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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9화 (9/171)

〈 9화 〉 그러한가.

* * *

‘곧 시바 성을 가진 남자가 당주님을 찾아올 겁니다. 다음 얘기는 그 이후로 하시죠.’

“흐음.”

요시나리를 돌려보낸 직후, 히라테 마사히데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의 곁으로 다가온 우에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시바 씨라면….”

“그래.”

마사히데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나지막이 답했다.

“오와리의 원래 주인이자, 현재는 거의 이름만 남다시피한 가문이지.”

본디 오와리라는 지역을 쇼군에게 인정받아 다스리던 건 오다 가문이 아닌 시바 가문이었다. 그들은 과거 오와리의 다이묘로 인정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오다 가문은 시바 가문의 가신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국시대가 시작되고 이마가와 가문에서 침략을 거듭하자, 그 틈을 타 오다 본가에서 권력을 잡은 것이다.

다만, 현재 오와리의 주인은 오다 가문 본가가 아니라 방계 중의 방계였던 노부히데의 오다 가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히라테 마사히데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오와리의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지.’

그가 젊음을 바쳐 노부히데에게 충성한 이유가 있었다. 방계중의 방계로 지방의 관리로 시작한 그는 능력 하나만으로 시바 가문과 오다 본가를 꺾고 오와리를 집어삼켰으니 말이다.

때문에, 마사히데는 일영이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대충은 눈치를 챘음에도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시바 가문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트린 원흉의 딸에게 오다 본가의 반역을 밀고한다라….”

암습을 지시한 이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대부분은 오다 본가의 당주인 노부토모의 짓 일거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아직 권력에 미련이 남아있는 그에게 지지기반이 부실한 오다 노부나가는 손쉬운 먹잇감으로 비칠 테니까 말이다.

다만, 의문은 그것이었다.

시바 가문의 사람이 어째서 그것을 밀고한다는 것일까. 그저 개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꾸만 마음이 걸렸다.

“혹시 모르죠.”

그때 곁에서 침묵하던 우에몬이 말했다.

“시바 성을 가진 이들에겐, 원일을 제공한 오다 본가가 더 미울지도요.”

“으음….”

어린 딸이 얘기한 귀여운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마사히데는 우에몬의 의견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때로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는 통찰력을 보여주곤 했으니 말이다.

“끙…일단은 기다려보자꾸나.”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역시 쉽사리 확신할 수 없었기에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드르륵.

“만약 헛소리였다면….”

그는 문을 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곱게는 죽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마사히데의 뒤로.

우에몬은 어린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는 냉철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아버지.”

.

.

.

그렇게 다시 현재.

히라테 마사히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바 요시미쓰의 이름으로 밀서가 올라왔다. 자신에게 오다 노부토모가 암습을 계획한 증거가 있다더군.”

“끄응차.”

그의 말에 일영은 영락없는 한량에 가까운 모습으로 몸을 풀었다. 그리곤 목덜미에 붙은 날파리를 가볍게 털어내곤 말했다.

“잘 됐군요. 그걸 빌미로 오다 노부토모를 칠 수 있으니까요.”

저 정도는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답할 수 있는 수준의 예측이다. 다만 마사히데의 마음에 걸린 것은 일영이 밀서가 오기도 전에 그것을 그에게 말했다는 것.

히라테 마사히데는 이전보다 더한 경계심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오다 본가에도 첩자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마사히데의 목소리엔 이전과 같은 확신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일영은 피식 웃으며 추레한 행색을 추스르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현실성이 없는 물음이죠?”

“…….”

마사히데는 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다 본가에 첩자를 심었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일영이 도착해서 몸을 의탁하자마자 감시를 지시한 것이 자신이니까. 2달간 일영은 본가 쪽은커녕 어떤 수상한 일도 벌이지 않았다.

차라리 현 당주인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한다는 게 더 가능성이 큰 말이리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가….’

마사히데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음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때였다.

“너무 혼란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는 흐트러진 옷섬을 추스르며 말을 이었다.

“오와리 국 내부에 첩자는 있겠죠. 다른 다이묘들이 붙인 이들이건, 아니면 사찰에서 목탁을 두드리던 스님들이건, 정말로 조선에서 온 첩자건 말입니다…다만.”

일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마사히데와 시선을 맞추고 피식 웃었다.

“적어도 전 아닙니다. 왜냐면, 저는 일전에도 말했듯 순수하게 오다 노부나가라는 사람을 보고 이곳에 몸을 의탁한 낭인이기 때문이죠. 뭐, 사실 의심하신다고 해도 상관없겠죠.”

순간, 그의 검은 동공에 마사히데의 얼굴이 담긴다. 동시에 일영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며 그는 말했다.

“수석 고문인 히라테 공께서 직접 오셨다는 게 무슨 의미인 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미 눈치를 챘군.”

그제야 마사히데는 자신이 처음부터 모두 간파당했음을 깨닫고,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짓고는 생각했다.

‘상상 이상으로 대범한 첩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진정 바다를 건너온 인재인가….’

이미 머릿속으론 답이 내려진 상황이었으나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주 작은 의심을 남겨둔 채, 겉으론 인자한 노인을 연기하며 말했다.

“그럼 가지. 당주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

나고야에서 가장 드높은 성곽.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

검은 단발에 어딘가 어두운 금안을 가진 여자가 눈을 뜨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이 호선을 그리고 눈에는 묘한 광기가 흐른다. 곧 그녀는 반쯤 땅에 닿은 검은 도포를 끌고 천천히 일어나 벽으로 걸었다.

그곳엔 그녀가 모아둔 수십 개의 일본도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녀는 새하얗고 얇은 손으로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일본도를 가볍게 쓸었다.

“노부토모…그 늙은이가 감히 내게 반기를 들었단 말이지.”

이미 예상한 일이었으나,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은 꽤 색달랐다.

재미있지 않은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땐 그저 고개를 조아렸던 쓰레기들이, 이제 와 고개를 들고 스스로 사람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흥미를 끄는 것은 오다 노부토모나 오다 가문의 본가 따위가 아니었다. 꼴사납게 모반을 증언한 옛 시바의 버러지는 더더욱 아니었고.

씨익.

그녀의 새하얀 피부에 맺힌 듯 붉게 자리한 입술이 나지막이 열리고 한 사내의 이름이 읊조려진다.

“백일영이라 했던가.”

2달 전쯤인가. 갑자기 조선에서 왔다며 몸을 의탁한 낭인이 모든 상황을 예견했다는 소식에 흥미가 돋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미묘하게 달아오른 어깨를 손으로 쓸고, 곧 침상으로 돌아가 앉으며 중얼거렸다.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터.”

순간 그녀의 시선이 침상 앞에 놓인 탁자로 향한다. 그곳에 놓인 것은 단순히 열도의 지도가 아닌 거대한 대륙들이 담긴 세계 지도였다.

“조선에서 왔다라….”

그녀는 지도에서 열도의 바로 옆에 있는 반도를 손가락으로 짚었고, 곧 피식 웃었다.

“과연. 궁금하군.”

정말로 히라테 마사히데가 말한 대로 간큰 첩자일까. 아니면 바다를 건너 온 귀인일까.

그것은 만나보면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때.

“당주님. 수석 고문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사무라이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렸고, 곧 그녀. 오다 노부나가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러한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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