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5)

5.

“신수란 무릇.” 

백색의 실타래처럼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백호 연사가 측은지심 가득한 눈으로 제 앞의 청룡을 쳐다봤다. 

만년을 넘게 살아온 이 백사는 살아오면서 별의별 일을 다 봤고 겪어왔다. 

그래서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고 놀랄 생각도 없다. 

어떤 일이든 경중만 다를 뿐이지 늘 있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오래 산 신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봤자 결국에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마음에서 욕심이 비롯되고, 욕심에서 비극이 초래되고, 혹은 마음에서 선의가 일어나고, 그 선의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일 뿐, 그 뻗어나가는 가지만 다를 뿐 그 가지 끝에서 피는 꽃은 동일하다. 

지금 이 젊은 청룡이 벌려놓은 이 끔찍한 재앙 역시 마찬가지다. 

“땅에 사는 생명을 보호하라고 하늘이 내린 것인데 이렇게 재앙을 일으킨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점잖게 말하고는 있지만 연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미친 짓을 지금 당장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사가 뭐라고 말하든 청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청룡은 그의 만년설 동굴 안에 틀어박혀 거대한 똬리를 틀고 눈을 감고 있다. 

청색의 거대한 비늘로 뒤덮인 몸체를 칭칭 똬리 틀고 눈을 감고 연사가 무슨 말을 해도 눈을 뜨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물 천지이지만 그 물 재앙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청룡은 지금 만년설 동굴 안에서 며칠째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연사가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동쪽 땅에서 도망쳐 온 이들이 연사를 찾아와 제발 살려달라고 하소연한 까닭이다. 

그들은 북쪽으로, 남쪽으로, 서쪽으로 살 길을 찾아 흩어졌지만 남쪽의 주작이나 북쪽의 현무는 다른 영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망하든 말든 그건 청룡의 일이지 내 일은 아니지 않나?] 

이건 주작의 대답이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이건 현무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연사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연사는 제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온 이들을 외면할 만큼 모질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화를 풀고 백성들을 돌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슨 말을 해도 청룡은 눈조차 뜨지 않았다. 

“화를 푸시면 그대가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청룡에 대해 내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그때까지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청룡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 새파란 눈동자는 여전히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그대가 순혈의 청룡을 찾는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없잖습니까. 지금까지 그대가 찾아도 찾지 못했던 청룡을 내가 이번에 발견했는데 물론 그 청룡이 순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청룡이니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물론 그 이전에 지금 내리고 있는 비를 그치게 해주어야 하겠지만요.” 

연사의 목소리는 진중하면서도 차분했다. 

연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사도 잘 알고 있다. 사방신들 중에 누가 가장 신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든 망설이지 않고 연사를 지목할 것이다. 

신의가 있고 거짓을 모르는 신수다, 서쪽의 이 백호신은.

 “내가 찾는 건 그게 아닙니다.” 

그 말만 하고 청룡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 찾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뱀. 

그 단어가 아사의 입에서 맴돌았다. 

내 작은 물뱀. 

승은을 내려주었건만 달아나버린 발칙하고 괘씸한 물뱀. 

제가 100년 동안 거두어주었건만 다른 놈과 배가 맞아 도망쳐버린 그 배은망덕한 물뱀. 

그런데도 돌아오면 다 용서해줄 수 있고, 다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물뱀. 

돌아오기만 하면 제게서 도망친 것은 용서해줄 수 있다. 돌아오기만 하면 다른 놈과 배가 맞은 것도, 다른 놈의 새끼를 밴 것도 다 용서해줄 수 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돌아오기만 하면 그놈과 살림도 차려줄 수 있다. 

다만 제 눈이 닿는 곳에서 살림을 차려야 하고, 제 눈이 닿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제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제가 모르게 살아가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살아는 있을까.’ 

화가 나는 와중에도 연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뱀은 고작 해야 10년, 15년을 산다. 

그런데 연은 이미 100년을 살았다. 

제 곁에 있다면 100년이든 1000년이든 3000년이든 살 수 있겠지만 제 곁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다시 물뱀의 수명으로 돌아간다. 

지금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다. 뱃속의 새끼를 낳지도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다. 

청룡. 

지금 연사가 청룡을 찾았다고 하는 말은 아사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순혈의 청룡을 찾았다고 좋아하며 연사에게 물어 찾아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없다. 

더는 순혈의 청룡 따위 보고 싶지 않다. 순혈이라서 특별하다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다. 

특별한 것은 순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사는 안다. 

아무리 순혈이라도 제게 의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고작 물뱀에 불과하더라도 제게 소중한 것이라면 그건 특별해진다. 

[저는 작고 힘없는 물뱀이니까 주인님께서 버리시면 저는 죽어요. 그러니까 주인님. 저를 버리지 마시고 오래도록 사용해주세요.] 

그렇게 말했던 주제에 저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런데 그 달아난 고약한 물뱀이 보고 싶어 미치겠다. 

습관처럼 [지렁아]하고 부르면서 돌아봐도 제 곁에 그 작은 물뱀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다. 

허전하고 쓸쓸하다.

 ‘못된 것. 고약한 것.’ 

하지만 그렇게 못되고 고약해도 돌아오기만 하면 다 용서하고 다 이해하고 제가 하고 싶다는 대로 다 해줄 수 있다. 

어떤 눈꼴 시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다 참아줄 수 있다.

그래. 

아주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의 여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낫다. 

아주 잃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래봤자 그놈이 이무기든 구렁이든 간에 백년을 살겠는가 천년을 살겠는가. 

고작해야 백 몇 십년을 살면 그놈은 죽겠지. 

그놈이 죽고 나면 연은 다시 혼자가 될 테니까 자신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그래. 

그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그때 가서 혼자가 된 연에게 이제는 저와 부부로 살자고 하면 된다. 

두 번째라도 상관없다. 

세 번째면 어떻겠는가. 

아니, 네 번째, 다섯 번째라고 해도 좋다. 

천년을 기다려서 제게 차례가 온다고 해도 좋다. 

그 작은 물뱀은 이 마음을 알까. 

알면 도망쳤겠는가. 

제가 무슨 심정으로 그 작은 발목에 착고를 채웠는지 알면 그렇게 모질게 끊고 도망쳤겠는가.

 “내가 찾아줄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서쪽 백호의 영역으로 연은 도망쳤다. 

백호라면 그녀가 어디 숨었는지 알 것이다. 

백호 연사만이 자신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아사는 안다. 

하지만 연사가 자신을 도와줄까? 

자신에게서 도망친 그 물뱀을 찾는 것을 이 고지식한 백호가 도와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사가 다시 슬그머니 눈을 떴다.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백호를 찾아가 연을 찾아달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사라졌다. 

만년설 동굴 안에 있는 까닭은 몸 안에 불덩어리가 있어서 이렇게 가다가는 분노가 제 몸을 전부 태워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빨리 연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몸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속이 새카맣게 타서, 그렇게 잿더미가 될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그 땅에.” 

아사가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속은 탔지만 목소리는 느렸다. 

“내 권속 하나가 도망쳤는데…. 생긴 것은 작은 물뱀이고 새끼를 가졌습니다.”

 “얼마 전에 작은 영물 하나가 산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긴 했습니다.” 

그 말에 아사의 귀가 번쩍 트였다. 

그건 틀림없는 연이다.

 “어디에 있습니까?” 

똬리를 틀고 있던 몸을 풀며 아사가 그 긴 몸체를 들어올렸다. 

만년설의 동굴이 새파란 비늘을 가진 청룡의 몸체로 꽉 찼다. 

그 사이에 서 있는 흰 머리카락의 백호는 사뭇 이질적으로 보였다. 

“비를 먼저 멈추십시오. 그러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비를 그치게 하고 땅에 가득 찬 물을 전부 빼주시면 그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귀찮게 굴다니.” 

한시라도 빨리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다. 

짜증이 올라왔지만 아사가 잠시 참기로 했다. 

[그 짜증내는 것 좀 고치시면 안 될까요? 너무 무서워요, 주인님.] 

연이 제게 툭하면 했던 말이다. 

[변덕스럽고 짜증만 내시고, 그리고 이기적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주인님 곁에 있기 싫어하잖아요.] 

그런 말을 하면서 미간을 찡그리던 작은 물뱀이 보고 싶다. 

제게 그런 말을 해주던 작고 사랑스러운 지렁이 같은 물뱀이 보고 싶다. 그 물뱀이 곁에 있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다들 곁에 있기 싫어해도 네가 있어주니까 상관없다]라고, 그렇게. 

진심을 담아서.  

고개를 든 연사의 눈에 몸을 비틀며 동굴의 천정으로 날아오르는 청룡이 들어왔다. 

아직 세차게 비가 내리는 하늘로 날아오른 청룡이 어두운 구름 사이로 사라지더니 이내 푸른 빛이 몇 번 번쩍이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멎었다. 

그리고 십수일 만에 새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

“너는 정말… 어쩌면 그렇게 주인님을 쏙 빼닮았니?” 

아장 아장 기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며 연이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사의 궁에서 도망칠 때만 하더라도 태동이 심하게 느껴지는 정도였는데 서쪽 백호의 영역으로 들어서서 단 하루 만에 연은 알을 낳았다. 

청룡의 궁에서 도망친지 겨우 이틀이 지난 후였다. 

이틀이 지나 백호의 영역에 도착해서 산속 동굴에 일단 자리를 잡았는데 그 직후 하루 만에 알이 나왔다. 

뜻밖에도 진통은 거의 없었다. 

긴 진통을 겪지 않고 알을 낳고 보니 새파란 껍질을 가진 알이었다. 

누가 봐도 그건 청룡의 알이었다. 

용의 알. 

그리고 그 알에서 사흘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난 아이는 그 즉시로 젖을 빨았고 또 다시 사흘이 지나자 혼자서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어다니고 있다. 

아니, 기다가 가끔은 혼자 일어나 걸음마도 하려고 한다. 

이쯤되면 연은 조금 무서운 것이 십수일 만에 이렇게 자라면 한 달이 지나면 저보다 더 커있지 않을까 해서다. 

한달이면 어른이 되고 그 후에는 저보다 더 커져서 저를 내려다보고 그러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용이라서 그런 걸까. 

아사도 이랬을까. 

아사의 어린 시절을 모르니 그도 이랬는지 어쨌는지는 연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렇게 빨리 자라는 아이니까 제가 혹시라도 일찍 죽어도 이 아이가 혼자서 살아가기에 무리는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눈매며 눈 색깔이며, 하다못해 머리카락의 색에 목덜미와 등을 뒤덮은 청색의 비늘까지 전부 아사를 쏙 빼닮았다. 

게다가 아들이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청룡이다. 

물뱀과의 혼혈이라는 건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제 기운보다 아사의 기운이 훨씬 강해서 아사를 쏙 빼닮아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 

“자, 이제 그만 기어다니고 젖 먹을 시간이야.” 

연의 젖은 마를 날이 없다. 

아이는 식욕이 왕성해서 하루의 절반을 연의 가슴에 달라붙어 젖을 빨아먹는다. 

덕분에 연의 얼굴은 반쪽이 되었다. 

아이가 쉬지도 않고 젖을 빨아대는 탓에 젖은 항상 불어 있고 예전보다 두 배나 젖가슴이 커졌다. 

그렇게 먹여도 아이는 늘 배가 고픈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되면 아이에게 젖이 아닌 다른 것을 먹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청룡은 젖이 아닌 다른 것을 먹여야 하는 걸까? 

대체 누구 청룡의 육아법을 가르쳐주면 좋으련만, 그런 도움을 누구에게서 받겠는가.

 “이리 온, 아가야.” 

제 품에서 벗어나 동굴의 입구까지 기어가고 있는 아기를 뒤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가던 연이 동굴 입구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그만 깜짝 놀라 발을 멈췄다. 

커다란 그림자가 동굴 안으로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길고 커다란 그림자를 연은 알고 있다. 

동굴 안이 가득 차도록 천천히 들어서고 있는 것은 파란 비늘을 가진 거대한 청룡이었다. 

구렁이나 이무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몸체가 꿈틀거리며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 아기….’ 

아기를 잡아야 한다. 

지금 아기는 누가 봐도 청룡의 아이다. 

그걸 아사가 보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사의 머리가 제게로 기어오는 아이 앞에서 잠시 멈췄다. 

한참 기어가던 아기가 제 앞에 멈춘 청룡을 빤히 쳐다보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저를 향해 미간을 찡그리는 작은 청룡의 새끼를 보며 아사 역시 미간을 찡그렸다.

“괘씸한 놈이군. 어린 놈이 발칙하게.” 

아사가 내뱉은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걸 끝으로 더 이상 아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아사가 연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거대한 용의 몸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몸을 바꾸었다. 

“잘도 도망쳤지, 이 못된 지렁이 같으니라고.” 

당장이라도 저를 잡아먹을 것처럼 무섭게 노려보는 아사의 앞에서 연이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주인님.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까 아이만은….” 

제가 열심히 빌면 아사가 혹시 아이를 살려주지 않을까 싶어 연이 두 손으로 모으고 아사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이건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사를 유혹한 것도 아니고 아사가 먼저 저를 건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인데 왜 자신이 빌어야 하는 걸까.

 “흑….”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서러움이 터져 연이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알을 낳으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지금 울음이 터졌다. 

“흑… 흑….”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연이 얼굴을 들어 저를 노려보는 아사를 쳐다봤다. 

그래. 

어차피 용서해주지 않을 거라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자. 

“누가 도망치고 싶어서 도망친 줄 아세요? 주인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잖아요. 전부 주인님 잘못인데 주인님은 화만 내시고….” 

이렇게 된 것 이판파산이다.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여기까지 찾아왔을 때는 아사도 단단히 화가 나서 뿔이 났다는 뜻이니 아무리 빌어도 절대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왕 죽을 거, 전부 다 쏟아 붓고 죽자. 이런 빌어먹을 나쁜 청룡 같으니라고. 

백년 동안 쌓인 한이 어떤 건지 한번 당해보라지. 

“주인님 같이 변덕스럽고 못 됐고 까칠하고 사나운 주인을 저보다 잘 모신 물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주인님은 대체 제게 왜 그러셨어요.” 

“승은을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 같은 물뱀에게 승은까지 내렸는데 감히 도망쳐?” 

“누가 승은 달라고 했어요? 누가 승은 같은 거 달라고 했냐구요! 저는 승은 필요 없거든요?! 승은 필요 없고 저는 그냥… 그냥….” 

그냥, 평범한 물뱀으로 아사의 곁에서 오래 오래 그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이다. 

승은을 입고 이렇게 끝내는 것보다는, 승은을 입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걸 알겠는가. 

이 이기적인 청룡이 그걸 알겠는가.

 ‘알긴 뭘 알아. 자기가 취해서 그런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는 걸 알긴 뭘 알아.’ 

“저는 승은 필요없는데 주인님이 마음대로 그래놓고는… 혼자서 화내고, 혼자서 협박하고, 그러면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러니까 도망을 치는 거지 누가 도망치고 싶어서 도망을 친 줄 아세요? 갈 곳도 없는데 도망까지 치는 제 심정은 모르시죠? 전 정말 갈 곳도 없는데, 이제 그 웅덩이도 사라지고 없는데…. 갈 곳이 한 곳도 없는데… 무서워 죽겠는데….”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연이 아사에게 원망이란 원망은 전부 쏟아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보기 싫은 얼굴을 쥐어뜯고 싶다

 “갈 곳이 없으면 돌아오면 그만이지.” 

연이 우는 것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만 있던 아사가 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아가면 죽일 거잖아요.”

 “누가.” 

“주인님이요.” 

“죽인다고는 안 했다.” 

“아기를 죽일 거잖아요.” 

“내가?”

 “혼혈이니까 죽일 거잖아요.” 

“너는 참….”

 이쯤되면 아사도 할 말이 많아진다. 

누가 죽인다고 했던가. 

죽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했던가? 하여튼 죽일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죽이긴 왜 죽인단 말인가. 

혼혈? 그런 건 상관없다. 

남의 자식이라도 제 자식으로 키우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남의 자식도 아니고 제 자식인데 왜 죽이겠는가. 

순혈 타령은 해왔지만 이젠 그 순혈주의도 버렸다. 

그따위는 그냥 개나 물어가라고 하고, 그런 건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데 왜 이 작은 물뱀은 혼자서 걱정하고 혼자서 겁 먹고 혼자서 도망치고 혼자서 애를 낳고 혼자서 우는 걸까. 

왜 자신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걸까. 

그냥 [뱃속의 애가 당신의 애다]그 한 마디만 했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첫 눈에 저 기어다니는 발칙한 반쪽 청룡이 제 새끼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 새끼가 아니면 누가 저를 저렇게 노려보겠는가. 

마치 거울을 보듯이 저와 판박이다. 

어린 주제에, 기어다니는 주제에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을 보니 딱 제 자식이다. 

결국 연의 뱃속에 새끼를 배게 한 것은 다른 놈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날이 있었는데 그때 저질렀던 걸까. 

짜증나게도 그때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을 생각이다. 

다행인 것은 제가 연의 첫 사내라는 것이고, 연의 자식이 제 자식이라는 것이고, 이제 연을 데려갈 구실이 충분히 갖춰졌다는 것이다.

 “돌아가자.”

 “싫어요.” 

“돌아가자니까.” 

“싫다구요.”

 “내가 없으면 죽는 주제에.” 

“돌아가면 괴롭힐 거잖아요.”

 “누가? 내가?” 

“그러면 주인님 밖에 더 있나요?”

 “이 지렁이 같은 것이.” 

“저는 그냥 여기서 살래요. 안 돌아갈래요.”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하긴 이런 고집이었으니 제 곁에서 100년이나 버틴 거겠지. 

“저 놈이 자라면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애 핑계를 대본다. 

“할 수 있어요.” 

“퍽이나.” 

“할 수 있다구요. 저 애보다 더 큰 청룡도 보살폈는데 저 애를 못 보살피겠어요?” 

그건 맞는 말이다. 

자신도 보살폈는데 저 애를 보살피지 못할 리가 없다. 

이쯤되자 아사가 점점 초조해졌다. 

정말 연이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 정말 자신에게 화가 나서 영영 돌아갈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돌아가자니까.”

 “싫어요. 절대로 싫어요.” 

“혼인해주마.”

 “싫어요.”

 “짜증을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싫어요.” 

“화도 내지 않으마.” 

“싫어요.”

 “네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마.” 

연이 아사를 슬그머니 쳐다봤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제게 왜 이러세요? 저만한 시녀가 없어서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시녀 따위에게 내가 이렇게 할 것 같으냐?”

 “그러면요?”

 “그야 당연히….” 

아사가 입술을 머뭇거렸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저를 빤치 쳐다보는 연의 얼굴을 보며 아사가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그래, 못할 건 또 뭔가. 

“너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다.” 

말하면 그만이지.

 그래.  

동쪽의 지배자이자 수호자인 청룡이 작은 웅덩이 출신의 물뱀을 좋아한다.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저는 물뱀인데요?”

 “연이라는 이름이 있지.”

 “저는 쓸모가 없는데요?”

 “네가 없으면 안 되니까 쓸모는 충분히 있어.” 

“언제부터 절 좋아하셨는데요?” 

“그건….” 

이런 것까지 대답해야 하나? 

“언제부터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때 저는 열 살이었는데요?”

 “…….” 

이쯤되면 자신은 파렴치한 정도 되는 걸까. 

아사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정말 괘씸한 물뱀이 아닐 수 없다. 

이 물뱀이 뭐라고 저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든단 말인가. 

“나쁘네요, 주인님. 그렇게 어린 저를….”

 “시끄럽다.”

 “하지만 주인님의 나쁜 성격은 저만 받아줄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연이 살며시 아사의 손을 잡았다.

 “이제 화를 내시면 안 돼요.” 

제 손을 잡는 그녀의 손 위에 다시 제 손을 얹으며 아사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등에 태워줄까?” 

아사는 고작 그 말만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다. 

누구도 태워본 적 없는 제 등에, 청룡의 등에 물뱀을 태워주겠다는 말처럼 대담한 고백은 

없다. 

물론 그녀가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날, 백호 연사는 그의 영역에 들어왔던 동쪽의 청룡이 등에는 그의 작은 반려를 태우고 입에는 그의 어린 자식을 물고 그의 영지로 돌아가기 위해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앞날을 예상했다. 

입에 물고 있는 저 작은 반쪽 청룡이 자라면 분명 제 아비처럼 드센 용이 될 것인데, 그때는 저 작은 물뱀을 두고 부자지간에 어지간히 싸우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봤자 동쪽의 일이지만. 

그리고 동쪽 청룡의 궁에서 청룡이 반려를 맞이하게 되었다며 혼인 잔치에 초대하는 초대장이 날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정말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해결하는 청룡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순혈주의자 청룡이 물뱀의 반려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동서남북에 퍼졌으니 가장 비웃은 것은 주작이었다고 한다. 

평소에 청룡이 그를 향해 [까마귀 혼혈을 맞이한 주제에]라고 말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있던 주작이 그 소식을 듣고는 [저는 물뱀에게 넘어갈 거면서]하고 마음껏 비웃었다고 했다.

후일담.

연사는 요즘 무척이나 마음이 심란했다.

때아닌 육아 때문이다. 

연사는 그의 반려인 인아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그 딸은 성품이 온순하고 말썽이라는 것을 부리는 법을 모르지만 최근에 백호의 궁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동쪽 청룡의 궁에서 보내온 고집쟁이 때문이다. 

청룡과 물뱀 사이에서 태어난 동쪽의 후계자인 이 작은 반쪽 청룡은 얼마나 기운이 드세고 고집도 센지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불을 뿜고 천둥번개를 일으키고 비를 내리기가 일수다. 

그래서 지금 백호궁은 엉망이다. 

[잠시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앞뒤를 잘라먹은 편지 한 장과 함께 제 아비를 쏙 빼닮은 이 꼬마 청룡은 백호궁으로 보내졌다. 

아사가 제 자식을 왜 보냈는지는 연사도 대충 짐작한다. 

부자 사이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그쪽에서 감당할 일인데 왜 자신에게 보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보내왔으니 맡아줄 수밖에 없다.

 “돌아갈 거란 말이야! 돌려보내달란 말이야!” 

어린 청룡이 떼를 쓰는 이유는 빨리 저를 청룡의 궁으로 돌려보내달라는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 부친이 데리러 올 때까지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돌아갈 거란 말이다!” 악을 바락바락 쓰는 어린 청룡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연사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였다. 

퍽-! 

“시끄러워!” 

뒤에서 여자 아이가 어린 청룡의 머리를 부채로 내리쳤다. 

“아파…!”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청룡이 발끈해서 돌아봤다. 

그의 머리를 부채로 내리친 것은 다름아닌 연사의 딸 혜아였다. 

부친을 닮아 흰 머리카락에 모친을 쏙 빼닮은 얼굴을 가진 혜아가 다시 부채를 들어올렸다.

“뚝 안 그치면 또 맞는다?” 

인상을 퍽 쓰며 부채를 들어올리는 혜아를 보며 어린 청룡이 입을 쑥 다물었다.

호랑이의 기운은 무시무시한 법이다. 

연사는 굳이 어린 애 앞에서 호랑이의 기운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어린 혜아는 다르다. 

기운을 감추는 법도 모르고 감추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남의 집에 와서 이렇게 소란을 부리는 이 꼬맹이를 두들겨주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또 맞고 싶으면 소리지르고 그래. 알았어? 이걸 확…!” 

혜아가 부채를 쳐들자 어린 청룡이 얼른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랑이의 기운에 바짝 눌린 탓이다. 어린 청룡은 태어나서 이렇게 무서운 여자 아이는 처음 본다. 

금방이라도 저를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릉거리는 호랑이 여자 아이를 보며 진짜 잡아먹일 것 같다는 무서움에 얼른 꼬리를 내렸다. 

흔한 말에 용호상박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는 걸 두 아이를 보며 연사가 깨달았다. 

용호상박이 아니라 호랑이가 이겼다. 

적어도 저 두 꼬맹이의 경우는 말이다. 

이제 덕분에 다시 궁은 조용해질 것이다. 제 어린 딸이 청룡의 어린 아들을 잘 데리고 다니며 교육이라는 걸 시키면 아마, 저 고집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자, 따라오면 같이 놀아줄게.” 

부채를 접은 혜아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어린 청룡이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둘이서 사이좋게 걸어가는 것을 보며 연사가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 

또 다른 세대의 신수들이 저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던 탓이다. 

부모의 세대에서 아이의 세대로 넘어가는 것이, 이렇게 또 시간이 흐르는 것이, 삶이 반복되는 것이 그저 흐뭇했기 때문이다. 

***

“하응! 응! 그, 그만이요! 그만… 제발 그만…!” 

조금 전에 물 속에서 기어나온 연이 아사에게 사정했다. 

그러나 인정머리 없는 사내는 그녀의 사정하는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눈에 가시였던 꼬맹이를, 제 자식이지만 아주 못된 어린 꼬맹이를 서쪽으로 보내버렸으니 이제 연을 독차지 하는 것은 자신이다. 

그동안은 육아다 뭐다 하면서 연을 계속 그 꼬맹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 꼬맹이는 몇 달은 서쪽에 처박아둘 생각이니까 그때까지는 연은 제가 마음대로 할 작정이다

“하윽! 아! 아아아!” 

다리를 벌린 채로 연이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 

사방이 물로 흥건했다. 

연을 위해 만든 커다란 욕조 안에서 한바탕 한 다음에 더는 못하겠다고 연이 도망쳐 나오는 바람에 지금 사방이 물바다다. 

그러나 아사는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사는 연에게서 나는 물냄새가 좋다. 

물뱀이라 그런지 연의 몸에서는 항상 짙은 물냄새가 난다. 

게다가 그녀의 몸 안에는 항상 물이 가득 차 있다. 

“아직 줄줄 흐르잖아.” 

그녀의 다리를 벌린 채로 그 사타구니에 얼굴을 파묻은 아사가 애액이 잔뜩 고여있는 그녀의 질구를 혀로 핥아 아예 혓바닥을 쑤셔 넣었다. 

윗 입술로 그녀의 음핵을 자극하며 혀로 질 안을 휘젓자 연의 몸이 비틀리듯 꺾이며 다리를 덜덜 떨어댔다. 

“하응! 하아아앙!” 

숨 넘어가는 소리가 아사를 더 부추겼다. 

연한 속살을 잘근잘근 씹던 아사가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 꼬맹이가 독차지하던 그녀의 젖을 물었다

. 그 꼬맹이는 태어난지 석달이나 지났으면서 아직도 젖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이 젖은 자신의 것이다.

 “아사님-!” 

아사가 제 젖가슴에 달라붙어 사납게 젖을 빨아대자 연이 까무러칠 듯 소리를 질렀다. 

한 손으로는 음부를 쑤시며 젖을 빠는 사내를 연은 도무지 떨칠 수가 없다.

 “하응! 흑! 하윽! 앗, 앗. 아!” 

정신없이 몸을 흔들며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를 아예 감아버리는 연의 벌어진 입술에서 타액이 흘러내렸다.

이젠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사내의 이 지독한 향이 저를 점령해버리면 저도 미쳐버린다.

이미 연의 몸은 불덩이다. 

금방 들어가 있던 욕조의 물이 뜨겁게 변할 정도로 연의 몸은 달아올라 있다. 

이 느낌을 연은 알고 있다. 

이건 발정기의 느낌이다. 

연의 발정기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아사가 저를 탐할 때마다 찾아온다.

 “아흐으응!” 

손으로 주무르던 질구 안으로 아사의 음경이 찔러 들어오자 그녀의 아랫배가 저릿하게 울렸다. 

음경을 박은 사내가 몸을 일으켜 맹렬한 허리짓을 시작했다. 

그의 음경이 몸 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이 요동을 쳤다. 

“하응! 아아아아!” 

두 다리로 아사의 허리를 휘감은 채로 연이 교성을 질렀다. 

몇 번이나 그렇게 사납게 허리짓을 했을까. 

거칠게 허리를 쳐올리던 아사가 그녀의 안에 파정을 하는 순간 연이 퍼뜩 느꼈다. 

“아.” 

또 아이가 생겼다, 라는 것을 말이다. 

하기만 하면 아이가 생기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하지만 차마 아사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아이를 떼어냈다고 좋아하는 그에게 또 아이가 생겼다고 말하면 그는 길길이 화를 낼 것이 뻔하다. 

물론 화를 내지 않는다고 약속했으니 화를 내는 대신에 삐치겠지만.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제 탓이 아닌 아사의 탓인 것을. 

자꾸만 승은을 베풀어주는 이 청룡 탓인 것을. 

교미만 하면 발정기가 오고, 발정기만 오면 애를 배는 제 몸이 문제가 아니라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이 거칠고 사나우면서 사랑스러운 청룡 때문인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나도 모르겠다.’ 

이 상태라면 앞으로 몇 명을 더 낳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땅에는 청룡이 넘쳐날 것이다. 

아마 못해도 열, 아니 스물, 아니 백? 그 정도의 청룡은 더 태어나지 않을까? 물론 나중의 일이지만 말이다.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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