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175. 재능충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 * *
사티로스의 삭힌 피... 일명 ‘끝나지 않는 충동’을 종이컵 두 잔에 가득 따랐다.
‘만약 자해충동이 걸리면... 차오르는 살점으로 치료해 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살해충동이나 식인충동이 걸리면.. 조금 곤란해질지도..’
충동의 종류는 총 세 가지다. 그중 나는 자해충동이 그나마 제일 관리하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잘린 신체도 말끔히 붙여줄 수 있는 만능치료 스킬인 차오르는 살점이 있으니까. 자해를 하더라도 목숨이 끊어지지만 않으면 되살릴 수 있다.
허나 누군가를 죽여야 풀리는 살해충동이나 식인이 하고 싶어지는 식인충동은 어찌해결해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 먹여두는 편이 지하층에 들어가서 활동하기 더 좋을 거야... 충동이야.. 내가 명령하면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충동을 강제로 억제했을 때의 부작용인데...’
충동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 수면장애를 얻는다고 하니... 이건 이것대로 문제였다. 당장은 여명 세븐을 복용시켜 피로도 관리는 어찌 해줄 수 있겠지만.. 향후가 문제다. 만약 버섯인간을 죽이고 먹는 걸로 충족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자, 너희 둘은 이거 한 잔씩 쭉 들이켜.”
“네? 아.. 예.”
케시아는 내가 무작정 컵에 담긴 술을 마시라고 들이밀자 얼떨결에 받아 마셨다. 순간 일그러지는 케시아의 표정. 사티로스의 삭힌 피라서 그런지 어지간히도 맛이 없었나 보다.
“아...”
케시아의 반응을 보고 있던 케케르는 껄끄러워 했지만 내가 계속 빤히 쳐다보자 그녀도 결국 한입에 털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으으윽... 으윽..”
두 사람 다 끝나지 않는 충동, 일명 재능보충제를 섭취했다. 이제 슬슬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으음...? 어.. 어어...”
먼저 재능보충제를 마신 케시아가 반응이 왔다. 그녀의 몸에 윤기가 흐리기 시작했다. 재능보충제의 부가 효과라 할 수 있는 ‘완벽’한 육체를 얻은 모양이었다.
곧 색이 바랜 듯한 칙칙한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광택과 윤기가 쫙 흐르는 새 비늘이 돋아났다. 더구나 헐쑥했던 볼도 빵빵해지고.. 이빨도 우수수 빠졌다. 상어마냥 새로운 이빨이 자라난 것이다!!
재능보충제의 효과로 케시아는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그런데...
“아. 아아아.. 아읏..”
그녀는 갑작스레 광기에 빠진 미친년 마냥 팔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곧 조급한 표정으로 얼굴과 목, 가슴을 뜯어내듯 긁기 시작하는 케시아. 기껏 새로 돋아난 비늘이 그녀의 손톱에 걸려 뜯겨 나갔다.
그녀는 자해충동이 걸린 모양이었다.
“케시아 멈춰.”
“으윽.. 시, 싫어. 싫어요.. 으윽.. 으으윽..”
“멈춰!!”
“끄흐읍..!”
케시아는 나의 강한 명령에 겨우 긁적임을 멈췄다. 허나 이미 그녀의 피부는 손톱에 찢겨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해하면 안 돼. 알겠지?”
“네에. 네에. 으. 으으윽. 으. 아, 안 돼요.. 안 되는데. 으윽. 안 돼. 알아요. 안 되는데.”
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횡설수설 거리며 팔을 긁으려는 케시아. 난 그녀에게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했다. 그러자...
“끄아앙!!!”
케시아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좋아했다. 눈까지 살짝 뒤집히며 완전히.. 가 버리는 케시아.
‘뭐, 뭐지..?’
자해충동에 빠진 케시아는... 내 차오르는 살점으로 강렬한 고통을 느끼더니 침까지 질질 흘리며 웃기 시작했다..
뭔가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심지어 완전히 가 버렸는지 오줌인지 애액인지 뭔지 모를 액체까지 질질 쏟아 냈다.
실시간으로 방이 더러워지자 체셔의 표정은 조금.. 조금 안 좋아졌다.
“조, 좋아욧!! 하으읏!! 헤으응.. 흐흐흐흐흐. 조, 좋아..”
“어.. 그, 그러냐...”
나는 이걸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청하게 웃고 있는 케시아를 그냥 내버려 뒀다.
솔직히 말해서...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아무리 자해를 해도 모자랄게 분명했던 자해충동을 차오르는 살점이란 극강의 고통으로 억누를 수 있단 사실을 알아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긴.. 차오르는 살점은 내가 나한테 써도 더럽게 아팠으니까.’
내가 차오르는 살점을 괜히 고문용으로 쓰는 게 아니다. 이 기술에 당한 사람이 기겁하며 나에게 굴복해 충성맹세를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쨌든 뭔가 요상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만족해 버린 케시아. 아마 손가락 하나는 절단해야 만족됐을 고통의 양을 차오르는 살점으로 전부 충족한 모양이었다.
물론 ‘끝나지 않는 충동’이기에 금방 다시 자해욕구를 느끼겠지만. 그전까지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주, 준아.”
“응?”
그런 케시아를 관찰하며 한눈팔고 있던 사이.. 내 뒤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이 미친 새끼야!!!”
케케르가... 아람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으아!! 뱉어!! 미친년아!! 뱉으라고!!!”
나와 에일라, 체셔는 케케르의 얼굴을 연달아 후려쳤다. 그제야 겨우 아람이를 뱉어내는 케케르.
“으겍..”
“꺄아아아!!! 아람아!!!”
두꺼비에게 상체가 반쯤 집어삼켜졌던 아람이는 다시 밖으로 튀어나오자 점액질로 끈적끈적한 얼굴을 닦아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를 받아 낸 체셔도 함께 더러워졌다.
“으윽.. 침 냄새.. 시발...”
“괜찮아?”
“으으.. 온몸에서 냄새나.. 다시 씻어야 해.. 윽, 시발. 개구려..”
아람이는 체셔의 손에 이끌려 샤워실로 갔다.
케케르는 미안한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쳐다 봤다. 그 눈빛이..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황소개구리 같았다.
“안 돼!”
“아, 알고 있사와요. 하지만 자꾸 당신이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아오. 시발. 그런 와중에 말은 또 빨라졌네.”
“어? 정말이네? 말이 빨라졌사와요! 우와! 대단해!!”
이게 끝나지 않는 충동의 효과구나... 케케르의 결점이 보완됐다. 재능충이 되어 버린 케케르는 말을 빨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라면.. 초단위로 주술을 쓸 수 있을지도.. 아아.. 아이디어.. 아이디어가 막 샘솟사와요.. 굉장해!! 나 대단해!!”
심지어 갑자기 머리가 잘 굴러간다며 기뻐하는 케케르.
그러고 보니 그녀의 구부정하던 자세도 좀 펴진 것 같다. 육체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더니... 아직 바닥에서 분수 쇼 중인 케시아도 그렇고, 케케르도 몸이 좀 더 다부져진 것 같았다. 그래, 케케르는 떡대와 얼굴이 더 커졌다.
‘분명... 효과는 좋아. 좋은데...’
부작용도 만만찮다. 케시아는 그나마 차오르는 살점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지만 케케르는 강렬한 식인 충동을 느끼고 있다. 이건 어찌 충족시켜 줘야 하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사이 케케르는 배고픔이 주체가 안 되는지 혀를 살짝 뻗어 내 손을 핥으려 했다. 맛을 보려는 것이다.
“어딜!”
찰싹!
“꺄훗..!”
혀를 얻어맞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케케르. 그때 에일라가 테이블 위에 있던 테라리움에서 애완인간을 한 마리 끄집어냈다... 어라.? 애완.. ‘인간’? 설마.. 저 애완‘인간’도 인간으로 치는 건가..? 그렇다면..
“이봐, 두꺼비.”
“네에?”
에일라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는 케케르. 에일라는 인형이라 먹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걸 먹어.”
“어.. 그건.. 아.. 꿀꺽...”
낼름!
혀를 쭉 뻗어 에일라의 손에 잡혀 발버둥 치던 여성형 애완인간을 휘감아 그대로 삼켜 버린 케케르. 곧 그녀의 목울대가 몇 번이나 움직이더니 애완인간이 그녀의 보관용 위장이 아닌, 소화용 위장으로 넘어갔다.
“아아...”
애완인간을 산 채로 꿀꺽 삼켜 버린 케케르는 늘어진 개구리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 않았다. 두꺼비라 표정을 제대로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굉장히 만족스럽게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충족이 됐어..?”
“네.. 만족스럽사와요.. 아.. 좋아라..”
“미치겠군.”
나를 마른세수를 하며 일단락된 상황을 확인했다.
일단, 자해 충동을 심하게 느끼던 케시아는 자해하도록 내버려 두고 차오르는 살점으로 치료해주면 알아서 만족한다. 식인충동을 느끼는 케케르는 애완인간을 대체제 삼아 만족시킬 수 있었다.
“해결이네?”
“오우.”
에일라와 나는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한 뒤 더러워진 체셔의 방을 청소했다. 일단 케케르가 흘린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닦았고 케시아가 가 버리며 싸지른 애액과 떨어져 내린 비늘을 치웠다. 그때쯤 목욕을 마친 체셔와 아람이가 밖으로 나왔다.
“체셔, 저기.. 그, 애완인간 한 마리.. 먹였는데...”
“응? 뭐?”
체셔는 당황한 얼굴로 테라리움을 살폈다.
“으응.. 괘, 괜찮아... 리, 릴리가.. 먹혔구나... 응.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나는 괜찮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체셔... 케케르가 집어삼킨 애완인간의 이름이 릴리였나보다... 이름까지 붙여줄 정도로.. 정을 줬을 애완인간이.. 세상에..
“저.. 체셔.. 그게..”
“아니야. 정말로 괜찮아.. 사실 다들 나를 여기서 꺼내주려고 모인 건데.. 이정도쯤이야.”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체셔를 꼬옥 안아줬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사고가 전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굉장히 미안 했다.
“일단.. 다들 좀 쉬자.”
“네..”
다행히 케케르와 케시아는 더 이상 발정 난 망아지처럼 굴지 않았다. 한번 총동이 충족되어 만족하면 그 여운이 좀 길게 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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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린 일제히 후드를 뒤집어쓰고 꼬인 골목으로 진입했다.
“맨홀을 찾아야 해.”
“네!”
“알겠사와요!!”
“검은색 맨홀이죠?”
“맞아. 검은색. 오직 검은색이여야만 해. 거기가 뒷구멍이야. 거기로 들어가야 안 들키고 진입 가능해. 다들 알겠지?”
“예!!”
우리는 꼬인 골목에서 검은색 맨홀 뚜껑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람이가 뚜껑을 찾아냈다.
“여기!”
“오..”
우린 아람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굉장히 평범하지만 장소가 꼬인 골목이라 그런지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는 맨홀 뚜껑이 있었다.
“여기로 내려가면..”
“암시장의 지하야. 어둡고.. 음습할 거야. 다들 마음의 준비는 됐지..?”
“물론.”
“네.”
“좋아. 다들 명심해. 우리의 목표는 지하층 완전 공략이 아니야. 속전속결로 치고 빠지는 거야.. 그럼 들어가자.”
맨홀의 뚜껑을 조심스레 연 체셔. 그녀가 선두로 들어갔다. 그다음 아람이와 케시아, 케케르가 들어갔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밑에서 만나자고.”
“네, 에일라. 밑에서 봅시다.”
나는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다.
질척이는 어둠이 나를 잠식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