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님의 승은-마뇽
공금
[지렁이 같은 것.]
그게 늘 연이 듣는 말이었다.
볼품없는 지렁이.
주워온 지렁이.
밥만 축내는 지렁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렁이.
그게 연의 주인인 아사가 늘 그녀를 부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연은 그 말에 불평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아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청룡이고 자신은 어느 흔한 산속의 작은 물웅덩이에 살던 물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늪의 이무기도 아니고, 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교룡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다 못해 구렁이도 아닌 실처럼 작고 가느다란 물뱀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감히 순혈의 청룡의 말에 불만을 가지겠는가.
물뱀은 기껏해야 10년에서 15년을 사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런 하찮은 물뱀인 자신은 지금까지 100년도 넘게 살고 있다.
이건 전부 청룡 아사의 덕분이다.
고작 10년을 사는 물뱀이 100년째 거뜬하게 살고 있을 수 있는 건 청룡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 제 목숨이 연장되고 있는 게 제 주인 때문이라는 것을 연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주인인 아사가 저를 지렁이라고 거침없이 불러대도 한 번도 불평해본 적도 없고 감히 불만을 마음으로 품어본 적도 없다.
연이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연은 욕심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었다.
연이 바라는 것은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다.
비바람을 피해서 잠 잘 곳을 찾을 걱정을 하지 않고, 무엇을 먹어야 하나 염려하지 않고, 언제 누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아도 되는 것.
연이 바라는 것은 그런 소소한 행복이다.
예전에 작은 물 웅덩이에서 살 때에는 늘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살아야 했다.
누가 자신을 잡아 먹으면 어쩌나, 웅덩이에 물이 마르면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먹을 것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해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해야만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청룡의 궁에서는 누구도 저를 해치려는 자가 없고, 더는 뭘 먹을지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삶이 연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비록 지렁이라고 늘 무시당하기는 하지만, 모시고 있는 주인의 성품이 너무 변덕스럽고 까칠하고 때로는 난폭하고 거기에 결벽증과 타종족 혐오증까지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삶은 그 불편함들을 전부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서 이렇게 살 수 있겠는가.
주인인 아사가 살아있는 한 연도 그 기운을 받아서 계속 살 수 있다.
그래서 연은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기고 있다.
연이 사는 곳은 동쪽의 수선궁. 그리고 연의 주인은 수선궁의 지배자이자 동쪽의 수호신인 청룡 아사다.
아사로 말할 것 같으면 사방신 중의 한 명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청룡이라는 소문도 있다.
죄다 특이한 성격을 가졌다고 소문이 난 사방신들 중에서 청룡은 가장 무난하다는 외부의 평가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의 평가일 뿐이다.
수선궁에서 청룡을 섬기는 이들은 아사의 진짜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아사는 병에 가까운 결벽증에 인간혐오증을 가지고 있고,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족에 대한 혐오증도 다분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변덕스럽고 제멋대로다.
마음이 잠깐 사이에도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그를 모시는 이들은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에 아사는 혈통을 중요시하는 용이다.
혈통도 그냥 혈통이 아니라 순혈을 지향하고 있는 순혈주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청룡의 자부심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기가 막힌 우월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사 이전의 선대 청룡은 선선대의 오누이 사이에서 태어났고 선대의 청룡 역시 그 쌍둥이 누이와 혼인했으며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아사다.
아사는 자신의 양친이 모두 청룡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청룡의 피라는 것을 아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가장 우월하고 위대한 청룡의 피를 순수하게 물려주기 위해서 아사는 지금까지 계속 청룡의 반려를 찾아왔다.
즉, 청룡이 아니면 반려로 삼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황룡, 백룡, 적룡, 흑룡에게서 혼담이 들어왔지만 아사는 그걸 전부 거절했다.
물론 거절의 이유는 [청룡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청룡의 씨가 말랐는지 세상 어디를 뒤지고 수소문을 해봐도 청룡 비슷한 용도 찾을 수가 없는 탓에 까칠하기 이를데 없는 연의 주인은 아직까지도 반려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사는 젊기 때문에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서쪽의 수호신인 백호의 경우는 만년을 살았다고 하고 북쪽의 현무신의 경우도 수천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청룡은 아직까지는 젊은 수호신이다.
물론 남쪽의 주작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사가 가장 젊은 수호신인 것은 아니다.
“주, 주인님-!”
비틀거리며 제 쪽으로 쓰러지는 아사를 바들거리는 두 손으로 겨우 떠받치며 연이 비명을 질렀다.
작은 체구의 연이 저보다 훨씬 큰 아사를 떠받치는 것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주인님, 조금만 다리에 힘을 주시어요!”
지금 아사는 인사불성 만취 상태이다.
대체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것일까.
오늘 서쪽 백호궁에서 사신이 다녀간 것을 연도 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대충 [백호 연사께서 득녀를 하셨다]는 그런 내용의 전언을 사신이 가지고 왔을 것이다.
만년 만에 백호궁의 경사이니 당연히 축하를 해줘야 하는데 그때부터 아사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그리고 사신이 돌아간 직후 계속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결국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하고 말았다.
아사가 평소에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이 아사를 모시기 시작한 이후로 100년 동안 이렇게 취한 아사의 모습은 처음 봤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는 쓸모없는 지렁이 같으니라고.”
잔뜩 취한 목소리로 아사가 불평을 터트렸다.
“하지만 주인님이 너무 크신 걸요….”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주인님께서 제 몸을 크게 만들어주시지 않는 이상 저는 약해 빠졌다구요….”
구렁이처럼 커다란 몸을 가졌으면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사를 거뜬하게 부축하겠지만 현실은 겨우 아사의 몸을 떠받치며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다.
“제발 조금이라도 몸을 가누어주세요….”
이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혼이 나는 것은 자신이다.
아사는 청룡이라서 넘어져도 몸에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은 물뱀이라서 잘도 다치고 상처도 잘 낫지 않는다.
그리고 제대로 부축을 하지 못했다는 죄로 며칠 내내 혼이 날 것이 분명하다.
“주인님, 제발… 제발 조금만….”
낑낑거리며 부축한 아사를 겨우 침상으로 데려간 연이 제 주인의 몸을 침상으로 조심스럽게 눕혔다.
“살았다….”
연이 이마에 고인 진땀으로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주인님. 이제 의복을 벗겨드리겠습니다.”
연이 침상에 누운 아사의 옷깃에 손을 댈 때였다.
“이 지렁이 같은 것이.”
아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연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미간을 찡그리고 자신을 노려봐도 연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무서울 리가 없다.
이미 100년이나 아사는 저를 이렇게 노려봤었다.
아사가 저를 죽일 리는 없다는 걸 연도 안다.
왜냐하면 자신만큼 아사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시녀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 [지렁이]라고 저를 무시하면서도 제가 곁에 없으면 결국은 불편한 것은 아사다.
자신을 무시하면서도 항상 곁에 두고 이것 저것 잡일을 시키며 시중을 들라고 하는 건 결국 아사의 비위를 완벽하게 맞춰주는 것이 바로 자신인 까닭이다.
“너는 내가 없으면 그날로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
“네, 압니다. 압니다, 주인님.”
이 말도 벌써 수천번도 더 들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생색을 내려는 걸까.
이 넓은 동쪽 땅의 수호신이자 지배자이면서, 이 청룡은 자신에게는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 앞에서는 위엄이 철철 넘치는 사방신이지만 제게는 그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큰 지렁이에 가깝다.
새파란 비늘이 달리고 여의주를 가진 지렁이 말이다.
“잘 아니까 이제는 제발 그 말씀 좀 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속에 있는 말을 전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잔뜩 술에 취했을 때 했던 말은 술이 깼을 때 아사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심하게 취한 것은 처음이지만 아사는 가끔이 아니라 꽤 자주 술에 취한다.
주로 다른 사방신의 궁에 다녀오면 이렇게 술에 취해서 온갖 패악을 부리지만 자고 일어나면 전혀 기억을 못한다.
물론 이렇게까지 심하게 취한 것은 처음이지만 아사는 가끔이 아니라 꽤 자주 술에 취한다.
주로 다름 사방신의 궁에 다녀오면 이렇게 술에 취해서 온갖 패악을 부리지만 자고 일어나면 전혀 기억을 못한다.
그래서 연은 가끔 화풀이를 하듯 술에 취한 아사에게 막말을 하곤 한다.
기억을 못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렇게라도 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야 분풀이가 된다.
그러면 또 다음번 술에 추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응차...!”
연이 아사의 허리띠를 잇는 힘을 다해 풀었다.
아사의 허리띠는 청석으로 만든 것이다.
일명 돌로 만든 허리띠라서 연은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야 겨우 들 수 있었다.
“제발 이렇게 무거운 건 입지 마세요... 벗기는데 너무 힘들잖아요..”
허리띠를 겨우 벗긴 연이 이번에는 아사의 장옷과 바지를 연달아 벗겨냈다.
청룡의 벗은 몸을 전부 볼 수 있는 건 연밖에 없다.
이 결벽증의 청룡은 그게 누구라도 함부로 제 몸에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만이 유일하게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가있었다.
[지렁이지만 특별히 내 몸에 손대는 것을 허락해주지.]
처음 만났을 때 아사는 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 때도 상당히 눈꼴시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아사는 연에게 제 옷을 벗기는 것도, 제 몸을 씻기는 것도 전부 맡겼다.
덕분에 연은 혼자서 지금까지 그 모든 일을 떠맡아 왔다.
처음에는 이 청룡의 벗은 몸을 보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100년이나 해온 일인데 새삼 부끄러울 까닭이 전혀 없다.
맨 처음 아사의 옷을 벗겼을 때는 너무 부끄러워서 그의 몸에 눈길도 주지 못 했다.
특히나 그의 하체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딴데로 돌리고 그 몸을 더듬다가 아사에게 혼이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더는 부끄럽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아사의 옷을 벗기고 그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주는 일은 이제 그냥 일상이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불끈불끈하시네요. 하지만 정말 쓸데없이 불끈거리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것, 연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었다.
그런데 이건 사실이다.
이 순형주의자 청룡은 같은 청룡이 아니면 동침을 할 마음이 전혀 없으니 이 좋고 실한 음경을 쓸 일은 없다.
한 마디로 이렇게 크고 굵은 음경이라고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제가 쓸모없는 지렁이가 아니라 주인님의 양물이 쓸모가 옵는 겁니다. 아깝죠, 아까워. 주인을 잘못만나서 평생 한 번도 써볼 일이 없는 이 음경이 아깝죠.”
갈아입힐 야장의를 가지고 다가온 연이 거의 잠든 아사를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사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고 이 정도면 몸을 흔들어도 모를 것이다.
“이렇게 굵고 커다란데, 아까워라, 아까워. 만년을 가도 이걸 써보지 못하다니, 정말 아깝네요. 만약 제가 사내고 제가 청룡이라면 이 잘난 음경을 가지고 실컷 휘두를 텐데요.”
그 말을 하고 나니 갑자기 서러워 졌다.
이 청룡은 결벽증에 순혈주의자 꼴통용이라서 이 양물으 써먹을 일이 없겠지만 저는 무슨 죄란 말인가.
자신은 결벽증도 없고 순혈주의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사내와 정분이 나 본 적이 없다.
한시라도 눈에서 벗어나면 화를 내는 청룡의 수발을 드느라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해 봤다.
당연히 교합도 해본 적이 없다.
제 주인은 써먹을 일이 없어서 하체를 쓰지 않고 저는 이 망할 주인 때문에 하체를 써보지 못했으니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단 말인가.
“빨리 반려를 들이시고 저도 이제 반려를 맞이하게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까칠한 청룡과 함께 한 100년이 아주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덕분에 이런 저언 걱정 없이 100년을 나름 편안하게 살아왔다.
청룡의 궁에서 호사도 누렸다.
미운 정 고운 전 다 들었지만 가끔은 제게도 반려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른 시녀들이 사내들과 눈이 맞아서 깨가 쏟아지게 정분을 나눈 것을 보면 저도 그런 상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100년을 살았지만 사내의 살맛을 전혀 모른 것도 억울하다.
“그만 따지시고 이제 적당한 처녀를 반려로 들이세요. 지난번에 혼담을 청해 온 황룡님의 따님도 미인이셨잖아요.”
야장의를 옆에 두고 연이 젖은 물수건으로 아사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원래 다른 때였다면 잠들기 전에 차가운 물에 목욕을 했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취해 잠이 들었으니 몸을 닦아주는 것으로 목욕을 대신해야한다.
아사는 뜨거운 물에 하는 목욕은 질색을 한다.
그건 연 역시 마찬가지다.
아사는 청룡, 연은 물뱀이라서 뜨거운 물보다는 차가운 물을 더 좋아한다.
청룡 궁에는 만년설이 쌓인 동궁이 있다.
천정이 뚫려있는 동굴인데 만년 전에 내렸다는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그곳에 쌓여 있고 만년 동안 얼어 있는 얼음도 있다.
그리고 아사는 그 만년설의 동굴에서 몸을 식히는 것을 좋아한다.
애초에 더운 것과 열기 자체를 싫어한다.
그래서 아사가 가장 질색하는 장소는 주작의 천궁이다.
몸 전체에서 불길을 내뿜는 주잗의 근처에 조금이라도 머물렀다 오면 아사는 곧장 만년설 동굴에서 사흘 밤낮을 몸을 식힌다.
원래 아사의 궁은 동해 바다의 푸르고 깊은 물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아사는 그 궁에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그 궁에 돌아가는 것은 반려를 맞이했을 때라고 아사의 입으로 몇 번이나 말하던 것을 연은 들은 적이 있다.
이대로 반려를 맞이하지 못하면 그 궁은 아마 영영 버려지지 않을까.
연은 아직도 그 바닷속의 청룡 궁에는 가보지 못했다.
물뱀이지만 깊고 푸른 바닷속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언젠가는, 그러니까 아사가 반여를 맞이하면 그와 그의 반려를 따라 그 청룡의 궁, 인간들이 말하는 용왕의 궁을 보고싶다.
아사는 동쪽을 수호하는 사방신이지만 인간들은 아사를 가리켜서 동쪽의 용왕님이라고 부른다.
용왕님. 낯선 호칭이다.
이곳 청룡의 궁에서는 누구도 아사를 용왕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인간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이곳에서는 주인님이라고 부를 뿐이다.
청룡신, 용왕님, 아사,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만 연에게 있어서 이 사내는 그저 [주인님]일 뿐이다.
‘백룡님의 누이 동생이라는 분도 미인이셨지요. 기품도 넘치시고. 그런데 왜 혼담을 거절하셨어요? 그렇게 찾고 찾으시는 청룡은 이제 세상에 없다니까요. 그리고 굳이 청룡이 아니라도 다른 용도 용인데 왜 그러시나 몰라요, 백호님과 현무님은 인간의 반려를 맞으셨고 주작님은 반인반요인 혼혈 까마귀를 반려로 맞으셨다고 들었다는데 인간도 아니고 반인반요도 아닌 같은 용이라면 더 낫지 않을까요? 하여간에 까다롭다니까.“
연이 젖은 수건으로 아사의 사타구니를 쓰윽 닦을 때였다.
“응?”
양물이 조금 머리를 쳐든 것이다.
“좋은 꿈이라도 꾸시나?”
고개를 쳐든 양물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커지는 것을 보며 연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떄였다.
“주인님?”
연의 귀에 낮게 중얼거리는 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낮게 웅얼거려서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주인님. 물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분명히 잠이 들었는데 목이 말라 선잠이 깬 것일까.
그의 사타구니를 닦다 말고 연이 그의 얼굴에 제 귀를 가까이 들이댔다.
그의 목소리를 조금 더 저새하 듣기 위해서였다.
“주인님? 지금 뭐라고 하셨는지...?”
그래봤자 술주정일테니 별 뜻을 실은 말은 아닐 것이다.
“주...”
“서버렸다고.”
“네? 뭐가 서버렸다는 건지 저는 잘...”
섰다고? 뭐가?
아무래도 잠결에 잠꼬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연이 아사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내릴 때였다.
“내 좆이 섰다고.”
그 순간 연의 눈앞이 뒤집혔다.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위 아래가 뒤바뀌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제 위에 아사가 올라탄 후였다.
“주, 주, 주인님?”
이런 주사는 처음이다.
100년 동안 술주정을 봐왔지만 이런 식으 술주정은 처음이다.
“주인님. 저예요. 연이예요.”
당황한 연이 아사를 올려다보며 연신 말을 걸었지만 이미 아사의 눈은 맛이 가 있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은 아니다.
술이 취한 것은 맞는데 너무 취해서 미니 주정의 단계를 넘어서서 맛이 가버린 상태가 되고 만 것일까.
“주, 주인님. 제, 제가 물을 가져올...”
“시끄러운 입이군. 조잘조잘 아까부터 계속 떠들어대고 있는 입.”
“네?”
뜻밖의 말에 연이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아사가 픽 웃었다.
주인님이 웃는 일은 극히 드물다.
측히 이런 식으로 웃는 건 더더욱 드문 일이다.
웃는 얼굴아 정말 혼자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읍...!”
연의 눈이 엽전처럼 커졌다.
아사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은 것이다.
청룡의 차가운 입술이 제 입술을 눌러오자 연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연은 물뱀이다.
기본적으로 살갗이 차갑고 심장이 느리게 뛴다.
물론 피도 차가워서 어지간한 일에는 쉽게 놀라지 않고 걸음걸이도 항상 느릿느릿 걷는 축에 속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연은 제 심장이 이렇게 빠르게 뛸 수 있다는 것을 100년 만에 처음 깨달았다.
제 주인에 대해서는 거의 다 파악을 했다고 생각해 왔었다.
저만큼 제 주인에 대해 잘 아는 시녀는 없고, 제 주안의 변덕을 문제없이 잘 맞춰줄 수 있다고 자신만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뭘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읍, 읍...”
연이 아사를 밀어내려고 그의 어깨를 떠밀었지만 이내 그의 손에 손목이 붙잡혔다.
제 힘과 그의 힘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거워...’
저를 짓눌러 오는 아사의 무게에 연의 숨이 막혔다
차가움과 차가움이 만나면 당연히 더 차가워져야 하는데 지금 아사의 입술과 맞물린 제 입술에는 점점 열기가 더해져갔다.
그 익숙하지 않은 열기가 연을 간질였다.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감았다 뜨며 연이 제게 미친 짓을 하는 아사를 보려고 노력했다.
유난히 새파란 눈동자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아랫도리에 꾹꾹 눌러오는 ㄴ단단한 것이 뭔지는 연도 잘 안다.
아사의 평생에 쓸 일이 없을 거라며 빈정댔던 그 양물이 지금은 제 아랫도리를 찔러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제 몸 안으로 그것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절대로 안 돼...’
아사는 순혈주의자다.
그런데 술김에 하찮은 물뱀과 교접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제 목은 그 자리에서 달아날 것이다.
아니. 그냥 달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게 찢어 질 수도 있다.
연은 예전에 아사의 분노를 산 늪의 이무기가 어떻게 죽는지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아주 잘게 조각조각 나서 죽임 당하건 그 모습이 지금 연의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저를 누르고 있는 이 힘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다.
‘이를 어쩌지...’
이젠 입안이 얼얼해졌다.
제 입 안으로 들어온 아사의 혀가 얼마나 세차게 저를 유인했는지 혀가 얼얼하고 입술이 마비된 것처럼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하아...!”
아사가 입술을 떼는 순간 연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지만 연의 입술은 여전히 얼얼하니 감각이 없다.
입술에 묻은 타액을 손등으로 문지르던 연이 그만 깜짝 놀랐다.
아사의 차가운 손이 제 옷고름을 휙 푼 것이다.
“주인님!”
놀란 연이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었다.
“꺄악!”
이미 사납게 변한 눈동자로 저를 노려보는 아사에게 겁 먹은 연이 제 옷을 찢듯이 벗기는 그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두 겹의 옷은 순식간에 침상 아래로 사라졌고 완전히 벌거벗은 알몸을 연이 두 손으로 가렸다.
그래봤자 젖가슴을 손으로 가리는 것이 전부였다.
“주, 주, 주안님... 제발 하지마세요...”
울먹이며 애원했지만 아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니 제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릴리 만무하다는 것을 연은 너무 잘 알았다.
“이미 서버렸다고 했잖아.”
아니, 그걸 세운 것이 어디 자신의 탓인가.
자신은 음경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사타구니만 닦았을 뿐이다.
그런데 알아서 그걸 세워놓고 이제 와서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물 냄새가 나서 미치겠어.”
물 냄새? 그야 물뱀이니까요.
“지독한 물 냄새야.”
아사의 얼굴이 연의 바로 앞까지 내려왔다.
그의 거친 숨결이 연의 살갗에 닿았다.
그 숨결을 맡는 순간 연의 머리가 몽롱해졌다.
“아, 안 돼. 정신 차려야해...!”
뱀은 교미를 할 때 상대를 홀리는 향을 내뿜는다.
청룡은 여의주를 가진 거대한 뱀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아사가 그런 교미의 향을 풍긴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다만 지금 그런 것을 미친 듯이 내뿜어서 그렇지.
‘모, 몸이 뜨러워져...’
물뱀의 체온은 차갑다.
그런데 지금 연의 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달아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 낯선 열기의 출처가 아사가 지금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교미의 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뜨, 뜨거워요, 주인님....”
제 허리를 잡는 아사의 손이 뜨겁다.
제 허벅지를 찌르고 있는 아사의 음경이 불에 달군 쇠꼬챙이처럼 뜨겁다
“어디에서 물 냄새가 나는 걸까? 여기?”
아사의 손이 연의 사타구니 안으로 침입했다.
“하윽!”
제 둔덕을 쥐고 주무르는 손길에 연이 숨을 헐떡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사의 향이 점점 진해지며 연의 머릿속은 점점 몽롱해졌다.
이러다가는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는채로 당하고 만다.
그때까지 몸을 누르고 있던 아사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이 있는 힘껏 몸을 돌려 침상에서 달아나려고 했다.
“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발버둥 치며 아사의 몸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기어가던 몸이 멈췄다.
아사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것이다.
“주인님! 주인님!”
허리를 잡힌 채로 연이 기어 나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기운만 빠져나갈 뿐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구나.”
“앗!”
아사의 손이 연의 허리를 주르륵 잡아당겼다.
그 손에 끌려간 연이 졸지에 아사의 허벅지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이 구멍에서 물 냄새가 나오고 있구나.”
“꺄악!”
차가운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훤히 들어난 음부로 차갑고 긴 손가락이 문지르며 파고 들어왔다.
“하윽! 주, 주인님!”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손가락이 제 질구 안으로 거침없이 찔러 들어오자 연이 침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흐앙! 아아아! 아앙!”
머릿속은 달콤하기 짝이 없는 교미의 향이 점령했고 전신에는 낯선 열기가 들끓었다.
그리고 벌어진 음부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손가락은 이미 두 개를 넘어서 세 개가 되고 있었다.
“흐응! 응! 흐아앙!”
허리를 높이 든 채로 엉덩이를 실룩이며 연이 교성을 질렀다.
아사의 손가락이 삼키고 있는 제 구멍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뱀에게도 당연히 발정기라는 것은 존재한다.
다만 연은 한 번도 그 발정기라는 것이 오지 않았다.
연이 아사를 처음 만난 것은 고작 두 살 때였다.
물론 인간의 두 살과 물뱀의 두 살은 다르다.
인간 나이로 치면 고작 열 두 세 살 정도에 연은 아사를 만났다.
발정기가 올 만한 나이는 아니였다.
그리고 아사를 만난 이후에는 그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 발정기가 와야 할 시기에 발정기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100년을 살아 오며 단 한 번의 발정기도 연은 맞이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꼭 발정기가 온 것처럼 몸이 들끓고 있다.
어쩌면 아사의 기에 눌려 오지 못했던 발정기가, 지금은 반대로 아사의 향에 취해 시작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발정기라면 곤란한데...’
발정기의 교미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임신할 확률이 높다.
아니, 발정기에 교미를 하면 임신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안돼..... 안돼....’
하지만 안 된다고 해서 지금 이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하읏, 으응...으응...”
제가 생각해도 음란하기 짝이 없는 뜨거운 신음이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안된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엉덩이는 저절로 씰룩거리고 있다.
‘무, 문지르고 있어....’
제 실룩거리는 엉덩이의 갈라진 골짜기에 굵고 묵직한 것이 문질러지자 연의 전신이 움찔거렸다.
“주, 주인님....”
새빨갛게 달아오름 얼굴로 연이 제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동자에 제 둔부를 벌리고 금방이라도 음경을 쑤셔 박을 것처럼 구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주인님.....제발 넣지 말아주세요.....”
질구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다.
머리는 이 일의 끝이 최악의 비극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지만 청룡의 향에 취한 몸은 나중 일은 모른다는 듯 그거 낯선 열기에 취해 이미 달아오르고 있었다.
“주인님......”
새빨갛게 달아오른 연이 애원했다.
“네 좆이 들어가면 찢어지겠군.”
그러나 그녀의 애원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아사가 제멋대로 웃었다.
그래, 저런 성격이었다.
취했어도 취하지 않았어도 아사는 저런 성격이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남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이기적인 성격의 주인이었다는 걸 연이 잠시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