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배반의 끝
캐서린은 밀려드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리카르도의 배신, 아버지의 배신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또 다른 배신. 본디 회의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죽음을 겪고 나서는 인간 자체에 대한 기대를 잃은 그녀가 놀라는 지점은 루드비히가 자신을 배신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거지?’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욕망을 위해 움직인다. 리카르도는 입안의 혀처럼 구는 에일린을 향한 욕망을 위해 캐서린을 죽였고, 캐서린의 아버지는 스왈렛 공작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제 딸을 버렸다. 사생아로 일평생 굴욕을 당했을 루드비히가 에넨체 대공위를 욕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과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루드비히는 당연히 대공 자리를 원할 거야.’
그 욕망을 이용해 계약 결혼까지 제안한 주제에 새삼스레 놀랄 이유는 없었다. 에일린이 그녀보다 더 나은 제안을 했다면, 루드비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분이 치밀어 손발 끝이 덜덜 떨려 온다. 캐서린은 치솟는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입술을 꾹 깨문 채 침대 위로 엎어졌다. 화가 났다. 서러운 것 같기도 했다. 배신당한 마음이 아팠다.
‘내가 경을 너무 믿었던 걸까?’
리카르도와는 달리 차분한 가을 숲의 바람처럼 단정한 이라서, 그 어떠한 욕망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그녀를 도와줄 것처럼 굴어서 자신도 모르게 믿음을 줬던 모양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캐서린은 동이 트자마자 에일린의 저택으로 몸을 틀었다. 황제가 하사한 에일린의 저택은 우아한 고택의 모양을 고스란히 따라 지은 건물이었다. 그녀의 집이 스왈렛 공작저와 흡사하다는 느낌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캐서린은 하녀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에 들어섰다.
“연락도 없이 대뜸 찾아오다니, 무례하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에일린이 응접실에 들어섰다. 느긋하게 소파에 기댄 채 에일린을 맞이한 캐서린은 하녀가 내온 애프터눈티를 한 모금 마신 다음 그녀를 힐긋 돌아보았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뭐죠?”
“에넨체에게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건가요?”
직접적으로 에일린의 속내를 캐묻는 캐서린의 눈은 고요한 숲처럼 차분하고 깨끗했다. 맑은 그녀의 눈을 마주한 에일린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었으니까.
“내가, 에넨체 대공가에 집착한다고요? 그건 당신이겠죠.”
“……아뇨. 나와 리카르도의 약혼은 대공과 아버지의 뜻이지, 내 뜻은 아니었어요.”
캐서린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가문의 의무를 다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스왈렛과 에넨체를 위해 대공비의 임무를 떠안았고, 리카르도의 그릇된 욕망을 위해 죽임까지 당했었다.
‘지금 내가 에넨체를 뒤흔들고 싶은 건 일종의 복수심일 테지.’
에일린이 루드비히에게 접근했다는 추측을 끝마친 캐서린은 문득 그녀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을 살해할 정도로 리카르도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게 아니었던가. 단순히 대귀족의 작위를 원하는 것이라면, 제국에 대귀족이 에넨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루드비히를 통해 작위를 얻는 건 현실적으로 더더욱 어려운 길이 될 테고.’
대공의 약점을 쥐고 루드비히를 후계자 자리에 앉히는 건 가능하겠지만, 에일린이 루드비히와 결혼해 대공비가 된다고 해도 그 권력은 오래가지 못할 터였다. 그만큼 반델 제국에서 핏줄 안에 흐르는 고귀한 푸른 피의 의미가 대단했으니까. 둘은 사생아 부부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할 수도 있었고, 캐서린은 에일린이 그런 추문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니까 편하게 대답해도 좋아요.”
캐서린의 물음에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에일린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해도 좋아요? 지금 날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해요.”
캐서린은 뜬금없이 화를 내는 에일린을 올려다보며 두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차분한 녹안을 마주한 에일린이 눈살을 찌푸린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에넨체에 집착하는 이유. 자신이 에넨체에 집착하는 이유라…….
‘내가 그딴 걸 왜 알아야 하지?’
자신은 에넨체 대공비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캐서린이 대공비 자리에 오르는 것이라도 막고 싶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이던 에일린은 제 앞에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 어린 시절 황제를 조르고 졸라 겨우 초대받은 티파티에서 처음 봤던 캐서린은 그때부터 고아한 사람이었다. 졸렬함이나 비열한 감정 따위는 모른다는 듯,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구름처럼 잡을 수 없는 사람.
에일린은 자신이 리카르도와 루드비히까지 탐을 내는 이유가 곧 캐서린을 망가뜨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속마음을 드러내는 대신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집착하는 게 아니라, 에넨체의 남자들이 제게 끌려 하는 것일 뿐이에요.”
“에넨체의 남자들이요.”
캐서린이 되묻는 말에 에일린이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리카르도뿐만 아니라 루드비히까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겠죠?”
캐서린은 에일린의 뻔뻔한 태도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늘 저런 태도로 자신의 잘못을 부정했으니까.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의 에일린은 자신이 리카르도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서 리카르도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건가요?”
캐서린의 덤덤한 반응에, 에일린은 더 발끈해서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캐서린이 자신을 몰아붙이기라도 한다는 양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은 리카르도를 배반하고 루드비히 위그노아를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상관할 바 있나요?”
정확히 말하면, 리카르도와 캐서린은 연인이었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에일린은 캐서린이 먼저 불륜을 저질렀다는 양 경멸의 시선으로 캐서린을 노려보았다.
“리카르도는 나를 사랑해요. 뒤늦은 질투 따위 하지 마세요. 추하고 천박하니까.”
익숙한 말이었다.
캐서린은 에일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익숙한 단어에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만약 리카르도가 날 사랑한다고 해도 남편 간수를 제대로 못 한 건 당신인데, 왜 내게 화를 내는 거죠? 추하고 천박하게.”
캐서린은 불륜이 발각되자 되레 자신을 비난하던 에일린을 떠올리며 피식, 덧없는 웃음을 흘렸다.
“불륜을 저지른 건 당신과 루드비히잖아요! 리카르도와 나는 순수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일 뿐이에요.”
리카르도와의 관계를 끝끝내 인정하지 않던 그녀는 기어코 루드비히와 캐서린에게 누명을 씌우기까지 했었다.
“리카르도와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치고, 그럼 루드비히는 어떻게 된 거죠?”
“경이 어제 나를 찾아왔어요. 대공위에 오르면 당신 말고 날 선택하고 싶다고 구걸하면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에일린의 세 치 혀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캐서린은 그녀의 입에서 루드비히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이 불쾌했다.
“루드비히가 당신에게 먼저 접근했다는 말인가요?”
“네, 맞아요.”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듣기 싫은 말이 있는 법이다. 캐서린은 에일린과 루드비히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정작 리카르도와 에일린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혼란스러운 얼굴에 제 공격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에일린은 주홍빛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발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들의 마음을 받아 줬을 뿐이에요. 제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걸 어떡하나요? 캐서린이 당신이 조금 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키우는 편이…….”
“에일린.”
에일린의 잔뜩 비뚤어진 말에 캐서린은 한숨처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게 앉아 있던 캐서린은 느긋하게 일어나 자신을 앙칼지게 노려보고 있는 에일린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꺄아악!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정말 추하고 천박한 꼴을 보기 전에, 몸을 조금 사리는 게 좋을 거예요.”
에일린의 머리를 전부 뜯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거칠게 바닥에 내리꽂은 그녀는 여전히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스왈렛의 캐서린은 매력을 ‘키워야만’ 하는 위치가 아니니까요.”
아무리 에일린이 황제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 봤자, 캐서린은 제국의 유일한 공녀였다. 그녀가 바닥에 맞붙은 에일린의 뺨을 짓밟기라도 하려는 듯 발을 움직이자, 에일린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
겁을 집어먹은 에일린이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캐서린은 이미 우아하고 날렵한 고양이처럼 응접실을 벗어난 후였다.
***
루드비히는 에일린을 선택할 것이다. 공작저에 돌아온 캐서린은 혼자 단정 짓듯 결론을 도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따졌을 때, 루드비히의 입장에서는 에일린을 고르는 게 더 나은 선택일 테니까.
‘에넨체 대공이 세금을 횡령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게는 증거가 없으니까.’
에일린이 황제를 등에 업고 대공을 압박한다면 루드비히에게 적당한 명분을 쥐여주고 대공 작위를 넘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반면 캐서린을 선택해 대공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스왈렛 공작가를 통솔하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잘 차려진 만찬을 즐기느냐, 처음부터 요리를 하느냐의 차이니까 당연히 에일린을 택하겠지.’
루드비히가 그녀가 아닌 에일린을 선택한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질 만큼 큰일은 아니었다. 그를 대신해 스왈렛 공작가의 데릴사위 역을 할 만한 남자는 찾으려고만 든다면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리카르도와 에일린에게 복수하는 일도, 시간을 두고 다른 방향으로 틀면 된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빠.’
에일린에게 확실히 분풀이를 했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꺼질 듯 가라앉은 기분은 여전했다. 캐서린은 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중충한 하늘을 힐끗하며 연무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위그노아 경은 어디 있니?”
연무장 근처에 서성거리는 시종 한 명을 찾아 짧게 명령하자, 두피가 보일 정도로 머리를 민 남자아이가 화들짝 놀라 허리를 숙였다.
“헉. 아마 무기고에 계실 거에요, 아가씨. 안내해 드릴까요?”
“괜찮아. 위치 정도는 아니까.”
스왈렛에서 나고 자란 캐서린이었지만 무기고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여자가 함부로 드나들면 기사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며 로넌이 캐서린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니까. 그가 알게 되면 경을 칠 일이었지만, 캐서린은 더는 로넌 스왈렛이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 따위를 무서워하다간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테니까.’
루드비히를 찾아 무기고에 당도한 그녀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손잡이 위에 손을 얹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쿵, 심장이 가라앉는다. 묘하게 약혼식 전날 밤을 떠올리는 분위기였다.
어깨를 두드리는 부슬비, 코끝으로 맡아지는 부옇게 떠오르는 흙먼지의 냄새, 방 안에 누가 있는지 명백히 알았지만 함부로 문을 열지 못하는 망설임 따위가 섞여들어 캐서린의 심장을 아프게 조여 왔다.
문을 열까, 말까, 캐서린이 한참을 망설이며 고민하는 찰나였다. 낡은 나무문이 삐끄덕 열리며 익숙한 인영이 덜컥 시야 안에 들어왔다.
“……캐서린?”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루드비히는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올려다보는 이 순간에도 넋이 나갈 만한 미남이었다. 얼음조각처럼 서늘한 인상은 유독 캐서린을 대할 때는 다정한 빛을 띠곤 했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이제 막 훈련을 끝낸 루드비히는 가벼운 셔츠 차림이었다. 캐서린은 땀에 젖은 흰 셔츠 사이로 비치는 그의 가슴 근육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훑으면 돌처럼 딱딱한 근육질의 몸이 가볍게 움찔할 것이 예상되었다.
‘귀는 붉어질 테고, 입술은 살짝 벌어질 테지.’
적당히 도톰한 입술 사이로 보이는 고른 치아는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아랫배가 조여 왔다.
그와 아주 많이 몸을 섞어 본 것도 아니었건만, 캐서린은 벌써부터 루드비히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모양인지 무뚝뚝한 얼굴로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캐서린.”
캐서린은 이미 단추가 몇 개 흐트러진 루드비히의 셔츠 자락을 붙들었다. 가볍게 붙들린 목깃에 루드비히가 부드럽게 끌려왔다. 우뚝 솟은 잘생긴 콧날을 코앞에 둔 캐서린은 그가 또다시 입을 열기 전에 그의 입술을 덥석 깨물었다.
“읏.”
놀란 루드비히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그는 그녀를 밀어내진 않았다. 다만 누군가 그들을 발견할까 황급히 그녀를 무기고 안으로 끌어들였다. 쿵.
거칠게 닫힌 문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진다. 루드비히를 벽으로 밀어붙인 캐서린은 그를 옭아매듯 혀를 엮어 왔다. 계속해서 루드비히를 밀어붙인 그녀가 그의 얇은 셔츠를 찢을 듯 벗겨 내자 윤곽이 두드러진 탄탄한 복근이 드러났다. 캐서린은 당황한 루드비히의 반응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섬세한 결이 살아 있는 그의 복근을 한 손으로 훑어 내렸다.
“벌써 섰네요.”
짧은 키스 한 번 그리고 몸을 조금 쓰다듬었을 뿐인데 루드비히의 남성은 옷을 뚫고 나올 것처럼 단단하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옷 밖으로 귀두 끝을 톡 두드리자, 루드비히가 수치스럽다는 듯 짧은 신음을 흘린다.
“나랑 자는 걸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어떻게 에일린에게 넘어갈 수 있어요?
캐서린은 울컥 치솟는 물음을 애써 삼킨 채 루드비히의 바지를 벗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훈련을 할 때는 평소와 다른 벨트를 착용하는 건지, 처음 보는 가죽 벨트는 좀처럼 풀기가 쉽지 않았다. 어설프게 손을 움직이는 캐서린을 빤히 내려다보던 루드비히가 입술을 꾹 깨문 채 대신 벨트를 풀어 버렸다.
“기다리면 내가 벗겨 줬을 텐데요.”
“당신이 급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캐서린은 루드비히의 무뚝뚝한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에일린과의 일만 아니었다면 귀엽게도 들렸을 대답이 가증스럽게 들려왔으니까. 밉다. 캐서린은 그 순간 루드비히에게 자신이 가진 감정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가 미웠다.
하지만 왜?
“흐읏.”
제 감정을 살피느라 캐서린이 잠시 넋을 놓은 사이, 바지를 풀어내린 루드비히가 캐서린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치렁치렁하게 흘러내리는 새빨간 머리칼 사이로 파고든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가 여차하면 깨질 보석이라도 된다는 양 소중하게 쓰다듬는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코끝이 맞부딪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루드비히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사랑이라도 속삭일 것처럼 절절한 목소리에 캐서린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당신이 내게 괜히 이렇게 다정하게 굴어서 내가 이런 감정이 드는 거야.’
애초에 그녀가 제안한 계약의 조건은 깔끔하고 사무적인 관계였다. 서로가 서로의 핏줄만을 이용할 수 있는.
하지만 루드비히는 과하게 그녀의 안위를 걱정했고, 격정적으로 안아 댔다.
‘그게 더 나쁜 거라는 걸 모르는 거겠지.’
본디 다정한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기사였으니까. 자신의 레이디를 위하는 것은 기사도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울컥 치솟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문 캐서린은 답답한 드레스를 벗어 던졌다. 페티코트까지 한 번에 벗어 던진 탓에 순식간에 속옷 차림이 된 그녀를 앞에 두고 루드비히의 벽안에 단단한 열기가 자리 잡았다.
“그래요, 당신은 날 거부할 수 없겠죠.”
뒤늦게 루드비히의 말에 대답하며 캐서린은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루드비히에게 안겼다. 힘든 기색 없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든 그가 움푹 파인 그녀의 쇄골에 새털같이 가볍게 입을 맞췄다.
캐서린은 길게 뻗은 두 다리로 루드비히의 날렵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남성적인 허리선을 천천히 쓰다듬자, 그가 신음을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상체를 움직였다.
“날 안아 줘요.”
캐서린의 명령에 루드비히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인 다음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지탱한 채 다른 손으로 그녀의 볼을 붙잡아 입을 벌렸다.
“흐읏.”
캐서린이 시작했던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혀와 혀가 얼기설기 섞이고, 캐서린은 자신의 모든 것이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기분에 휩싸였다. 내벽이 촉촉이 젖어 듦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루드비히는 한 손으로도 어려움 없이 그녀를 지지했다.
남김없이 캐서린의 입안을 탐한 루드비히는 그녀를 창가 위에 올려놓았다. 낡은 나무판자가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위태롭게 울렸지만, 그런 사소한 소음을 신경 쓸 정신 따위는 둘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캐서린의 하얀 허벅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레이스 속옷을 잡아당기자 창가에 비치는 희붐한 달빛을 받아 진주처럼 빛이 나는 엉덩이가 드러났다. 루드비히는 표면에 자신의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억세게 그녀의 엉덩이를 쥐어 잡았다.
“아!”
적당한 고통과 함께 쾌감이 찾아든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 탓에 캐서린이 루드비히를 휘감은 다리에 힘을 주자, 그는 그녀에게 조금 더 바짝 붙은 채 무릎을 꿇었다. 무릎 근처에 걸린 그녀의 속옷을 발목까지 내린 그는 이미 애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캐서린의 음부에 코를 가져다 댔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캐서린은 루드비히를 찾아 나선 이후 처음으로 당황해 루드비히의 새까만 고수머리를 붙잡았다. 그런 그녀의 저지를 손짓 한 번으로 쉽게 저지한 루드비히가 새빨간 혀를 내밀어 살짝 부푼 음핵을 쿡 찌른다.
“흐읏.”
작은 자극 한 번에 캐서린은 발끝이 저릴 정도로 전율했다. 부끄러울 정도로 흘러나오는 애액에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루드비히를 밀어내기 위해 애썼지만, 그녀의 배는 될 법한 그의 너른 어깨는 제자리에 붙박인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왜 이렇게 달까요.”
순정적인 고백이라도 하듯 나직하게 속삭인 루드비히는 그대로 캐서린의 수풀로 파고들었다. 그의 입술이 캐서린의 액을 빨아들이는 노골적인 소리와 함께 그녀의 고개가 저절로 뒤로 넘어갔다.
“하앙!”
혀끝이 닿을 때보다도 더 강렬한 자극이 몸을 뒤흔들었다. 캐서린이 몸을 들썩일 때마다 속옷 밖으로 튀어나올 듯 말 듯 풍만한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루드비히는 한 손에 가득 차는 그녀의 가슴을 꼭 쥔 채 다시금 입술을 벌렸다.
“흣, 잠깐, 잠깐만.”
캐서린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말려 보았지만 루드비히는 멈추지 않았다.
“……하아!”
그는 결국 캐서린이 먼저 절정에 맛본 다음에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늘 올곧고 단정했던 푸른 눈이 정염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색정적이라 캐서린은 그의 눈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예쁘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반듯한 이마부터 날카로운 턱선까지, 안 예쁜 구석이 없는 남자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제 애액과 침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보름달을 뒤로한 채, 그녀는 한밤중에 찾아오는 몽마처럼 아름다운 얼굴로 루드비히를 넘어뜨렸다.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탄 그녀는 그가 자신의 유륜을 비틀고 꼬집었던 방식 그대로 그의 작은 젖꼭지를 깨물었다.
“하!”
캐서린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루드비히가 그녀의 둥근 어깨를 붙잡았다. 세게 쥐면 부서질 듯 가녀려서 그는 차마 그녀를 제대로 말리지도 못했다.
캐서린은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낮은 신음을 흘리는 그의 젖꼭지를 새빨간 혀로 휘감았다. 작은 돌기 같은 그것을 쫍 빨아 댈 때마다 자신보다 세 배는 큰 사내가 움찔하는 것이 재밌기까지 했다. 연분홍빛 유륜부터 갈래가 선명한 복근까지 짙은 키스 마크를 새기며 내려온 캐서린은 드디어 위를 향해 우뚝 솟은 그의 남근에 다다랐다.
코앞에 두자 생각보다 더 거대한 크기에 그녀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루드비히가 재빨리 손을 뻗어 제 성기를 아래로 눌렀다.
“캐서린, 그만하십시오.”
“경도 내 말 안 들어줬잖아요.”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었다. 캐서린은 루드비히의 말에 오기가 생겨 그의 손을 치워 버린 다음, 그가 말릴 새도 없이 입안 한가득 그의 귀두를 물었다.
‘……입안에 다 들어갈지 모르겠네.’
겨우 귀두 끝을 물었을 뿐인데 숨쉬기가 버겁다. 혀끝에 닿은 루드비히의 귀두가 울컥 맑은 쿠퍼액을 쏟아 냈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절정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캐서린은 호승심을 품었다.
“흐으.”
위에서 흐느끼는 루드비히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캐서린은 핏줄이 잔뜩 불거진 그의 기둥을 양손으로 붙잡은 채 조심스레 혀를 움직였다. 그녀의 혀가 기둥 옆면을 살살 핥으며 내려가자, 루드비히는 몸을 움찔하다 흥분을 제어하지 못해 캐서린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읏.”
캐서린은 목 끝까지 치달았는데도 입에 다 들어가지 않는 루드비히의 물건을 꼭 움켜잡았다. 거대한 사탕을 눈앞에 두고 어찌할 바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굴리던 그녀는 반쯤 눈을 감은 채 그녀가 자신의 것을 빨아 주길 바라는 듯 움직이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귀두 끝을 물고 혀를 할짝대자 이미 다 커질 대로 커진 것 같았던 성기가 팽창한다.
‘이걸 어떻게 넣지.’
온몸의 피부가 눈처럼 새하얀 사람이 유독 이 부분만 굵고 붉고 어두컴컴한 듯했다. 단련된 루드비히의 허벅지가 캐서린의 걱정일랑 모른다는 듯 거칠게 움직였다. 캐서린을 안을 때처럼 강렬한 움직임이었다. 그에게 완전히 정복당하는 기분에 캐서린은 자신의 내벽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행동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어서 루드비히가 자신의 다른 구멍을 꽉 채워 막아 줬으면 싶었다.
“흐읏, 앗!”
목구멍이 콱콱 막혀 오는 느낌에 캐서린의 눈에는 그녀조차 자각하지 못한 눈물이 고였다.
“아.”
잔뜩 흥분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루드비히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 캐서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어깨 사이에 팔을 넣어 번쩍 든 그가 그녀를 아이처럼 안아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죄송합니다. 아프셨습니까?”
“……숨이 조금 막혔을 뿐이에요.”
언제 그녀의 머리를 휘어잡고 제 성기를 입안에 마구 박아 댔다는지 모르겠다는 듯 정중한 루드비히의 목소리에 캐서린은 조금 기가 막혔다. 그녀의 대답에 안도했는지 옅은 한숨을 내쉰 그는 흐트러진 그녀의 속옷을 완전히 벗겨 낸 다음 둥글게 부푼 그녀의 유륜을 한 움큼 삼켰다. 제 위에 올라앉은 그녀의 가슴을 잠시 애무하던 그가 캐서린의 둔부를 번쩍 안아 든다.
“하앙!”
그대로 루드비히의 위에 내리꽂아진 캐서린의 허리가 뒤로 휘었다. 전희가 길었던 탓인지, 루드비히의 성기가 부드러운 그녀의 안을 단번에 장악했다. 번쩍 치켜든 고개 덕에 가녀린 목선부터 위아래로 출렁이는 새하얀 가슴, 잘록한 허리로 이어지는 선이 그의 눈에 노골적으로 박혔다. 루드비히의 푸른 눈은 불꽃이라도 튄 것처럼 정염으로 들끓고 있었다.
퍽. 루드비히는 그녀가 느낄 고통을 언제 걱정했다는 양 참지 못하고 제 하반신을 거칠게 올려 박아 대기 시작했다.
“흐읏, 으응.”
캐서린의 온몸이 들썩이며 위아래로 흔들렸다.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나신이 요정의 날개처럼 아름다웠다. 제 성기를 욱여넣을 때마다 얕은 신음을 흘리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감기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더더욱 탐하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입에 씹어 삼키고 싶을 정도로.
“사랑합니다, 캐서린.”
루드비히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꽉 찬 내벽이 흔들리는 느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캐서린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리카르도와 결혼하기 전에는 숱하게 들었던 고백이지만, 루드비히에게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들의 관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알아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음유시인이 읊조리는 곡조처럼 애절한 말이었다. 창가로 흘러들어온 바람에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붕 떴다 가라앉았다. 드러난 반듯한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바람 소리,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낡은 나무가 삐꺽대는 소리 따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상에 둘만 덜렁 남겨진 기분에 캐서린은 긴장해 잔뜩 굳은 루드비히의 어깨를 붙들었다.
“나를,”
사랑한다고요.
그렇게 말하려던 캐서린의 머릿속 한편에 문득 에일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를 비웃기 위해 비죽 올라간 입꼬리. 루드비히가 그녀에게 건네받은 서류 조각.
“위그노아 경.”
열기에 달떠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던 캐서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캐서린의 입으로는 오랜만에 듣는 제 불명예스러운 성에 루드비히의 푸른 눈이 아프게 흔들렸다.
“우리는 단순한 계약 관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경과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진짜 부부는 될 수 없을 거예요.”
캐서린의 냉정한 말에 루드비히는 입술만 달싹였다. 당장 반박하고 싶었지만, 캐서린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본인이었으니까.
“……그렇군요.”
혼란스러운 얼굴의 루드비히를 빤히 바라보던 캐서린은 그가 에일린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름의 녹음을 한가득 담은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우리 사이에는 신의도, 신뢰도, 애정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깨 버린다면 스왈렛을 적으로 둘 각오를 해야 할 거예요.”
날카로운 경고의 말이었다. 캐서린의 차가운 목소리에 루드비히는 난처한 듯 고개를 느릿느릿 저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캐서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녀를 배신하다니, 그의 사전에는 등재조차 되지 않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맹목적인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캐서린은 단호하게 루드비히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알겠어요. 난 이만 가 볼게요.”
캐서린의 마음에 난도질당한 가슴께를 움켜쥐었지만, 그의 남성은 여전히 식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루드비히를 비웃듯 캐서린은 구두를 벗어 던진 맨발을 주저앉은 그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동그란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발가락이 슬금슬금 루드비히의 남근 근처를 지분거렸다.
“혼자 해결할 수 있죠?”
일종의 심술이었다. 캐서린은 잔뜩 발기한 그의 성기를 발끝으로 꾹 누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신의 이름 앞에 맹세하면 도와줄 수도…… 꺅!”
제 모욕에도 짐승처럼 발기한 루드비히를 골리기 위해 입을 놀리던 캐서린은 그가 갑작스레 제 발목을 움켜잡은 탓에 달랑 들려 그의 품 안에 떨어졌다. 휙 돌아간 몸을 지탱하기 위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개처럼 엎드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헉!”
캐서린은 예고도 없이 자신을 거칠게 파고든 루드비히의 기둥에 숨을 삼켰다. 그를 놀리던 여유로운 혓바닥과 달리 아직 절정에 다다르지 못한 그녀의 구멍이 먹잇감을 삼키듯 그의 남근을 콱콱 깨문다. 루드비히는 캐서린의 등에 제 가슴을 밀착시킨 채 그녀의 꽃잎을 제 손가락으로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흐윽.”
그의 뜨거운 숨이 귓불에 닿았다. 그에게 꽉 붙잡힌 탓에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된 캐서린은 아랫배까지 치닫는 자극과 여린 꽃잎이 찰박이는 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금 애액이 울컥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안아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캐서린의 가는 팔로는 그녀와 자신을 지탱하기 버거워 보였는지 그녀의 상체를 한 손으로 지지한 루드비히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냉기가 느껴졌다. 루드비히는 캐서린이 힘겨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거친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퍽. 퍽. 그녀의 둔부와 그의 골반이 치닫는 소리가 조용한 무기고에 울려 퍼졌다. 힘이 빠진 캐서린이 바닥에 엎어지듯 쓰러졌지만, 루드비히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흰 엉덩이를 벌려 가뜩이나 좁은 구멍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캐서린의 몸을 완전히 정복한 그가 개처럼 그녀를 박아 대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둥근 원을 그리며 루드비히는 그녀를 범했다. 캐서린은 자신을 거칠게 장악하는 루드비히를 맞이하기라도 하듯 그의 성기를 콱콱 물어 왔다.
“좁습니다. 당신은 늘 뜨겁고 좁아서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흐으읏.”
뜨겁게 달궈진 무쇠로 만든 칼이 자신을 반으로 뚝 가르는 느낌에 캐서린은 헐떡이며 바닥을 짚었다. 더 들어올 구석도 없어 보였는데도 가득 찬 성기에 배가 빡빡하게 조여들었다. 캐서린은 까칠한 그의 음모가 제 엉덩이에 비벼지는 것을 느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아앗, 하앙!”
캐서린이 절정에 올랐지만 루드비히는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꿀럭거리며 흩어진 애액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벅지를 타고 흐른다. 온갖 체액으로 범벅된 제 하반신을 흘깃한 캐서린은 수치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후두둑.
순간, 그녀의 얇은 허리 위를 미지근한 액체가 타고 흘렀다. 격정적인 섹스에 의한 땀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에 캐서린은 순간적으로 뒤를 돌았다. 캐서린은 흥분으로 잔뜩 일그러진 루드비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경.”
“…….”
“경, 혹시 울어요?”
캐서린 스왈렛은 헛웃음을 지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금욕적인 벽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제 아래를 거칠게 박아 대는 허리 짓은 멈추지 않는 그의 행동에 기가 막혀서.
도대체 왜 우는 걸까.
예쁜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할 정도로 예뻐 보였다.
“네.”
루드비히는 비겁하게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담담한 대답에 캐서린은 신음을 할딱이면서도 다시금 입을 벌렸다.
“내가 우리 관계는 그저 계약에 불과하다고 했다고 우는 거예요?”
방금 제게 사랑을 고백한 루드비히가 울 만한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그녀가 그의 마음을 외면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말이었으니까. 그녀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는지 루드비히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붉어진 제 눈가를 무심히 닦은 루드비히가 낮게 속삭였다.
“흣.”
아니, 루드비히가 주체하지 못하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를 흐느끼게 하는 그의 아랫도리라고, 캐서린은 가쁜 숨을 쉬느라 감히 말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그녀를 탐하던 루드비히가 끝끝내 파정했다. 교성과 함께 캐서린이 앞으로 무너졌지만, 그는 정액을 쏟아 내자마자 다시금 고개를 치켜든 성기를 내보이며 캐서린을 앞으로 껴안았다.
“끄, 끝난 거 아니었어요?”
“멀었습니다.”
다시 제 안을 파고들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 꿈틀거리는 루드비히의 남근에 캐서린은 허망한 입을 벌렸다. 여태 그가 자신을 얼마나 봐주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그녀가 재빨리 몸을 틀었지만, 루드비히는 어림도 없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이것조차 계약이라면,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실수.
실수했다.
캐서린은 머리를 새하얗게 장악하는 쾌감에 발끝을 떨면서도 마지막 남은 이성의 한 가닥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질주하는 말처럼 굴던 루드비히가 무기고에서 방으로 돌아와 그녀를 꼭 껴안고 잠든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