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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3화 (183/221)

〈 183화 〉 182. 4층에서 만나자

* * *

악마들이 물건을 보관해 두는 암시장의 지하 4층간에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의 모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래, 창고형 마트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창고형 마트엔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대량으로 가져다 팔기 때문에 값이 일반 마트나 시중보다 좀 더 싸다. 그게 최고의 장점이지.

그래서 나는 창고형 마트에 자주 다녔었다. 중소기업에서 이리저리 착취당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게임이나 기타 취미생활에 돈을 쓰는 걸로 풀다 보니 항상 돈이 쪼들렸었지.

얼마 안 되는 월급을 가챠나 게임 구매로 탕진 했었으니.. 아무튼 그때는 인생에 대한 미련이란 게 지금처럼 깊지 않았다. 나와 함께 해 줄 여자도 없었고, 부양할 가족도 없었으며,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었으니까.

난 늘 혼자였고. 내 삶이란 것은 그저 흘러가는 데로 굴러가는 그런 타력에 의해 이끌리는 모양새였다.

그나마 집착을 가지고 빠져들었던 게임들조차도 어느 순간 그저 데이터 쪼가리에 불가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면 정말이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건지 여러 의문이 들었었다.

어쨌든 쓸데없는 이야기는 다 집어치우고, 중요한 것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창고형 마트에서 식자재를 한가득 샀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되는 양의 물건들에 압도된 적이 있단 말이다.

“시발.”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도 그때 봤던 창고형 마트의 풍경과 얼추 비슷했다. 더럽게 많고, 무진장 넓으며, 정신이 나갈 정도로 소란스럽다. 난 광활한 창고의 풍경에 조금 압도 당했다.

더구나 여긴 인간이 만든 장소가 아니라서 그런지 더럽게 넓고,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며, 도무지 사람이 쓸 수 없을 것 같은 온갖 기괴한 물건들이 한가득 배치되어 있었다.

왜 안 죽은 건지 모를 잘려 나간 머리통부터 정체 모를 생물의 알이나 주술사들이 쓸 법한 이상한 생김새의 조각품을 비롯해 온갖 기기괴괴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이런 것들은 일부러 모으려고 해도 모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아마 여러 악마들이 공동 관리하며 쓸데는 없지만 버리긴 아까운 물건들을 무작정 넣어두는 곳이라 그런지 이상한 물건이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암시장의 지하 4층은 말도 안될 정도로 컸다. 그리고 뭐하나 잘못 건들였다간 그대로 정신이 나갈 정도의 저주에 걸린다.

심지어 곳곳에서 인간의 것인지 귀신의 것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된 비명소리와 귀를 아프게 만드는 신경 거슬리는 소음,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 잡아 뽑히는 소리, 연골이 부숴지는 소리 등이 들려왔다.

어지러울 정도로 굉장히 시끄러웠다. 마치 사람들로 북적 거리는 대형 마트에 들어온 것 마냥 부산스럽고 시끄러우며 정신 사납다.

허나 눈에 보이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게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런 소음을 내는 존재들이 곳곳에 숨어 있지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으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런 맛간 곳에서 체셔의 영혼을 찾아내야 한다. 벌써부터 눈이 빠질 것 같다.

******

[과연!!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희생자는 한 명뿐!! 그마저도 완전한 죽음은 아니로군요!! 어떻게 보십니까!! 아발람!! 아!! 발!! 람!!! 대답 좀 해주세요!!]

까마귀 머리의 악마 비발이 아발람에게 꽥꽥 거리며 소리쳤다.

비발의 비명과 같은 고함 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 같았던 아발람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선 비발의 주둥이를 실로 묶어 버렸다. 그런 다음 흥미로운 눈빛으로 다시금 침입자들을 살펴봤다.

그들이 조준 일행을 보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건 지하 1층에서 한아람이 실수로 벽면을 본 것으로 발동되어 버린 왕관의 저주 때문이었다. 왕관의 저주는 파이몬이 남긴 것으로 그게 발동된 순간 파이몬의 하수인이라 할 수 있는 비발과 아발람이 조준 일행을 눈치채게 된 것이다.

비발과 아발론 또한 상위 개체의 네임드 악마라고 할 수 있으나 파이몬 보단 그 급이 떨어졌다.

또한 원래대로라면 비발과 아발람은 조준 일행을 확인할 수 없어야 맞겠지만, 이곳이 암시장의 지하라 가능했다. 여기선 신들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긴 악마들이 오직 악마를 위해 조성해둔 공간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평소 조준을 관측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카쉬낙스와 인디크론의 영향력이 줄어든 만큼 그들을 불완전하게나마 조준 일행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벌레들이지.]

아발람은 침입자들을 보며 그들을 비웃었다. 그가 보기에 조준 일행이 가진 영혼의 빛은 너무나 작고 미약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더욱이 하나는 살아있는 생물조차 아닌 것 같았고 또 하나는 영혼의 일부가 찢겨진 상태였다.

각각 에일라와 체셔였다. 현재 조준 일행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두 명이었지만 영혼의 밝기로 상대를 파악하는 아발람의 눈에 비춰지기엔 에일라와 체셔는 최약체 중의 최약체였다.

[저런 나약한 것들이 어찌 여기까지 도달한 건지. 믿을 수가 없군.]

아발람은 되는데로 조준 일행을 깎아 내렸다. 뭐하나 꼬투리 잡아 욕하기 바빴다.

사실 어정쩡한 실력의 아발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신의 주인인 파이몬의 명에 따라 시키는 대로 움직이거나, 이렇게 남의 모습을 훔쳐보며 비웃는 일뿐이었다.

아발람은 파이몬의 부하가 되어 네임드로 승격하긴 했으나 이름을 널리 알린 최고위 악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멋대로 외부 활동을 했다간 선신이나 악신들에게 썰려나갈 것이 분명했기에 이렇게 골방에 틀어 박혀 자신의 동료이자 경쟁자인 비발과 함께 남들을 시기질투했다.

히키코모리 처럼 방에 박혀 세상을 욕하고 다른 이들을 시기질투하는 모습은 옹졸하기 그지 없는 악마의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아무리 아발람이 네임드 악마라곤 해도 플레이어의 자격을 가진 인간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언제든지 신이 찍어 누를 수 있었고 그렇기에 악마들은 항상 몸을 사려야 했다.

실상 몇명 되지 않는 최고위급이 아닌 이상 악마들에게 있어서 강함의 척도란 생존력이었다. 얼마나 악신과 선신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잘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악마들은 상대를 먼저 파악하려 한다. 건드려도 되는지 아니면 그냥 피해가는 게 상책인지 파악이 되어야 움직이는게 악마들이다. 여기서 만약 건드려도 될 것 같다 싶으면 곧장 영혼까지 털어먹고 좀 위험하다 싶으면 얼른 발을 빼곤 도주한다.

허나 아발람과 비발은 옛날옛적에 파이몬에게 선택받아 그의 비위만 맞추면 되는 비교적 편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인간을 무작정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한마디로 인간의 뒷배를 파악할 정도의 눈을 갖추지 못했단 것이다.

[비발, 슬슬 준비해라.]

[꽥??]

[침입자들을 수확하러 가자. 오랜만에 인간 사냥이다! 그동안 너무 답답했다고!]

4층을 돌아다니고 있는 조준과 그의 일행들을 보며 아발람은 입맛을 다셨다. 오랜만에 인간 사냥이라 생각하며 가학적인 욕망을 끌어 올렸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저들 중 하나가 악신들의 권속이며 그들의 관심을 독차지 중인 인간이란 것을.

만약 여기에 그들의 주인인 파이몬이 있었다면 조준 일행에게서 조용히 관심을 거뒀을 것이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친근하게 다가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권유하거나 협력관계를 구축해 악신들의 휘하로 들어갈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파이몬은 지금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렇기에 멍청하지만 강한 비발과 실력은 뛰어나지만 생각이 짧은 아발람의 폭주를 말릴 존재가 한명도 없었다.

어찌보면 이 또한 비극이다.

******

“더럽게 넓네요.”

“그치?”

나와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4층을 돌아다녔다.

4층은 말도 안 되게 넓었다. 또한 뿌연 안개가 창고 전체에 진하게 펴져 있었는데 이건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은 마기였다.

“후우. 후우.”

아람이는 숨을 깊게 빨아들이며 공기 중의 마기를 혼자서 전부 흡수했다. 이미 4층에 들어온 시점부터 악마화가 진행된 아람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뿔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녀의 뿔이 커져갈수록 주변의 공기가 정화되며 우리가 돌아다니는 지점만 안개가 사라졌다. 이건 이미 공기청정기를 넘어선 성능이었다.

아마 아람이가 없었다면 나 같은 일반인은 아마 30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마기에 중독되어 끝장 났을 거다. 4층은 그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어째서 미칠 듯이 강한 체셔와 에일라가 4층을 공략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쉿.”

그때 선두에서 걷고 있던 체셔가 멈춰 섰다. 저 멀리서 커다란 무언가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창고지기...’

4층을 돌아다니는 괴물들 중 하나다.

놈들의 생김새는 팔이 2쌍이나 달린 커다란 인간들이었다. 심지어 전부 어째선지 넝마 같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고 성별도 따로 구분이 되어 있어다.

그리고 얼굴은 눈동자가 뽑힌 상태로 검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마치 야근에 쩌들어 죽어 버린 회사원 생김새의 괴물들이었다.

'원래는 저것들도 전부 인간이었겠지.'

아마도 계약한 인간을 잡아 와서 저렇게 망가뜨린 다음 무임금 노동자로 써먹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저놈들은 입으로 저주를 쏘아내며 기다란 팔로 도망치는 상대를 붙잡아 사지를 뜯어낸다. 정말 정신 나간 괴물들이다. 아직 저놈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행운일 정도로.

어쨌든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주살짐승에게 저주를 떠넘기고 실시간으로 해주한다는 우리의 계획은 다 무효로 돌아갔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어찌 된 게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항상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이런저런 계획도 새우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나름의 준비를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게 되면 계획은 죄다 박살 나버리고 시뮬레이션도 뇌내망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은 임기응변이 제일 중요하다.

“흠.. 지나갔어. 이제 가자.”

창고기지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자 우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체셔의 영혼이 있는 방향으로 에일라가 우리를 인도했다.

‘너무 순조로운데..’

묘하게 순조롭다. 여기에 들어온지 벌써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슬슬 불안 해졌다. 나 치고는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내 경험상 이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리면 꼭 뭔가 일이 터지고 상황이 난장판이 됐었는데...

‘아니야.. 아닐 거야..’

설마 세상이 나를 죽이려 드는 것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다. 항상 상황이 꼬였었으니 이제는 평화롭게 일을 끝마칠 때도 됐다.

안 그래도 케케르와 주살짐승을 잃어 20만 코인 가까이 손해를 본 것 때문에 기분이 엿 같은데 그냥 별일 없이 체셔의 영혼을 찾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끼아아!!!!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4층 창고 어딘가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주살짐승이다. 끈질긴 집착짐승이 4층으로 내려온 것 같다.

‘미친..더럽게 끈질긴 새끼...’

끈질긴 짐승 놈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마치 자신이 여기에 등장했으니 너는 목 닦고 기다리라는 의미 같았다. 미치겠다. 도대체 어디까지 쫓아 오려는 걸까. 설마... 암시장 밖에 있는 나의 거점까지 쫓아오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꼭 붙잡아서 노예로 만들 거다. 지금이야 장소가 워낙 위험해서 함부로 행동하면 안되니까 그냥 도망다니는 거지, 나의 거점까지 기어 들어 온다면 그건 선을 심하게 넘은 거다. 우리 거점엔 팔어스도 있고, 메르도 있고, 에일라도 있고 곧 있으면 체셔까지 들어온다.

그러니 저새끼가 겁대가리 상실하고 거점까지 나를 쫓아 온다면, 그땐 무조건 붙잡아서 죽도록 패버린 다음에 대가리에 낙인을 찍고 노예로 삼을 거다. 그러곤 20만 코인 만큼의 일을 시킬 거다.

그런 망상을 하고 있자 선반들이 들썩이며 창고지기들이 일제히 한 장소를 향해 달려갔다. 그건 주살짐승의 비명이 들린 곳이었다. 주살짐승이 난동을 부리자 4층 창고지기들이 전부 대응하기로한 모양이었다.

‘어..? 잠시만 어쩌면.. 좋을지도.’

놈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꼭 자신이 왔음을 티낸다. 아마 자기가 가진 힘에 대한 자신감이겠지. 뭐, 그 덕에 창고지기들의 어그로가 주살짐승에게도 전부 쏠렸으니 나는 개꿀이다.

‘어쩌면.. 저 행동으로 20만 코인 값어치를 다한 게 아닐까..’

거울귀신들을 혼자 감당한 것도 그렇고. 뜻밖에 우리의 여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었다. 오히려 두꺼비 시절의 엿 같이 생긴 케케르보다 더 유용한 것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일까.

“창고지기들이 다 저쪽으로 빠졌어. 지금이 기회야. 빨리 이동하자.”

“예.”

허리를 반쯤 낮추고 천천히 이동 중이던 우리는 창고기지들이 전부 주살짐승에게로 어그로가 끌려 빠져나갔음을 깨닫고 이동 속도를 높였다.

******

­쾅!!!

주살짐승은 주먹을 내려쳐 창고지기의 머리를 터트렸다.

저주가 통하지 않기에 주살짐승의 처지에서 창고지기들은 그저 팔이 많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물론 수가 너무 많았기에 조금 지치긴 했지만, 완전히 부활해 버린 주살짐승을 이따위 것들로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아.. 하아... 킁킁.. 하아..”

피투성이가 된 주살짐승이 장조준의 향을 뒤쫓는다. 머지 않았다. 곧 마주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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