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영지시찰 =========================
“하긴, 은빛링을 매달고 계신 것을 보니 백작님께 사랑받지 못하시는군요”
링은 백작의 개인 가축과 노예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식이었지만, 그 색이 은색인 것은 쇠나 구리로 만들어 소유만 백작인 것을 나타내는 저급 소유물들의 바로 윗단계였던 것이다.
메리가 하고 있는 보석으로 치장한 최고의 피어싱, 그리고 그 밑의 금빛 피어싱들이 보통 백작이 관심을 가지고 사용하는 가축과 노예였고, 쓰레기나 다름없는 쇠나 구리 피어싱을 제외하면 은빛 링은 최하급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피식.
“아마, 백작님을 모신다는 것에 있어선 기사님 보다 제가 더 뛰어난 것 같군요.”
포니걸이 제시의 은빛 링과 자신의 화려한 금빛 포니걸 피어싱을 번갈아 바라보며 비웃었다.
“익! 나의 주군은 호그장남님이시다! 백작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제시는 가축에게 비웃음이 섞인 도발에 열이 뻗쳐오르며 백작을 부정했다.
앙다문 이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오며 몸이 들썩거렸다. 거대한 젖가슴에 달린 은빛 피어싱과 체인이 출렁이는 하얀 젖가슴에 맞춰 반짝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유두와 클리토리스를 안타깝게 자극한다.
‘흐윽! 이런 체인과 피어싱따위, 날 기사가 아닌 가축따위로 여긴다는 증거일 뿐이야!’
방금 전 시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떠오르며 제시의 감정이 격앙됬다.
자신에게 이 음란한 복장을 강제로 입히며 속삭였던 달콤한 한마디가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나만의 특별한 복장이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나 가축보다 뛰어난 최고의 가슴이라고 했는데...!’
“흐윽! 아흐읏...!”
제시는 스스로 자신의 젖가슴을 거칠게 쥐어잡았다.
이 부끄럽기만 했던 비정상적이기까지한 거대한 젖가슴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고 아름답게 보였던 체인을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지금 기사님의 주인이 누구인진 잘 모르겠지만 별로 행복해 보이시진 않는군요”
포니걸은 비웃음을 거두고 제시에게 말했다.
자신에게 영문모를 소리를 하며 무시하는 여기사를 향해 단순히 도발을 한번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여기사가 걱정됬던 것이다.
어지간한 기사도 무시하는 최고급 포니걸이었지만, 근본적으로 하등한 가축인 자신보다 우월한 인간에 대한 복종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의적인 행동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 나는 기사로서 충성을 다할 뿐이야!”
제시는 혼란스런 와중에도 주군인 호그장남을 깎아내리는 듯한 말에 거칠게 소리쳤다.
워낙 크게 소리쳐서 마부석에 앉아있던 마부가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 주인은 다르지만 똑같이 주인을 모시는 처지 아닙니까? 백작님을 모시고 저처럼 영광되고 행복하게 되시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뭐?”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포니걸이 대답했다.
아마도 똑똑한 포니걸이라지만 사람과 똑같은 수준에서 계속하여 토론을 한다는 것은 지식적인 면에서나 사고적인 면에서나 동등하기는 힘든 것 같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니걸의 지식수준이나 사고수준이 아니었다.
가축인 포니걸과 똑같은 처지.
‘내가 가축과 똑같이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다고...?’
충성을 바치는 주군과 소유자인 주인의 뜻은 달랐지만, 포니걸은 그것까진 구분하여 사용하지 못하는 듯 했다. 호그남작과 백작 모두를 제시와 자신의 주인으로 호칭했던 것이다.
그러나 피곤하고 혼탁해진 제시의 정신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 걸러내어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기사는 주인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것... 가축인 포니걸과 무엇이 다른거지...?’
수십, 수백시간 넘게 미약과 피곤이 쌓인 정신은 제대로된 판단력을 거의 상실했다.
경이적인 정신력과 엄청난 수준의 육체적 능력에 의해 쓰러지지 않고 일상생활을 한 것이 기적같은 일이었다.
‘정말 백작님께 충성을 바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스스로 충성을 바친다면...’
육체적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수백마리가 넘는 가축을 보아왔고, 휘하의 수많은 기사를 거느린 백작이 감탄할만한 정신력과 의지력, 그리고 체력을 갖춘 기사가 제시였던 것이다. 하지만 번식장과 시장에서 가해진 거듭된 정신적 충격으로 제시의 정신은 슬슬 한계까지 몰리고 있었다.
‘아아... 호그장남님, 정말 저를 잊어버리신 겁니까. 어째서 아무 소식도 없으신 겁니까...!’
주군인 호그장남이 재차 사절을 파견해오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따로 전달되는 정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주군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믿음만으로 기다린 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사삭!
멍하게 앞을 바라보는 제시의 시선에 무언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걸려들었다.
기사의 전투적 본능에 의해 혼란스런 정신 속에서도 그것의 정체를 파악한 제시는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호그영지에서 도망친 난민이 틀림없어!’
얇은 거적떼기를 걸치고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주시하는 자는 성문 앞을 지나칠 때 보았던 난민 중 한명이 틀림없었다.
타릭과 백작은 그들이 거지떼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영지시찰을 하면서 그들을 억지로 만나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그 말을 믿는 것은 바보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붙잡아서 호그영지의 상황을 물어본다!’
백작의 명령으로 철저하게 난민이 통제되고 제시가 그들을 만나는 것 까지 따로 명령을 내려 막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
제시는 거적떼기를 걸친 난민이 사라진 골목을 향해 빠르게 사라졌다.
“기사님이 뭐라시더냐 질?”
“사람이 되고 싶진 않냐고 물어봤습니다”
백작을 모시는게 자랑스럽지 않냐고 물어본게 더 많았지만, 포니걸 ‘질’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기억은 그것이었기에 대답했다.
“뭐? 하등한 가축인 포니걸이 어떻게 사람이 돼! 어이가 없군!”
“기사님은 가축을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도 알고 있는 걸까요?”
“뭐라고?!”
포니걸 ‘질’은 아무런 의미 없이 단순히 어떻게 태생부터 하등한 가축이 주인들인 우월한 인간과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질문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가축에게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지능저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인간과 비슷한 사고체계를 갖출 위험성이 있는 애완가축과 포니걸은 가축으로서 존재자체를 확립시키는 특별한 조치가 취해졌던 것이다.
“하등하고 저급한 가축 따위가 사람이 되는 방법따윈 없어! 당장 잊어버려라 질!”
“네, 마부님”
‘똑똑해서 명령하기도 쉽게 관리하기도 쉬웠는데 큰일이군, 불량품이 발생하다니, 쯧쯧...’
포니걸 ‘질’은 제시에 질문 때문에 전혀 아무런 의미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마부의 입장에선 포니걸 치고는 지나치게 똑똑한 질이 훈련이나 양성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불량품이라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저년이 다른 포니걸에게 무슨말을 할지도 몰라, 영지로 돌아가면 보고부터 올려야겠어’
백작의 마차를 끄는 최고의 포니걸에게는 조그마한 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마도 자신이 보고를 올리면 재교육을 받으러 끌려갈 것이고, 등급이 하락해 짐마차를 끌거나 지능저하 조치를 취해 번식장에서 죽을 때 까지 명문 포니걸의 혈통을 생산할지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이 제시의 쓸데없는 질문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포니걸 ‘질’은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골목으로 사라져가는 제시의 모습을 힐긋 바라보고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백작의 마차를 끄는 곧고 아름다운 최고급 포니걸의 자세를 취했다.
============================ 작품 후기 ============================
새우군주님 쿠폰 감사합니다!
그리고 쿠폰을 1장, 2장 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불쌍한 포니걸... 무심코 던진 돌이 포니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