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7화 (7/171)

〈 7화 〉 히라테 가(家) (3)

* * *

“그, 그게 무슨 개소리이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히라테 마사히데의 말에 일영은 어안이 벙벙해져 되물었으나, 그것은 마사히데에게 비밀을 들킨 이의 당황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당황했군. 가문의 중신인 내게 ‘개소리’라는 단어를 내뱉을 정도라면 말이야.”

“…아, 아니. 그건 실수입니다만.”

그제야 일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은 건지 깨닫고 뒤늦게 수습하려 했으나, 마사히데가 더 빨랐다.

“자네의 지난 행적을 조사해봤네. 난세인지라 어렵긴 했으나 꽤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그는 싸늘한 눈으로 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쓰시마를 통해 왜로 들어왔네. 그 이후 조선 출신 낭인임을 밝히고 여러 가문을 거쳐 오와리에 도착한 후, 마치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듯 하급 사무라이로 의탁했지. 그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건. 음.”

확실히 마사히데의 입장에선 의심을 할 수 있었다. 본래 일본인도 아닌 놈이 낭인이랍시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오와리에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그제야 일영은 어째서 마사히데가 저런 의심을 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조선의 첩자라고 의심하고 계시는 거군요.”

“이제야 이해를 하는군.”

그러나 그의 말에는 맹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굳이 조선 출신임을 밝히고 이곳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을 텐데요.”

정말로 일영이 조선에서 보낸 첩자라면 굳이 조선 출신임을 밝힐 이유가 없다. 그 점에 대해선 마사히데 역시 별다른 반박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그는 잠시 말을 흐리다가 이윽고 답했다.

“그것이 간첩질에 더 어울리는 신분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

“…위장의 위장이라는 뜻입니까. 허.”

일영은 풍부하다 못해 넘쳐나는 마사히데의 상상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그의 말도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현재 왜는 오닌의 난부터 시작된 센고쿠 시대. 즉 전국시대로 난세(世)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시기다. 이때 조선이 명을 업고 왜를 침공한다면….

‘물론, 가능성은 없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뿐더러, 현재 조선은 정치적으로 엄청난 개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가 아수장이라면, 조선은 내부에서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말이 옳으리라.

13대 왕인 명종의 집권기로, 1545년에 시작된 을사사화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그가 이 세계로 넘어오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조선의 ‘백일영’ 역시, 그 여파로 친했던 친구의 가문이 멸문지화 당해 조선에 실망하여 일본으로 넘어온 무관이었으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명종실록에 나라가 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이 적혀있겠어.’

물론, 선조 때 정말로 망할 뻔하긴 하지만 일단 넘기자.

그의 말은 가능성은 있으나 지극히 현실성이 낮은 망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위정자란 원래 작은 가능성까지 파악해서 대비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니까 말이다.

일영은 자신의 반응을 살피듯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사히데를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마사히데 님의 말을 요약하자면, 전 오와리를 염탐할 목적으로 파견된 세작 중 하나고, 현재 조선은 명과 손을 잡아 왜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마사히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은 그렇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지.”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일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명은 둘째치고, 조선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말이지.’

한국인 태생이긴 했지만, 이 시기 조선은 까면 깔수록 개판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임진왜란의 거듭된 패전이 아니던가.

‘하지만, 계속 오해를 받는 건 억울하지.’

마사히데의 태도는 위정자로서 충분히 존중하지만, 억울한 건 못 참지.

“후.”

일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미 반쯤 확신 중이신 것 같은데. 그럼 제가 마사히데님을 찾아올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이제 자네가 말해야지.”

나름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마사히데는 되려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닥거렸다.

“생각해보면, 아가씨가 절 마중 나왔다는 건 이미 감시를 하고 계셨던 거군요.”

“꽤 눈치가 빠르군. 아니. 2달간 몰랐으니 느리다고 해야 하나.”

젠장. 어쩐지 너무 평온하다 했다.

이럴거면 차라리 일본인으로 시작하는 게 나았을지도.

그러나 정적도 잠시.

일영은 이내 고개를 들고 한 방 먹었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기곤 말했다.

“저는 첩자가 아닙니다.”

“그런가.”

진심이 섞인 말이었지만, 마사히데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문 뒤에 대기 중이던 무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첩자가 스스로 첩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순간.

일영은 일말의 초조함도 없는 덤덤한 얼굴로 마사히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들은 모두 믿을 만한 이들입니까?”

그의 물음에 마사히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날 따른 지 오래된 이들이네. 그러니 자네가 동정심을 호소해도 살려줄 이는 없어.”

이런 자리에 믿을 만한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를 데려다 놓겠는가. 그의 말에 일영은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말했다.

“절 죽이거나 구금하면 후회하실 겁니다. 마사히데.”

“으음.”

너무나 덤덤한, 그러나 확신이 담긴 목소리에 일순간 명령을 내리려던 마사히데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곧 말 해보라는 듯한 무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일영은 답했다.

“제가 어째서 오와리 국에 자리 잡았냐고 물으셨지요.”

“그랬지.”

“제가 이곳에 투신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일영의 검은 동공이 마사히데의 동공과 마주한다. 그러나 정작 일영이 바라보는 이는 마사히데가 아니었다.

“오다 노부나가.”

“…뭐라?”

순간, 마사히데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조선의 첩자가 무어라 말한 것인가.

오다 노부나가라니. 충신인 그마저도 의문이 들게 만드는 치기 어린 여자아이의 이름을 말한 것인가.

그러나, 일영은 마사히데가 잘못 듣지 않았다는 듯 재차 말했다.

“전 오다 노부나가를 보고 이 영지에 남았습니다.”

“…슬슬 미쳐가는군.”

마사히데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곧바로 사무라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곧 문을 열고 사무라이들이 들어와 일영을 단번에 베어버릴 듯 다가온다.

“당주를 치켜세우면 목숨을 구명할 줄 알았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영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마사히데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사히데 님은 현 당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리자 일영은 말했다.

“치기 어리고, 감성적이며, 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실 테지요.”

뚜벅.

스릉.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일본도를 뽑아 들었고, 달빛이 칼날에 비친 서슬 퍼런 빛이 일영의 뺨을 스쳤다. 그들은 감히 오와리 국의 지배자를 모욕한 일영을 단번에 베어버릴 듯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를 누구보다 걱정하고, 또한 충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본가를 비우고 벌써 2달째 나고야 성에서 그녀를 지지한다는 뜻을 비치는 것이겠지요.”

그 순간.

마사히데는 검을 치켜든 사무라이들을 멈췄고, 복잡한 눈으로 일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로 당신을 찾아왔냐고 물으셨지요.”

그러자 일영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사무라이들이 그것을 제지하려 했으나 마사히데는 놔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간단합니다. 다가올 수많은 위협을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리 길지 않았던 둘의 간격은 너무도 빠르게 줄어들었고, 곧 그의 앞에 다다른 일영은 마사히데를 향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위한 할복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러 왔습니다. 히라테 마사히데.”

그리고 그 순간.

“히, 히끅?!”

아주 공교롭게도 마사히데와 일영 모두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천장에서 울렸다.

“흡!”

뒤늦게 입을 막은 것 같았지만, 그녀에겐 안타깝게 그 소리마저 밤의 정적엔 너무나 컸다.

“…….”

“…….”

당연히 이어지는 건 지독한 정적.

일영과 마사히데는 서로 눈을 마주쳤으나, 이내 마사히데는 고개를 젓곤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오시게. 모리 공.”

“……네에.”

탁!

모리 요시나리가 중정에 착지하자마자 대지에 비친 커다란 타원 2개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압도적인 폭유의 왕복운동에 마사히데와 일영은 고개를 돌렸지만, 정작 원인을 제공한 요시나리는 어색한 얼굴로 헤헤 웃으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히라테 공?”

당연히, 정적은 더 길어지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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