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5)

4.

“하응!” 

질 깊숙한 곳으로 아사의 손가락이 파고 들자 연의 질구가 금세 축축하게 젖었다. 

마치 그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새빨간 속살이 그 손가락에 들러붙으며 애액을 울컥 울컥 흘려댔다. 

제 손가락을 조이는 연의 질구에 아사의 기분이 더 나빠졌다.

 ‘어떤 새끼가 감히….’ 

대체 어떤 놈에게 어떻게 길들여졌기에 손만 넣어도 이렇게 음탕한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그 새끼를 찾아내면 눈을 뽑아내고 혀를 자른 다음에 좆을 잘라내어 기둥에 걸어놓겠어.’ 

할 수 있는 한 가장 잔인한 벌을 내릴 작정이다. 

그리고 그 꼴을 연으로 하여금 보게 만들고 그 앞에서 연의 다리를 벌려 제 음경을 쑤셔 박을 생각도 해 본다. 

그러면 기분이 좀 좋아질까. 뜨거운 연의 질 안이 이렇게 기분이 좋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작은 물뱀을 100년이나 곁에 두면서 왜 잡아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순혈이 아니면 어떻고 청룡이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그냥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을 때 잡아 먹을 것을 그랬다. 

그랬다면 어떤 괘씸한 놈의 새끼를 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진즉에 잡아먹을 것을. 

진즉에 이 다리를 벌리고 제 음경을 쑤셔 넣고 이 안에 제 씨를 부어 제 새끼를 배게 할 것을 그랬다. 

그랬더라면 지금 이 뱃속에 있는 것은 제 새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각인시키면 이 작은 물뱀을 빼앗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꾸 그놈이 방해를 하면 그놈을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이다. 

새끼? 

이 작은 물뱀이 낳는 새끼는 그냥 제 자식으로 삼아버리면 그만 아닌가. 

남의 새끼 한 마리 정도는 키워줄 수 있다. 

그 후에 제 새끼를 수도 없이 낳게 하고 한 마리 정도는 남의 새끼를 눈 감아 줄 수 있다.

 “하으응!” 

연이 지르는 자지러지는 교성이 아사의 귀에는 그저 달콤하게만 들린다. 

작은 물뱀 주제에 이런 재주가 있다 . 

“줄줄 흘리는구나.” 

아사가 그녀의 질 안을 쑤시던 제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의 손가락은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물뱀이라서 그런지 속에 물이 꽉 찬 모양이로구나.그러니까 조금만 쑤셔줘도 이렇게 물을 질질 흘리겠지?”

 “하읍!” 

젖은 손가락을 연의 입 안으로 비집고 넣어 그녀의 입 천정을 긁으며 아사가 몸을 숙였다. 

“아랫 구멍만 뜨거운 줄 알았는데 입 안도 뜨겁구나. 물뱀 주제에 말이야.” 

뱀은 차갑다. 

용도 차갑다. 

그러나 지금 연의 질 안과 입 안은 용광로처럼 뜨겁다. 

아사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입 안을 손으로 긁으며 아사가 이미 충분히 발기한 제 음경을 손에 쥐었다. 

그녀를 희롱하는 사이에 발기한 음경은 귀두에서 흘러내린 음액으로 번들거렸다. 

잔뜩 발기해서 꿈틀거리는 음경을 아사가 연의 질구에 문질렀다. 

“읍! 흐읍!” 

아사의 손가락을 삼킨 채로 연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아사의 음경이 퍽 소리와 함께 쑤셔 박힌 것이다. 

커다란 음경이 강하게 밀고 들어오자 허리가 울리며 등이 저릿하게 흔들렸다.

 “흡! 읍! 읍, 읍!”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사내의 허리 짓에 연의 몸이 엉망으로 흔들렸다. 

“하윽! 아! 아아아!”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연이 크게 울부짖었다. 

고통이 아니라 쾌감에 겨워 울부짖는 연의 교성을 들으며 아사가 그녀의 안에 쑤셔 박던 음경을 쑥 빼내더니 그녀를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주인님!” 

다리를 벌린 채로 교성을 지르던 연이 졸지에 끌려와 아사의 다리 사이에 엎어졌다. 

엉덩이를 쳐든 채로 엎드려진 연의 입 안으로 거대한 음경이 강제로 밀고 들어왔다.

 “흐읍!” 

조금 전까지 제 안을 우악스럽게 쑤시던 음경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연의 볼이 부풀었다. 

“잘못했다고 그랬지? 용서해달라고 했었지? 제대로 빨면 용서해주마. 네가 제대로 빨기만 하면 적어도 네 뱃속의 새끼는 살려주마. 그리고 이 궁에서 키우는 걸 허락해주지.” 

지금 이 말이 아사 나름 얼마나 관대한 자비인지 연도 알고 있다. 아사는 절대로 이렇게 자비로운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제게 관대한 자비를 베풀고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자비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차라리 다른 이의 아이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아사의 관대함을 받아들였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아사의 아이라서 도망쳐야 한다.

 “꽉 물고 제대로 빨아. 내 용서를 구한다면 말이야.” 

제 다리 사이에 엎드리고 입 안 가득 들어찬 음경을 빠는 연의 어깨와 정수리를 잡은 채로 아사가 허리를 쳐댔다. 

굵은 음경이 거침없이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와 귀두가 목구멍을 건드릴 때마다 연의 숨이 막혔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이렇게 입으로 받는 것만으로도 엉덩이가 저절로 흔들릴 정도로 기분이 좋다. 

목구멍까지 박히는 음경 때문에 눈물이 찔끔찔끔 새면서도 무릎 꿇은 다리 사이가 뜨겁게 젖었다. 

벌어진 허벅지를 타고 애액이 흐르는 것을 연 스스로도 느꼈다. 

콧속으로 아사가 내뿜는 지독한 향이 흘러들어왔다. “읍!” 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입 안으로 아사의 씨물이 울컥 쏟아졌기 때문이다. 

비릿한 씨물이 입 안에 가득차자 연이 저도 모르게 그걸 꿀꺽꿀꺽 삼켰다. 

그러나 미쳐 다 삼키기도 전에 입 안에서 음경이 빠져나갔다. 

입술에 묻은 씨물을 닦으며 고개를 드는 연의 눈에 아직도 불끈거리고 있는 아사의 음경이 들어왔다. 

아직 연은 만족할 만큼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음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 사이가 욱신거렸다. 

저 위에 올라타고 엉덩이를 흔들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연이 간절한 눈으로 아사를 쳐다봤다. 

그 간절한 눈동자를 아사는 [제게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올라 와.” 

어차피 관대해지기로 한 것, 아사가 나름대로의 자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연에게 눈짓했다. 

한번 토정한 후라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 탓이다. 잔뜩 쌓였던 것을 조금 쏟아내자 그나마 마음이 아주 조금은 풀렸다. 

이런 식으로 열 번만 더 쏟아내면 그놈을 찾아내도 죽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풀릴지도 모른다. 

“이리 올라 와서 엉덩이를 흔들어 봐.”

그 말에 연이 곧추 선 채로 꿈틀거리고 있는 음경을 뜨거운 눈으로 쳐다보며 아사의 허벅지 위로 올라와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하응…!”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내리기도 전에 아사의 손이 그녀의 질구를 문질렀다. 

아사의 어깨에 매달린 채로 엉덩이를 들고 연이 허리를 움찔거렸다. 

아사의 손이 제 질구를 문지르며 음핵을 누를 때마다 벌어진 질구가 찌르르 울리며 붉은 입을 다물었다 열었다. 

손가락의 끝이 음핵을 쉬지 않고 비벼대는 탓에 무릎을 세우고 엉덩이만 흔들던 연이 더는 참지 못하고 제 아래에서 끄덕거리고 있는 음경 위로 잔뜩 젖은 하체를 내렸다. 

“아흑!” 

잔뜩 달아오른 질구가 벌어지며 묵직한 음경이 곧장 몸을 뚫고 들어왔다. 

등줄기가 찌르르 울리며 연이 고개를 젖혔다. 

아사의 손이 제 허리를 잡는 것을 느꼈지만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그 음경을 제 몸 안에 받아들인 순간부터 홀린 것마냥 정신없이 위 아래로 엉덩이를 흔들며 연이 숨을 헐떡였다. 

자궁까지 밀고 올라오는 음경 때문에 제가 품은 아이가 눌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점점 열기와 쾌감에 잠식되어가는 머리는 멍하니 녹아내렸다. 

“하응! 아, 읏, 하응! 응! 아아아! 주인님! 주인님!” 

아사의 목에 두 팔을 걸고 매달린 채로 연이 점점 더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비늘을 두른 시커먼 음경이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그녀의 안으로 박혀 들었다. 

절정에 가까워지는 아사의 음경은 둘러 있던 비늘이 펴지며 그것들이 연의 질벽을 긁어댔다. 

“아! 아! 아앙! 아!”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교성을 헐떡이며 연이 몸을 흔들었다. 

커다란 사내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작은 체구의 그녀가 위 아래로 몸을 흔들 때마다 그 벌어진 살점 사이로 용의 비늘 덮인 음경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아아아아!” 

자지러지는 소리를 지르며 연이 아사의 목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음경을 삼키고 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하얀 것이 쏟아져 내렸다. 

몸 안에 잔뜩 쏟아낸 아사의 씨물이 차오르고 차오르다 결국에는 아래로 쏟아진 것이다. 

꿀렁 꿀렁 쏟아지는 백탁액을 줄줄 흘리는 연을 아사가 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제 품 안에서 끊어질 듯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몸을 뒤집은 다음 개처럼 엎드리게 하고 그 뒤에서 제 음경을 다시 찔러 넣은 것은 그녀가 고른 숨을 되찾기도 전이었다. 

제가 박을 때마다 정신없이 소리지르며 저를 부르는 연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사는 비로소 만족했다. 

연의 입에서 다른 놈의 이름이 아니라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좋았다. 

그녀의 몸에서 다른 놈의 냄새가 아닌 제 냄새가 풍겨나는 것이 좋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저만 보고, 제 이름만 부르고, 제 냄새만 풍기고, 제 것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제가 데려왔고, 제가 지금까지 살려뒀고, 제가 그녀의 모든 것을 허락했는데 당연히 그녀를 전부 차지하는 것은 자신이어야만 했다. 

진즉에 그랬어야 했던 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하게 되었다고 아사가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어떤 놈이든 빼앗아가게 두지 않겠다고. 

이 작은 물뱀은 저라는 웅덩이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이미 그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웅덩이로는 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말이다. 

 ***  

“나쁜 주인님 같으니라고….” 연이 제 발목에 채워진 착고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 아사는 현무의 궁으로 떠났다.

 [사흘 안에 돌아오마.] 

그래, 사흘 안에 돌아온다고 장담을 하고는 제 발에 이렇게 착고를 채워 놓고 가버렸다. 

발목에 채워진 착고의 끝에는 무거운 쇠공이 매달려 있다. 이렇게 무거운 걸 매달고는 이 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궁은커녕 처소에서 한 걸음도 나갈 수가 없다. 

결국 아사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도망쳐야 하는데….’ 

어제 밤새도록, 오늘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아사의 정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아사의 향기에 취한 제가 알아서 다리를 벌리고 더 박아달라고 애원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밤새도록 정을 받은 탓에 지금 몸 상태는 몹시 이상하다. 

뱃속의 아이가 그 정에 영향을 받아서 하루 사이에 부쩍 자란 것이 느껴졌다. 

연은 용이 아니라 물뱀인지라 용의 아이가 뱃속에서 어떤 식으로 자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냥 물뱀이라면 두 달 정도 뱃속에 얌전히 품은 아이가 알로 세상에 태어나겠지만 이 아이의 절반은 청룡이다. 

청룡도 알에서 태어나는지, 아니면 아이의 형태로 태어나는지, 잉태된 지 얼마 만에 태어나는지 연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용이 태어나는 것을 봤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는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물뱀이나 여타 다른 뱀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배가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게 불러와 있었다. 

어제는 배가 부른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배가 부풀어 있다. 

게다가 안에서 태동도 느껴진다. 

아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내일 아이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아사가 현무의 궁에서 돌아왔는데 제가 떡 하니 반쪽 청룡을 낳은 것을 보면 가만 두겠는가. 

저를 요절내지 않겠는가. 

더불어서 제 아이도 함께 말이다. 

“끔찍해….” 

아사는 좋지만 그런 결말은 피하고 싶다. 

“이걸 어떻게 벗겨내지?” 

연이 낑낑거리며 발목의 착고를 벗을 궁리를 해보지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이 없다. 

“나쁜 주인님. 이러고 가면 어쩌라고….” 

연이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구요….” 

누군들 이 청룡의 궁에서 도망치고 싶겠는가. 

100년을 여기서 살았다. 

자그마치 100년을 아사의 곁에서 살았다. 

달리 말하면 100년이나 아사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아사의 삶은 곧 자신의 삶이었고 자신의 삶은 오롯이 그와 함께였었다. 

계속 그럴 줄 알았다. 

그 변덕스럽고 까칠한 주인과 앞으로도 100년, 1000년을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았다. 

주인은 제게 쓸모없는 지렁이라고 부르고 저는 그런 주인을 달래며 그렇게 주인이 살아있는 한 저도 주인의 곁에서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았다. 

이런 식으로 주인의 곁을 죄인처럼 떠나 도망쳐서 영영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다 주인님 탓이에요….” 

그래, 이건 전부 아사 때문이다. 

제 죄가 아니다. 

아사가 술에 취해서 저를 건드린 탓이다. 

아사가 그런 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누가 승은을 달라고 했던가. 

달라고 한 적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저를 범해 놓고서는, 마음대로 제게 잉태를 시켜놓고는 이제는 제게 화를 내고 있다. 

그놈이 누구냐고? 그놈이 자기라는 걸 알면 그때는 뭐라고 말할까. 

자기가 취해서 덮쳤으면서 진실을 알아도 제게 화를 내겠지. 

거부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겠지. 

감히 지렁이 아니, 물뱀 따위가 승은을 입을 생각을 했냐며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겠지. 

“누가 승은 같은 거 달랬다고….” 

또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닦으며 연이 딱 좋은 것을 떠올렸다. 

지금 연이 갇혀 있는 이 처소는 아사의 침궁이다. 

아사의 침궁에는 아사가 사용하는 검이 있다. 

물론 아사가 검을 사용할 일은 절대 없지만, 청룡의 검이 있다. 

청룡의 검으로 말하자면 어떤 것도 자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이 착고도 잘라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분명히….” 

연은 아사의 침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이곳을 매일 정리 정돈하는 것이 자신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아, 하아…. 힘들어….” 

발목에 채워진 착고를 질질 끌고 겨우 검을 넣어둔 곳까지 기어간 연이 낑낑거리며 검의 보관함을 열었다. 

아사의 검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보관함 안에 잘 넣어져 있었다. 

연은 이것을 열흘에 한번씩 잘 닦아서 관리해왔다. 

그랬던 것을 이렇게 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이익…!”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두 손으로 든 연이 제 발목의 착고에 매달린 쇠사슬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직-! 무서운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끊어졌다. 

쇠사슬만 끊으면 발목에 착고가 아직 매달렸어도 이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누가 달아나지 못할 줄 알고. 주인님은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착고의 쇠사슬을 끊은 연이 얼른 침궁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제 처소로 달려와서 숨겨놓았던 짐을 꺼냈다. 

당장 달아날 수 있게 이미 짐은 다 꾸려놓았다. 

“이제 가는 거야.” 

결심을 한 연이 짐을 등에 맸다. 

연은 이 궁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아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궁을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도 알고 있다. 

연보다 이 궁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다. 

하다못해 아사도 이 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연은 이 궁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고 아사의 행동반경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100년은 허투루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내가 없으면 주인님은….” 

비밀 통로로 들어가기 직전 연이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저를 잡는 이가 없는데 괜히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자신이 없으면 누가 아사를 돌봐줄까. 

아무도 곁에 오지 못하게 하는 아사인데, 자신이 없으면 누가 그 변덕을 맞춰주고, 누가 그를 살뜰하게 보살펴줄까. 

막무가내로 화만 내기 때문에 다들 그를 무서워하는데 제가 사라지면 그는 그 화를 다른 이들에게 쏟아붓겠지. 

그러면 그 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들 떠나버리지는 않을까. 아사가 혼자가 되지는 않을까. 

혼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이 한 명 없는 곳에서 아사는 얼마나 외로워질까. 

지난 100년은 아사의 곁에서 그의 덕분으로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아사가 자신에게 의지해서 살아온 시간이기도 하다. 

아사와 자신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서 살아왔다. 

물뱀과 청룡이. 

우습지만 물뱀은 청룡에게, 청룡은 물뱀에게 그렇게 서로를 의지해서 살아온 100년이다. 

[지렁이냐?] 

아사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제게 그렇게 물어왔었다. 

엄연히 물뱀인데 지렁이라니.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본 아사는 너무나 위대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물이 없어 죽어가던 때에 자유롭게 비를 내릴 수 있는 청룡이 위대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그의 시중을 들게 되면서 처음에는 그가 무섭고 그가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범접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그런 생각은 사라져갔다. 

그는 위대하지만 혼자이고, 그는 사납지만 외톨이다. 

그와 똑같은 청룡을 찾고 있지만 세상에 그가 바라는 청룡은 없다. 

결국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찾고 기다리며 혼자인 그를 보며 연은 가뭄에 말라가는 작은 물 웅덩이에 살던 자신을 떠올리곤 했었다. 

만약 그가 와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말라붙은 물 웅덩이와 함께 

죽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유일한 친구였던 실뱀을 먼저 잃고 그 후에 그 작은 웅덩이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채로 죽어갔을 것이다.

아사도 그런 저와 마찬가지다. 

그의 외로움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외부에서는 예의바르고 궁 안에서는 사나운 폭군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그저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외톨이일 뿐이다. 

아무도 그런 그의 진짜 모습을, 진짜 외로움을 모른다. 

자신만 알고 있는데,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데 그런 그를 두고 자신이 도망가버리면 그는 이제 어떻게 될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연이 다시 한 번 눈물을 훔쳤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이는 제가 잘 키우겠습니다.” 

아사의 침궁 쪽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다음 연이 돌아서서 비밀 통로로 기어나갔다. 

어두운 통로를 기어가며 멀리 그 끝에서 보이는 빛을 봤다. 

저곳으로 나가면 이제 이 궁과는 영영 안녕이다. 

진짜로, 안녕이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낑낑거리며 좁은 통로를 기어나가는 그녀의 뱃속에서 아이가 꿈틀거렸다. 점점 태동이 심해지고 있었다. 

머잖아 출산이 임박했다는 것을 연도 느꼈다. 

그러니까 출산이 시작되기 전에 빨리 서쪽으로 가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안전한 곳으로. 

 *** 

아사가 돌아왔을 때 그가 본 것은 잘려나간 쇠사슬과 그 옆에 버려진 그의 검이었다. 

그곳에 연은 없었다. 

아무도 연이 어디로 갔는지 그녀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왜 도망갔는지 그 이유를 아는 이도 없었다.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디로 도망가 숨더라도 자신이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사흘 밤낮을 찾아도 아사는 연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 흔적은 찾았다. 

다만 그 흔적이 서쪽 백호의 영역에서 끊어졌을 뿐이다. 

그녀가 백호의 영역으로 도망쳤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녀를 찾아낼 방법은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백호신을 찾아가 그녀를 찾는 것을 도와달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백호 연사가 인간을 반려로 맞이했을 때 누구보다 그를 비웃었던 것이 자신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인간도 아니고 물뱀, 하찮은 물뱀을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아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영역에서 분노를 터트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의 분노는 비바람이 되고 천둥 번개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그가 다스리는 동쪽 땅 전체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열흘 동안 그치지 않고 쏟아졌고 바다는 거친 파도가 그치지 않아 누구도 배를 띄우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열흘 넘게 폭우가 멎지 않고 쏟아지자 강이 넘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덮치고 산의 흙이 무너져 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차오르는 물을 피해 더 높은 산으로 피신을 해야만 했다. 

집이 떠내려가고 농지가 망가지고 사람들만 산으로 피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들도 사람들과 더불어 산을 올랐으니 그야말로 대 재앙이었다. 그런 재앙이 시작된 이유를 아는 이는 없었다. 

다만 그렇게 폭주하는 청룡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만 알 따름이었다. 

그렇게 땅이 잠기고, 하늘은 비를 쏟아 붓고 청룡은 그렇게 해도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계속해서 토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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