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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38화 (138/221)

〈 138화 〉 137. 연금술사의 몸값은 비싸다

* * *

“우욱.. 우웨에엑...!!”

은하가 검은 구정물을 한참이나 토해냈다. 자그마한 은하의 몸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검은 액체.

검고 진득한 액체는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허나 뿜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구체적인 형상은 취하지 않았다. 그저 소화가 되다만 부정한 거인의 위액 같았다.

그리고 쏟아져 나온 양으로 봐서 이건 물질적인 상태로 은하의 몸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은하의 입을 빌려 그녀의 영혼에 저장되어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커헉.. 끄윽..”

은하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고독까지 전부 쏟아 내고 나서 곧 빈혈이라도 온 건지 바닥에 주저앉으려 했다. 안색이 파리하고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기에 나는 얼른 쓰러지려는 그녀를 부축해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야, 야! 이은하! 정신 차려!”

은하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가 토해낸 고독은 점점 한 장소로 뭉쳐 들어서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난 얼른 듀라한에게 은하를 넘겨 주며 명령했다.

“은하 데리고 뒤로 빠져! 다들 전투 준비!!”

구교한은 물리 공격 위주라 딱 봐도 물리 공격 내성을 가지고 있을 고독과의 전투에선 별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러니 듀라한은 앞으로 나서서 대검을 휘둘러 진영을 흐리기 보단 은하를 지키는 편이 더 좋겠지.

“야! 아름아! 너는 수민이랑 일본인들 불러와!!”

“아, 알겠어요!”

무희인 아름이도 물리 공격이 주된 공격 수단이다. 그러니 나는 얼마 전 윗치로 전직한 황수민과 악귀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스트와 무녀를 불러오라고 시켰다. 대충 일본인들 대부분이 성직자 계열이니까 누가오든 도움이 되겠지.

[강대한 기운...! 살이 떨릴 정도입니다!!]

귀곡도를 뽑아 들자 양지상이 고함을 빽 질렀다. 정말이지 시끄러운 녀석이다.

“저거 감당가능하겠어?”

[저건 단수형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적 존재가 억지로 뭉쳐진 복수형이라.. 흡수하면 아마 검이 터질 겁니다. 그러니 죽여서 잘게 쪼개야합니다.]

귀곡도에 흡수시키기엔 검의 용량이 딸리는 모양이었다. 그럼 정말 죽이는 수밖에 없는걸까... 뭔가 아깝다. 수십 개의 괴이를 하나로 뭉쳐 만든 존재인데 죽일 수밖에 없다니.

그때 한창 짐을 나르고 있던 포제션 워리어 이훈이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 나왔다.

“형님! 여기에 영적인 존재가... 어.. 뭐야 이건..”

이훈은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를 흡수하고 소화시켜 스탯을 높이는 클래스다. 은하처럼 몸에 담아두는 게 아니라 흡수 및 소화를 시키기 때문인지 이훈은 신의 우상에 효과범위에서 벗어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는 멀리서도 고독이 뿜어내는 영적 기운을 느낀 모양인지 헐레벌떡 하고 있던 일도 죄다 팽개치고선 달려왔다. 그런데 표정을 보아하니 막상 고독과 마주서자 상당히 두려운 모양이다.

“야! 이거 바로 먹을 수 있겠냐!”

“어.. 당장은 무리고.. 조리부터..”

“조리는 시발..”

적당히 먹기 좋게 패라는 소리겠지.

“간다!!”

구정물이 인간의 형상을 취하려고 해서 얼른 우리는 놈을 둘러싼 채 무자비하게 스킬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일정량 이상의 데미지를 먹이자 놈에게서 엄청난 사념이 뿜어져 나오며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이훈이 뒤로 몇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이런 시발!!!”

“저 새끼 변신하려 한다!!!”

“때려!! 무조건 때려!!! 변신 못하게 때려!!!!”

원래 뭐든 적이 변신하거나 각성하려고 할 때 미친 듯이 패야 하는 법이다. 2페이즈 시작하기 전에 피를 깎아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강화된 적과 싸워야하니까 결코 놓칠 수 없지.

그래, 이건 피버 타임이다. 놈이 변신하기 위해 움직임을 멈춘 지금이 죽일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 할 수 있지.

강화된 놈과 싸운다고 보상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지.

[키아아아!!!!!]

우리가 무작정 달려들어 잡아패기 시작하자 고독은 고통 어린 비명을 질러댔다.

중간에 아름이의 부름을 듣고 합류한 황수민과 소라가 놈에게 빛과 미법을 쏘아내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놈은 본격적으로 크기가 줄어들더니 꿈틀거리며 비명만 질러댔다.

급기야 일본인 프리스트들까지 한 자리에 다 모여서 이상한 주문을 중얼중얼 외며 고독을 완전히 정화시키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집단적인 구마의식이 진행되자 고독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이래서 인간이 집단을 만드나보다. 나 혼자 이 정신 나간 액체괴물 새끼를 죽이려고 했으면 온갖 스킬을 다 쓰면서 개고생 좀 했을 텐데. 클래스도 다양하고 사람도 많다 보니 쉽게 해결 됐다.

“자, 잠깐...! 동지들!! 잠시만 기다려 보시라요!!”

이제 슬슬 이훈이 흐물거리는 고독의 반을 뜯어먹고 양지상에게 남은 반을 먹이면 되겠다 싶었을 때 듀라한의 품에 안겨 기걸해 있던 이은하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곧 듀라한의 품에서 내려온 이은하는 서둘러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고독, 검은 액체 덩어리를 껴안았다.

완전체가 되기 전에 무자비하게 패서 그런지 고독은 여전히 액체 덩어리의 모습이었고 그건 꼭 부정한 황천의 슬라임 같았다.

“주, 죽이지 마시라요..! 이쯤이면 됐으니까..”

“다들 멈춰.”

나는 이은하가 엑토플라즘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곤 조심스럽게 둘에게 다가 갔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모양이다. 고독의 창조주라 가능한 걸까?

“뭐라고 하는데.”

“고, 고것이... 자기를 받아달라고 울고 있습네다.”

이거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위험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신의 우상이 있는 학교 내부로 들어가기 힘들어 지잖아.”

“뭔가 방법이.. 방법이 있을 겁네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놈을 신의 우상이 보관된 지하창고에 데려다 놓는 거다. 양지상이 공언했듯 신의 우상이 안치된 지하창고엔 죽음의 기운이 만연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했으니까 저놈도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겠지. 아마 거기다 두면 알아서 무럭무럭 자랄거다. 하지만 문제는 저 괴이한 존재를 믿을 수 있냐다.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의 편린만을 흩뿌리고 있는 고독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은하뿐인데 은하의 관리하에 있지 않은 이상 저 괴물이 뭔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가령 신의 우상을 집어삼키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해서 되도 않은 보스 몹으로 진화할 수도 있었다.

지성체라기엔 모자란 녀석이라 노예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계속 은하가 감시해야 한다면 은하 또한 어둡고 눅눅하며 산 사람에겐 별로 좋지 않은 기운이 흘러넘치는 지하창고에 반강제적으로 갇혀 있어야 한다.

아니면 학교 밖에서 고독을 키우며 따로 살던지. 그리고 그건 겁나게 위험한 일이지.

‘결국 이훈과 양지상을 강화시키는 방법뿐인 걸까...’

고독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황수민을 찾아 밖으로 나온 헬러스가 숨을 헥헥 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허억.. 허억.. 그건..”

그는 이은하가 껴안고 있는 고독을 보더니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뭔지 알아?”

“어.. 그 여인이 들고 있는 존재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질질 흘리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헬러스는 은하가 껴안고 있는 고독 근처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검은 슬라임 같은 형태의 고독이 유동체 몸뚱이를 진동시키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물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헬러스는 고독이 그러거나 말거나 좆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고독의 부산물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고품질의 엑토플라즘... 고위 언데드.. 그것도 벤시 퀸 같은 진짜배기 영체들에게서만 채집 가능한 건데... 이 귀한걸..”

벤시 퀸이 질질 흘리는 액체라고...? 그거 꼭... 귀신이 흘리는 애액 같지 않은가...

내가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자 급기야 헬러스는 검고 탁하며 진득진득한 액체를 혀로 핥았다. 다 늙어 죽기 직전의 노인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검고 진득한 액체를 감미롭게 핥고 있으니 기분이 나빠졌다.

“으음.. 흐으음..”

“아니.. 시발.. 영감님. 그걸 더럽게 왜 처먹어요..”

“아, 이거 집중한 나머지 음미하고 말았습니다.. 크흠. 고품질 엑토플라즘에선 단맛이 나거든요. 그리고 이건.. 혀가 아릴 정도로 달달합니다. 이때까지 접해 본 엑포플라즘 중에서도 최상급에 가까운 물겁입죠.”

“달다고? 그게?”

저 거인 콧물 같은 액체가 달단 말인가... 아무리 달달 하다고 해도 절대맛보지 않을 거다. 죽어도 저런 이상한 건 입에 넣기 싫다. 그러자 의아하다는 듯이 화영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오빠.. 안드셔요?”

“뭐?”

“아니.. 맨날 아무거나 주워 먹길레. 저건 안드시나 싶어서...”

“아, 아니!”

화영이가 나를 땅거지로 알고 있다!

이건 부당하다! 나는 이때까지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정말 어쩔 수 없이, 강해지기 위해서 섭취했을 뿐이다. 결코 거지새끼처럼 아무거나 주워 먹은 게 아니다.

“하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심각해지지 마세요! 에잇! 에잇!”

화영이는 농담이라며 나를 약하게 툭툭 쳤다. 예쁜 애가 이리 애교를 부리니 웃음밖에 안 나오네.

“쩝쩝쩝..”

“아니, 그만 처먹어!”

“아, 죄송합니다..! 이 아까운 걸 저 혼자 너무 많이 먹었네요.”

아깝다고 그만 먹으란 게 아닌데...

일단 내가 그만 먹으라고 명령하자 헬러스는 품에서 유리 병을 꺼내더니 땅바닥에 널려 있던 엑토플라즘을 메스로 긁어 담기 시작했다.

“제자야. 보지만 말고 너도 돕거라. 늙어서 그런지 힘들구나.”

“예, 스승님.”

급기야 황수민까지 나서서 줍는다. 심지어 헬러스는 나름 스승이라고 수민이에게 토막 상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엑토플라즘은 그 특유의 단맛 때문에 감초로 많이 쓰이지. 자체 효과도 마력 회복에 특출난 데다, 여러 고위 포션의 베이스로도 자주 쓰이니까 기억해 두고. 그런데 이런 고품질 엑토플라즘을 질질 흘리는 존재라..”

헬러스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학자의 광기가 내포된 눈빛이었다.

“이건 솔직히 이때까지 봤던 그 무엇보다도 놀랍군요. 혹시 이 녀석을 죽일 생각이십니까? 그럼 정말 아깝겠습니다요...”

“아니. 뭐, 꼭 죽이고 싶은 건 아닌데. 길들일 방법이 은하뿐이라서. 이놈을 학교 안에 들이려면 지하창고 밖에 둘 곳이 없는데 은하를 거기에 처박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흐음.. 신의 우상.. 학교를 둘러싼 결계의 요체이자, 주인이 그 저주받은 숲에서 가져 왔다는 주물 말입죠.”

“어, 그거.”

“그게 영적인 존재. 혹은 망자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게 작금의 문제.... 그걸 제가 자세히 볼 수 있겠습니까?”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나 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야. 노트 챙겨라. 그리고 커다란 항아리나 병을 준비하고.. 또...”

내가 신의 우상을 확인할 수 있게 허락하자 헬러스는 곧바로 자기 수제자라 할 수 있는 황수민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나도 손하은과 듀라한에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일단 손하은이랑 구교한은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어. 괜히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 쓰러지지 말고. 그리고 화영이랑 아름이는 애들 좀 보호해주고.”

“응. 맡겨줘.”

“다녀오세요..”

“은하 너는 그 녀석 가지고 같이 들어가자.”

“알겠습네다.”

******

“흐음..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알 것 같습니다.”

헬러스는 신의 우상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한번 설치한 이상 바닥에서 떨어져 버리면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들어 올리거나 할 수는 없었다.

“아까 그 리치 아가씨랑 목 없는 친구를 위한 수호부를 만들 수 있겠어요. 마땅한 재료가 없으니 영구적인 효과는 부여할 수 없고. 한 달 간격으로 갈아 끼워 줘야겠지만 수호부가 있다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헬러스는 지하창고의 벽과 천장을 신나게 기어 다니고 있던 고독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저걸 신의 우상과 결합시키죠.”

“그게 가능해?”

“예.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있다면.. 고독을 우상에 결합해.. 엑토플라즘 분수.. 아, 아니 자동 방어가 가능한 우상으로 개조할 수 있을 겁니다.”

“허어... 이봐 영감.. 당신 너무 유용한 거 아냐?”

“하하하! 제가 좀.”

수명이 짧다는 이유로 헬러스는 노예상이 할인가로 팔았었다.

그런데 싸게 구입한 노예치고 그는 정말 유용했다. 돈값을 톡톡히 한다고 해야 하나. 가성비가 지린다고 해야 하나. 이리저리 알고 있는 것도 많고.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니 만능 현자 같다.

“아, 참. 영감. 그 엔지니어랑은 만나 봤어?”

“예?”

“엔지니어 정지연이라고 있거든. 나중에 소개해 줄게.”

지금 내 마음속에서 헬러스는 굉장히 소중한 동료다. 이번 일로 중요도가 급부상했다고 볼 수 있지. 원래도 이것저것 특이한 약물을 만들고 있어서 중요했는데 이젠 거의 이 영감탱이가 도라*몽으로 보일 지경이다.

‘더구나 연금술사와 공학자가 만나면... 마도 공학자가 되지 않을까..? 마법사인 황수민이 마녀로 진화했듯이...’

노예상이 말하길 헬러스의 수명은 10년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살아 있을 동안 최대한 지식을 빼먹어야 한다.

‘다음에 수명 증가용 아이템 나오면.. 하나 챙겨 줘야겠군...’

가만 보니 예전에 마약상에게서 구입했던 미용팩이 수명을 5년 정도 늘려 준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거 남은 거 있으면 헬러스에게 하나 줘야겠다.

이리 유용한 영감이 금방 죽으면 안 되니까. 노예는 주인의 허락 없이 죽을 수 없다.

그렇게 헬러스 수명연장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나는 지하창고에서 빠져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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