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167. 암시장 원정 멤버 모집
* * *
나에게 병을 건네 받은 이훈은 사나이답게 위스키를 원샷했다.
방금 그게 이훈의 마지막 사나이다움이었다.
“끄윽...”
팔어스는 한잔 마시자마자 바로 기절했었는데, 이훈은 위스키를 마시고도 버텼다.
내 생각엔 그냥 팔어스의 몸뚱이가 심하게 망가져 있어서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 때문에 기절했던 게 아닐까 싶다. 성전환의 약효 때문에 기절했던 게 아니라.
아무튼 이훈의 몸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헬창이던 이훈은 키가 줄어들었다. 근육도 급속도로 빠져나갔고, 아랫도리도 헐쑥해졌다. 대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또한 머리카락이 급속도로 자라나며 점차 소녀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갔다.
“아...”
“어떠냐. 여자가 된 기분은.”
“아래가... 가벼워... 너, 너..!!! 용서 못 해... 절대.. 절대 용서 못 해!!”
이훈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얼굴은 굉장히 여성스러웠다.
나는 이훈에게 위스키병을 흔들며 말했다.
“어? 이거 한잔 더 먹으면 다시 남자 되는데? 싫어?”
“죄송합니다.”
이훈은 위스키 병에 들어 있는 술을 보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곧바로 탁상에 머리를 박으며 나에게 사과했다.
어딜 감히 노예가 주인을 노려본단 말인가. 용납할 수 없지.
‘물론.. 술 아까우니 되돌릴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훈은 어쨌든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그리고 여자로 계속 살다 보면 언젠간 익숙해질 거다. 나는 좀 더 빨리 그가 여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이름을 바꿔 주기로 했다.
“앞으로 너의 이름은 이훈이 아니야.”
“그, 그럼...”
“앞으로 너는.. 음.. 이현아. 그래 이현아다. 알겠냐?”
“예..”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이현아라고 자기소개 잘하고. 만약 팔어스를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술을 먹었다거나 하는 내용을 발설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조용히 은하의 친구가 되어 줘야겠어. 거절은 받지 않는다. 대답.”
“네. 알겠습니다.. 저기.. 진짜 저 나중에 다시 남자로 되돌려주실 거죠?”
“암, 당연하지. 넌 내가 그리 매정한 인간으로 보이냐?”
“아, 아니.. 그 듣자 하니.. 강은정인가 그 여자도.. 실은 남자였었다고 들어서..”
“그 새끼는 나를 죽이려고 찾아온 놈이니까 합당한 대가를 치른거야. 그리고 요즘 강은정 보니까 완전 물 올랐던데?”
“아...”
강은정은 이제 완전히 남근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남자를 몇 명이나 끼고 있는 모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었지... 이젠 하씨 형제들이 오히려 암거미가 되어버린 강은정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한다고 해야 하나.
“일단은 진성이한테 대충 사정을 말해 뒀으니까 새로운 일을 찾아 줄 거야. 진성이한테 가 봐라.”
“예..”
내 축객령에 이훈은 헐렁헐렁해진 옷을 대강 묶어 갈무리를 한 다음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등은 굉장히 암울해 보였다. 동시에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사라진 이훈에게 조용히 명복을 빌어줬다.
******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함께 암시장으로 갈 사람을 정해야 해.”
나는 여자들을 불러 모아둔 다음 말을 꺼냈다. 체셔를 구하기 위해 암시장에 가야 하며 이번 여정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굉장히 위험하다고.
아무리 내 여자들이 나를 엄청 좋아한다고 해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까지 무지성으로 나를 따라올 사람은 솔직히 말해서 없... 아니지, 대부분 따라오려고 하겠네.
아무튼, 나는 이번에도 그녀들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그냥 내 독단대로 선택하기 보단 그녀들과 머리를 맞댔을 때 항상 더 좋은 결과가 나왔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리 머리가 뛰어난 편이 아닌지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조합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음.. 아마 거긴 엄청 어둡겠네요?”
은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어두운 암시장의 지하로 내려가는 일이니 더럽게 어두울 거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체셔도 광원이 없다면 돌아다니기 버거울 것 같다고 말했었고.
“아마도 엄청 어두울 거야.”
“오... 그럼 저랑 오빠 스킬이 유용하겠는데...”
곧바로 따라가기 위한 밑밥을 까는 은지. 그녀는 나의 변형된 시야 스킬과 자신의 들추는 시선을 언급했다. 허나 바로 치고 들어온 하린이에 의해 은지의 계략은 방해받았다.
“잠깐, 언니.”
“응? 하린아.. 왜?”
“나도 비슷하게 어둠 속에서 잘 움직여.”
“어.. 그래?”
“응. 그리고 기감도 언니보다 더 잘 느끼니까.. 주군! 나랑 같이 가요!”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안겨드는 하린이의 적극적인 대쉬에 은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때 메르가 반쯤 일어선 하린이의 목덜미를 마치 아기 강아지 다루듯 붙잡아 앉힌 다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잠깐, 이족들이 많을 것 같다고 했으니, 역시 의지 스탯이 높은 사람이 따라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가령.. 나라던지.”
메르의 말은 합당했다. 나처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의지 스탯이 이족을 상대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허나 나에겐 스탯을 능가하는 아이템이 있지.
“메르,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메르의 의견에 나는 가방에 들어 있던 인지저해 고글을 꺼내 보여줬다. 이건 지난번 전율저택으로 들어갈 때 보부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나에게 특별히 팔아준 물건이다. 이걸 착용하면 정신 공격을 가하는 적을 목격해도 정신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보아하니 악신들의 사도인 나는 이족들과 대화하거나 시선을 마주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실시간으로 정신력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가령 바이유가 나에게 기억 소거제를 투여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이족들을 보고 정신에 충격을 받아 평소의 기량을 내지 못했었기 때문이었으니.
“나랑 들어갈 사람은 이걸 착용하면 정신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을 거야.”
“오..!”
“그래도 굉장히 위험해... 아마 악마 종들이 대거 기어 나올 테니까..”
악마란 말에 잠이 오는지 하품을 하고 있던 아람이가 눈을 번쩍 떴다.
“악마..?”
“응. 듣자 하니 체셔는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상황 같아서.”
“과연.. 그렇군. 그럼 내가 가는 편이 좋겠어.”
“그렇지. 악마는 아람이 네 담당이니까...”
악마 담당 일진인 아람이가 씨익 웃으며 껌을 씹었다. 그러더니 옆자리에서 졸고 있던 여동생 아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름이는 요즘 들어 팔어스와 미친 듯이 훈련 중이라 잠시 짬이 날 때마다 이렇게 틈틈이 잔다. 어차피 팔어스에게 지옥훈련받고 있는 그녀를 데려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자든 말든 내버려 두기로 했다.
소드 마스터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흠, 확실히. 아람이가 적합해 보이네.”
지난번 실종자들의 숲을 한번 따라가 원정 참가자격이 뒤 순위가 된 희선 누나는 아람이가 가는 것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네다. 내캉 오라버니랑 간다손 치더래도 별 도움 못될 듯싶습네다.”
“저도요.”
그리고 옆자리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던 주하와 은하도 마찬가지로 동의했다.
“저기 주하야.. 딴소리해서 미안한데.. 혹시 오늘 저녁도.. 고구마 밥에 고구마 줄기 무침이야?”
“그럼 뭐 딴 거라도 있습네까? 혹시... 맛 없으면 말하쇼.”
“어.. 아냐. 주하 음식이야 다 맛있지.. 하하..”
주하가 다듬고 있는 고구마줄기... 요즘 주하는 희선 누나에게 요리를 배우더니 요리하는 재미에 빠져 산다. 농사와 요리가 취미라니.. 20대 여자의 취미라곤 믿기 어렵지만 그녀는 충분히 만족 중이었다.
특히 하진성이 어디서 밀가루와 감자 전분, 옥수수 가루를 구해다 줬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조금 밍밍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북한 음식도 나에게 손수 해줬고. 자매인 은하야 요리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던데 주하는 장녀라서 그런지 요리에 능했다.
더욱이 식재료가 부족한 북한에서 살다가 와서 그런지 별거 아닌 걸로 희한한 음식을 만들어 먹여 준다. 희선 누나보다 요리 스킬 자제는 주하 쪽이 좀 더 높은 것 같았다.
어쨌든 요즘 계속 고구마만 먹다 보니 조금 물렸다.
‘내가 괜히.. 그런 걸 줘서는...’
내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 삼시세끼 고구마가 밥상에 올라오는 이유는 사실 나 때문이다.
지난번에 보부상에게 구입했던 랜덤 씨앗 주머니를 희선 누나에게 맡겼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랜덤 씨앗 주머니에서는 지구산이 아닌 게 분명한 이계의 고구마 씨앗이 들어 있었고 그걸 플랜트 파머인 주인혜가 며칠 만에 성공적으로 키워 낸 이후 매일 밥상에 고구마가 올라오고 있다.
참고로 오늘도 드루이드인 희선 누나는 플랜트 파머인 주인혜와 농사에 관심이 많은 구미호 주하랑 같이 열심히 고구마 농사 중이었다. 별거 아닌 고구마 주제에 엄청 많이 자라서 식량 수급이 참 잘된단다...
고구마와 3월은 뭔가 계절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잘 성장 중이니 만족스럽다. 고구마가 알아서 잘 자라주는데 내가 물린다는 이유 하나로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이런 빌어먹을 정도로 암울한 시대에 이렇게까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경청하던 화영이가 엄청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흥. 하필 악마람. 아쉽네. 이번엔 오빠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흐흐. 미안 해. 화영이는 다음번에 같이 가자.”
“꼭이예요. 나락 밑바닥이나 암왕 만나러 갈 때 꼭 데려가기. 약속.”
“그래.. 약속.”
뱀파이어인 화영이는 악마와는 영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다는 듯 나와 새끼손가락 걸고 다음번을 기약했다. 침울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금방 웃는다.
“예원이는 뭔가 의견 없어? 말하고 싶은 거라든지?”
슬슬 이야기가 끝나가는 분위기라 나는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헬겐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경청 중이던 예원이에게 말을 걸었다. 예원이는 먼저 다가가 주는 편이 좋은 아이니까.
“저는 괜찮아요, 오빠. 그냥 항상 이야기하는 거지만.. 무탈하게.. 빨리 와요?”
“그래. 최대한 빨리 와볼게.”
“헤헤.. 그거면 저는 충분해요..”
예원이도 참 착하단 말이지. 무엇보다 요즘은 거의 고양이 만해진 드래곤 헬겐을 항상 품에 안고 다니며 키운다고 여념이 없어 보이기도하고.
참고로 용으로 변할 수 있는 라갈의 인장은 예원이 목에 걸어줬다. 내가 나가있는 동안 위험하면 쓰라는 의미로. 아직 한 번도 쓴 적은 없었지만 언젠간 쓸 일이 분명 생기겠지.
“자, 그럼 이번 원정은 아람이와 함께 가는걸로...”
“어.. 자, 잠깐! 저도.. 저도 악한 녀석들 퇴마 가능합니다예요!”
그때 소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아람이가 소라를 매섭게 노려봤으나 소라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녀의 시선을 흘려 넘겼다.
현재 일본인들이 대거 유입된 우리 집단에서 일본인들 전원은 소라를 지지하고 있었다. 소라는 일명 재패니즈 갱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지.
물론 훌륭한 대화 수단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아람이 앞에선 그냥 갈대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일본인들의 우두머리라는 자신감으로 소라는 감히 아람이에게 도전했다.
나는 콕 집어서 누구의 편의 들어 주기 애매한 입장이다. 그녀들의 이런 정치나 기 싸움에 괜히 내가 끼어들면 진짜 피바람이 불거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최대한 그녀들이 싸우지 않게 중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 저기. 소라야..”
“오라버니! 저, 결계도 칠 수 있고! 빛도 만들고! 치유도 가능하고! 유용하다예요!”
“어.. 소라야. 일단.. 어미에 ‘에요’와 ‘다’는 따로 쓰는 게 문법상..”
“흐음.. 준. 나나세가 지금.. 나에게 도전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 그래. 맞지. 우리 중에 제일 센년이 가는 게 맞아. 그 도전 받아줄게.”
“잠깐. 아람아. 일단 진정하고. 얘가 어리잖아. 괜히 힘 싸움으로 번지면.. 안 되잖아. 그치? 어어어! 메르! 앉아. 안 돼. 메르, 낫 들고 오지 마. 기다려.”
나는 결투라도 벌일 것 같은 소라와 아람이 둘 사이에 끼어서 말리기 바빴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 다들 ‘결투를 해서 이기면 조준과 함께 갈 수 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은지와 화영이는 물론이고 얌전한 메르까지 무기를 꺼내 들며 전투를 준비했다.
“다들 요즘 그 외팔이 계집에게 기술 좀 배우더니.. 나에게 덤비겠다는 건가? 감히?”
“메르 언니. 너무 자만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예전처럼 쉽게 나가떨어지진 않을 테니까...”
“저, 저기.. 저는 서포토인데스네..?”
“나나세는 빠져!”
상황이 꼬였다. 다들 대화로 좋게 좋게 풀어 나가던 상황에서 갑자기 불이 붙어 버렸다. 안 그래도 팔어스에게 수련을 받던 그녀들은 묘하게 최강을 자부하던 메르에게 투쟁심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그때 메르가 먼저 무력이라도 행사하겠다는 듯이 낫을 집어 드니 다들 싸워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씹.. 어쩌지..’
내가 당혹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우리가 있던 교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보석상 에일라가 난입했다.
“이봐 조준. 이거.. 어?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군.”
“아..! 에일라..!”
나는 힘없는 인형에게 매달렸다. 그녀는 내 말을 곰곰이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흐음. 결투는 알아서들 하고. 그 암시장의 지하층. 나도 가야겠군.”
“응?”
“영혼을 찾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
“그럼. 내가 꼭 필요할 거다.”
에일라의 말에 사실상 자신이 따라가게 될 거로 생각했던 아람이와 메르가 무기를 들이 밀려 했다. 그 순간 에일라의 손에 푸른색 결정이 생겨나더니 그녀들의 마력을 흩어 버렸다.
“둘 다 진정해. 나는 전원을 꺼버리면... 물건 취급이니까. 전원을 끈채로 가방에 집어넣고 들고 가면 돼.”
“뭐, 뭐요? 그게 됩니까?”
“편법이지. 2명까지만 출입가능하다지만.. 나야 뭐 반은 사물이니. 괜찮을 거야. 암시장은 자주 가보기도 했고. 체셔와도 아는 사이니까.”
“그럼...”
에일라는 전원을 끄면 인원수에 포함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에일라를 편법으로 데려갈 수만 있다면 나와 에일라 포함 총 세 명이 암시장에 진입 가능해졌다.
메르와 아람이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결판을 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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