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3화 (3/171)

〈 3화 〉 조선에서 온 무사(1)

* * *

“어. 벌써 교대인가.”

“그러게. 하긴. 해가 중천에 떴구먼.”

“수고했어. 가서 쉬라고.”

일영은 친근하게 말을 나누는 사무라이들의 제일 후미에 서서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곧 경계를 서는 곳의 옆에 있는 불상에 몸을 기댔다.

“흐암.”

그는 작게 하품을 내뱉으며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여전히 풍성한 머리카락이 손에 잡히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머리가 밀려있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옛 중국 청나라 배경의 사극을 보면 변발이 되어있고, 일본 사무라이들의 머리는 촌마게라고 불리는 삭발이 되어있는 모습 말이다.

그래서 혹시 머리가 밀려있으면 어떡하나 생각했던 일영이었으나, 다행히 이 세상에 그런 문화는 없었다.

‘만약 있었으면 자살했을지도.’

갑자기 이상한 세계로 끌려온 것도 모자라서 머리까지 밀렸으면 우울증에 걸려서 스스로 할복했을 거다. 진심으로.

‘이름도 뭐….’

‘백일영’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일본 이름일 줄 알았는데, 조선에서 넘어온 낭인 무사란다. 거기에 우연스럽게도 이름은 무려 ‘백일영’.

그는 코웃음을 치며 푸르른 하늘 너머에서 자신을 내려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중얼거렸다.

“참, 배려심이 넘치게 설정하셨어.”

이 모든 게 우연일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자신을 이 어이없는 세상에 보낸 어떤 존재의 안배겠지. 그래도 다행이었다.

갑자기 과거 일본 전국시대로, 그것도 피와 살육이 가득한 하극상의 시대로 끌려왔는데 이름까지 개명해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래도 일영이라는 이름이 주변에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아무래도 일본과 조선이 바다 하나를 사이로 붙어있어 거부감이 덜한 덕분이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햇볕에 눈을 감았다. 그때 그의 곁에서 친근한 목소리가 울렸다.

“뭐야. 또 농땡이야? 그러다가 이번 달 봉급만 받고 쫓겨난다. 너.”

“그럴 리가.”

일영은 눈을 뜨고 피식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어깨에 아주 자연스럽게 걸쳐진 이츠키의 손을 밀어내고 답했다.

“난 실력이 좋잖아. 그러니까 이 타국 땅에서도 밥 빌어먹고 사는 거지.”

“하긴….”

자칫 잘못하면 자만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어찌 된 일인지 전이 된 이후 그는 꽤 검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마 어디가서 객사하지 말라는 배려 중 하나겠지.”

“응?”

“아니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반문하는 이츠키에게 고개를 젓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뭔데?”

“뭐야. 벌써 눈치챘냐?”

“말해봐. 궁금하니까.”

일영의 말에 이츠키는 ‘하여튼 눈치만 빨라요.’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일영으로서는 그런 행동이 기가 찰 뿐이었다.

애초에 하급 사무라이 중 가장 발이 넓어 정보통 역할을 하는 놈이 무슨 허를 찔렸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이츠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곤 작게 속삭였다.

“오다 본가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대.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이긴 한데 아무래도….”

“오다 본가라면…오다 노부토모인가?”

그의 말에 이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긍정을 내보였다.

‘슬슬 이빨을 드러내는 건가.’

현재 오와리의 지배자인 오다 노부나가의 오다 가문은 방계 중의 방계다. 과거 지역 관리 정도로 임명된 가문이 본가를 누르고 하나의 나라를 먹은 것이라 생각하면 편하리라.

때문에, 현재 당주에 오른 오다 노부나가의 기반이 불안한 상황이 그들에겐 최적의 기회로 보이겠지.

‘실제로 소문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에 나서니까.’

실제로 아무리 발이 넓다 해도 하급 사무라이가 알 정도면 얼마나 노골적인지 잘 알 수 있으리라.

일영은 허리에 매인 일본도의 손잡이를 쓸며 착잡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자 되려 소문을 귀띔해준 이츠키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핫. 뭐 그렇게 쫄고 그래. 우리같은 하급 무사들은 싸우라는 대로 싸우다가 여차하면 도망치면 그만이지.”

“하긴. 그렇지.”

어딘가 모르게 자조적인 말이었으나 사실이었다. 정식으로 가문에 고용되긴 했으나 가신이 아닌 피고용인의 입장인, 결국 하급 사무라이에 불과한 둘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때.

둘의 대화가 막 끝나갈 무렵 일련의 무리가 그들이 경계를 서는 길목으로 다가와 서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 쓸데없이 발만 넓은 떠벌이랑 조선에서 건너온 조센징이잖아?”

“…하아.”

적의와 비아냥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아주 익숙한, 그러나 절대로 정이 가지는 않는 얼굴이 서 있었다.

키는 작고 골격은 왜소한 편이었고, 얼굴은 원숭이를 닮아 썩 보기에도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거기에 오른손의 손가락은 1개가 더 있는 모습까지.

일영은 그 남자를 선두로 세워 자신과 이츠키를 노려보는 그들을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이름을 말했다.

“히데요시. 왜 또 시비야? 할 짓이 그렇게 없냐?”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알 수밖에 없는 그 이름을 가진 남자가 바로 일영의 앞에 서 있었다.

‘허. 처음 저놈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약 2달 전에 히데요시를 확인하곤 근 2일간 잠도 자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범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놀라지 않겠는가.

“하? 너야말로 무슨 낯짝으로 조센징이 이 열도에 붙어있는 거야? 듣기로는 네 어미가 널 바다에 버려서 여기로 넘어왔다며?”

“히데요시! 말이 너무 심하잖아!”

듣다 못한 이츠키가 발끈하며 외쳤으나, 그의 말을 묵묵히 듣던 일영은 무심결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것도 패드립이라고 하는 게 귀엽지 않은가. 이미 현대의 온갖 심연을 겪은 그에게 저 정도 패드립은 웃어넘길 수준이었다.

그래도 일단 욕을 먹긴 먹었으니, 받아쳐 주긴 해야겠지. 일영은 히데요시에게 성큼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야.”

일영이 히데요시의 앞에 서자 히데요시는 그를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영의 키가 180을 넘는 것에 반해 히데요시의 키는 160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으니까.

“…뭐, 해보자는 거냐?”

당연히 자존심을 구길 수밖에 없었기에 히데요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자신의 실력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뒤에 따르는 무리를 믿는 것인지 여전히 일영을 깔보는 어투는 여전했다.

하지만 일영은 굳이 그런 히데요시의 도발에 어울려주기보단, 단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닥쳐. 원숭이 새끼야.”

“…이…이 개새끼가!”

너무나 원초적인 욕설이었으나 히데요시에게는 그 어떤 모욕보다 더한 욕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숭이를 닮은 것은 그에게도 큰 콤플렉스였으니까.

때문에 히데요시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단숨에 그를 베어버릴 듯 검의 손잡이를 잡았으나, 정작 일영은 태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뽑게? 감당 가능해?”

“…뭐?”

그는 천천히 히데요시의 얼굴 앞까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순간 네가 바라는 출세도 끝날 테니까. 네가 뭐라고 해도 난 오다 가문에 정식으로 고용된 낭인이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주먹다짐이라면 모를까, 일단 검을 뽑는 순간 우리 둘 다 내쫓기리라는 건 자명해. 물론 나야 미노나 하다못해 이마가와로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일영의 말이 계속될수록 히데요시의 얼굴이 굴욕으로 물들었다. 아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것이리라.

그럼에도 일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히데요시의 역린이나 다름없는 말을 꺼냈다.

“이마가와에서 쫓겨나 오다로 넘어온 네가 여기서도 쫓겨나면 과연 받아줄 가문이 있을까?”

“이…이 개 같은!”

분명한 도발이었으나 히데요시는 몸을 떨 뿐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치욕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일영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였다.

“그쯤들 하시구려.”

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고, 곁에 서 있던 이츠키를 비롯한 하급 사무라이들은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자 곧바로 당황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수, 수석 고문을 뵙습니다!”

“수석 고문을 뵙습니다!”

수석 고문. 그 직위가 뜻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아는 일영과 히데요시는 곧바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 곧바로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일영은 은연중에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히라테 마사히데.’

오다 노부나가의 대부이며 사범이자, 중신인 노인이 바로 그였다. 갑작스러운 거물의 등장에 다들 놀라는 모습이 역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라테는 잠시 일영과 히데요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일영을 향해 말했다.

“그대가 조선에서 넘어왔다던 무사로군.”

순간, 히데요시는 자신이 아닌 일영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그뿐이었다. 가문의 중신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건 당연했으니까.

“예. 백일영이라고 합니다.”

일영은 히라테의 부름에 허리를 들어 짧게 목례했다. 동시에 일영은 히라테의 인상을 살폈다.

‘겉으론 너그러운 노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냉철하고 또한 원칙주의자…이정도는 되야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할 수 있는 건가.’

머리는 백발에 가깝고 얼굴은 주름졌지만, 난세를 살아온 노인답게 몸은 여전히 각졌고 체구도 꽤 컸다. 얼굴만 가린다면 한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백일영…. 듣기론 솜씨가 출중하다고 들었소. 기대하지.”

“예. 격려 감사드립니다.”

히라테는 그 말을 내뱉은 후 그들을 지나쳐갔다. 그러자 혹시 자신도 언급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던 히데요시는 완전히 패배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런 히데요시의 모습을 보며, 이츠키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저렇게 너한테 시비를 거는 거야? 조선이 우리랑 원수진 국가도 아니고.”

“그러게나 말이다.”

‘정확히 저놈이 원수로 만들긴 하지.’

이츠키의 말에 일영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마디를 애써 참았다. 거기에 딱히 조센징이 어쩌고 하는 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느 곳이나 이방인은 배척받기 마련이니까.

다만, 그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히데요시의 존재 그 자체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죽은 후 일본을 집어 삼키는 괴물.’

본디 청년이었을 때 이름도 히데요시가 아니었고, 아직 오다 가문에 있을 시기도 아니건만 어째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하아…머리아파.’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정확히는 원 역사만을 알고 있는 그에게 생소한 것들이 많다고 해야 할까.

‘순탄치 않은 길이 되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히데요시가 사라진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죽일까?’

이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건 각오한 일이다. 애초에 2달간 시간을 보내며 일본도도 꽤 익숙해졌고 말이다.

비단 조선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에도 비극이었지만, 애초에 일본에게도 이득 따위는 없는 전쟁이었으니까. 그 쓸데없는 전쟁으로 죽은 목숨이 몇이란 말인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일영이었으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허리에 매인 일본도를 쓸었다.

‘지금은 아니야.’

히데요시는 인간으로서는 실격이었지만 능력적인 면에선 확실히 오다 노부나가에게 도움이 된다. 거기에 그가 죽으면 앞으로의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일단 두고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가 떨어진 세상은 피와 살육으로 가득 찬 난세(世)다. 즉,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한 명을 보내버리기엔 충분하다는 뜻이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

“거기에,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것도 없고 말이야.”

“응?”

갑작스러운 그의 중얼거림에 곁에 서 있던 이츠키가 되물었으나, 일영은 그저 고개를 젓고 다시 나른한 햇볕을 느끼기 위해 석상에 몸을 기댔다.

그렇게 뉘엿뉘엿 해가 졌고, 그날 하루도 무탈하게 끝나는 듯싶었다.

그래. 끝나는 듯싶었지.

댕! 댕! 댕!

“아, 암살자다!”

“잡아! 놓쳐선 안 된다!”

일영은 부스스한 머리를 다듬을 새도 없이 곁에 놓인 2자루의 검을 허리에 매고,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하아. 그래. 이런 생각만 하면 꼭 이 지랄 나더라.”

아무래도, 오늘 새벽은 아주 긴 새벽이 될 듯싶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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