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사는 도서관에서-8화 (8/13)

Chapter 7. 남이 하면 소재, 내가 해도 소재 (2)

“아이고, 허리야.”

비비안은 엎드려서 원고를 깨작이다 말고 허리를 통통 두들겼다. 그러자 에이든은 하녀에게서 건네받은 따뜻하게 데운 천을 그녀의 등 위를 덮어 주었다.

처음 수발을 들 때와 비교해 이젠 제법 능숙해진 솜씨였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것에 능숙해지는 건데. 그냥 수발에 능숙해지기 전에 수발들 일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녀는 이 저택에 발을 들인 이후로 멀쩡하게 걸어 다닌 날보다, 침대에 누워 골골댄 날이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얼굴이 절로 불만스럽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쾌락의 노예로 길들이려는 수작인가!’

비비안은 이불을 꾹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나 막 하는 거였지만 사실 반쯤은 들어맞는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에이든은 머리로 안 된다면 몸으로라도 완전히 날 기억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관능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온갖 야한 짓은 다 당하게 된 비비안이었다.

‘번쩍 들어 올려진 상태로 고목나무 매미처럼 매달려서 한 적이 있었지. 그런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는데…….’

뭐, 투덜거리긴 해도 그녀는 그와의 섹스를 좋아했다. 상대가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절륜하기도 하고, 선을 넘을 정도로 강압적이지도 않았다. 비비안이 기절하거나 정말 하기 싫어하면 멈출 줄 아는 자제력은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흐느끼다 못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집요하게 몰아치기는 하지만.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덕분에 소설을 거의 다 완성되어 가지 않았는가. 학구열이 넘치는 학생을 둔 실력 좋은 선생님의 집중 교습 효과는 대단했다. 단지 그녀는 이제 손도 쓰지 못할 정도로 몸으로 완벽하게 길들어 버렸으니, 벌써 그가 없는 밤이 두려워질 뿐이었다.

설마 발정 나서 아무나 덮치거나, 대공 저택까지 찾아와 제발 한 번만 안아 달라고 막 매달리고 그러진 않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세상에 그것만큼 꼴불견은 어디 있을까. 비비안은 자신이 부디 짐승 이상의 성적 자제력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소설 집필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에이든이 물었다.

“어디까지 쓰셨습니까.”

이번 작품의 내용은 위기를 지나고 절정을 지나, 거의 결말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마지막 정사만 앞둔 상황.

잠시 쓰던 것을 멈추고 그를 향해 흘낏 시선을 둔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써 가요.”

조금의 미련도 없는, 오히려 약간의 기대와 흥분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푸른 눈동자는 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별거 아닙니다. 그냥 앞으로의 일을 조금.”

에이든은 열정으로 두 눈을 빛내며 글을 쓰거나, 도톰한 입술을 부풀리며 생각에 잠겨 있거나, 혹은 제 밑에서 흐느껴 우는 비비안을 떠올렸다.

저택에 돌아오면 피 냄새를 지우고 곧바로 그녀의 곁으로 향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따듯한 온기를 품에 안고 달콤한 향기를 따라 입술을 묻었다. 그러면 평온한 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맞춰 길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본인 또한 그녀의 몸을 미친 듯이 욕망하고 있다는 거였다.

관계에 관계를 거듭할수록 서로를 놓을 수 없는 더 끈적한 관계가 되었다. 길들이기가 무섭게 길들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없는 텅 빈 저택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반지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앞으로의 일이라면 미래 계획 같은 거요?”

“비슷합니다.”

에이든은 의뭉스럽게 대꾸하며 침대 옆에 쌓아 두었던 책을 펼쳐 들었다.

비비안은 아무런 열정도 의욕도 없어 보이는 그가 혹시 목표나 꿈 같은 게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미래 계획이라고 해 봤자 저택 내의 서재를 증축하고 싶다는 생각일 것 같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어쩐지 그가 귀여워져서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함이었다.

불안의 침묵 속에서 비비안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원고지에 글씨를 갈겼다. 햇빛도 쨍쨍하니 참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지만, 완결을 앞둔 상황에 그런 사치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곧 고지가 코앞이었다.

비비안은 환희에 가득 찬 눈을 빛냈다. 정상을 눈앞에 둔 등산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뚝 하고 멈추고 말았다.

“마지막 연회 장면을 써야 하는데…….”

비비안은 깃털의 끝을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사교계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연회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었다.

어차피 연회는 살짝 등장하기 때문에 굳이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구상한 남자주인공의 행동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으으으음.”

비비안은 콧소리를 내며 고민에 잠겨 있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정말 덩치 큰 남자가 치마폭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 한마디가 모든 일의 원흉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불행하게도.

비비안은 지금 쓰고 있는 깃펜으로 에이든의 정수리를 찍어 버릴까 짧은 순간 고민했다. 물론 그의 머리가 치마 속으로 쏙 들어가 시도도 하지 못하고 상상에 그쳐 버렸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구르다가 결국 재빠르게 뒷걸음질을 시도했다. 에이든에게 다리를 콱 붙잡혔기에 이것 또한 시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어코 그녀의 속바지를 벗겨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들어가는 거로 충분했어요!”

와, 정말 충분히 들어가 지는구나! 비비안은 궁금증을 몸소 해결하고는 울상을 지었다.

만약 연회 드레스를 정식으로 차려입고, 새장 같은 크리놀린까지 장착하면 안에서 방방 뛰지 않는 한 덩치 작은 사람 두셋쯤 들어가도 모를 것 같았다.

게다가 코르셋까지 착용해야 하는 여자주인공으로서는 격하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큰 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신음을 꾹 눌러 참으며 흐느껴야 하겠지. 그것도 한창 귀족들이 격식을 차리고 온갖 교양 있는 척을 다 하는 연회에서.

‘수치 플레이…….’

정말 희롱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그러니까 소설 속 마지막 보너스 장면으로 넣기에는 딱 적절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희롱당하는 게 아니라!’

비비안이 벗어나기 위해 끙끙댔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무릎으로 양발이 콱 눌려 이젠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더 궁금한 것도 없어요. 앗, 속옷 건들지 말아요! 아직 쓰라리단 말이에요.”

“상처는 핥으면 낫습니다.”

“애초에 핥아서 생긴 상처거든요?”

하여튼 말이라도 못하면.

만약 이게 핥는 것만으로 끝나는 거였으면 그녀도 이렇게까지 투덜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혀 다음은 손가락, 그다음은 제 것을 밀어 넣을 게 뻔했다. 그것도 적으면 두 번, 많으면 세 번 네 번을 연달아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단 한번 시작한다면 멈춘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에이든에게도 비비안에게도 말이다.

살갗이 쓸려 욱신거리는 아랫배와 아직도 화끈거리는 통증이 있는 그곳, 그리고 뻐근한 허리 때문에 간호를 받던 게 고작 몇 분 전이었다.

그런데 또 하자고? 무슨 원할 때마다 바로 세울 수 있는 마법의 반지라도 끼고 있는 건가.

“있잖아요.”

비비안은 시선을 아득히 먼 곳에 두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에이든이랑 저는 절대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나 봐요.”

“무슨 뜻입니까.”

“겉으로 드러내는 변태와 내색하지 않고 숨기는 변태의 차이일 뿐이라는 거죠.”

조금의 여지만 줘도 하려고 달려드니, 이러다가 나중에는 눈만 마주치면 하게 될지도 몰랐다. 비비안은 한숨과 함께 한탄했다.

“우리가 인간인가요, 짐승인가요.”

“인간도 짐승의 일부입니다.”

“짐승도 우리만큼은 안 할걸요.”

둘 다 짐승 이하의 성적 자제력을 가지고 있어서 탈이었다. 적어도 한쪽은 이성적이어야 하는데.

“소설 속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자세히 묘사할 수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건 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괴롭혀지는 당사자가 되는 건 싫단 말이다! 비비안은 화끈거리는 볼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살갗이 불타는 것처럼 활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에이든이 ‘소설 속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라는 말을 언급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이 장소가 황궁에서 열리는 연회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그는 상대방이 동하게 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나는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한 거야.’

그야 작가니까 당연히 상상력이 풍부하겠지.

그녀는 평소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장점이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고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과 별개로 상상은 제멋대로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청초한 미모와 가녀린 몸매, 그리고 몸에 밴 교양 있는 자태로 사교계의 꽃이라고 불리는 여자주인공.

대공과 백작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온갖 짓은 다 당한 그녀였지만, 이제는 남자주인공과 모든 갈등을 풀고 이제 행복해질 앞날만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황궁에서 열리게 될 연회에 참석해 그와의 약혼을 발표하고 모두의 축복 속에서 배꽃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다. 새하얀 연회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마치 봄날의 신부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불행 속에서 겨우 찾아온 행복이었다. 마음을 놓은 탓일까, 그녀는 조금 과음을 하고 만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칵테일을 들고 테라스로 향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뒤를 쫓는 검은 그림자.

말할 것도 없이 순진한 그녀를 괴롭히고 희롱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남자주인공 되시겠다.

그는 갑갑하고 꽉 막힌 곳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를 보니 왠지 저 얼굴이 쾌락에 일그러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고 싶어졌다.

‘아니, 잠깐만. 나 지금 왜 남자한테 이입해서 상상하고 있는 거지.’

비비안은 잠시 상상하던 것을 뚝 하고 멈췄다.

사실 그 이유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청순가련하고 순수하며 자기주장이 뚜렷하지 못한 여자주인공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한 떨기의 꽃처럼 가녀린 여자가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며 희롱당하는 상상은 도저히 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음흉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관능 소설 속 남자주인공 쪽이 더 이입하기 쉬웠다.

그래, 역시 괴롭히는 쪽이 더 좋다니까.

이게 뭐람. 어쩐지 갑자기 팍 식은 기분에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제가 지금 무슨 상상한 줄 알아요? 여자주인공 치마폭에 들어갔다고요.”

그 말에 에이든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지간히 웃겼는지 그의 웃음소리는 한참이 지나도 잦아들지 않았다.

“엉뚱하기는.”

겨우 끅끅거리며 튀어나오는 웃음을 집어삼킨 그는 허벅지 안쪽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손길이 담고 있는 의도는 명백했다.

“굳이 이 일에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접 보여 드릴 테니까요.”

“이 장면만 쓰면 완결인데…… 아으!”

완결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에이든은 속옷을 옆으로 슬쩍 밀어내고 안쪽에 혀를 집어넣어 핥기 시작했다. 쓰라리다는 그녀의 말을 의식해서인지 마치 상처를 핥아 주는 어미 고양이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서서히 조금씩 파고들고 오는 혀는 애가 탈 정도로 느릿했다. 그의 습기 찬 뜨거운 숨결 때문에 벌써 아래가 젖어 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비비안은 서 있는 채로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기분 좋다.

쓰라렸던 음부도 이내 축축하게 젖어 들어 꿀 같은 애액을 흘렸다. 서서히 벌어지는 꽃잎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동반해도 정성스럽게 애무해 주는 말캉한 입술과 혀가 고통을 씻은 듯이 없애 주었다.

오히려 그녀의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다리 좀 더 벌려. 옳지.”

“흐응!”

에이든은 그녀의 다리를 살짝 더 벌리게 한 뒤 잘했다는 듯 딱딱해진 클리토리스를 깊게 빨아들였다. 이미 지난밤의 여파로 통통하게 부풀어있던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강렬한 자극에 비비안은 그만 다리가 꺾일 뻔했다. 그녀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치마 위로 더듬더듬 그의 어깨를 짚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에이든이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다리를 붙잡고 있어서 애초에 넘어질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따가우니까 세게 하지 말아요.”

“좋아하잖습니까. 자극이 강해서 약간 괴로울 정도로 하는 거.”

그는 ‘당신이 쓴 여자주인공처럼.’ 하고 덧붙여 말하더니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애액을 길게 핥았다.

“아, 아니거든요. 저랑 여주는 전혀 달……!”

에이든은 다시 그곳을 입술로 물고 강하게 흡입했다.

“흐으응.”

참지 못하고 비비안의 입 밖으로 앓는 듯한 신음이 툭 튀어나왔다. 그가 뾰족하게 세운 혀로 선단을 후벼 파듯 찌르자 그녀는 발끝에 바짝 힘을 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가에 아롱아롱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비비안과 전혀 다른 것 같아도 닮은 부분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피조물이니까.”

“흐으…… 무, 물론 그건 인정하지만! 알았어요. 일단 떨어져 봐요.”

당연히 에이든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런 식의 반항은 비비안이 튕기는 표현인 것을 이미 경험상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비안은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남자를 거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체 내 몸은 왜 이렇게 에이든에게 약한 걸까.

작게 한탄을 하는 사이 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손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엉덩이를 한가득 움켜쥐더니 강한 힘으로 주물럭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척을 하는 혀와 입술과 달리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그녀를 거칠게 다루고 싶은 욕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그의 한쪽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찰싹 내리쳤다. 살집이 많고 탱글탱글한 그것이 위아래로 가볍게 출렁거렸다.

“하윽!”

아프지는 않았지만 비비안이 깜짝 놀라 파드득 떨 정도는 되었다.

“좋아하시네요. 당신의 소설처럼.”

“이건 우연히 누가 하는 걸 보다가…….”

그녀는 황제와 카르델의 정사를 떠올리며 멍하니 대꾸하다가 솔직히 말했다.

“좋은 것 같기도.”

그녀는 대체 왜 이게 좋은 건지 의아해졌다.

‘맞는 게 왜 좋지.’

지금까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거로 봤을 때 굳이 둘 중에 고르자면 가학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머리로 내린 판단보다 몸은 정확한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피가학이든 가학이든 엉덩이를 맞는 게 기분 좋다는 걸 말이다.

하긴 어떻게 인간의 성향을 반으로 뚝 나눌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희롱하는 것도 좋고 엉덩이를 찰지게 맞는 것도 좋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순진하고 고분고분한 여자주인공도 언젠가 남자주인공을 침대에 묶어 놓고 방치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건가!’

그녀 또한 언젠가 새로운 성향에 눈뜨게 될지도 몰랐다. 오, 이거 특별 부록 같은 거로 나쁘지 않겠네.

‘에이든은 천재야.’

혼자 결론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비비안은 아까 싫다고 내뺄 때는 언제고 감탄했다. 운 좋게 손에 노트와 깃펜이 들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와중에도 열심히 배운 내용을 필기하고 있었다.

남자주인공이 혼자 오해해서 여자주인공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으니 적어도 한 번쯤은 호되게 당해 줘야지.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에이든도 새로운 세계에 눈 뜰 생각 없으세요?”

비비안은 그를 침대에 묶어 두고 괴롭힐 생각에 들떴다가, 헤어질 날이 얼마 남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은 곧 완결…… 아흑!”

찰싹 때리는 매서운 손길이 이번에는 좀 아팠다. 그녀는 어깨를 움찔 떨며 화끈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한 엉덩이 때문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살갗이 쓰라렸지만 동시에 전기가 오른 듯 저릿저릿하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질 내부를 바짝 조이며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어쩐지 야릇한 느낌이 들어 허리가 들썩이자 그가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비비안의 반응을 보고 또 하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그녀 또한 그랬다.

“자꾸 건드리니까 하고 싶어졌잖아요!”

그 말을 하기 기다렸다는 듯 에이든이 드레스 자락을 젖히고 나왔다. 여인의 치마폭에서 나오는 굉장히 우스운 꼴이었음에도 그의 기세는 여전히 당당했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도, 살짝 상기된 볼도, 색기 어린 눈웃음도 절정에 달하고 난 직후처럼 야해서 그녀는 슬슬 뒷걸음질을 치며 볼을 긁적였다.

저 꼴을 하고도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만약 그가 길가에 부랑자처럼 누워있어도 사람을 압도하는 저 특유의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여자주인공에게 이입하실 수 있겠습니까?”

“덕분에요.”

반쯤 포기한 그녀의 눈은 이미 몽롱하게 풀려있었다. 비비안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와의 관계는 좋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좋아 죽을 지경이었기에 문제였지.

어차피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끝을 화끈하게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나자 그가 단단히 어깨를 감싸 안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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