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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9화 (189/221)

〈 189화 〉 188. 아람이는 또 잔다

* * *

체셔의 거점으로 돌아온 우리는 일단 딴거 다 제쳐두고 몸부터 씻기로 했다.

암시장의 지하층은 더럽게 더러웠으니까, 안 씻고는 못 배긴다. 특히나 지하경비대와 거울귀신들 때문에 죽어라 뛰어다녀서 그런지 땀도 많이 흘렸기 때문에 몸에서 땀 냄새도 많이 났다.

하지만 다 같이 들어가서 씻기에는 욕실이 조금 비좁았기 때문에 체셔와 에일라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나는 주살짐승의 팔다리를 다시 달아주기로 했다. 그러자 케시아가 부럽다는 듯이 굉장히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관전했다.

자해충동이 있는 만큼 이런 고어틱한 장면에 뭔가 흥분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거.. 좀 곤란하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와요?”

“이거.. 다시 잘라야 해.”

“에에? 예?”

주살짐승의 잘려 나간 팔과 다리의 단면을 이미 차오르는 살점으로 메꿔 버린 상태라 조금 곤란했다.

그녀에게 잘려 나간 팔과 다리를 다시 달아주려면 아물어 버린 팔다리의 단면을 썰어야 했기 때문이다.

“끄아아아!!!”

“뭐, 뭐야!!”

주살짐승의 비명 소리에 한창 몸에 거품 칠을 하고 있던 에일라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절묘하게 젖꼭지와 음부는 비누 거품에 가려져 있었다.

“아, 에일라. 별건 아니고. 이 녀석 팔다리 다시 달아주는 중이에요.”

“아, 어. 음. 그렇구나.”

“체셔한테 핏자국은 저희가 치워둘 테니 걱정 말라고 해주세요.”

“어.. 그래. 알겠다.”

에일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피범벅된 나와 비명을 지르는 주살짐승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에일라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주살짐승에게 한마디 했다.

“야. 닥쳐. 시끄럽잖아.”

“끄흐읍.. 너, 너무 아프단 말이와요...”

“후우.. 좀 참아봐. 그래도 하나 붙였으니까... 어? 야. 이거 왼팔인데..”

“예? 거긴 오른팔이 붙어야 하는 자리.. 인데..”

황당함을 넘어 당혹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주살짐승.

나도 당황스럽다.

“아, 시바. 네가 자꾸 비명 지르니까 잘못 붙였잖아! 케시아. 도끼 좀 가져와.”

“네!”

어쩔 수 없지. 주살짐승에겐 미안 하지만 다시 땠다가 붙이는 수밖에.

참고로 케시아는 자기도 이런 거친 취급을 당하고 싶다는 듯이 잔뜩 흥분해선 힘차게 도끼를 넘겨 줬다. 극도의 마조히즘적 성향이다. 이게 전부 끝나지 않는 충동이 만들어 낸 자해충동 때문이었다.

“자, 잠깐!! 기, 기다려보시와요!! 보, 본녀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도끼를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있으니 주살짐승이 기겁하며 나를 말리려고 했다.

허나 팔이 반대로 붙어 있는 꼴은 내가 봐주기 불편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다시 잘라 내야겠다.

“야. 케시아. 주살짐승 발버둥 못 치게 딱 붙잡아.”

“네에!!”

“하아.. 야,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라.”

“네? 네? 아, 아니와요!! 본녀는 팔이 반대라도 괜찬사와아아아악!!!!”

­콰작!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주살짐승에게 다시 사지를 돌려 줬다.

결국 팔과 다리가 전부 정확한 방향에 부착된 주살짐승은 언제 아파했냐는 듯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다.

“하하하! 드디어 다시 움직일 수 있사와요! 와아!! 자유로와요!!”

“야, 뛰지 말고 얌전히 있어. 사방에 피 튀잖아.”

“아, 알겠사와요..”

“그리고 저기 걸레 있으니까 바닥 다 닦아 놔라.”

“예..”

“케시아, 너도 도와줘.”

“네!”

시무룩하게 바닥을 닦기 시작한 주살짐승과 그런 주살짐승을 부럽게 쳐다보는 케시아.

나는 한창 바닥에 묻은 핏물을 닦고 있던 주살짐승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런데 너 이제 뭐라고 불러야하냐?”

“예?”

“이름이 뭐냐고. 계속 짐승 새끼라고 부를 순 없잖아.”

“아.. 제 이름은...”

주살짐승은 걸레질을 멈추곤 한참이나 고민했다. 중얼거리며 여러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는 걸로 보아하니 가진 이름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다보니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너, 그런데 성별은 여자인 거 맞지?”

나는 이름을 고민 중이던 주살짐승에게 넌지시 물어 봤다. 지금 모습은 상당히 귀엽고 예쁘다. 뭐랄까, 막 은지나 화영이처럼 엄청 예쁜 건 아닌데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어째서 더럽게 생긴 두꺼비와 촉수 꿈틀거리던 주살짐승이 결합한 모습이 이런 귀여운 형태인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뭔가 역겨운 것들끼리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이라도 있었던 건가?

“일단 지금은 여자인 거시와요.”

“그럼 예전에는 남자였어? 아니, 네 원본 성별이 뭐야?”

“성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그때 바뀌지요? 잡아먹은 주인에 따라가니까요.”

“허어.. 그래?”

“예. 아, 저 이름 정했사와요.”

나와의 대화로 결심을 다졌는지 주살짐승은 드디어 이름을 선택했다.

“역시 막 잡아먹은 주인의 이름이 최고인 거시와요. 그러니 앞으로는 케케르라고 불러 주셔요.”

“알겠다. 케케르.”

가장 최근에 처먹은 존재가 케케르라서 그런지 그녀는 자신을 케케르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뭔가 케케르를 잡아먹은 녀석을 케케르라 부르려니 기분이 이상하지만 딱히 태클 걸지는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다음 질문이니까.

“그런데 케케르. 너 혹시 뭔가.. 사람을 먹고 싶다거나. 그런 충동이 막 들고 그러냐?”

“예? 딱히 막 충동이 든다거나 하진 않사와요. 그래도... 주인님은.. 조금 잡아먹고 싶을지도.”

“그러냐? 흐음.”

원본 케케르가 마셨던 끝나지 않는 충동의 효과를 따로 받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악마들의 저주도 통하지 않는 몸인데 그런 약물의 부작용 따위에 사로잡힐 리가 없지.

‘가만 보니 은하도 저주가 안 통하는데...’

커스 돌인 은하도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은하에게 끝나지 않는 충동을 먹이면 어떻게 될지 조금 궁금해졌다.

솔직히 충동만 어찌 잘 억제 시킬 수 있다면 나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다. 약간 멍청하고 맹하던 케시아는 이걸 마시더니 빠릿빠릿 움직이며 뭐든 척척해내는 만능 일꾼이 됐으니까. 바보멍청이가 재능을 얻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준아! 이제 들어와!”

“아, 예.”

그때 체셔가 다 씻었다며 우리를 불렀다. 나는 케시아와 케케르를 남겨둔 채로 아람이를 데리고 욕실로 갔다. 피곤해서 반쯤 졸고 있던 아람이는 내 손에 이끌려 욕실 앞까지 겨우 왔다.

“아람아, 아직 자면 안 돼. 씻고 밥 먹고 자야지.”

“으응.. 응.”

아람이는 잠결에 대충 대답하며 나에게 몸을 맡겼다. 나는 졸고 있는 아람이의 옷을 벗겨 줬다.

“아, 아야..”

“아이고. 미안.”

“아냐... 괜찮아.”

그런데 상의를 벗기던 도중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아람이의 뿔에 옷이 걸렸다. 마기를 워낙 많이 들이마신 덕에 아람이는 지하층에서 돌아온 지금도 머리에 악마의 뿔이 남아 있었다.

뿔의 모양은 둥글게 말려들어가 있는 양의 뿔이었다. 이전에는 한쪽만 살짝 자라났던 것에 비해 이번엔 양쪽에 다 자라나 있어서 뭔가 자꾸 손잡이처럼 보인다.

“후아.. 아, 왔어?”

욕조에 들어가 있던 체셔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에일라도 어서 오라며 우리를 환영했다. 1인용 욕조에 두 사람이 겹쳐 있으니 상당히 보기 좋았다.

그런데 에일라, 나에게 이렇게 알몸을 보여 줘도 되는 건가? 물론 암시장에 막 도착했을 때 전원이 꺼져 있던 에일라의 몸을 만지기까지 했지만.. 깨어 있을 때 맨몸을 보는 건 처음이다.

“저기.. 에일라. 저한테.. 맨몸 보여 줘도 돼요?”

“응? 뭐 어때. 이제 같이 살 텐데. 불편해 하지 않아도 돼.”

“아, 그런가요. 허허.. 보기 좋네요.”

그녀가 아무렇지 않아 해서 나도 그냥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나야 좋지. 그냥 이대로 은근슬쩍 관계를 가져도 좋을 것 같고.

물론 그녀의 전원이 꺼졌을 때 따먹겠다는 내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시작했다. 그사이 체셔와 에일라는 충분히 온천욕을 즐긴 다음 밖으로 나갔다.

“아람아. 눈은 좀 어때?”

“이제 괜찮아.”

나는 아람이의 머리에 샴푸 칠을 해주며 물었다. 좀 전에 눈에 샴푸가 들어갔다며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제 물 뿌린다?”

“응.”

나는 아람이의 머리에 따뜻한 물을 뿌려주며 비누 거품을 씻겨 줬다.

아람이는 가만히 몸에 힘을 빼고 있었다. 지하층을 돌아다니며 상당히 피곤했기 때문인지 그녀는 거점에 돌아온 이후부터 말도 별로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무리 봐도 졸려서 죽으려하는 모습이다. 아람이는 원래부터 잠이 많았으니까.

“후우.. 따뜻하다.”

“응..”

우린 함께 탕에 들어갔다.

나는 아람이를 내 위에 앉힌 다음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람이는 별다른 말 없이 몸에 힘을 풀고서 꾸벅꾸벅 졸았다. 가슴을 주물럭 거려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발기한 자지를 아람이의 엉덩이 사이에 문지르며 가슴을 주물렀다.

“아람아. 수고했어.”

“응.. 너도.”

나는 그렇게 아람이와 함께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아람이는 완전히 잠들었고 결국 욕조에서 공주님안기로 안고 나와야 했다.

“자, 너희들 씻어라.”

“네!”

“알겠사와요.”

다음 타자로 케시아와 케케르가 욕실로 들어갔다.

“나왔어?”

“아, 네. 아람이는 잠들어서..”

“아람이 물기는 내가 닦을 테니까 넌 일단 뭐라도 좀 먹어.”

에일라는 나에게서 아람이를 받아들고는 소파에 앉힌 다음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줬다. 그사이 나는 체셔의 손에 이끌려 식탁으로 갔다.

“여기다 물만 부으면 돼. 거창한 요리는 아니지만.”

“저는 뭐든 좋습니다. 엄청 배고프네요.”

“후후후, 다 됐어. 우린 먼저 먹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넵.”

체셔는 커피포트에 있던 뜨거운 물을 도시락에 부어 주며 웃었다.

곧 뜨거운 물이 들어간 도시락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오더니 왠지 정말 시중에서 판매할 것 같은 고급 도시락이 완성됐다.

“우와.. 그런데 이거 무슨 생선인가요?”

“응? 그거? 후후.. 장어야. 지구산은 아니지만.”

“아하, 외계 장어구나. 신기하네요. 어떻게 물만 부었는데 장어덮밥이 되는 거지. 신기하네.”

“응. 후후. 장어 먹고 우리 준이 힘내야지.”

“예?”

“나 얼마 전에 알게 됐거든. 준이 고향에서는.. 장어가 정력에 좋다던데.. 그래, 몸보신이야, 몸보신. 후후후”

나의 가슴을 살짝 쓰다듬으며 웃는 체셔.

이거 그냥 자기는 그른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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