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리브가는 실내에서 펼쳐지는 화려하고도 끔찍한 전경에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열린 문 너머로는 문이 열리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어릴 적의 기억이 신물처럼 들솟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손에 든 트레이를 놓치지 않은 것만으로 용한 일이었다.
응접실 꼴은 난교 파티의 한 장면을 따온 양 가관이었다. 그 안에서는 본능적으로 꺼리게 되는 위험한 분위기가 한껏 도사렸다. 경직된 시야 속에,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이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가장 가까이에 놓인 탁자 위에서 음란하게 몸을 섞는 남녀의 모습이 잔상처럼 망막 위로 이지러졌다. 사내는 여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채 짐승같이 무아경으로 박아 댔고 그 아래 깔린 여자는 제 목을 조르는 손속에도 좋다고 웃으며 교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젖혀진 고개로 드러난 여자의 눈자위가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반대편 전경의 상황도 썩 다르지는 않았다.
거긴 테이블 위 술잔을 기울이며 포커를 치는 몇몇으로 차 있었다. 특이점은 그 테이블의 아래였다. 남자의 앞에는 나체의 여자가 앉아 성기를 빨고 여자의 앞에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은 남자가 있었다.
섹스, 혹은 그와 비슷한 농도의 패팅이 눈 둘 곳 없을 만큼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엉망으로 뒤섞인 여자와 남자의 신음 소리, 그리고 그들이 곁들이는 호박빛의 술, 조금 더 나아가 비릿하고 텁텁한 내음까지.
리브가는 자신이 알던 슬럼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풍경에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응? 뭐야.”
한쪽에서 포커를 치던 사내가 문을 열고 등장한 그녀를 보고 알은체를 해 왔다. 근처의 이목이 리브가에게 쏠렸다.
약과 술과 향락에 뒹구는 저들은 대다수 나체의 꼴이었고 리브가는 단추를 끝까지 채운 단정한 하녀복 차림새였다. 그러니 부끄러움을 느껴도 그네들이 느껴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리브가의 어깨가 둥글게 말리고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그건 그녀가 보기에도 스스로가 이곳과 썩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임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누구?”
“아, 저, 저는…….”
리브가의 한쪽 발이 경계하듯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너무 미약한 움직임이라서 하나마나한 행동이었다.
“차림새를 봐라. 하녀잖아.”
“발렌틴이 불렀나?”
“오, 얼굴이 제법…….”
“하녀치곤 되게 반반한데.”
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요란하게 이목이 쏠린 가운데 리브가는 기를 못 펴듯 움츠러들었다. 어쩌지를 못하고 연신 쭈뼛대는 그녀를 물끄럼 보던 사내가 대뜸 히죽 웃더니 발을 내디뎠다.
정신 차리고 얼른 물러나려고 했으나 한발 늦었다. 사내는 이미 목전까지 다가와 있었다.
“흐음.”
바지 하나만 걸쳐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사내가 팔짱을 낀 채로 리브가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눈에서 몇 초, 코에서 몇 초, 입술에서 또 몇 초. 지그시 응시하는 시선이 다소 껄끄럽다. 특히나 눈 아래 눈물점과 긴장하여 움푹 들어간 볼우물에 유난히 길게 머물렀다.
“발렌틴이 이런 취향이었나?”
“일단 들여보내. 그놈 괜히 또 성질머리 돋아서 지랄하기 전에.”
“아무렴. 우리 모임장을 불쾌하게 만들 순 없지. 야! 이리 와 봐.”
사내가 대뜸 리브가의 팔목을 붙잡아 응접실 안쪽으로 끌고 갔다. 크게 반항하고 싶어도 트레이를 들고 있어 무리였다. 트레이에 들린 술과 잔은 그녀의 봉급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만큼 값진 것일 게 뻔했다. 그런 고로 ‘저, 저.’ 하고 어벙하게 굴면서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응접실 안쪽으로 향할수록 세상에 쉬이 보일 수 없는 천박함과 노골적인 행태가 더더욱 자세히 드러났다. 소파에 앉아 기괴한 체위로 몸을 섞던 남녀가 리브가를 흥미롭게 응시했다. 그들의 입가에는 하얀 가루가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다. 집중도 잠시, 그들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랫도리를 짜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굳이 그들에게 경악스러운 시선을 내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런 난잡한 행위를 벌이는 이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발렌틴!”
그녀를 붙잡고 끌고 가던 사내가 경쾌하게 호명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니기 바쁘던 리브가의 고개가 대번 그리로 향했다.
그 순간, 리브가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1인용 벨벳 소파에 앉은 주인은 고개를 돌린 채, 그 옆 카우치에 앉은 여인과 혀를 섞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은 필요 이상으로 밀접하게 붙은 채였으며 여인의 손은 그의 허벅지를 은근히 쓰다듬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그리 건전한 손길은 아니었다.
여자의 목덜미를 휘감은 채 끈적하게 혀를 빨던 발렌틴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입술을 뗐다. 그 사이로 타액이 은실처럼 검질기게 늘어 붙었다. 고개를 정면으로 한 주인의 입술은 여자의 연지로 불그스름하게 번져 있었다.
“뭐야.”
리브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주인이 여자와 벌이던 문란한 키스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제 쪽을 응시하는 눈동자가 위화감을 조성한 까닭이었다. 초점이 교묘하게 어긋난 시선에 낯빛은 한층 더 나른하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하지만 그 아슬아슬함을 즐기는 듯 실로 퇴폐적이었다.
“널 찾아온 모양인데?”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리브가를 대신하여 그녀를 끌고 온 사내가 간단히 설명했다. 리브가가 정신을 차린 건 술통에 담갔다가 뺀 듯 풀어진 금안이 제게로 향할 때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고작 눈길이 향했을 뿐인데 리브가는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초라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건 이곳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수적인 차림새 때문일 수도 있고, 손에 들린 보잘것없는 술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어가 됐든 그녀는 이 자리에 느닷없이 나타난 이방인이 따로 없었다. 물과 기름처럼 이 속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물론, 녹아들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다.
“발렌틴.”
옆에 앉아 있던, 조금 전까지 주인과 키스를 하던 여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입술에 시가를 꽂아 주었다. 리브가는 저도 모르게 그 여자를 살폈다. 사흘 전 보았던 그 귀족 영애이며, 오늘 아침 주인의 침대에서 나온 여자였다.
그녀는 뽀얀 피부를 드러내는 얇은 슬립에 레이스 달린 가터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은밀한 부위가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도록 다리를 꼬아 앉은 모습이 낮에 보이던 귀족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애가 꽂아 준 시가를 볼이 홀쭉해질 만큼 빨아들인 발렌틴의 동공이 진득하게 가라앉았다. 늪처럼 아득하고 밤처럼 몽롱하다. 그 끝이 어딘지 몰라도, 선뜻 발을 들이고 싶진 않은 검측측함을 가득 내포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 바퀴 굴렀다가 제자리를 찾는 동공의 궤도가 결코 정상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리 와.”
주인은 그런 석연치 않은 눈을 한 채 리브가를 불렀다. 여기까지 발을 들인 마당에 나가겠다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무얼 시킬지도 모르는 판국에 쫄래쫄래 다가가기도 좀 그래서 리브가는 망연히 서 있었다. 요지부동인 그녀를 직시하는 발렌틴의 시선이 날렵해졌다.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주인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어느새 코앞까지 다다른 그의 존재에 당황하여 횡설수설 물었다. 질문하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애초 여기서 자신이 할 만한 일이 있을까? 이 난교 파티를 벌이는 이들 중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는 없어 보였다. 있다면 그녀 또한 나체가 되어 사내 중 하나의 아래에 깔리는 것뿐 아닐까.
“마침 술을 가져왔군.”
가까워진 그에게서 거북한 내음이 사정없이 풍겼다.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독한 타락의 냄새.
약쟁이, 망나니, 골칫거리 운운하던 하녀들의 음성이 귀청을 때렸다. 머릿속에 기다란 바늘이 박힌 것처럼 지끈대는 두통이 일었다. 리브가는 결국 제 눈으로 마주한 실체를 못 본 체하고 싶은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제 팔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악력에 다시 부릅떠졌다.
발렌틴은 그녀를 데리고 조금 전 앉아 있던 소파로 향했다. 근처 카우치와 소파에 둘러앉은 이들이 그와 그녀를 상당히 흥미진진한 눈길로 보고 있었다. 철장에 갇힌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불쾌감과 당혹이 우열을 가릴 수 없게끔 몰아쳤다.
리브가는 술을 일컫는 그의 행동에 얼른 발치에 엎드려 술을 따르려고 했다. 이미 이곳에 발을 들여 버렸으니 당장 나가는 건 무리에 가까웠고, 조금이라도 빨리 시중을 들고 벗어나는 게 나을 듯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그 시도가 가로막힌 건, 발렌틴이 평소와 달리 그녀를 제 허벅지에 앉힌 까닭이었다. 놀란 리브가의 낯이 창백해졌다.
“따라 봐.”
“주, 주인님. 내려 주세요.”
“얼른.”
앞으로 디밀어지는 술잔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사내의 다리에 걸터앉은 채로 술을 따른다. 그건 명확히 하녀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하녀보다는……. 누군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추측에 힘을 실었다. 정신이 아뜩하게 휘감겼다.
리브가가 응시하는 빈 술잔의 벽에는 미세하지만 흰 가루가 점점이 묻어 있었다. 아마도 발렌틴에게서 시종일관 뿜어져 나오는 냄새의 정체일…….
리브가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술병을 개봉했다. 손이 굳어 행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매서운 중압감을 이겨 내고 끝내 술을 따랐다.
“뭐 해? 계속 해.”
발렌틴은 이목이 제 쪽으로 쏠린 게 마뜩잖았는지 주위를 향해 뇌까렸다. 그러자 근처에 모인 이들이 그 중심에 놓인 체스판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리브가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술병을 간신히 붙들었다. 문득 허리를 감싸 쥐는 손길에 그녀의 신경 한 올 한 올이 움푹 수축했다.
당혹스레 주인을 쳐다보니 그는 태연자약하게 술잔을 비우며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긴장이 쉬이 가시지 않는 버거운 상황임에도 금안의 영롱함에 습관적으로 넋을 잃게 된다.
“발렌틴, 네 차례야.”
“나이트 두 칸 전진 후에, 음… 왼쪽으로.”
그의 간결한 지시에 체스판 주위로 모여든 이들에게서 옅은 환호성이 터졌다. ‘체크메이트인가?’ ‘새끼, 봐주는 법이 없네.’ 감탄과 볼멘소리가 작게 뒤따랐다.
주위에서 열띤 반응을 이끌어 낸 게 무색하게 발렌틴은 체스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리브가가 등장한 시점부터 그녀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가시 같았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자세부터가 너무 가까워 무리였다.
“오늘은 조용하군.”
술잔을 입가에 대고 느긋하게 기울이던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리브가는 허리춤에 감싸인 그의 손을 의식하느라, 또 여전히 이쪽을 힐끔대는 이들의 이목을 감내하느라 그 말을 한 박자 늦게 인지했다.
“아, 그게…….”
“…….”
“제가 잘못된……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주인님. 기회를 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는 역시 아침 시중만…….”
들겠다고, 말하려던 차였다.
허리춤에 놓여 있던 발렌틴의 손이 뱀처럼 소리 없이 올라와 한쪽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리브가가 헉, 하고 숨을 급히 들이켰다. 그 상태로 몸이 굳었다. 그는 여전히 술을 목 뒤로 넘기며 그녀의 유방을 옷 위로 주물럭거렸다.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다기엔 다소 평온한 얼굴이었다.
“가슴이 생각보다 크네.”
뇌까리는 음성 역시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주, 주인님?”
“직접 만져 본 적 있나?”
“무슨, 아니…… 앗!”
그의 검지가 정확히 젖꼭지가 있는 부분을 긁었다. 리브가의 엉덩이가 크게 들썩거렸다. 민감한 반응을 보고 확신한 듯 그는 이내 그 부분을 반복적으로 더듬거렸다. 리브가는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황망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어느새 사내 몇몇이 벌게진 눈길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입가에 실실거리는 음흉한 미소는 덤이었다.
이목이 쏠리든 말든 발렌틴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리브가가 주변을 살피는 와중에 그는 목 끝까지 잠긴 메이드복 단추를 두어 개 푼 뒤 순식간에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옷에 가려진 말랑한 젖무덤을 우악스레 감싸 쥐었다.
“흣……!”
술잔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손을 놀리기 시작한 그가 자극에 살짝 도톰해진 유두를 꼬집었다. 생경한 전율에 놀란 리브가가 허리를 비틀었으나 그와 밀착한 상태라서 더더욱 안기는 꼴만 되었다.
졸지에 남들 앞에서 희롱을 당하게 된 리브가는 진정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느낌이었다. 이러지 말라고 다급히 그의 손목을 붙잡아도 성인 남성의 힘은 그녀가 떨쳐 낼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조금씩 단단하게 일어서는 유두를 문지르고 비벼 줄 때마다 알 수 없는 짜릿함이 그 끝에서부터 번졌다. 발끝을 곱아들게 하는, 몹시도 원초적인 자극이었다.
“주인님, 그만, 주, 주인님……!”
“그래, 네 주인 여기 있잖아.”
받아치는 어조가 장난스럽다. 이 광경을 시설시설 구경하던 주변에서는 ‘아, 나도 따먹을 하녀나 부를걸’, ‘저렇게 긴 치마도 나름 벗기는 맛이 있겠어’ 하며 질 낮은 조롱에 기꺼이 동참했다. 어느새 체스판 주변에 성애적인 기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발렌틴이 그녀에게 손을 대는 것을 지켜보던 이들이 임하는 불장난이었다.
리브가는 정신이 혼미하게 흐려졌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무슨 일이 제게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명확한 건 단 하나. 여기로 들어온 이래 제가 그에게 받은 취급은 시중을 드는 하녀가 아닌 창부에 가깝다는 것.
지금 서슴지 않고 옷 속으로 들어와 젖가슴을 치대듯이 주물럭대는 행동마저도 그에 합당했다.
“이러지, 이러지 마세요…….”
“왜? 기분 좋잖아.”
발렌틴이 시선을 피하는 리브가의 턱을 그러쥐었다. 혼이 나간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동자에 물기가 살짝 어려 있었다. 그것을 똑똑히 들여다보며 발렌틴은 군침을 흘리는 짐승처럼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젖꼭지 섰어, 너.”
‘볼래?’ 하고 작게 물은 발렌틴이 옆으로 앉은 그녀의 몸을 저와 완전히 마주하도록 돌렸다. 검은 치마폭에 가려진 가랑이가 완전히 벌어져 주인의 중심부와 직접적으로 마찰했다.
리브가는 제 옷을 손가락에 걸어 쭉 잡아 내리는 손길에 흡, 하고 경직했다. 발렌틴의 말대로 그가 한참 동안 지분거리던 유두가 바짝 곤두서 있었다. 평소에는 잘 만져 보지도 않던 그것이 자극을 받으니 잘 여문 과실처럼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그는 것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정점을 톡톡 건드렸다. 시정잡배를 떠올리게 하는 손짓이었다.
“싫은 반응은 아닌데.”
리브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더 이상 제 눈으로 보기 힘든 사태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안색을 집요하게 살피던 발렌틴은 그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내 나른하게만 굴던 그가 불시에 리브가의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그녀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발렌틴은 이로 콱 물었던 자리를 혀로 쭉 핥아 올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 제 쪽으로 더 당겼다. 헐떡거리던 리브가는 사타구니에 닿는 튼실한 존재감에 놀라 움찔했다. 황급히 시선을 내리니 바지춤으로 모자라 허벅지 부분까지 두툼하게 도드라진 성기의 윤곽이 보였다.
돌올해진 제 유두처럼, 명백한 흥분의 표식.
그것을 알아채기 무섭게 발렌틴이 그녀를 소파 밑으로 밀쳤다.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리브가의 치맛자락이 험하게 말려 올라갔다. 뽀얗고 가느다란 종아리가 드러났다. 여인의 가랑이 사이를 능구렁이처럼 파고들던 사내들이 소란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그걸 보고 침을 삼켰다.
하지만 지금, 리브가는 주변의 이목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제 앞에 우뚝 선 주인이 느긋하게 바지춤을 풀고 있었다. 어스름한 등불에 비치는 얼굴이 미묘하게 도착적이다. 범접할 수 없는 위험한 냄새가 솔솔 내풍겼다.
도망, 가야 한다. 도망을.
속에서 적신호가 요란하게 울렸다. 리브가는 서둘러 벗어나기 위해 몸을 틀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을 예상한 것처럼 발렌틴이 그녀의 머리통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돈이 궁하다고 했었지.”
어릴 때의 악몽과 유사한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퍽 어울리지 않게 곰살맞다. 리브가는 자신이 슬럼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린아이인지, 아니면 진작 벗어나 어른이 된 하녀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주인은 이런 그녀의 혼란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오싹한 미소였다.
“지금 여기서 내 자지를 빨면 100루벨 주지.”
“…….”
“어때?”
말이 되는 거래인가, 이게.
창부와 그 손님 사이에서 오가기엔 실로 적합할 관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리브가와 발렌틴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녀뿐이라는 사실이었다.
허망해진 낯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이 상황을 한낱 유흥거리처럼 구경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들 모두 외설적인 행위에 적극 동참하고 있었으므로 이제 와 새삼스레 부끄럽거나 면구스럽게 여길 자는 없었다.
이곳이 바로, 쾌락을 향한 욕망의 온상지였다.
분명 귀족들이라고 들었건만 이 안에서 펼쳐지는 질 낮은 짓거리는 슬럼가에서 벌어지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각기 다르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욕망은 결코 다르지 않음을 표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리브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 합니다.”
“…….”
“저는, 전…… 나가 보겠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눈이 존재하는 곳에서 성기를 빨라고. 그건 정말 창부로 전락하게 되는 길이나 다름없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서 남들 앞에서 성을 희롱당하는 게 창부의 꼴이 아니면 무얼까.
리브가는 오늘 이곳에 온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발렌틴의 지시에 따라 그의 성기를 물게 되면 그 후회는 막연하게 추정하는 현재의 예상치마저도 훌쩍 넘어설 거라고.
대체 나는 무얼 확인하고 싶어 여기로 온 걸까.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자신이 먹인 약에 그가 진정 허우적대고 있는지, 또 그 여인과 밤새 침대 위에서 뒹굴었는지, 이 밤 저는 알지 못하는 시간 속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애먼 호기심이었고 넘어서는 안 될 금단의 경계였다. 막연한 추측과 실제로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엿보면 안 될 달의 뒷면을 목격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브가는 더듬더듬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차림새를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과거의 잔향이 역겨우리만치 진하게 풍기는 이곳에서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제가 저의 무지로 타락시켜버린 사랑을 지켜보고 있는 게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 힘들었다.
주변에서 김이 팍 식은 눈초리를 보내왔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애써 무시했다. 그런 것들은 리브가의 발목을 잡을 수 없었다.
그녀를 붙잡은 건 다른 것이었다.
“거기 서.”
“…….”
“한 발짝만 더 가면 넌 해고야.”
그녀의 뒤통수로 서슬 퍼런 주인의 음성이 꽂혔다. 그 어떤 무력도 리브가를 붙잡지 않았으나 발은 저절로 멈추었다.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인데도 리브가는 디디고 선 바닥이 축 꺼지는 것만 같았다. 골이 아찔하게 뒤흔들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더듬더듬 뒤를 돌았다. 발렌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서릿발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실내를 비추는 희미한 빛줄기에 금안이 번들거린다.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안광이었다.
“난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들, 딱 질색이거든.”
“…….”
“기분 좆같게도,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잖아.”
그가 시가를 쥔 손을 어딘가로 내렸다.
“내가 널 여기까지 끌고 왔나? 난 제안만 했지, 네 발로 걸어 들어왔는걸.”
테이블 위, 흑색 그릇에 놓인 하얀 가루를 필러 끝에 덕지덕지 바른다. 그것을 볼이 홀쭉해질 만큼 깊이 빨아들이는 모습이 꼭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이 사냥 전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그의 동공이 다시 한 번 뒤집어 까질 것처럼 움직였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배릿한 약의 내음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그럼 네 걸음에 마땅히 책임질 줄 알아야지.”
나가면 해고.
그 말이 리브가의 걸음을 친친 옭아맸다.
지금 이곳에서의 상황은 다소 비현실적이다. 꼭 아무도 모르는 공상의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온 양 여기는 남들의 눈을 피해 끝없이 부패하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벗어나면 리브가는 자신이 잘 알던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결코 비현실이 아니다. 그녀가 잘 아는 현실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곳. 주인에게서 벗어나 이곳 응접실을 나가면 그녀가 해고될 거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일 터다.
해고가 되면 안 된다.
당장 다음주에 지불해야 할 약값이 급한데 해고를 당한다면…….
현실이 암담한 만큼 주저하고 고민하는 건 짧았다.
발렌틴은 잠깐의 침묵 후 비척비척 제게로 돌아오는 리브가를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는 의자에 걸터앉아 바지춤을 제대로 풀었다. 리브가는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회색 눈동자에 빛줄기의 잔재가 혼란처럼 머물렀다. 일견 텅 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눈앞에 배꼽까지 올라붙는 사내의 큼지막한 성기가 있었다. 가운 아래에 놓여 윤곽만으로 추정할 때도 만만치 않은 부피감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것은 어린애 팔뚝보다 거대했다.
오늘은 불을 피울 성냥이나 고풍스러운 티팟 따위 들고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리브가가 그를 위해 봉사할 건…….
고작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성기의 강직도와 요철이 스며들 듯 느껴졌다. 한 손으로 감싸 쥐기엔 다소 버거운 기둥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귀두를 조심스레 머금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한계치로 벌어졌다. 비린 내음이 입 안을 짓뭉개듯 퍼졌다. 반사적으로 치솟는 욕지기에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려고 하니 주인은 익히 예상한 것처럼 뒤통수를 꽉 잡아 붙들었다.
“정확히는, 날 사정시켜야 100루벨이다.”
그가 성의 없이 머리를 쓰다듬더니 해 보라는 듯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시가를 꼬나문 채 그녀가 하는 걸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정제된 행동 속에서 발하는 눈빛이 사납다.
리브가는 처음으로 물어 본 남자의 성기에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르고 요지부동이었다. 멈춰 버린 자세와 별개로 머릿속은 오만 생각이 꼬여 복잡했다. 조금 후에야 언젠가 케시가 말해 준 구음에 대한 경험을 떠올려 조심스레 움직였다.
먼저 혀로 갈라진 귀두의 사이를 살살 문질렀다. 요도구를 중점으로 섬세하게 길을 튼 선이 게걸스레 벌름대며 뿌연 선액을 질질 흘렸다. 입에 머금고 있었기에 리브가는 자연히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꿀꺽 넘어가는 숨에 머리가 아프게 죄어들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리고…… 어떻게 하라고 했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 케시의 음담패설에 매번 귀를 기울일 만큼 성에 관심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성기의 크기가 워낙 커서 아직 그녀의 입술은 그의 귀두와 기둥 초입만 간신히 삼킨 상태였다. 이것마저도 버거웠다. 아마 고환 아래까지 삼켰다가는 목구멍이 뻥 뚫려 버리리라.
“지금 장난해?”
“…….”
“이래 놓고 양심도 없이 돈을 받겠다?”
발렌틴은 영 미적지근한 펠라티오가 실망스러웠는지 차갑게 지껄였다. 그제야 리브가는 엉성한 솜씨로라도 움직여 그의 것을 애무했다. 간신히 떠올린, 입술을 오므려 기둥 겉면에 압박을 주고 방향을 이리저리 달리해 귀두를 점막에 비벼 댔다.
발렌틴은 쩍쩍 소리와 함께 제 좆을 어떻게든 자극하려 애쓰는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설픈 구음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데, 바르르 떨리는 눈꺼풀 아래 점을 보니 아랫배가 묵직해진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한 번쯤은 핥아 보고 싶던 눈물점이었다.
그는 그 변변찮은 점 하나가 저를 자극시키는 게 신경질이 났다. 약간의 충동이었을 뿐이지만 약을 한 상태에서는 그마저도 단숨에 불이 붙어 버린다. 약쟁이에게는 한순간의 충동이 행동이 되고 태도가 되기 마련이었다.
흥이야 내가 돋우면 그만이지.
그는 놀고 있는 손으로 리브가의 머리통을 붙잡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그마한 입 속에 무아경으로 박아 댔다.
“웁! 음, 읏, 흐!”
무릎을 꿇은 자세가 뒤로 넘어가며 리브가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의 허벅지를 붙잡고 낑낑댔으나 발렌틴은 뜨끈하고 말랑한 입 속에 제 자지를 처박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여자의 밑구멍 속을 들락날락하듯 격렬하고 끈질기게 허리를 털었다.
곧 그는 저를 올려다보는, 울먹울먹한 시선을 마주했다. 회색빛 동공에 어린 물기가 아랫배를 꽉 쥐어짰다. 얼마 안 가 배 속 안에서만 감돌던 치열한 사정감이 정수리까지 쭉 치고 올라왔다.
발렌틴은 입 속을 함부로 두들기던 좆을 꺼내어 캑캑대는 리브가의 볼우물에 가져다 댔다. 쿠퍼액으로 번들번들해진 귀두가 움푹 파인 흔적에 함부로 문질러지더니 이내 왈칵, 백탁액을 아낌없이 싸질렀다.
“하아, 하…….”
입 속이 얼얼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리브가는 제 얼굴 여기저기로 튄 질척한 액에 넋을 잃었다.
“그 하녀 빠는 실력 좀 괜찮나 봐? 네가 이렇게 일찍 사정하다니. 웬일이래.”
“그간 남자 좆 좀 물어 봤나 보지.”
아닌 척 그들의 꼴을 지켜보던 주위 귀족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남자들의 낄낄대는 음성 속엔 명백히 의아함과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물론 정신이 반쯤 무너진 리브가에게는 닿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되어 버린 소리일 뿐이었다.
“입 닥쳐.”
그들에게 싸늘하게 일갈한 발렌틴은 주저앉은 리브가의 어깨를 밀쳐 넘어뜨렸다. 테이블에 올려진 아무 술잔이나 들어 술을 단숨에 비운 그가 자연스럽게 그녀 위로 올라탔다.
리브가의 정신이 돌아온 건 치마를 들추며 파고드는 난폭한 손길을 느꼈을 때였다.
“주인님……!”
입을 열 때마다 그가 푸짐하게 싸 댄 정액의 껄끄러운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당황스러워서 그 맛을 제대로 느끼거나 그걸 닦을 경황도 없었다. 발렌틴은 어떻게든 저를 밀어내려는 그녀의 턱을 붙잡아 막무가내로 입을 맞췄다.
연인끼리 다정하게 오가는 게 아닌 잡아먹는 편에 가까운 키스는 명백히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에 가까웠다. 주변에서 ‘정액 맛이 날 텐데’, ‘비위도 좋다’ 하며 연신 이쪽 일에 관심을 그치질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상황에 관전자들의 노골적인 반응까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 최악을 곱씹을 새도 없었다. 발렌틴은 여전히 그녀의 혼을 쏙 빼 놓으려 안달이었다. 입 속을 함부로 파고들어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혀의 움직임이 난폭했다. 아직도 얼얼한 입 안과 얼굴에 튀어 끈적거리는 정액의 촉감, 더하여 도처에 깔린 이목에 리브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발렌틴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그녀의 혀를 인지하고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제야 아까부터 넘칠 듯 말 듯 하던 눈망울이 기어이 바깥으로 눈물을 쏟아 낸 것을 발견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리브가는 눈가를 손으로 가린 채, 다 죽어 가는 음성으로 물었다. 이런 와중에도 손바닥에 사내의 정액이 질척하게 묻어나 더 자괴감이 들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리브가는 제 인상이 그에게 썩 나쁜 편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진 일로 그것이 완전히 오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조금도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하녀가 아닌, 제멋대로 농락해도 되는 창부쯤으로 여기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왜?
왜?
왜……?
그에게 키스를 당하는 내내 의문이 피어올랐다.
의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이르게 떨어졌다. 발렌틴이 알아챈 게 분명했다. 자신이 그때 슬럼가에서 그를 챙겨 준 여자애라는 걸. 그리고 어쩌면…… 어리석은 제가 한 거짓말까지.
그러니 지금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구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무엇 하나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그녀로서는 전심을 다해 그를 도와주었으나 그 결과는 결국 그를 약쟁이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리도 분노를 표출할 만했다. 그럼에도 리브가는 가슴 안쪽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무수히 꿈꿔 온 재회가 이렇게나 어그러지고 균열이 인 형태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녀의 마음은 이리도 모순적이었다. 그의 분노가 정당하다 여기면서도 저를 함부로 대하는 그에게 상처를 받는 꼴이라니.
하지만 이 모든 건 추측일 뿐. 그래서 리브가는 물은 것이다. 정녕 당신이 나를 기억한 게 맞나? 내가 그때 그 여자아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약간의 변형된 형태였지만 함의된 뜻은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곧 턱이 붙잡히고 얼굴이 들렸다. 손이 치워진 목전에 수려하고도 오만한 미남이 들어찼다.
“네가 맘에 든다고 했잖아.”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자칫 들으면 고백 같지만.
“그러게 누가 내 마음에 들래?”
어떻게 들으면 겁박 같기도 한.
리브가는 경계를 나눌 수 없는 대답을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 느릿하게 곱씹었다. 하지만 여유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은 산물이었다. 발렌틴은 뇌까리듯 말한 후 곧장 리브가의 허벅지 안쪽을 꽉 감싸 쥐었다. 기겁한 리브가가 몸을 비틀자 그의 반반한 미간이 일그러졌다.
“귀찮게 구는 계집은 딱 질색이야.”
리브가는 새삼 그가 제게 끼치는 영향력을 실감했다. 모순적이게도 이런 상황에서마저 그에게 밉보이지 않고 싶단 마음이 치밀어 절로 바동거림을 멈추었다. 이런 제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흣……!”
발렌틴은 리브가의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았다. 여린 살갗을 핥고 이로 잘근잘근 물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코만 들입다 문지르기도 했다.
그가 제 위로 올라타는 바람에 고개가 자연히 천장을 향한 리브가는 주변에 즐비한 이들을 다시 한 번 마주했다.
근처에 앉은 사내 중 하나가 남과 여의 섹스를 가리키는 천박한 손짓을 해 보였고, 또 한 남자는 손을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 입 가까이 대고 빠르게 흔들어 보였다. 조금 전 리브가가 주인의 성기를 빨던 걸 조롱하는 손짓이 따로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것처럼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채였다.
속을 비트는 역겨움이 치밀었다.
말로 표현 못 하게 흐트러진 저와 그런 제 위로 올라타 있는 주인. 그 모습으로부터 기시감을 느꼈다.
아마 지금 둘러싸인 시선 속에서 저는, 아버지에게 유린당하던 창부의 꼴과 같을 것이다. 그때, 약에 취한 아버지가 창부를 깔아뭉갠 채 강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걸 지켜보며 리브가는 한차례 토악질을 했었다.
당시의 기분이 상기되는 듯해 리브가는 몸을 떨더니 곧 입을 틀어막았다. 반응 없던 몸에 갑자기 힘이 바짝 들어간 걸 깨달은 발렌틴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시퍼렇게 질린 그녀의 낯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우는데.”
어쩐지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볼가가 축축해지더라니. 리브가의 얼굴은 정액과 그에 섞인 물기로 엉망진창이었다. 제 아래에 깔려 고요히 눈물을 쏟는 그녀를 보자 발렌틴은 형용 못 할 분노가 치밀었다. 소심한 몸짓 대신 저 눈물이, 그의 가슴속에 밀어 넣는 거센 반항 같았다.
“왜 자꾸 짜증 나게 질질 짜냐고.”
“여기서는…….”
“…….”
“여기선…….”
울음에 반쯤 먹힌 혀가 뭉그러졌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어차피 일이 이 지경까지 온 마당에 그가 저에 대한 배려를 베푸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므로 말을 끝마칠 기운도 없었다.
얼마 안 가 리브가는 자신을 잡아 올리는 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을 희희낙락 지켜보던 누군가 물었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침실.”
“네가 이렇게 일찍 빠지면 어떡해?”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거 다 알아. 되도록 침실엔 오지 마.”
의아하게 묻는 누군가에게 조급한 어투로 통보한 발렌틴이 리브가를 침실로 끌고 갔다. 중간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자 아예 그녀를 어깨에 둘러메기까지 했다.
천이 걷히는 소리와 함께 리브가는 푹신한 어딘가에 던져졌다.
“내가 원래 침대 위에서는 배려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서 말이야.”
물론 침대 밑이라고 썩 배려심 있는 성정도 아니지만.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 발렌틴이 침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핀트가 나간 듯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동자에 걸맞게 헛손질이 여러 번 이어졌다. 그게 못내 짜증스러웠는지 발렌틴은 얼마 안 가서 셔츠를 아예 찢어발기듯 벗었다.
“그렇다고 강간을 하는 것도 취미는 아니야.”
“주, 주인님.”
“그러니 벗어, 빨리.”
그는 그녀의 발치에 우두커니 서서 고고하게 명령했다. 마주하는 눈길은 꿍꿍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시커멓게 가라앉은 채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화려한 색채감을 가졌는데, 마치 동굴 속을 보는 양 너무도 칙칙하게만 느껴졌다.
리브가는 황급히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가, 제가 죄송해요.”
그가 지금 뭐 하냐는 듯, 조금은 답답하고 조금은 황당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핏발 서서 번들거리는 눈길이 사뭇 살벌하고 노골적이었다. 리브가는 얼굴에 남은, 미처 닦지 못한 정액과 눈물의 잔재를 소매로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보내 주세요, 저를, 저는…….”
하녀로서 일하며 늘 이 휘장 안에 꼭 들어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휘장 속, 발렌틴의 품으로. 아주 오랜 시간 그려만 오던 사내의 은밀함을 기꺼이 품어 보고 싶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실로 거만하고 아둔한 욕망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욕망이 현실화가 된 지금.
이건 결단코 리브가가 바란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결코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다. 이렇게, 아주 소중한 하룻밤을 고작 돈으로 매수되어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는 건…….
어느새 짐승처럼 날렵하게 침대로 올라온 발렌틴이 그녀를 밀었다.
자비 없는 손속에 몸이 휘청거렸다. 무릎 꿇은 다리가 뒤로 넘어가며 자연히 허벅지가 벌어졌다. 발렌틴은 그 가랑이에 제 하복부를 밀착시키며 몸을 맞대었다. 여전히 발기한 채인 성기가 은밀한 중심부에 닿자 리브가는 흠칫 떨었다.
“돈 안 필요해?”
걸쭉한 쿠퍼액을 질금질금 뱉어내기 시작한 귀두를 여인의 가랑이 사이에 비비적대며 그가 물었다.
“돈 준다는데 뭐가 문제지.”
리브가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 몸이 그렇게 비싼가?”
발렌틴의 손가락이 리브가의 명치 부근을 쿡 찔렀다. 그 손은 이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동그란 그녀의 젖가슴을 쥐고 아무렇게나 주물렀다. 그는 단번에 젖꼭지 위치를 긁으며 요요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 비싸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정말 여상하게 말하고 있는데 듣는 리브가에게는 한마디 한마디 비수가 따로 없었다. 제 자존감을 무너뜨리려고 작정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쩌면 의심이 아닐지도 모르지. 이미 이렇게 굴욕적인 방식으로 침대에 끌고 온 것만 봐도…….
리브가는 또다시 부옇게 변하는 시야를 어쩔 줄 모르고 깜박거렸다. 아까부터 두툼하게 발기한 성기를 문질러 대던 발렌틴은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지 짧고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랑 자든지, 해고되어 여기서 쫓겨나든지.”
“…….”
“골라.”
선택권을 주는 말인데 희한하게도 리브가에게 권한은 없었다. 답은 너무도 명확했다. 그 비참함에 결국, 눈물이 왈칵 비집어 나왔다.
리브가는 끝내 제 손을 하녀복의 단추에 가져다 댔다.
발렌틴은 그녀의 창백한 뺨이 흠뻑 젖어 드는 것을 기점으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벗겨지다 만 옷가지는 그의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나른하게 굴던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나운 손길이었다. 휘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희붐한 달빛에 어디에서도 노출되어 본 적 없는 알몸이 드러났다. 그를 훑어보는 발렌틴의 눈동자에 욕정이 격랑처럼 일렁였다.
“하읏……!”
출렁이는 젖가슴을 움켜쥔 그가 유두를 한입에 삼켰다. 사내의 축축한 혓바닥이 흡착하듯 정점에 달라붙었다. 게걸스레 빠는 힘에 놀란 리브가가 그를 밀었지만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하응, 으.”
방금 전까지 시가를 뻑뻑 펴 대던 유려한 입술이 지금은 발간 젖꼭지를 흡입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꼭 모유라도 짜 대듯이 젖무덤째로 쥐어 올려 험하게 주물러 대는 탓에 리브가는 숨이 턱 끝까지 고여 올랐다. 발끝이 간지럽고 속이 바짝바짝 마르는 이상한 느낌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절로 몸이 비틀렸다. 그러자 발렌틴은 바동대는 두 다리를 아예 제 허리춤에 감은 채로 몸을 밀착시켰다.
“흑, 주, 주인님……. 그만, 응……!”
발렌틴은 완전히 무아지경으로 발기한 정점을 물고 흠빨았다. 갈 곳을 잃은 양 허공에서 맴돌던 리브가의 손이 결국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만?”
“하아, 하…….”
“젖꼭지를 이렇게 세운 채로, 그만?”
조소가 유난히 시리다. 이런 상황에서도 쾌감을 느끼느냐며 신랄하게 꾸짖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 때문에 리브가의 나신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발렌틴은 개의치 않고 풍만한 가슴을 그러쥔 채 한쪽은 입술로, 또 한쪽은 손으로 저 좋을 만큼 유린하고 괴롭혔다. 리브가의 입술 사이로 음탕한 교성이 끊어질 듯 말 듯 새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그가 한참 입에 넣은 채 빨고 씹던 젖꼭지를 툭 뱉었을 때 그것은 타액으로 노곤하게 젖은 채로 통통히 부풀어 있었다. 내일 얼마나 붓게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는 혀로 젖꼭지 주변을 빙글빙글 핥았다. 봉긋한 젖무덤을 따라 그의 타액이 야릇한 길을 이루었다. 그의 혀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가 대뜸 상체를 곧게 세우나 싶더니 리브가의 허벅지를 활짝 벌려 무릎으로 고정시켰다. 속옷은 이미 찢겨져 나간 지 오래였으므로 음밀한 구멍은 거칠 것 없이 사내의 시야에 속수무책으로 드러났다.
그를 인지하고 수치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묵직한 성기가 함부로 길을 내며 파고들었다.
“하으윽……!”
‘처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진 않았으나 리브가는 제 맘 어딘가가 심약하게 깨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식으로 제 하룻밤을 바치게 될 줄 몰랐던, 미련하고도 가련한 고통이었다.
억센 귀두가 좁진 음부를 억지로 벌리었다. 범람하는 고통에 고개를 뒤로 젖힌 리브가는 허벅지를 덜덜 떨었다. 발렌틴은 귀두까지 진입했으나 그 이상 들어가기에는 상당히 뻑뻑한 감이 있는 구멍을 느끼고 혀를 찼다.
“하아, 힘 안 빼? 좆 끊어 먹을 생각인가? 응?”
“흑, 아, 아, 아파요…… 으응!”
남자를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몸인데 전희가 너무 짧았다. 아니, 가슴을 빨아 준 게 다이니 거의 없었다고 봐야 무방했다. 그러니 당연히 몸은 고철 덩어리처럼 경직되고 아래는 바짝 힘이 들어가 양쪽 다 고통만 가득했다.
발렌틴은 후우, 숨을 몰아쉬고는 휘장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서랍이 여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가 길쭉한 병의 뚜껑을 이로 물어 열었다. 뽕, 하고 뚜껑이 열리며 그는 병 안에 담긴 질척질척한 액체를 빠듯한 결합부에 뿌렸다. 남녀 간의 원활한 성교를 돕기 위한 향유였다.
각자의 성기가 윤활제에 젖어 번들번들거렸다. 발렌틴은 가로막힌 내부로 성기를 조금 더 밀어 넣으며 동시에 불그스름한 음순을 벌렸다. 거근을 머금고 움찔대는 구멍 위쪽으로 살짝 튀어나온 돌기가 보였다. 그는 손끝에 타액을 묻혀 그것을 살살 문질러 주었다.
“하응!”
반응은 빨랐다. 그는 음핵을 아예 손톱으로 긁어 주며 적당히 때를 기다리다가 남은 성기를 푹, 밀어 넣었다. 꼭 아귀가 맞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성기와 조붓한 내벽이 깊숙하게 맞물렸다.
“아아!”
“후우…….”
서로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리브가는 허리를 둥글게 휘며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발렌틴은 그 손을 가로채듯 잡아 침대 시트로 내리눌렀다. 그러고는 내내 정욕을 묶어 둔 고삐를 풀 듯 거칠게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자맥질이었다.
“앗! 아, 아, 아응……! 으, 흑! 핫, 앙!”
턱턱 쳐올리는 힘에 맞춰 리브가의 둥근 가슴이 요란하게 출렁댔다. 발렌틴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양 손목을 머리 위로 고정시킨 후, 다른 손으로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거나 음핵을 비벼 주었다.
폭력과도 같은 정사를 강행하면서도, 그는 집요하게 리브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꼭 네가 이 상황에서 정말 쾌락을 느끼는지 봐야겠다는 듯이.
리브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가 허릿짓을 한 번씩 할 때마다 파도에 휩쓸리고 남은 처참한 모래성의 잔해처럼, 그렇게 부서져 내렸다.
처음으로 겪어 보는 야릇하고 후끈한 쾌감과 그에 동반되는 이젠 아주 미약해진 고통, 그리고 그걸 겪는 현재 자신의 상황, 해고할 거라는 그의 음성과 돈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오만한 조롱이 제멋대로 뒤섞여 머릿속을 난도질했다.
“하아…… 좁아.”
“흑, 핫, 하…… 응!”
“맛있게도 무네…….”
발렌틴의 손가락이 한쪽 음순을 노골적으로 벌렸다. 어느새 보얗게 인 거품으로 인해 성기를 조금만 밀어 넣어도 찌걱찌걱대는 야릇한 소리가 났다. 그 거품을 손가락에 덜어 음핵을 문질러 주니 리브가가 발발 떨며 골반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 탓에 안에 든 성기가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찌르고 들어와 결과적으로는 또다시 자극이 될 뿐이었다.
발렌틴이 그녀의 오금을 붙잡아 위로 올린 채 격렬하게 처박기 시작했다. 불시에 빨라진 속도에 리브가는 숨조차 내쉬기 버거웠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에 비례하는 쾌락 또한.
어둡고 궤궤한 침실에 살 치대는 소리와 여인의 교성만이 열렬하고 후덥지근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리브가가 난생처음 겪어 보는 밤은 지독히도 길게 이어졌다.
* * *
마지막 정사는 거의 실신에 가까운 상태로 임했다. 무슨 정신으로 엎드려서 그를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기우뚱, 기우뚱. 몸이 계속 위태로이 흔들리기만 했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다가 녹아내리기를 반복했고 이성도 그 못지않게 뭉그러졌다.
몇십 분 내리 발정 난 개처럼 흘레붙다가 ‘퍽!’ 하는 강렬한 마찰음과 함께 발렌틴은 그녀 안에 씨물을 왈칵 쏟아 냈다.
“하아, 하…….”
기력이 다한 리브가가 그 상태로 털썩 쓰러졌다. 발렌틴은 사정을 하면서도 몇 번 더 추삽질을 했다. 그 몸짓에 아래에 깔린 리브가는 허리를 달달 떨었다. 후우, 하고 잔숨을 내쉰 그가 허리를 물렸다. 땡땡 부은 음부 사이로 걸쭉한 포말에 휘감긴 페니스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대관절 안에 얼마나 쏟아부은 건지, 덩이진 백탁액이 불두덩 쪽으로 왈칵 쏟아졌다.
정신이 있긴 하지만 호흡조차도 버거워 기진맥진 엎드려 있던 리브가의 옆에 무언가 던져졌다. 헝겊 주머니였다. 짤랑거리는 소리로 말미암아 그 안에 뭐가 담겼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매일 밤 보도록 하지.”
“…….”
“보수는 하루에 100루벨. 혹 더 필요한 거라면 집사나 하녀장에게 말하도록 하고.”
정사를 벌일 때는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열기가 지나쳤는데, 모든 행위가 끝난 지금은 너무도 추웠다. 리브가는 몸을 동그랗게 말다가 사지 육신이 삐걱대는 듯한 통증에 멈칫했다.
곧 주인이 발치에서 빙 돌아 그녀가 보이는 쪽으로 돌아왔다.
“섹스가 끝나면 되도록 빨리 여기서 나가.”
“…….”
“밤새 뒹군 년이랑 아침에 만나는 게 생각보다 기분이 더럽거든.”
가운을 걸친 주인은 조금 전까지 거칠게 몸을 섞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정사의 열기가 사그라들고 남은 건 미적지근함과 껄끄러움뿐이다. 그는 휘장을 젖히고 침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등장으로 응접실 쪽에 얕은 소란이 이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기진하여 축축한 시트 위에 나체로 엎어져 있던 리브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으.”
가랑이 사이부터 무릎 위쪽 허벅지까지 사정없이 아리고 뻐근했다. 고생만 하고 자란 몸인데도 처음 겪어 보는 내밀한 통증에는 어찌할 도리 없이 식은땀이 났다.
다시금 몸을 일으키려던 리브가는 그제야 제 다리 아래의 시트에 핏자국이 묻어난 걸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무참히 파고든 아까 전 옅은 피비린내가 났던 것도 같다. 첫날밤이 이리도 허무하고 싸늘하게, 혹은 고통스럽게 지나갔다는 또렷한 증거였다.
리브가는 그 흔적을 망연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 놓인 주머니를 여니 금화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많아 보였다. 어림짐작으로 안을 헤아리던 리브가는 곧 헝겊 주머니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멈칫했다.
이윽고, 맺힌지도 몰랐던 눈물이 비처럼 후드득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