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105. 첫번째 사당
* * *
여인의 팔에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조준과 그의 일행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들을 현혹하려는 듯이. 그들의 정신을 옭아매어 온갖 괴기스럽고 공포스런 환영을 보여 줘 결국 두 번다시 깨어나지 못하게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온몸에 눈알이 자라나 있는 이 오래된 요괴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잡아먹는다. 직접적인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공포를 유발해 상대의 혼을 빼놓고 쓰러진 인간의 정기를 탐하는 요괴였다.
하지만 지금은 산제물의 밤.
아마 도도메키의 눈을 보고 쓰러진다면 숲이 이들을 집어삼키겠지. 현재 실종자들의 숲은 신사에 봉인된 존재에 의해 반쯤 깨어난 상태다.
그렇기에 숲에 귀속된 온갖 잡것들이 숲에 들어온 침입자들을 산 제물로 인식중이며 그들의 영혼을 집어삼켜 숲의 중심에 놓인 신의 우상에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으윽...”
“오.. 오빠...”
“커학...”
눈동자 하나하나에 담긴 요력이 상당히 컸다. 그렇기 때문에 조준의 옆에 있던 이은지, 성하린, 강희선은 손쓸 도리도 없이 순식간에 눈동자에 현혹 당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조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도도메키의 힘이 빗겨나간 듯 그에겐 아무런 이상도 변화도 없었다. 이는 그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양지상의 소행으로, 양지상이 조준에게 다가오던 요력을 전부 자기가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 없었던 도도메키는 고개를 꺄우뚱거리더니 희생자들을 보며 짓던 비웃음을 지우고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조준을 올려다 봤다. 이성의 대부분이 사라진 그녀가 느끼기에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준은 대체 뭐 어쩌라는 듯한 표정으로 도도메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던 도도메키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겁먹을 필요조차 없었다고 생각하며 스킬을 발동한다.
흐어..?
“플루토.”
어느샌가 모습을 드러낸 심연아귀가 입을 쩍 벌렸다.
심연아귀는 귀신마저 씹어 삼키는 스킬이다. 도도메키는 비명을 지르며 자기 상반신을 씹어 삼키려는 심연아귀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허나 완벽하게 피해내진 못했으니.
조준 일행을 죽이기 위해 드러냈던 그녀의 눈알 가득 달린 팔이 심연아귀에게 씹혀 잡아 뜯겼다. 순식간에 영체가 손상됐다. 영체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재생조차 되지 않았다.
수백 년간 이 숲에서 실종자들을 집어삼켰던 괴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문득 공포를 느꼈다.
이때까지 숲에서 길을 잃었던 이들의 공포를 먹고 자라온 요괴는 자신보다 더욱 괴이하고 사이한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흐아아아!!!!
뒤늦게 찾아온 통증에 도도메키는 비명을 내질렀다. 곧 일대에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투두둑..!
잘려 나간 도도메키의 팔 단면에서 누렇고 투명한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그건 엑토플라즘이라는 물질이었다. 그녀는 일반적인 원혼이나 영혼과는 격이 다르기에 아스트랄체를 소유할 수 있었고 그녀의 아스트랄체는 피대신 엑토플라즘이 흘렀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잡아 먹으며 생존하던 괴이는 스스로의 격을 드높였기 때문에 단순한 악귀나 귀신을 넘어 요괴의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튼 도도메키가 질질 흘리기 시작한 엑토플라즘은 끔찍한 썩은 내를 풍기며 맞닿은 땅과 식물들을 순식간에 부식시켰다.
살아 있는 인간은 정제되지 않은 엑토플라즘에 닿는 순간 끔찍한 고통과 가려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닿은 부위가 천천히 썩어 들어가며 좀비에 물린 것처럼 시독이 서서히 퍼지게 된다.
도도메키는 그걸 알고 있었다. 자기 영체에서 흘러내리는 액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에게 치명적이란 사실을. 그래서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다른 인간들이라도 길동무로 삼기 위해 엑토플라즘을 주위로 흩뿌렸다.
허나 그때는 이미 칠흑바퀴가 쓰러져 있던 여인들을 전부 조준의 뒤로 물려 둔 상태였다. 일행의 주변을 맴돌던 칠흑바퀴는 전투가 발생하자 알아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제 도도메키의 눈앞에 남은 건 인간의 탈을 쓴 사이하고 괴이하며 기이한 존재뿐이었다. 그 존재는 일렁이는 장막을 둘러 도도메키가 흩뿌리는 엑토플라즘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다.
장조준의 스킬 일그러진 비늘이 발동된 상태였다.
“넌 뭐냐?”
조준의 물음에 도도메키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국적이 달라 말이 통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미 조준의 기에 짓눌렸기 때문에 말한마디 할 수 없었다.
또한 상대를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제서야 그의 등 뒤에 달라붙어있는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깊디깊은 심연의 저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악의의 결정체와 정체조차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거대한 혼돈의 덩어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흐어... 흐아아아...
제대로 된 언어조차 형성하지 못한 괴이의 울부짖음. 도도메키는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리고 조준을 향해 진심을 다한 도게자를 했다.
그녀는 잘못 덤볐다. 상대를 그저 숲에서 길 잃은 인간으로 여긴게 문제였다.
이때껏 수많은 이들을 케이크 먹듯 쉽게 집어삼켜왔던 도도메키. 그녀는 이번에도 인간의 따스한 숨결과 생기 넘치는 정기를 별 어려움 없이 맛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큰 오산이었다. 숲에 들러붙은 망령은 평화에 빠져 자신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를 미리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안일했으며 나태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결코 인간 따위에게 죽지 않을 거라며 방심했다.
방심했기에 당한 거다. 상대를 파악하려 하지 않았고 관성에 따라 멍청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건드려선 안 되는 무언갈 건들고 말았다.
오늘 숲을 방황하던 수백 살 먹은 괴녀가 죽는다.
도도메키의 온몸 구서구석에 달려 있던 눈동자가 일제히 감겼다. 삶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조준은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해 괴녀의 머리를 뜯어내려고 했다. 그때, 그의 허리춤에 메여 있던 검이 웅웅 소리를 내며 떨렸다.
[자, 잠깐!!]
도도메키를 죽이려는 조준을 양지상이 급히 말렸다.
“왜. 뭔데.”
[저 악귀에게 나를 휘두르시오.]
“응? 왜?”
[저걸 베어내면... 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도도메키를 악신에게 한번 공양해 보려던 조준은 문득 악신들이 영체는 밍밍하다며 맛이 없다고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줘도 좋은 취급 못 받는 폐기물... 그렇다면 차라리 양지상한테 먹여서 강화시키는 게 맞겠지.’
조준은 양지상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뭔가 술수를 쓰려는 도도메키를 향해 귀곡도를 뽑아 휘둘렀다.
키아아아!!!!!
귀곡도에 베인 도도메키가 비명을 내질렀다. 귀곡성이 울려 퍼진다. 귀를 울리는 귀신의 고함 소리에 조준은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이 잡년이 시끄럽게.”
그는 오히려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멈추지 않고 도도메키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양지상에게 흡수될 때까지 쉬지 않고 베어냈다. 도도메키가 비명을 질렀으니 인근의 온갖 잡것들이 소리를 듣고 모여 들 거다. 그 전에 빠르게 승부를 봐야 했다.
조준은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귀신의 형체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도메키를 확실하게 붙잡은 양지상이 소리쳤다.
[흡수!!! 흐아아앙!!]
절정에 달한 사람처럼 황홀경에 찬 목소리로 고함지르는 양지상.
조준은 순간 너무 소름 끼쳐 검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뭐, 뭐야! 미쳤어?!”
[아뇨! 흡수했습니다!! 흐하하하하!!!! 힘! 이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조준은 확실히 양지상이 깃들어 있는 늪지의 귀곡도가 좀 더 요사스러운 빛을 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
귀곡도엔 하나의 영혼밖에 들어갈 수 없다. 허나 지금 귀곡도엔 두 개의 영혼이 깃든 상태다. 이는 검에 처음 깃든 영혼이 하필 귀신이나 악령을 다룰 수 있는 위습 워록인 양지상인 덕에 일어난 일이었다.
양지상은 검을 자기 육체삼아 도도메키를 빨아들였다. 귀곡도에 깃듯 양지상에게 도도메키가 종속된 상태가 됐다.
“허...”
조준은 곧바로 귀곡도를 들어 올려 양지상의 상태를 살폈다.
[양지상]
[레벨: 없음]
[클래스: 위습 워록]
[능력치 없음]
[스킬: 악귀생성, 악귀빙의, 스산한 망령, 괴이흡수(신규)]
[보유 소환수]
도도메키: 실종자들의 숲에서 흡수한 영령. 인간에게 환각을 보여주는 요괴.
“너 스킬하나 새로 생겼네?”
[후후후... 이놈을 흡수하며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양지상의 스킬을 쓰려면 조준이 마력을 소모해야 하지만 이미 마력수치가 800에 가까운 조준에겐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으음... 어?”
“오빠..”
“크으... 머리 아파...”
도도메키가 봉인(?)되자 일행들이 환각에서 풀려났다. 조준은 그녀들을 보며 빠르게 말했다.
“다들 정신 차렸으면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
“응응...!”
“킁킁... 주군. 여기저기서... 짐승의 냄새가 나..”
“그래, 다들 어서 일어서. 뛰어서 도망가자. 하린이는 계속 주위 탐지하고. 은지도 손잡아 줄 테니.. 자, 얼른 일어서.”
“네에..!”
조준은 다시 칠흑바퀴를 숲 너머로 정찰 보냈다. 그다음 하린이의 감각을 믿고 다가오는 짐승들을 피해 달아났다.
다 죽이려면 다 죽일 수야 있지만, 현재 조준은 실종자들의 숲에 의해 실시간으로 정기를 빼앗기는 중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언제 쓰러질지 몰랐다. 자신이 쓰러지면 짐이 된다. 짐이 되기 전에 빨리 적들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은지야...”
“네?”
“가방에.. 그거.. 여명 세븐 좀 꺼내주라..”
“아! 잠시만요!”
이은지는 안색이 파리한 조준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애써 달래곤 가방에 들어 있던 여명 세븐을 꺼내 조준에게 넘겨 줬다.
조준은 손을 덜덜 떨면서 보부상에게 구입했던 상시물품이자 극적인 효과를 가진 피로회복제인 여명세븐을 한입에 다 삼켰다.
“캬하...! 후우. 좀 낫다.”
조준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몸에 활력이 났다.
크아아아!!!
키에에에!!!!
곧 도도메키와 싸우던 장소에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운 짐승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을 산제물들의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벌름 거렸으나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했다.
도주하기 전 그들은 서로의 몸에 체취 제거제를 한 번씩 뿌렸기 때문이다. 하린이가 짐승들이 오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강희선이 인벤토리에 있던 체취 제거제를 꺼내 전원의 몸에 뿌렸다. 효과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냄새는 지워진다. 짐승형 괴물들은 후각으론 절대 그들을 찾지 못하리라.
조준과 친해진 보부상의 안배로 그들은 위기를 한번 넘겼다. 그들은 짐승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달렸다.
“후우... 젠장. 젠장...”
조준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여명 세븐을 마시고도 몇 시간 달리고 나니 일어설 힘조차 남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중 스탯이 가장 낫은 은지가 조준보다 상태가 더 좋아 보였다.
“사, 사당을... 찾아야 하는데...”
“오빠.. 괜찮아. 우리 여기 온 지 아직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 조금 쉬어도 돼...”
이은지가 숨을 헐떡이는 조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너무 급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강희선은 인벤토리에 담아둔 물을 꺼내 조준에게 건넸다.
“그래, 준아. 일단 좀 쉬자. 우리 너무 오래 걸었고, 너무 많이 뛰었어.”
조준은 강희선과 이은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땀에 젖은 머리에 물을 들이부었다.
“킁킁... 아무 냄새도 안나요. 완전히 따돌렸어요.”
계속 주위를 경계 중이던 하린이가 너무 많이 사용해 건조해진 코를 주무르며 말했다.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바퀴도 주변에 위험 인자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음지나방 소환..”
조준은 쉴 틈이 생기자마자 나방을 불러냈다. 쉴 땐 쉬더라도 완전히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신이 쉴 동안 소환수라도 굴릴 생각이었다.
곧 비늘가루를 떨어뜨리며 소환된 나방. 조준은 나방에게 주위를 돌며 특이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신사의 위치는 양지상이 느낄 수 있으니 이제는 사당을 찾아야 했다.
신사의 출입구를 열기 위한 주물을 찾기 위해 3개나 되는 사당을 이 넓디넓은 숲에서 찾아내야 했다.
“시발...”
조준은 이걸 깨라고 만든게 맞나 의문이 들었다. 만약 자신과 같은 특이한 클래스를 가진 특이한 인간이 숲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숲에 들어온 이들은 7일차까지 단서를 찾지 못해 다 죽지 않을까 싶었다.
‘사당을 찾는다고 해도... 그게 주물인지 코토리바코인지 뭔지 하는 저주물품인지 식별도 해야 하고...’
그 부분은 양지상이 또 한건 해주지 않을까 기대 중인 조준이었다.
‘안 되면 노예 하나 새로 잡아서.. 열어 보게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준은 나무등지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약 4시간이 지났다.
“허억...”
잠에서 깬 조준. 그는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잤다.
“으, 은지야. 내가 얼마나 잔 거야..?”
“어, 4시간이요.”
“이런..”
“오빠... 괜찮아요. 하린이가 계속 경계중이고. 희선 언니도 눈감고 자연과 교감중이에요. 주변에 위험한 건 없어요.”
“그래... 하아..”
다행히 그 4시간 동안 조준 일행을 위협하는 것들은 없었다. 숲 이곳저곳에서 여전히 희생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대부분 거리가 멀었다.
“다들 돌아가면서 좀 자자.”
“그럴까?”
“좋아요..”
그들은 좀 더 휴식을 취했다. 해가 뜨지 않아 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조준은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실종자들의 숲밖은 지금 월요일 오후 1시였다. 한창 해가 떠 있을 시간이었다.
곧 다들 잠에서 깨자 강희선이 인벤토리에 넣어 둔 식량을 주섬주섬 꺼냈다.
“얘들아. 우리 일단 뭐라도 먹자.”
강희선은 일행들에게 식사를 챙겨 줬다. 물론 식사라고 해 봐야 별거 없다. 불을 피우기가 애매하므로 거의 다 보존 식품으로 때워야했다. 그들은 챙겨 온 참치 통조림과 통조림 옥수수, 미숫가루를 나눠 먹었다.
“이거라도 먹으니 좀 살겠다.”
“열량소모가 심했으니까. 자, 내거 더 먹어.”
“고마워요, 언니.”
일행들은 식사를 해결한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사이 주변을 정찰하던 음지나방이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내 왔다. 지능이 떨어지기에 칠흑바퀴 만큼 의사소통이 잘되진 않았지만 분명 인간이 지은 듯한 건축물이 있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뭔갈 찾았대. 일단 거기로 가 보자. 어쩌면 사당일지도 몰라.”
양지상이 별 반응 없는걸로 봐선 신사건물은 아닐 터다. 그렇다면 사당이거나 숲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건축물이겠지.
일행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곧 그들은 자그마한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그건 낡은 건축물로 오래된 고서가 가득 들어 있는 창고 같아 보였다.
깡!
입구에 걸려 있던 걸쇠를 때려 부수고 조준 일행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내부는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언어로 쓰인 낡은 책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아니었다. 그밖에 특별한 건 딱이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오래된 책들을 넣어 둔 창고 건물이었다.
“뭔가 이상한 건 느껴지지 않네.”
“그러게요...”
건물 내부는 조용했다. 낡은 책에서 풍기는 종이의 냄새만이 가득했고 별다른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장조준은 피로도가 조금 가시는 기분마저 느꼈다. 건물이 숲의 악의적인 공격을 막아주는 느낌이었다. 일행들은 여기를 안전지대 같다고 느꼈다.
“흩어져서 찾아보자. 혹시나 이상한 거 찾으면 바로 불러.”
일행들은 창고 안을 기웃거리며 주물이 들어 있을 법한 상자를 찾아다녔다.
사당이라기엔 그저 낡은 창고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나무뿐이던 숲에서 발견한 건물이니 분명 뭔가 단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코를 벌름거리며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냄새를 쫓던 하린이가 건물의 한구석에서 돌을 깎아 만든 자그마한 불상과 그 앞에 붉은 실로 봉인해 둔 주먹만 한 나무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여기! 뭔가 있어요!”
“응?”
“어디!”
조준과 그의 일행들은 성하린의 부름에 곧장 달려갔다. 곧 그들은 불상과 붉은 실로 묶여있는 상자 앞에 섰다.
“이게... 주물이 들어 있는 상자..”
“아니면 저주 상자일지도.”
“일단 우리가 열어 보진 말자.”
“맞아요.. 중국인 노예 하나 붙잡아서 열어 보게 시키죠.”
“그거 좋은 생각이야.”
조준은 점점 자신과 비슷하게 사고하기 시작한 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다.”
강희선도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우리 이제 중국인 찾는 건... 어..? 쉿.”
“왜...?”
“뭔가... 여기로 오고 있어요...”
“그래..?”
“네... 다수의 인기척..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르겠어요..”
“일단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중국인을 찾으러 다시 나갈 생각에 억지로 신난 척 하려던 성하린이 급하게 허리를 낮추며 검지를 입술에 대고선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조준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은 얼른 그녀를 따라 인기척을 줄이기 위해 선반 뒤에 몸을 숨기고 은폐를 시도했다.
이은지는 아예 천장 쪽에 달라붙어 어둠과 동화되었다. 닌자와 다름없는 그 모습을 보며 조준은 입을 살짝 벌렸다. 곧 건물에 누군가 들어왔다.
“흐에... 스게.. 나니코레.”
“코코와 이타이 도코다...”
“소레데모, 안젠다토우모.”
“쉬잇... 나니카 아루요...”
네 명의 젊은 일본인 남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건물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함부로 발을 들이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