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12. 모여드는 불나방들
* * *
용잡이가 되돌아간 후 나는 그가 남기고 떠난 물건을 주섬주섬 챙겼다.
우선 그가 소환되며 복도에 떨어뜨린 커다란 용의 머리다.
[흑각룡의 잘린 머리: 눈과 뿔, 혀 등등 어느 부위하나 버릴게 없는 극상의 재료입니다. 사용하기에 따라 다양한 물건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오오..!”
극상의 재료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연금술사 영감이 생각났다. 암시장에서 구입했던 그 영감 말이다.
보조로 붙여 준 황수민과 함께 여러 가지 포션을 만들고 있을 그에게 용의 머리를 넘겨 주면 대체 뭘 만들어 낼지 벌써 기대된다.
“야, 호타루. 너 인벤토리 있다고 했지.”
“하이..!”
“이거 챙겨 넣어.”
“알게스므니다.”
나는 용의 머리를 호타루에게 건네줬다.
“으윽..!!”
호타루는 내가 한 손으로 건네준 흑각룡의 머리를 낑낑거리며 받아들더니 겨우 인벤토리에 넣었다.
“야, 네 동생 계속 자고 있냐?”
“아직 정신이 없습네다.. 은하야..”
“업어. 일어날 때까지 못 기다려.”
“아, 알겠습네다...”
이은하는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결국 이주하는 숨은 쉬고 있지만 깨어나진 않는 동생을 등에 업었다.
‘생긴 건 봐줄만한데... 역시 너무 살집이 없어..’
마트로 돌아가면 이 두 자매를 좀 든든하게 먹여야겠다. 이주하, 이은하 자매는 너무 말라서 흥미가 생기지 않는 몸매였다. 가슴은 조금 작지만 군침이 싹 도는 은지나 아름이와는 달리 그녀들은 너무 마르고 초췌했다. 완전히 발육부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래, 성적인 흥미가 생기기보단 차라리 동정심이 드는 몸매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저런 몸뚱이로 내 정력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 곳곳에 불이 붙어 탄내가 진동하는 골방으로 진입했다. 분명 아직 용잡이가 코토리바코를 찢어 버리지 않았을 땐 방 전체가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어째선지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까 용잡이 지크가 떠나며 코토리바코의 검은 아지랑이는 아무리 공격해봤자 소용이 없다던 말이 머리에 맴돈다. 어쩌면 아까의 그 검은 벽면은 사실 방 전체에 코토리바코가 들러붙어 있었던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방 전체에서 소름 끼치는 기운이 흘러넘치더라니...’
잘못 들어갔다간 그대로 끔살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저기 출구인가 봐여!”
“오..”
하린이가 문을 발견했다. 방의 한쪽 벽면엔 우리가 들어온 것과는 다른 붉은 문이 생겨 있었다. 분명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문이었다. 저게 아마 이 요상한 건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겠지.
“보상만 챙기고 빨리 나가자.”
나는 땅바닥에 놓여 있던 아이템들을 전부 습득했다. 용잡이가 남겨두고 간 코토리바코의 전리품들이었다.
[저주서린 날붙이: 적을 향해 휘두를 경우 마력을 소모하여 인식된 대상의 몸 어딘가에 상처를 새깁니다. 새겨진 상처는 잘 낫지 않으며 지속적인 고통을 유발합니다. 저주받은 물품입니다.]
커다란 식칼 같은 느낌의 도검이었다. 녹이 쓸어 있지만 이상하게 날이 바짝 서 있어서 잘못 만지면 손가락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의 칼이었다.
무엇보다 근접전 전문 클래스가 어렵지 않게 원거리 공격할 수 있는 무기라 좋았다. 더욱이 상처 입히는 부위가 랜덤이라는 점이 신기하다. 만약 눈을 포함한 얼굴 부위나 음경과 같은 급소를 상처 입힐 경우 전투 중에 매우 유리해질 물건이었다.
[오염된 귀호부: 저주가 서린 부적입니다. 지니고 있을 경우 귀신의 공격을 막아 냅니다. 대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저주받은 물품입니다.]
얼룩이 잔뜩 묻어 있는 부적이었다. 부적 안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고 상당히 질척거리는 느낌이라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가지고 있을 경우 불면증에 시달린다는데 아마 이 머리카락과 관련된 존재가 악몽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쪼그라든 두상: 쪼그라든 아이의 머리입니다. 지니고 있을 경우 지속해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대신 마력 회복 속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집니다. 저주받은 물품입니다.]
말 그대로 미라화 된 아이의 머리통이었다. 주먹만 한 크기에 실이 묶여 있어 목걸이처럼 걸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었다. 생각보다 아주 단단했다.
그리고 아이템의 설명대로 머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부터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게 귓가에 앵앵거려서 조금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대신 소모했던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효과하나 만큼은 확실하다.
[말라비틀어진 손: 말라비틀어진 아이의 손입니다. 지니고 있을 경우 누군가 붙잡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대신 스킬의 위력이 더욱 높아집니다. 저주받은 물품입니다.]
고목 같은 질감의 작은 손이었다. 원숭이 손의 패러디 같은 물건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도 습득하자마자 이상이 발생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은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이런식으로 겁을 주는 물건인가보다.
난 말라비틀어진 손을 쥔 채로 스킬을 사용해봤다.
쾅!!!
촉수발출의 위력이 더 높아졌고 심연아귀가 더 빠르고 크게 생성됐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 되면 귀신이 어깨나 발목을 탁 붙잡는 느낌도 소름 끼칠게 아니라 마치 격려해주는 것 같아질 지경이었다.
‘네 가지 전부 다 저주물품이고 꺼림칙하긴 하지만 확실히 쓸모가 있다.’
보상들은 저주가 걸려 있었지만 당장 목숨을 위협할 만큼 커다란 저주는 없었다. 그저 물건에 깃든 아이들의 원념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사용자를 조금 곤란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솔직히 이 정도 페널티라면 참고 쓸 만한 물건들이다.
‘개꿀이군..’
저주 그까짓거 뭐, 별거 없다. 조금만 참고 쓰면 된다. 애새끼 울음소리야 좀비들의 비명소리에 묻혀 잘 안 들릴 거고 누가 붙잡는 느낌도 결국은 그게 다였다. 잡아당긴다거나 심하게 방해하진 않으니 이 정도면 양반이지.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귀호부. 이것도 별문제가 없는 게, 어차피 귀신에게 공격당하면 그날은 잠자긴 글렀기 때문이다. 차라리 불면증에 시달리더라도 귀신의 공격을 방어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일단 애새끼 머리통은 당장 마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이주하에게 쥐어 주고. 말라비틀어진 손과 귀호부는 내가 가지고 있으면 되겠네.’
날붙이도 꽤 재미난 물건이라 일단 내가 좀 써 보기로 했다. 마력이야 차고 넘치니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적을 난도질해볼 생각이다.
아마 굉장히 끔찍하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인디크론이 엄청 좋아할 것 같다.
물건들을 전부 확인한 다음 나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왔다.
“자, 그럼 이제 나가자.”
“좋아요!”
“いよいよ!!(드디어!!)”
다들 환호했다. 요상한 공간을 빙글빙글 돌아다녔으니 어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겠지.
나는 출구를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경고!]
[한번 출구가 열렸다 닫히면 간이 던전 안에 남겨진 모든 이들이 두 번 다시는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하하하!!”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 안에 남겨진 조선족이나 기타 등등 여러 방문객들이 모조리 이곳에 갇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미궁을 돌아다니다가 아사하거나 자기들끼리 처먹을 걸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여기서 보낸 시간이 여섯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어..’
그리고 혹여나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나머지 일행들이 안으로 들어간 우리가 걱정돼서 찾으러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가정을 해볼 수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은지가 10시간이 지나기 전에 들어올 리가 없어...’
은지는 내 말은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아마 10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나를 믿고 그 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있을 거다. 이건 그녀와 나 사이의 믿음이다. 상대가 예상 밖의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그런 믿음.
끼이익..
그런고로 나는 경고 문구를 가뿐히 씹고 문을 열었다. 그러곤 일행들부터 전부 밖으로 내보낸 다음 마지막으로 빠져나갔다.
“다 죽어라. 망할 스팸들아.”
쾅!
문이 닫혔다.
간이 던전 ‘영혼 뺏는 상자’에 갇힌 이들은 전부 죽겠지.
그들을 직접 죽여 공양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오빠!! 기다렸어요!”
밖으로 나가자 곧장 은지가 나에게 안겨 왔다. 그런 은지의 뒤를 희선 누나가 웃으며 따라왔고. 둘 다 아무 문제 없어보였다. 난 어리광 부리는 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는 희선 누나에게 물었다.
“별일 없었고?”
“응응. 아무 일 없었어. 짐승이 몇 마리 나오긴 했는데.. 다 잘 처리했어.”
“좋아. 잘했어.”
밖으로 나온 우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와 하린이는 별로 쉬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장시간 움직인 호타루와 그의 여친인 나나사와 레이는 피로함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둘만 피곤하다고 징징 거렸다면 가차 없이 일어서라 명령한 다음 행군을 시작했겠지만, 이주하도 더는 걷기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에 잠시 쉬기로 했다. 당장 마력을 회복할 필요도 있어 보였고. 그녀의 동생인 이은하도 아직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리 주변에 있던 나뭇조각을 모아와 샐러맨더로 불을 피우고서 휴식을 취할 때였다.
[사당의 주물이 정체불명의 플레이어에게 탈취되었습니다.]
[신사의 결계가 조금 더 약해집니다.]
[잠에서 깨어난 거악이 방문객들을 기다립니다.]
[앞으로 1개의 주물이 더 남았습니다.]
[모든 주물을 찾아 신사에 진입하십시오.]
“오빠.. 다른 곳에서 누가 먼저 주물을 찾았나 봐요.”
“제기랄.. 우리 말고도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있었구나.”
사실 어렴풋이 이리 될 것 같긴 했다. 이 숲은 얼마나 넓은지 가늠도 안 될 정도로 넓고 방대하다. 그리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숲 어딘가에 숨겨진 주물을 꼭 우리만 발견해 얻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결국은 주물을 가지고서 신사로 모이게 된다... 이 숲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주물을 손에 넣은 놈들은 필연적으로 신사를 찾게 될 테니..’
되도록 우리가 삼신기를 다 모아서 신사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리 되면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딴 놈들이 남은 주물들을 가져올 때까지 신사에 미리가서 대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기다리다가 주물들고 오는 놈들을 잡아 죽이는 거야.'
아마 신사로 가있으면 나 같은 생각을 한 놈들이 굉장히 많이 포진되어 있겠지. 거저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주물을 가진 자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정작 주물을 찾아낸 놈들이 신사를 찾지 못해 방황하거나 신사까지 도달하지 못 하는 경우다.’
사실 이게 제일 문제다. 차라리 어딘가 건물 안에 주물이 봉인되어 있다면 하늘에서 음지나방이 찾아내어 우리가 얻으러 가면 되는데 그걸 먼저 먹은 놈이 이리저리 숲을 돌아다니다 길을 잃어 버리거나 어디서 객사해버리면 찾기가 굉장히 애매해진다.
나무에 가려져 음지나방이 숲속 안까지는 자세히 볼 수 없다. 칠흑바퀴를 불러서 찾는다고 해도 숲이 워낙 넓어서 작정하고 도망치는 인간을 찾는 건 불가능하고.
‘일단 신사로 가서 모여 있을 인간들을 노예로 잡고 숲을 탐색하던 불을 질러 다 태우던 수를 써야겠어...’
우린 그리 짐을 챙겨 신사로 향했다. 신사로 가는 길은 양지상이 알고 있으니까. 숲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많은 만큼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이 발생해 머리가 아파왔다.
*****
“청동검이라.. 이게 주물이구나.”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목함에서 꺼낸 낡은 청동 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검을 붙잡는 순간 그 안에 깃든 신묘한 힘을 느꼈다. 마치 그 어떤 거대한 악이라 할지라도 베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 검이 내뿜는 기운에 빠져 있자 그의 옆에 다가온 여자가 상념을 깨트리며 말을 걸었다.
“저기, 대장. 남은 주물도 우리가 찾으러 갑니까?”
“응? 아냐, 그냥 바로 신사를 찾자. 마지막 하나를 우리가 얻으리란 법이 없어. 딴 사람이 찾아서 가져와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무엇보다 주물을 가진 우리가 남은 기간 안에 신사를 못 찾으면...”
“다들 숲에 갇히겠군요.”
“맞아. 그건 최악의 상황이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게 우리의 목표니까.”
남자의 말에 여자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것만이 목표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물론이지. 한국인 이교도도 잡아 죽여야지. 물론 기억하고 있다고.”
곧,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신의 하수인들이었다.
이벤트가 시작된 순간부터 인과율을 소비해 계시를 남발한 선신들 덕분에 그들은 다 따로 들어왔으나 어렵지 않게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총인원수는 스무 명. 그들의 목표는 이 숲에서 악신의 종복을 죽이고 신의 우상을 탈취하는 것이다.
“빛이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성직자 클래스 플레이어들 몇 명이 지팡이나 검을 들어 올리자 빛이 뭉쳐들며 처단해야 할 거악이 있을 방향을 가리켰다. 그들의 빛은 신사에 봉인된 거악이 아닌 장조준을 표시하고 있었다.
곧 일본인 무리가 장조준이 있을 신사를 향해 전진했다.
*****
“흐흐흐... 아파?”
“끄으으윽...”
“그러게.. 내가 그냥 가라고 했잖아.”
“끄아아아!!!!”
또 한 명이 죽었다. 이미 곳곳에 죽은 인간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죄다 걸레짝이 된 중국인들이었다.
몇 시간 전 그들은 수적 우위를 믿고서 홀로 돌아다니던 남자를 한 명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 남자를 쉽게 잡아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상대는 한 명이었고 자신들은 적어도 서른 명은 넘어갔으니까. 허나 결과는 보다시피 혼자 있던 남자의 승리였다.
“그보다.. 저기에 주물이 있을까...”
그는 죽은 이들을 내버려 두고서 낡은 목조주택 앞에 섰다.
저 안에서 역겨운 기운이 느껴졌다. 신성하고 경건해지는 기운이었다.
악마인 그에게 있어선 상극인 기운 말이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그는 목조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곧 숲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안내문이 하나 발송됐다.
마지막 남은 주물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고.
“신사는.. 저쪽이군.”
청동거울을 손에 넣은 중국인 악마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느낀 기운은 신사에 봉인된 거악이 아닌, 장조준의 기운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