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61. 전율저택공략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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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과 메이링을 거울 속으로 들여보내고난 뒤 나도 그들을 따라 거울 속으로 몸을 날렸다.
원래라면 뭔지도 모를 장치에 몸을 날리는 도박을 하진 않았겠지만 하루 동안 자동인형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퓨웅...
거울 너머로 나오자 가주실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울에 비춰 보이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거울 너머로 나와 가주실을 확인하니 상당히 거대하며 또한 굉장히 어질러진 상태란 걸 알 수 있었다.
“여기가.. 가주실... 가주는 없는 건가? 잭. 여기 아무도 없었어?”
“네.. 아무도 없던데...”
“허어...”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들 말고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가주라거나 뭔가 보스몹 같은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일단은 둘러보자..’
나는 공방인지 가주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장소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목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두루마리들과 복잡해 보이는 도면들. 그리고 각종 도구를 비롯해 반짝이는 보석들과 한쪽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걸려 있는 인형들. 끝으로 마치 도자기 장인이 부순 듯한 망가진 실패작들.
나는 벽면에 걸린 인형들을 보며 뭔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보석상이랑..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보다 보니 인형들의 얼굴이 보석상의 얼굴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석상과 얼굴이 똑같은 인형들이 수백 개나 줄지어 놓여 있었다.
미래에 갔을 때 클론들을 보며 느꼈던 집착과 광기가 여기서도 느껴진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좇기 위해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이름 모를 괴물의 광기였다.
‘일단은 반지부터 챙기고 생각하자.’
나는 일단 서류가 잔뜩 놓여 있던 가주의 책상을 뒤졌다. 양쪽에 서랍이 3개씩 있는 책상이었는데 나는 어렵지 않게 오른쪽 2번째 서랍에서 인장반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 난이도가 장난 아닌 덕에 이곳까지 도달한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덕에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해 반지를 얻었다.
‘장미 문양...’
이걸로 꼭 얻어야 하는 퀘스트 물품을 얻었다. 이제 챙길거 챙겨서 현대로 뜨면 되겠다. 심지어 우리는 괘종시계를 찾을 필요도 없다. 나에겐 이중나선 회중시계가 있으니까. 바로 현대로 간 다음 닉을 약과 마도서로 조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가면 된다.
‘보부상 덕에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는군...’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나침반과 만능열쇠, 회중시계 덕에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나중에 감사인사라도 해야겠다.
‘갈 때 가더라도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 볼까.’
가주실에 있는 물건들은 헬러스의 연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자료들 같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들과 정체모를 서적들, 복잡한 도면 등을 모조리 대용량 마법 가방에 때려 넣었다.
마법 가방은 1톤까지는 무리 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주실이라 쓰고 공방이라 읽는 장소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때려 넣어도 쑥쑥 잘 들어갔다.
“야! 잭! 놀지만 말고 너도 빨리 여기 쓸어 담아.”
“어, 네!”
잭은 촉수 팔을 꿈틀거리며 내 명령에 따라 가주실에 있던 물건들을 나와 함께 가방에 쓸어 담았다.
누군가가 일평생 이룩한 연구 성과를 이렇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날름 공짜로 꿀꺽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야말로 날먹의 기쁨이었다.
‘뭐든 힘들이지 않고 날로 먹어야 제맛이지.’
나는 늘 이런 쉬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날로 먹는 인생. 허나 돌이켜보면 개 고생했던 기억들뿐이다. 뭐 하나 쉽게 풀리는 적이 없었지.
꼭 내가 좀 잘되려고 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거나 내 앞길을 가로막는 녀석들이 나타났었다. 그래도 이번 가주실 서리는 순조롭게 진행 되어 다행...
“저기..”
한창 만족스러움에 젖어 뭔지 모를 도구를 훔치고 있을 때 메이링이 내 손목을 살짝 당겼다. 나는 퉁명스럽게 그의 부름에 답했다.
“왜?”
“저쪽에.. 뭔가 있어서..”
문득 좀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메이링이 엄청 예쁘장한 여자였다면 바로 내 여자로 만들 궁리를 했겠지만 남자인 상태라 그런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짜증 난다. 기죽은 듯한 저 여성스러운 행동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TS 위스키를 먹이고 싶었지만 그건 777을 위해 아껴뒀다. 바이유는 그냥 계속 여자인데 남자로 살아야 하는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뭔데 그래.”
“살아 있는 여자.. 같아서.”
“응?”
별거 아니라면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고 말하려 했지만 살아 있는 여자가 있다는 말에 나는 잭에게 서리를 맡겨둔 다음 얼른 메이링을 따라갔다.
메이링은 어떻게 찾은 건지 책장 뒤에 있던 숨겨진 공간으로 기어들어 갔는데, 거기엔 살아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형이..
‘인형이 아니라 이거 시체 같은데?’
영락 없는 사람인데 숨을 쉬지 않는다. 메이링이 발견한 건 빛나는 문자들이 일렁이는 비석 위에 놓여 있는 시체였다.
“뭐야 이거.. 인형 아니잖아.. 이거 시체인 것 같은데..”
“그게.. 숨은 안 쉬는데 만져 보면 아직 따뜻해서..”
“야, 내가 아무거나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너 미쳤냐?”
“아... 미안.. 미안해..”
메이링에게 잔소리를 한 다음 테이블 위에 눕혀져 있는 여자의 볼을 슬쩍 만져 봤다. 메이링의 말대로 시체는 특이하게도 차갑지가 않았다. 약간의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건가...? 아니면... 모종의 방법으로 죽은 순간을 그대로 유지 중인 걸지도 모르겠군... 그보다.. 이거 얼굴이 꼭..’
빛나는 비석 위에 놓여 있는 여자는 벽에 걸려 있던 인형들과 굉장히 흡사한 생김새였다. 아니, 이게 아마 저 인형들의 모티브가 된 오리지널이겠지.
‘저택의 가주가 인형제작에 집착한 이유... 죽은 딸을 되찾고 싶어서라고 들었는데.. 이 여자가 그 주인공인가 보군.’
이런 건 굳이 건드려봤자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우리는 비밀공간을 벗어나 다시 가주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잭이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
“이런!!”
나와 메이링이 밖으로 나가자 잭은 4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등이 굽은 고목 같은 남자에게 붙잡힌 채 촉수를 붙여 준 팔이 잡아 뜯기고 있었다.
고목 같은 남자는 등이 굽어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도 간단히 잭을 농락했다.
“끄아아아!!!!”
“이, 이런..!!”
나는 얼른 촉수발출로 잭이 떨어뜨린 가방을 잡아당겼다. 잭은 여기서 버리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잘 있어라!! 잭!!!”
“잠깐!!! 날 버리고 가지 마!!!!”
난 곧바로 회중시계를 작동시켰다. 그때 잭을 책장으로 집어던진 남자가 순식간에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더니 주문을 외웠다.
푸슈슉....
그와 동시에 회중시계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멈춰버렸다.
“시발!! 또 작동 불량이야!!”
미래에선 클론들 때문에 작동을 안 하더니 이젠 뭔지 모를 마법 때문에 작동을 멈췄다. 이거 불량품 아닌가? 보부상에게 따져야 할지도...
“이봐... 너희들.... 누구냐...”
메이링과 함께 전투준비를 하고 있으니 고목 같은 남자, 아마도 가주로 추정되는 남자가 우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심연아귀를 사용하려 했다.
허나 가주가 손을 한번 빠르게 휘젓자 스킬이 캔슬 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사용도 하기 전에 마력을 간섭받아 스킬이 불발될 줄이야...
‘시, 시발..’
등에서 미칠 듯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스킬이 불발한 건 메이링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키시리아라도 불러내야하나?’
불러내는 중에 내가 먼저 소멸 당할 것 같은데..
“같잖은 수는.. 안 통한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의 극에 도달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기회다... 너희는.. 누구지...?”
“우, 우린...”
뭐라고 답해야 하지? 침입자? 연구 털이범? 아니면... 산업스파이? 용잡이 친구??
무슨 대답을 하던 답이 없었다.
“대답을 못 하는군... 이 도둑놈들.. 너희는... 그냥 내 연구 재료가.. 되라...”
검이라도 뽑아야 하나?
아니다, 상대방은 시간 이동 장치를 단박에 작동불량으로 만들고 스킬까지 봉쇄해 버리는 괴물이다.
마법을 숨 쉬듯 사용하는 저 미친놈을 상대로 내가 가진 힘이 과연 어디까지 먹힐까...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다.
용잡이 지크와 대면했을 때와는 다른 막연함을 느끼며 나는 마법을 사용하려는 가주를 말렸다.
“잠깐!!”
“으응...?”
“거, 거래하자!!”
“오호... 실험쥐가... 나와.. 거래를..?”
“그래.. 거래다!!”
무슨 거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다간 죽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지르고 본 거다.
‘머리. 머리를 써야 한다.’
잘난 머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억력은 좀 좋다. 그러니 최대한 이 상황을 모면할 방안을 유추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인형들과 부서진 실패작들 그리고 아직 온기가 유지 중인 방부 처리된 여자의 시신...’
빠져나갈 방법이 전혀 없을 리가 없다... 그래, 영혼 추출기..!
‘이벤트를 만든 작자가 굳이 전율저택의 미래 파트를 만들어서 쓸데없는 분량을 소모했을 리가 없어... 분명 의미가 있었을 거야..’
미래에서 얻을 수 있는 영혼 추출기. 이게 아마 전율저택을 무사히 빠져나갈 히든 피스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순차적으로 우리를 다른 시간대로 날려 버린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답이 나왔다. 나는 가주에게 소리쳤다.
“네 딸의 영혼을 인형으로 옮겨 주마!!”
“으음...?”
저 새끼 저거 분명 그릇은 만들었지만 영혼을 옮길 방법이 없어서 미쳐 버린 게 아닐까? 정답인 모양인지 내가 영혼을 옮겨주겠다고 하자 놈은 관심을 보였다.
“그게.. 가능하다고..?”
가주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내 제안이 먹힌 모양이다.
“그, 그래! 보여줄테니까, 저기... 아무 인형이나 줘 봐.”
“그래.. 만약 거짓말이라면... 죽지 못한 채 뇌를 해부당할 것이다...”
다행히 가주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듯 내 제안을 들어줬다. 그는 벽에 결려 있던 인형들 중 오래되어 보이는 인형을 하나 꺼내 내 앞에 툭 던졌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가방에서 영혼추출기를 꺼냈다.
“여기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여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걸 이 인형에 넣을 거다.”
“흐음.. 주사기 모양의 기계 장치.. 흥미롭군.. 흥미로워... 계속해라.”
가주는 수염 가득한 턱을 쓰다듬더니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 봤다. 그는 인형에 영혼이 주입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제발... 제대로 들어가라..’
나는 인형에 주사바늘을 꽂아 넣고서 영혼 추출기에 들어 있던 푸른빛 엑토플라즘을 모두 집어넣었다.
거침없이 들어가는 엑토플라즘. 곧 인형이 푸른빛을 내며 밝게 빛났다.
“오오오...!!!”
“우왓!!”
빛이 사라지자 인형이 달그락 거렸다.
“아.. 아아아.. 으아...!!”
인형이 비명을 내질렀다.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Ú±úÁü#*^%*...(어, 어째서.. 이런 몸에...)”
여자는 자신을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는 말로 중얼거렸다. 인형의 몸에 안착되어서 그런지 굉장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과연... 진짜로군...”
가주는 횡설수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떠들어 대는 인형의 머리를 양손으로 쥐더니 그대로 부숴 버렸다. 곧 혼자서 떠들던 인형은 머리를 잃고서 축 늘어졌다.
“딸의 모습으로.. 떠들지 마라...”
가주는 죽어 버린 인형을 실패작들이 버려져 있던 곳으로 집어 던졌다. 이름 모를 여인의 최후는... 상당히 허무했다.
“딸아이를... 인형의 몸에 제대로.. 안착시키면... 너희를.. 보내주마..”
“물론이지..!”
어쨌든 가주의 신뢰를 얻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가주를 따라 시신이 있던 장소로 다시 들어갔다.
여자의 시신이 있는 장소로 들어가기 전 흘끗 확인해 보니 잭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잭의 여정은 여기까지였다.
“자, 그럼...”
나는 비석 위에 누워 있는 여자의 팔에 주사기를 찔러넣었다. 고여있던 피가 살짝 흐르고 곧이어 푸른색 엑토플라즘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딸아이의.. 영혼...”
“맞아. 신선할 때 넣어야 하니까.. 그릇으로 쓸 인형을 가져와..”
“아아.. 물론이지..”
가주는 벽에 걸려 있던 인형들 중 하나를 콕 집어와 나에게 건네줬다. 그건 죽은 여자와 가장 비슷했다.
“가장.. 공들여 만든.. 내 생의.. 걸작..”
“알겠으니. 잠시만..”
나는 인형에 엑토플라즘을 주입했다. 곧 인형은 반짝이며 빛을 내더니 아까 전 그 이름 모를 여자처럼 되살아났다. 그 즉시 가주는 덜덜 손을 떨며 인형에게로 다가갔다.
“아아... 아리아.. 나의 작은 별.. 아아...”
“아.. 빠..?”
“그래.. 너의 아비다.. 나의 사랑스런... 딸아..”
감동적인 부녀상봉.
가주는 딸의 모습을 한 인형을 껴안고서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품에 안긴 인형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채 그저 묵묵히 아버지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인형이기에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야.. 빨리 도망가자.”
“응..!”
나는 사이코패스 가주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서둘러 회중시계를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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