라이의 계급은 각기 다르긴 하지만 크게 6개로 나뉘는데, 순서대로 따지자면.

1. 쇼군

2. 다이묘

3. 하타모토

4. 고케닌

5. 아시가루

6. 잡병

이 정도인데. 현재 일영의 신분은 아시가루와 고케닌 그 사이 어딘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조선에서 넘어온 ‘백일영’의 육신에 남아있는 검술 덕분에 실력이 좋아서 농민들에게 창을 쥐여준 아시가루에 넣기도 뭐했고, 그렇다고 정식으로 고용하자니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봉토인 석(?)을 받지 않고 봉급의 개념으로 돈을 받는 피고용인 정도로 지내고 있었다.

‘당연히 행색도…추레하고 말이야.’

허리에 맨 일본도는 척 보기에도 낡아 있었다. 왜 조선에서 온 무사가 일본도를 쓰는지는 몰라도 원래 쓰던 검이 없어서 이걸 급하게 산 거겠지. 거기에 입고 있는 옷도 헐렁한 한량과도 같았다.

그러니 입구에서 그들의 앞을 막아선 사무라이가 잠깐이나마 의문을 가지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일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들은 몇 번의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 마침내 제일 상층에 도착했다. 그러자 문 앞에 서 있던 한야 가면을 쓴 사무라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주님. 수석 고문께서 오셨습니다.”

찰나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곧 나지막이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러한가.”

“쿨럭.”

그녀의 답을 듣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당황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말은 책에 쓰여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말버릇이었으니까.

‘저걸 실제로 들을 줄은 몰랐는데….’

물론, 털이 수북하고 반쯤 미쳐가는 도중인 남자의 목소리가 아닌 듣기 좋은 여자의 목소리라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들어오시라 전해라.”

“예.”

이윽고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무라이들은 예를 갖춰 양옆으로 길을 비켰다. 그리고 곧 시녀들이 나타나 문을 열었다. 그 모습에 마사히데는 뒤에 서 있는 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가지.”

“예.”

과연 당주가 머무는 곳이라는 것인지, 발에 질 좋은 다다미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자 일전의 사찰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단발은 승모근에 닿을 듯 찰랑거리고, 은은한 금안 속에는 쉽게 정의할 수 없을 기이한 욕망이 자리해 있었다.

거기에 일전의 장례식보다 더 내린 도포는 그녀의 상체를 거의 드러내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대충 붕대로 감은 풍만한 가슴의 위가 도드라져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위아래로 부드럽게 흔들렸다.

거기에 도포 사이로 드러난 매끄럽고 탄력 있는 허벅지에는 창밖의 잔잔한 햇살이 비춰 싱그러운 과일을 보는 듯 탐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물론, 허리띠 대신 맨 밧줄과 부싯돌도 여전했고 말이다.

그러나 일영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방 안의 모습이었다.

‘지구본, 시계, 세계 지도는 예상했지만…벨벳으로 만들어진 서양 제복에 풀 플레이트 아머까지…아주 제대로군.’

여기가 전국시대의 다이묘가 머무는 거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 안에는 온갖 선진문물들이 가득했다.

왼쪽 벽에는 그녀가 즐겨 수집하는 명검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곁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화승총이 늘어져 있다. 거기에 척 보기에도 서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온갖 잡동사니들까지.

‘이러니 전국 통일의 직전까지 갔지.’

애초에 화승총의 가능성을 가장 완벽하게 알아본 이가 바로 오다 노부나가 아닌가. 그때 고개를 숙이며 방안을 훑던 일영을 본 노부나가가 말했다.

“이 녀석이 고문께서 말한 조선의 낭인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헌데….”

“됐고.”

노부나가는 무언가 덧붙이려던 마사히데의 말을 가차 없이 끊어버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걸었다.

이윽고 그녀의 붉고 축축한 입술이 열리고, 곧 일전의 미성이 일영의 귓가에 꽂혔다.

“네가 시바의 머저리가 내게 밀고하리라 예언했다며?”

동시에 일영의 시야에 그녀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이 눈에 들어온다. 핑크빛이 도는 복숭아뼈가 도드라진 그녀의 발을 본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발도 예쁘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늦게 그녀의 물음을 깨달은 일영은 나지막이 답했다.

“예언이 아닌 추측입니다. 물론 이렇게 빠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순간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이체가 흘렀다.

“무슨 근거로?”

근거라.

애초에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끼워 맞췄을 뿐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순 없었기에 미리 생각해둔 말을 내뱉었다.

“과거, 삼국의 역사를 아는 조선인들은 고구려가 가졌던 방대한 영토를 잃어 아쉬워합니다. 헌데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불과 20년 전의 권력과 위상을 포기할 인간이 많겠습니까.”

“하하하하하!”

그의 말은 지극히 추상적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오다 본가의 당주인 노부토모의 욕망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었다.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시바 가문 역시 내게 원한을 가져야 옳은 것 아닌가? 그들은 어째서 내게 모반을 고발하는 밀서를 올렸지?”

그녀의 물음에 마사히데 역시 일영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의문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간단합니다.”

허나, 일영은 이미 예상한 물음이었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현재의 시바 가문은 과거의 위세를 모두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반을 돕는다고 해도 큰 공을 세우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 비록 전대의 당주께서 몰락의 시초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들이 다시 권력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보다 확실한 공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네 말은 그러니까….”

“예. 굳이 예시를 들자면….”

일영은 여태까지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고, 곧 자신을 내려보는 그녀의 깊은 금안과 시선을 맞추고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반란을 미리 현재의 권력자에게 알리는 것 정도겠죠.”

“큭…큭큭.”

순간, 노부나가는 이어가던 대화를 멈추고 곧바로 일영의 턱으로 손을 뻗었다.

“엇…?”

그리고 곧 그의 턱을 쥔 그녀는 당혹감에 흔들리는 일영의 검은 눈에 시선을 맞추며 그의 뒤에 서 있는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말했다.

“대부님. 어디서 이런 귀여운 사루(さる:원숭이)를 데려오셨습니까?”

“…어, 음.”

졸지에 그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일영은 코앞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그녀의 숨에 점점 몸을 일으키는 주니어를 가라앉히는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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