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6화 (6/171)

〈 6화 〉 히라테 가(家) (2)

* * *

저택 내부에 들어서자, 주변을 감싸던 호위 무사들은 4명의 무사를 제외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론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으나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일영의 허리에 떡하니 매여있는 2자루의 일본도를 회수하지 않은 것. 그러나 이내 일영은 깨달았다.

‘뽑든 말든, 상관없다는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우에몬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곤 있지만 일영과는 호위무사 2명에 의해 가로막혀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급 사무라이따위, 아가씨에게 닿기도 전에 벨 수 있다는 자신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뭐. 당연한 거겠지.’

비록 오다 노부나가가 장례식 때 저지른 일로 정치적인 공격을 꽤 받긴 했지만, 여전히 오다 가(家)의 중신 중에선 압도적인 존경과 권위를 가진 인물을 모시는 무사들이다. 오히려 이 정도 자존심도 없으면 이상한 일이겠지.

때문에, 일영은 괜한 소리를 내뱉어 분위기를 더 험악하게 만들기보단 저택을 구경하는 걸 택했다.

‘히라테의 본가는 이곳이 아니야. 다만 노부나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을 뿐.’

그 말은 일종의 별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권력을 생각하면, 마음만 먹었다면 당주에 버금가는 거대한 저택을 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영의 눈에 들어온 건물의 모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뭐랄까.

추레하지 않으면서 수수했고, 화려하지 않았으나 고풍이 넘쳤다. 거기에 보통 권세가에 응당 있는 무수한 사치품들은 일절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이번만큼은 일영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건물 자체는 크고 넓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조금 화려한 서민의 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전대 당주인 오다 노부히데에게도 총애받았던 중신임을 떠올리면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충신인것도 모자라 청렴하기까지.’

잠깐, 생각해보니 능력도 좋잖아.

‘…미쳤네.’

그렇게 묘한 존경을 느낀 채 우에몬을 따라 계속 걸었다. 복도를 걷다가 꺾으면 또 복도가 나왔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슬슬 헷갈릴 때쯤, 이내 옆으로 실내 정원인 중정이 보이는 꽤 넓은 방에 도착했다.

“여긴….”

일영이 의문을 담아 묻자, 우에몬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검은 동공에 일영의 실루엣이 맺히고, 우에몬은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 몸놀림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여 말했다.

“기다리시면 곧 아버지께서 오실거에요. 그럼 이만.”

우에몬은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호위무사들을 데리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사라졌다. 졸지에 홀로 남은 일영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불은 좀 켜주고 가지.”

그도 그럴 것이. 우에몬이 그를 안내한 방에는 촛불이 꽤 많이 놓여있었으나 단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았다. 만약 부싯돌이 있었다면 직접 키기라도 했을 텐데.

그때였다.

“음?”

갑작스럽게 어두운 시야를 밝게 밝히는 달빛이 실내 정원인 중정을 비췄다. 그러자 척 보기에도 관리가 매우 잘 된 나무들과 화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하. 어쩐지 무기를 반입시키더라.”

그러나, 그와 별개로 뒤늦게 눈에 들어온 모습을 바라보며 일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철컥.

스릉.

달빛에 드러난 중정의 저 반대편.

그곳에는 20여명의 조총수들이 오직 일영 한 명만을 겨냥한 채 엎드려 있었으니까 말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반대편엔 척 보기에도 일본도를 뽑은 채 문밖에 대기중인 10여명의 사무라이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순간.

끼이익.

일영이 있는 방의 끝에 자리한 문이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열리며 익숙한, 그러나 밖에서 본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움직이지 말게. 자네의 의도가 어쨌든 내게 접근하는 순간 자네를 공격할 테니 말이야.”

노인. 아니.

히라테 마사히데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달빛에 얼굴이 절반 정도 비치는 지점에 멈춰섰고, 머리를 긁적이는 일영에게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예. 뭐. 물어보시죠.”

일영은 갑작스럽게 급변한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궁금했다. 그는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을까. 또 무엇을 물을까….

기대할 수밖에 없는게, 이미 자신이 찾아올 것을 알고 딸인 우에몬을 보낸 선견지명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일영의 기대는 곧 깨지고 말았으니. 히라테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의 주군은 조선의 하늘인가?”

“…예?”

순간 일영은 귀를 의심했다.

저 늙은이가 뭐라는거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영이 들은 말은 아주 정확한 단어의 나열이었다. 히라테는 어색하게 반문하는 일영의 모습에 이전보다 더한 확신을 담아 물었다.

“자네가 모시는 이가, 조선의 왕이냐고 물었네.”

그리고 그건.

일영의 입장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그, 그게 무슨 개소리이십니까?”

개소리였다.

* * *

“으음….”

요시나리는 닌자의 목이 바닥을 구르는 산 초입 부분의 바위에 앉아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하는 듯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고 중얼거렸다.

“그치만…만약 걸리면 가문 문제로 커질 텐데….”

그녀가 고민하는 건 단 하나였다.

바로 조금 전 목을 벨 뻔했던 조선 출신 낭인이 어째서 히라테를 독대하러 갔냐.

물론 처음엔 우에몬의 말을 믿고 사방으로 흩어진 닌자들이나 잡으러 가려 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니 한 가지 허점이 드러났다.

‘어차피 밤에 부르든, 낮에 부르든 우에몬이 데려가면 똑같잖아!’

일영은 잘 몰랐지만, 오다 가의 중신들에게 우에몬은 하나의 보물과도 같았다. 물론 히라테의 장녀라는 배경도 있긴 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우에몬이 마치 인형처럼 귀엽다는 것.

때문에, 나이가 중년인 가신들은 그녀를 딸처럼 생각하고 노년인 가신들은 그녀를 손녀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조금 더 복잡한 ‘어른의 사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모리 요시나리가 보기엔 그랬다.

내심 그녀도 먼발치에서 우에몬의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성격에 안타까워한 적이 한두 번인가.

그런 우에몬이 직접 나섰는데 소문이 안 퍼진다고? 어림도 없다.

때문에, 요시나리는 이내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외쳤다.

“그래! 분명 상황을 피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거야!”

만약 그렇다면 들어야했다.

비록 그녀 역시 히라테 마사히데를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수상한 일을 확인조차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가볼…아차.”

결심하면 바로 행동하는 그녀였기에, 곧바로 히라테 가로 향하려던 그녀는 싸늘하게 굳어 창백해지고 있는 닌자의 머리를 바라보곤 큰일 날 뻔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일이 급해도 전공은 전공이지. 암. 그렇고 말고.”

요시나리는 혹여 보는 이가 없나 주변을 살피고, 곧 닌자의 몸과 머리를 앉아있던 바위 뒤에 움푹파인 홈에 대충 욱여넣었다.

애초에 길면 한 두시간이면 찾으러 올 테니, 굳이 무리를 해서 숨겨둘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히. 노부나가님이 좋아하시겠지.”

그녀는 벌써부터 칭찬받을게 기대된다는 듯, 한층 신나는 발걸음으로 무너진 나무담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때.

“응?”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곧 환한 달빛이 그녀를 비춰 길게 그림자를 늘어트린다.

“예쁘다…!”

요시나리는 그 모습에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달리는 뒤로 늘어진 그림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출렁거림이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