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06. 일본산 노예 (수정)
* * *
선반과 책더미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네 명의 일본인이 사당 안으로 완전히 들어섰다는 사실은 쉽사리 알아챌 수 있었다.
사당에 놓인 상자를 열어볼 귀중한 노예들이 알아서 찾아와줄 줄이야. 최고의 타이밍이다.
이미 어둠에 녹아든 은지가 천장을 통해 놈들의 배후를 노리고 있고 하린이도 흥분도를 높이며 언제 튀어 나갈지 나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희선 누나의 경우 전투 발생 시 저들이 불상 앞에 놓인 상자를 훔쳐 달아날까 싶어 불상 옆에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저놈들은 어둠 속을 보지 못한다... 볼 수 있는 놈이 있더라도 다들 볼 수 있는 건 아닐거야.’
그도 그럴게 저들은 랜턴을 들고 있었다. 온갖 귀신과 요괴와 짐승들로 들끓는 숲에서 천하태평하게 랜턴을 들고 다닐 수 있다니.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강한 놈들일지도 모르지.
더구나 놈들은 기척탐지관련 스킬을 가진 놈들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건 기회다. 놈들이 우릴 발견하기 전에 모조리 사로잡을 기회.
“코코니 타시카니 나니카아르.... (여기 확실히 무언가 있어...)”
“소다네...”
일본인들은 심지어 둘씩 나뉘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갈라졌다는 건 사로잡기 더 쉬워졌다는 뜻. 저들은 도대체 무슨 용기로 흩어진 걸까. 본인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나?
나는 일단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입 모양으로 하린이에게 은지를 도우라고 말했다. 은지와 하린이가 오른쪽으로 간 둘을 담당하고 나머지 둘은 내가 사로잡는다.
난 허리를 숙이고 놈들이 나를 지나치길 기다렸다. 곧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인 두 명이 내가 은폐중인 탁자를 지나 불상이 있는 창고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두면 희선 누나가 들키겠지.
지금이야말로 놈들을 붙잡을 타이밍이다. 우린 일본인들을 죽이기보단 노예로 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언제 또 지뢰 제거반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참고로 내가 맡게 된 것은 무녀 복 같은 옷을 입은 여자와 카타나를 차고 있던 남자였다.
“르뤼에!!”
“히엑!!”
"오마에와 난다!!(네놈은 뭐냐!!)"
촉수를 쏘아내려는 순간 카타나를 차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 봤다. 인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거의동시에 뒤를 돌아본 무녀는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고함만 빼액 질렀고.
이에 카타나를 찬 검사가 무녀를 끌어 당겨 자기 뒤로 보낸 다음 날아드는 촉수를 베어냈다.
무녀의 호위무사라도 되는 걸까? 그래 봤자 소용없다. 양손에서 발출된 촉수를 다 베어내지 못한 검사는 결국 나에게 사지를 결박당해 붙잡혔다.
그는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손목을 역방향으로 꺾어 버리자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결국 검을 놓쳤다.
“히... 히익..”
도망갈 생각도 없이 멍청하게 주저 않아 나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무녀.
“흠...”
겁에 질린 얼굴이 상당히 귀엽게 생긴 여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촉수를 피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난 그녀에게서 촉수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붙잡힌 무녀는 버둥거리며 발버둥 쳤다.
“여긴 끝! 거긴!”
저쪽도 전투가 끝난 것 같아 물었더니 은지가 대답했다.
“잡았어요!! 그런데! 좀 다쳤어요!!”
"누가!!"
“일본인!! 팔이 찢겨서 피가 엄청 나와여!! 화영이가 보면 입맛 다시겠다. 그치 은지언니.”
다행히 두 사람은 무사한 모양이었다.
“일단 그것들 결박해 둬. 이 새끼들 노예만들고 거기로 갈게!”
“알겠어요!!”
“넹!”
“준아! 우리 그거... 입마개랑 목줄 있으니까 천천히 와!”
우린 숲에 들어올 때 각성자들의 능력을 봉인하는 억압용 입마개와 보부상에게 구입했던 조련용 밧줄을 가져 왔다. 그거 2개라면 어렵지 않게 각성자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그때 나에게 사로잡혀 있던 일본인 두 사람이 우리의 대화를 못 알아듣고는 동료들이 아직 자신들을 구해 줄 수 있는 상황이라 여겼는지 무작정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가령 '바카'라거나 '쿠소'라거나. 일본어는 잘 몰라도 쿠소야로가 개똥 같은 새끼라는 뜻이란 건 알고 있다. 결국 더 이상 들어 주기 싫어 난 나에게 욕을 퍼붓는 검사를 촉수로 좀 더 꽉 쪼았다.
뿌드득...!
“키이사아마아!!!”
비명을 지르는 놈의 입을 촉수로 묶어 소리를 차단하고 무녀를 쳐다 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보고 바카야로라며 화를 내던 무녀는 입을 꼭 다물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남자의 몸에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나며 관적이 꺾이니 전의를 상실한 모양이었다.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고문할 필요도 없이 굴복하네.”
요즘 들어 쉽게 굴복하는 인간이 별로 없어서 항상 피를 봤는데, 이 일본인 여자는 바로 굴복하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좋아.”
나는 무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단 사실을 깨닫고 잠시 고민했다.
‘무릎 꿇어라가 일본어로 뭐야...’
결국 생각나는 단어라곤 알몸 도게자뿐이라 그걸 계속 말했다. 도게자도 일단 무릎을 꿇어야하니까.
“도게자 해라.”
“나, 난데스까..?”
“도게자 하라고. 도게자. 몰라? 도게자!”
“아.. 와캇타요... 오코라나이데 구다사이.. 코, 코와이데스.. (아.. 알겠어요... 화내지 말아 주세요. 무, 무서워요..)”
“시발, 뭐라는 거야...”
도무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나중에 이것들 중에서 살아남은 놈들은 한국어를 강제로 가르쳐야겠다. 은지가 일본어를 좀 할 줄 안다지만 본토인처럼 말하고 읽고 쓰기가 되는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뭐한다고 일본어를 배울까. 당연히 노예들이 한국어를 배워야지.
“흐윽...”
곧 무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굉장히 정중한 자세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대로 가만히 있길레 한국말로 일어서라고 말하니 도게자 한 상태로 나를 살짝 올려다본다.
표정이 마치 나를 미친놈 보듯이 보고 있다. 도무지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나를 올려다본다. 뭐지? 귀여움을 어필해서 나에게 동정심을 구하려는 개수작 질인가?
나는 무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무릎 꿇은 상태로 바로 앉게 만들려 했다. 이마에 엄지를 눌러야 노예낙인 스킬을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일본인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바지춤을 내리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일본 검객놈이 촉수를 물어뜯으며 발악했다. 둘이 연인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이렇게 서로 말이 안 맞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진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내 자지를 꺼내 입에 물려는 일본무녀를 살짝 밀어내고 이마에 지장을 찍었다. 내 노예도 아니고 하린이처럼 믿을 수 있는 여자도 아닌데 급소를 빨릴 수야 없으니까.
[플레이어 ‘나나세 소라’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히에엑...”
여자는 뭔가 자신을 옭아매는 느낌이 들었는지 노예가 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장이 찍힌 이마를 문질렀다. 저 여자의 행동자체가 선천적으로 귀여운 건지 아니면 그냥 나를 홀리려고 저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왜놈을 몇 대 후려 팬 다음 목에 의식용 단검을 들이밀었다.
[플레이어 ‘나나세 히이로’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놈과 무녀의 성이 같은걸로 봐서 남매인 모양이었다. 생김새는 전혀 달랐지만. 무녀 쪽은 꽤 예쁘게 생겼지만 검사 쪽은 일본산 생양아치 같이 생겼다.
아무튼 그를 노예로 만든 뒤 부러졌는지 팅팅 부어오른 손목을 치료시켰다. 손목이 낫자마자 그는 나에게 일본어로 뭐라고 나불거리더니 떨어진 카타나를 소중하게 챙겨 왔다.
저리 소중하게 여기는 걸 보면 할아버지 유품이라도 되는 모양인데.. 내 귀곡도와 맞부딪치면 부러질 것 같은 생김새다. 혹여나 특별한 아이템일지도 몰라 뺏어서 확인해 보니 아이템조차 아니었다. 진짜 누군가의 유품인 모양이었다.
“일단 둘 다 따라와라.”
의사소통은 안 돼도 명령은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둘은 세상이 끝난 듯한 절망스런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다. 내 명령에 몸이 반쯤 자동으로 움직이니 아마 저들은 속으로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오빠. 여기. 이 사람 다쳤어요.”
“어디 보자.. 허...”
희선 누나와 은지, 하린이가 기다리고 있던 불상 앞으로 가자 왼팔이 쫙 벌어져 뼈가 거의 다 드러난 상태의 안경 남자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마비단검이라도 박혔었는지 아직도 마비가 풀리지 않아 덜덜 떨고 있는 갸루가 누워 있었다. 갸루는 눈동자만 겨우 굴려 나를 확인하더니 내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는 무녀와 검객을 보며 이를 꽉 깨물고 부들거렸다.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마비 상태라 그마저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나저나 진짜 갸루다. 태닝한 듯한 갈색 피부에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가슴은 좀 큰 것 같은데 그다지 예쁘진 않다. 얼굴에서 아웃이다. 무녀 쪽이 훨씬 낫다.
“자, 어디 보자.”
나는 일단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안색이 파리한 안경잡이의 팔을 차오르는 살점으로 치료했다.
“끄아아! 압! 읍읍!!”
비명 지르는 놈의 입을 얼른 막았다. 소리가 밖으로 세어나가서 좋을 게 없다. 모처럼 찾은 안전지대인데 습격을 당할 빌미를 제공할 수는 없지.
그 사이 은지와 하린이가 창고의 입구를 닫고 왔다. 나는 정찰 보냈던 칠흑바퀴를 다시 불러들여 고서창고 외벽에 달라붙어 있게 명령했다. 이제 뭐가 오든 미리 알 수 있다.
그러고 난 뒤 안경잡이와 갸루를 노예로 만들었다. 은지가 그 둘에게 죽고 싶냐고 검을 들이밀며 묻자 둘 다 죽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젓더니 나에게 굴복했다.
“후우. 그래도 이놈들 숲에 들어올 정도로 자신감 넘칠만했네.”
“넷 다 강해요?”
“솔직히 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들 다 특수직이야.”
“오...”
우선 제일 처음 사로잡은 무녀는 미코 샤먼이라는 요상한 직업이었다. 보아하니 결계술이나 다양한 술법을 다루는 직업으로 보이는데 생긴 것 그대로 무녀였다. 검객 놈은 사무라이라는데 일본인 특수를 받은 모양이다. 한국도 전용 직업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으로 갸루는 넷 중에선 가장 평범한 직업인 씨프였고 안경잡이는 온묘지라는 직업이었는데 은지가 말해 주길 음양사라고 한다. 이 또한 일본인 전용 특수 직업인 모양이었다.
‘어쩐지 존나 평화롭게 랜턴 들고 돌아다니더니...’
팀내에 무녀와 음양사가 끼어 있으니까 괴이나 귀신들이 접근조차 못한 모양이었다. 직접 전투직은 실상 사무라이놈 하나뿐이었지만 숲의 가장 큰 위협을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 있으니 충분히 좋은 직업들이다.
“이 둘은 연인이고. 이 둘은 남매래요. 의붓남매.”
“허.. 어쩐지 저 새끼가 이 여자 건드니까 게거품 물던데... 이유가 있었군.”
안경잡이와 못생긴 갸루상은 연인 관계였다. 전형적인 오타쿠와 갸루 커플 같다. 둘 다 못생겼지만. 그리고 의붓남매인 둘은 오빠인 검객 쪽이 여동생을 짝사랑하는 모양새였다.
이젠 영원히 그 사랑이 이어질리 없겠군.
“야. 이거 상자 열어.”
나는 곧바로 갸루에게 명령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갸루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잔깐! 기, 기다리세요. 오레가 그거 여러보게스므니다.”
“이 새끼. 한국어 할 줄 아네?”
“조, 조그은 하주르 아니다.”
여자 친구가 뭔지도 모를 상자를 열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한 안경잡이는 어눌한 한국어로 자기가 대신 하겠다고 나에게 부탁해 왔다.
허나 나는 그의 말을 거절했다.
“안 돼. 야, 뭐 해. 빨리 열어.”
“흐극...”
지금 사로잡은 네 명의 일본인 중 가장 쓸모없는 건 바로 저 여자다.
다양한 술법을 사용하는 음양사인 안경잡이 일본놈과 음양사의 여자버전인 무녀 소라짱은 되도록 끝까지 데리고 나가야 할 귀중한 내 사유재산들이다.
또한 저 멍청하게 생긴 사무라이놈도 일반적인 워리어보단 좀 더 좋은 클래스라 가치가 있다.
반면 저 못생긴 씨프 갸루는 그냥 도둑질 말고는 전투도 엉성하고 은신도 은지보다 못하다. 외형까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버림패로 딱이다. 만약 이번에 저년이 죽으면 다음은 사무라이 차례다.
딸칵
곧 갸루가 상자를 집어 들어 뚜껑을 열었다.
“오..”
작은 목함안에 들어 있던 것은 녹색 빛으로 반짝거리는 곡옥이었다.
[팔척경구옥: 신성한 기운을 품은 곡옥.]
신성한 기운을 품었다는 설명대로 위험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맑고 청아한 기운이 더욱 강하다. 마치 희선 누나의 가슴에서 나는 향기가 곡옥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곡옥을 집어들어 쥐고 있으니 피로도가 조금 더 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숲의 사이한 기운을 차단시켜 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갑작스럽게 땅이 뒤흔들렸다.
[사당의 주물이 정체불명의 플레이어에게 탈취되었습니다.]
[신사의 결계가 아주 조금 약해집니다.]
[잠들어 있던 거악이 몸을 뒤척입니다.]
[앞으로 2개의 주물이 더 남았습니다.]
[모든 주물을 찾아 신사에 진입하십시오.]
"이런 젠장."
사당과 주물에 대한 정보가 누설됐다.
“이제 다들 주물을 찾으러 다니겠네요..”
“경쟁이 더 격렬해지겠어... 미치겠네.”
안경잡이의 말에 의하면 신사나 사당에 대한 단서는 실종자를 잡아 죽이면 랜덤 하게 나오는 모양이었다.
단지 내가 운이 좋아서 단 2번 만에 온갖 정보를 얻은 거지 실종자들을 피해 다니거나 운이 나빠 정보를 얻지 못한 경우엔 사당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할 거란다.
그런데 방금 숲이 진동하며 사당과 주물에 대한 정보가 숲에 있던 플레이어 전체에게 누설되었다. 이제부터 주물 강탈전이 시작될 거다. 누가 먼저 3개의 주물을 다 모아서 신사로 들어가느냐의 싸움이 됐다.
이는 서로 죽고 죽이고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숲은 아직 더 많은 이들의 영혼을 원하고 있었다.
‘더욱이.. 거악이 몸을 뒤척였다는 것도.. 껄끄럽군..’
내 생각엔 이 사당에 놓인 주물을 습득하게 되면 봉인이 깨져 신사에 갇혀 있는 정체 모를 괴물이 점차 힘을 되찾고, 종국에 신사의 결계를 3개의 주물로 열고 들어가면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완전히 깨어 나는 게 아닐까 싶다.
신의 우상은 깨어났을 때 잃었던 힘을 빠르게 되찾기 위한 수단이고. 아니면 신의 우상이 플레이어의 영혼을 일정량 이상 먹고서 완성되면 타임오버로 봉인이 깨지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가야할 신사에 보스몹이 있다.
“가세츠가 히토츠 아리마스와...(가설이 하나 있습니다만...)”
그때 안경잡이가 나에게 일본어로 뭐라고 말을 걸었다. 옆에 있던 은지가 그 말을 받아 나에게 해석해줬다.
“오빠. 이 사람이 생각하기론 3개의 주물은 삼신기가 아닐까 싶데요.”
“삼신기?”
“네, 청동 검, 청동거울, 신성한 곡옥. 이 세 가지요. 그런데 마치.. 꼭 이걸로 거악과 싸우라는 것 같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느꼈어... 삼신기로 신사에 봉인된 거악과 싸워서... 신의 우상을 얻어오라는 것 같네.”
내 말을 듣고 있던 희선 누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마른세수를 시작했다. 그녀는 전투력이 그리 높지 않기에 충분히 당황스러울 만했다. 당장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을 텐데. 이제는 거악과 싸워야 한다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런데 나도 당황스럽다. 실종자들의 숲이라더니... 플레이어들을 실종자로 만들려고 운영자들이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뭐가 됐든. 결국 이 숲에서 빠져 나가려면 죽여야겠다. 그죠?”
“그치.”
하린이는 귀신이 튀어 나오는 이 음침한 숲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며 오히려 의욕을 되찾았다.
“일단은 여기서 좀 쉬자. 여기는 안전구역 같으니까.”
“네!”
여기까지 오는데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해가 뜨지 않으니 피로도 관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계속 체크해 줘야 한다. 그리고 나야 상관없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방금의 전투로 인해 마력이 손실된 상태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어서 마력을 회복해 줘야 했다.
우리는 창고에 있던 고서들을 대충 모아 불을 지피고 마트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였다. 인벤토리에 라면을 가득 담아온 덕에 인원수가 늘었어도 다들 먹일 양은 충분히 있었다. 비록 일본인 노예들은 너무 맵다며 미친 듯이 물을 마셨지만.
그리 라면을 먹고 소화 좀 시킬 겸 잠시 쉬는 동안에 나는 구석에 웅크려 있던 무녀 나나세 소라에게 다가 갔다.
개인적으로 그녀에게 확인해 보고 싶은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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