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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백작 조교와 사육의 영지-44화 (44/144)

00044 영지시찰 =========================

“인간만도 못한 가축주제에 어떻게 그런 도도하고 자신만만하게 있을 수 있는 거지?“

속마음이 부지불식간에 입으로 튀어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매우 혼란스럽고 피곤한 제시는 자제심이 극도로 떨어져 있었다.

제시가 곧고 우아한 자세로 정렬해 있는 포니걸에게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

그러나 고개를 들고 앞만 쳐다보고 있는 포니걸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부의 명령과 고삐 이외에는 반응하지 않게 철저히 훈련된 것 같았다.

사실 포니걸도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지녔기에 사람들의 신분구별정도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눈앞의 여기사는 기사라는 신분을 갖고 있긴 했지만 포로나 노예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았기에 바로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백작의 마차를 끄는 전용 포니걸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매우 높았다.

“지금 너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포니걸”

제시가 포니걸의 턱밑까지 다가가 얼굴을 치켜 올리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무시할 수 없게 직접 찾아가 대답을 강요한 것이다.

포니걸이 정면을 바라보던 고개를 움직여 제시를 내려다보았다.

포니걸들은 혈통적으로 키가 크고 강건한 육체를 갖도록 변이하였기 때문에 여자 중에서도 작지 않은 키를 가진 제시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특히나 킬힐보다 더욱 아찔한 각도로 치켜세워진 포니부츠는 포니걸의 키를 제시보다 머리통 한 개는 족히 더 높게 키워놓았다.

“...지금 저에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보지기사님?”

아무리 제시가 아직 백작의 소속이 아니고 포로나 노예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다지만, 기사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더 이상 무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너 말이다 포니걸. 가축주제에 기사의 말을 무시하다니 배짱도 좋네”

제시가 팔짱을 끼어 거대한 젖무덤을 치켜올리고 푸른 눈빛을 모아 서늘한 시선을 쏘아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에 아니꼬운 분노가 치밀어 오른 제시의 어조는 결코 곱지 않았다.

포니걸마차를 처음 보았을 때문해도 어찌 인간을 말처럼 부리며 마차를 끌게 할 수 있냐고 생각했지만, 번식장에서 큰 의식의 변화를 겪은 제시에겐 더 이상 눈앞의 여성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보지기사님. 저희는 언제나 바른자세로 마부와 고삐의 명령만 듣도록 훈련받은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부석에 앉아있는 마부의 눈치를 힐긋 살핀 포니걸이 제시의 물음에 대답했다. 마부도 지금 상황을 보고 있었고, 상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야기를 해도 나중에 혼나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작의 포니걸이면 최고의 혈통을 가진 포니걸 중에서도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선발된 최고의 포니걸 이었기에, 고삐와 마부 이외에는 왠만한 자극이나 사건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비록 가축이었지만 애초에 이런 백작의 마차를 직접 이끄는 최고의 포니걸은 백작과 포니걸을 관리하는 마부와 축사관리인 이외에는 왠만한 기사들도 건드릴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포니걸의 콧대는 매우 높았다.

‘언제나 말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건 제일 똑똑한 내가 해왔으니까... 하고 콧대만 높은 쟤네들 보다 내가 대답하는게 빨리 끝나겠지’

자신이 대답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지금 제시가 지목한 포니걸은 포니걸 중에서도 특히나 똑똑하여 최연소 최단기로 훈련을 마친 후에 백작의 포니걸이 된 케이스였다. 아무도 몰랐지만 이 포니걸의 지능은 평범한 포니거르이 지능보다 훨씬 높았다.

“흥, 그보다 내 질문에 대답해라”

“가축주제인 저의 자세에 대해 물으셨다면... 백작님의 마차를 끌어 봉사할 수 있는 영광된 일을 하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포니걸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연한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마치 너무나 당연한 일을 묻는 제시를 오히려 이상하게까지 보는 것 같은 말투였다.

“옷도 입지 못하고 평생 축사에서 살면서 마차만 끌다 나이가 들면 버려지는 비참한 인생이 영광이라고? 후후”

제시는 자신이 평소 가축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비참함을 가득 담아 반문했다. 세상을 모르는 불쌍한 모습에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지능이 꽤나 뛰어나다고 했지만 결국은 조교받은 암컷 가축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축이 옷을 입어야 합니까? 아름답게 가꾸고 훈련한 제 몸을 가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포니걸의 생각은 애초에 제시와는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애초에 ‘가축의 모습을 한 인간’ 이라는 제시의 무의식과, ‘인간의 모습을 한 가축’ 이라는 포니걸의 생각은 출발점 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옷을 입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옷을 입는 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자랑거리를 감추는 부끄러운 짓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작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능력을 저의 자랑스런 다리로 제공해 드리는 일은 최고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주인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이야...’

제시는 포니걸의 생각에 맹목적인 무엇인가를 느꼈다. 가축 따위지만 멍청하게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의적인 신념같은 것을 감지했다. 자신이 기사로서 주군에게 바치는 충성과는 달랐지만 몸과 마음을 바치는 자세는 비슷했던 것이다.

‘가축이외의 생활을 모르고 하는 말인가? 아니야, 그렇다고 하기에는 말도 횡설수설 하지않고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아 충분히 똑똑한 것 같아’

제시는 포니걸의 복종이 정말 자신의 충성과 같은 것일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명령에 따르기만 하고 있는 것일지 궁금했다.

“좀더, 오래 살 수도 있어.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도 있고”

“힘이 떨어진 쓸모없는 몸으로 어떻게 산단 말입니까? 힘이 떨어지면 뒤를 이을 암컷을 생산하고, 쓸모없어진 육체마저 고기로 사용해 주시기까지 하니... 가축으로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자 행복을 누릴 수 있는게 저희 포니걸입니다.”

죽음의 개념마저 달랐다.

노쇠해도 생을 이어나가는 사람과는 달리, 육체의 힘이 다하면 동시에 생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노쇠한 육체마저 번식과 고기로 활용해주는 것은 생의 마지막 목적을 달성하게 해주는 영광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최후를 주인에게 바친다...”

하지만 가축의 광신적이고 맹목적인 일생은 자신이 뼛속까지 새겨왔던 기사도와 일치하는 것이 있었다.

‘충성...?’

주인, 주군을 위해 최후까지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기사가 자신의 주군에게 바치는 충성이었다.

“간혹 최고의 포니걸 중에는 백작님의 눈에 들어 젊음이 시들기 전에 박제되는 영광을 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포니걸로서 백작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제시가 자신의 말에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포니걸이 모든 포니걸의 꿈과 같은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백작의 전시실에 박제가 되어 영원히 최고의 포니걸로 기억되는 것. 박제가 되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포니걸은 혈통적으로도 보증을 받게 되어, 엄청난 자부심과 부러움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포니걸인게 자랑스럽나...?”

“...? 저는 포니걸입니다. 그 중에서도 백작님의 마차를 끄는 최고의 포니걸입니다. 저보다 영광스럽고 뛰어난 가축이 있겠습니까?”

“사람으로서... 백작님께 충성을 바치고 싶어한 적은...?

“계속 같은 것을 물으시는군요. 저는 포니걸입니다. 그것도 흔한 식용 가축이나 젖소처럼 저급가축이 아니라, 고급 혈통의 가축 중 에서도 고된 훈련을 통해 선발되어 백작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포니걸”

“그러니까...”

제시가 계속해서 가축과 인간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더 이상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포니걸 또한 제시가 계속해서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것에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가축인 포니걸에게 말도 안되는 이상한 질문을 계속하는 여기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전부다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저보다 우월한 인간으로 태어나 백작님께 몸바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도 있으면서 그 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니...”

포니걸이 계속된 제시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하던 와중, 가축과 노예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피어스를 발견했다.

“하긴, 은빛링을 매달고 계신 것을 보니 백작님께 사랑받지 못하시는군요”

============================ 작품 후기 ============================

작품 설정에 포니부츠 이미지가 있습니다.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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