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79. 말하는 좀비와 무법자들
* * *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서 좀비들로 가득한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허나 주변의 좀비들은 모녀를 인지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같은 동족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엄마... 거기 아니고. 왼쪽 길로.”
“으어어어어....”
품에 안긴 소녀는 자신을 안고 달리는 여인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했다.
결코 멈춰 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발을 쉬었다간 놈들에게 붙잡힐게 불 보듯 뻔했다.
각종 특이한 좀비들이 활개를 치는 이 망가진 세상에서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당연 미친 플레이어들이니까.
‘절대.. 절대로 돌아갈 수 없어...’
소녀가 탈출한 곳은 스포츠 센터를 개조한 무법자들의 둥지였다.
잡혀 온 수많은 인간들이 갇혀 있는 철창과 그들을 희롱하는 악인들로 가득한 곳이다.
거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던 소녀는 두 번 다시 그 끔찍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그녀 자신과 부모를 죽인 원수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개자식들... 복수하겠어...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그녀는 이미 죽은 어미의 품에 안겨 복수를 다짐했다.
그들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생존자 집단 중 하나에 속해 있었다.
비록 본인이 각성자는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각성자라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람대접받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정부가 무너지고 통신망이 죄다 마비됐으며 물과 전기도 죄다 끊겼지만 그래도 살아날 구멍은 있었다. 당장 먹을 건 마트와 푸드뱅크를 털어서 풍족했고 좀비들의 습격이 좀 더 거세지긴 했어도 그만큼 각성자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에 버틸 만했다. 또한 총기도 다수 보유 중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함부러 약탈할 생각도 못했었다.
허나 이번 주 월요일. 새로운 업데이트가 시작된 날. 총기가 대부분 작동을 멈춘 그날
그녀가 속해 있던 생존자 캠프는 무법자들에게 습격당했다.
자신들을 '해방자'니 '자유숭배자'니 이상한 칭호로 부르며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미친놈들.
놈들은 좀비보다도 더 집요하게 같은 인간들을 공격했다.
집요하리만치 생존자만을 노리는 악인들이었다.
심지어 녀석들은 도움을 구하는 척 선량한 시민으로 위장해 다가왔다.
처음엔 두 명의 남자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굉장히 비극적인 운명에 처했음을 설파하며 받아들여주길 간청했다.
이에 생존자 캠프의 대장이 그들을 딱하게 여겨 문을 열어줬고 그날 밤 두 명의 남자는 보초를 서던 이들을 죽이곤 곧장 캠프의 문을 열었다.
미리 밖에서 대기하던 놈들은 새벽녘에 문이 열리는 순간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은 산 채로 목이 뽑혔고 여자들은 희롱 당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놈들의 끔찍한 유희 거리로 가득한 둥지에 끌려갔다.
소녀와 소녀의 부모는 둥지에 끌려들어간 생존자들이었다.
“야! 어디야! 당장 안 나와?”
“빨리 기어 나와!”
“닥치고 빨리 찾아!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소녀는 그들에게서 엄마와 아빠를 데리고 도망쳤다.
그러다 들켜 놈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붙잡히면 죽기보다 더한 꼴을 당하겠지.
무법자 놈들은 그러고도 남을 악인들이니까.
“벌써 여기까지...”
무법자들은 둥지로 끌고 온 인간들을 정말 무자비하게 죽였다.
그들의 살인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저 유흥을 위해 학살을 일삼았다.
놈들의 우두머리는 그저 재미로, 재미로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자신들의 저열한 욕구와 욕망과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죽이고 강간하고 불태웠다.
그것도 모자라 누군가의 자식을 인질로 삼아 부부가 서로를 찔러 죽이게끔 만들었고.
끝내 살아남은 어미를 자식의 눈앞에서 참살했다.
무도한 자들이다.
죽어 마땅한 쓰레기들이다.
그녀 또한 놈들이 만들어둔 우리에 갇혀 부모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수야..”
“여보.. 안 돼.. 여보...”
“지수야. 어서...”
“빨리 죽여!!! 네년놈들 딸내미 뒤지는 꼴 보고 싶어!!”
“까아아아!!! 엄마!!!”
아버지는 어머니께 말했다.
자신을 죽이라고.
어차피 저놈들은 남자는 살려 둘 생각이 없다면서.
차라리 자신을 죽이고 살아남아 딸인 은하를 잘 부탁한다고. 그건 사실상 도피였다. 죽기보다 끔찍한 꼴을 당하기 전에 아내의 손에 죽고 싶은 한 남자의 도피.
“흐윽...”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두 팔 벌려 희생이란 이름의 도망을 자처한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살아남았다.
자신이라도 살아남아 딸을 지켜야 했으니까. 놈들에게 모욕당할지라도. 하반신을 쓸 수 없는 하나뿐인 딸을 지키기 위해.
허나 그녀의 각오가 이뤄지는 일은 없었다.
놈들은 딸의 눈앞에서 어미의 목을 베어냈다.
“하하하하!! 저 애새끼 표정 좀 봐!!!”
“키하하하! 왜! 뭐! 우리가 진짜 살려줄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하하하!!!”
“멍청한 년!!!”
놈들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 하는 딸 앞에서 부모의 시신을 유린하며 비웃었다.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한참을 비웃고 괴롭혔다.
미쳐있다. 모두가 미쳐서 점점 더 혼란스런 혼돈의 도가리로 말려들어갔다.
결국 홀로 남은 딸은 제 손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개 같은 세상에서 더 살아남아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날붙이는 널려 있었다. 그중 아무거나 하나 주워 목을 찔렀을 뿐이다.
그때였다. 기적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 일어난건.
놈들은 몰랐다.
그녀가 자기 스스로를 죽임으로서 각성했단 사실을.
시쳇더미에 섞여들어 빠져나갈 타이밍만을 노리고 있었단 사실을.
“아!!! 저기다!!!”
물론 허망하게 들키고 말았지만.
“이런...”
소녀는 이대로 다시 놈들의 손에 붙잡혀 둥지로 끌려가면 또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게 될지 상상이 안 갔다.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 없지만 소녀는 여전히 고통은 느낄 수 있었기에.
“아빠... 미안 해요...”
그렇기에 그녀는 다시 한번 아버지를 희생시켜 비루한 목숨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이제야 겨우 복수할 힘을 얻었다. 그녀는 최대한 살아남아 놈들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이대로 붙잡힐 수는 없었다.
“우어어...”
그녀의 뒤를 따르던 망자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달리던 방향과 반대로 뛰어나갔다.
“흐윽... 시체폭발...”
손하은은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아버지였던 것을 터트렸다.
쾅!!
“으아!!! 다리!!!”
“저! 시발년이!!!”
곧 그녀를 뒤쫓던 무법자들 중 다수가 부상을 입어 쓰러졌다.
소란에 몰려든 좀비들이 저놈들의 뒤처리를 해주겠지.
“우어어어...”
소녀는 아까부터 비슷한 울음소리를 반복할 뿐인 엄마를 더욱 깊게 껴안고서 다시 달리라고 명령했다.
허나 그녀의 도주는 더 이상 이어질 수가 없었다.
콰자작!!!
시체폭발에 휘말려 쓰러졌던 무법자들 중 하나가 창을 집어던졌고, 그 창에 소녀의 어미가 박살났다.
품에 안겨 있던 그녀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어... 엄마... 아.. 아아아..”
소녀는 망가져 버린 어미의 두 개골을 붙잡고서 울부짖었다.
한번 되살린 존재는 두 번 이상 되살릴 수 없다.
이제 진정한 이별이다.
“죽어... 이 개새끼들어!! 제발!! 죽으라고!!”
“뭐라는 거야!”
퍼석!
뒤쫓아 온 놈들은 악을 쓰며 소리치는 소녀를 짓밟았다.
이미 죽어 망자가 된 소녀는 삐그덕 거리며 놈들의 발길질에 점차 죽어 갔다.
이대로 더 맞았다간 방금 부서진 어미처럼 그녀도 박살이 나겠지.
소녀는 분했다. 이대로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놈들에게 똑바로 복수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빨리 이 비극이 끝나길 바랐다. 더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 야. 잠깐만. 저거. 저거 뭐냐?”
“왜! 어...?”
“목.. 목이 없...!”
쾅!!!!
순간 무언가 휘둘러졌고, 그대로 남자 둘이 다진 고기가 되어 나자빠졌다.
“가려워... 가려워.. 목이.. 가려워서.. 으아..”
"이.. 이건.. 뭐야.."
"도, 도망쳐!!"
한참이나 소녀를 짓밟던 놈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괴물에 당황해하더니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웅크린 채로 얻어맞고만 있던 소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을 쳐다 봤다.
‘이, 이건 뭐지...?’
그건 검은 갑옷을 입은 거대한 남자였다.
또한 기이하게도 머리가 없었다.
아니, 왼손에 들고 있었다. 그 머리통은 징그럽게도 계속해서 목이 가렵다며 웅얼거리고 있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 제발..’
어쩌면 이 뭔지 모를 존재는 무법자들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괴물이 그저 자신을 지나쳐가길 바랐다.
다행히 그녀의 바람대로 듀라한은 그녀를 지나쳤다.
콰자작!!!!
그러곤 그대로 달려가 소녀를 뒤쫓던 무법자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러 반 토막 내기 시작했다.
“으아!!!!”
콰직!
일도양단. 반으로 갈라진 무법자의 단면에서 내장이 흘러내린다.
“파, 파이억!!!”
콰직.
화염구를 쏘려던 무법자의 얼굴에 주먹이 틀어박혀 그대로 머리를 터트렸다.
“허억... 숨.. 숨이..”
뿌드득.
도주하던 놈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아 들어 올린 후 그대로 쥐어짜 머리와 몸을 분리시켰다.
무가치한 죽음들이 거리에 흩뿌려졌다. 흘러넘치는 죽음에 소녀는 전율했다.
위기의 순간 그녀를 구해 낸 것은 그야말로 죽음의 기사였다.
심지어 이건 싸움도 뭣도 아니었다. 마치 벌레를 잡듯 머리 없는 전사는 무법자들을 치워 버렸다.
“아, 저새끼. 죽이지 말고 붙잡으라니까... 야. 그런데 넌 뭐냐?”
목 없는 기사에 넋이 나간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어...?”
그건마치 모자이크 처리된 듯한 모습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남자였다.
*****
“정찰 계속할 거예요?”
화영이가 나에게 어쩔 생각인지 물어왔다. 그녀는 약간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우리들 중에 인간을 탐지할 수 있는 게 화영이 뿐이라 나랑 계속 어울려 줘야 한다.
“그래야지. 필드 보스 찾을 때까진 계속 돌아다녀 봐야 안 되겠어?”
“네에. 그런데 오빠. 나 피 한 방울만.”
“응? 아까 먹었잖아."
"나, 또 먹고 싶은데...”
"알겠어. 자."
"헤헤.. 좋아.."
난 화영이에게 목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껴안고는 목을 살짝 깨물었다.
“흐응.. 좋아.. 주인님.. 피맛.. 최고.. 오늘 밤에는 알죠..? 못 잘 줄 알아요.”
화영이는 내 피만 먹으면 발정한다. 오늘 밤에도 정신 없이 흡혈 착정당하겠구나.
“저도 가고 싶은데...”
“은지는 이번엔 집지키고 있어. 알겠지?”
“네에... 화영인 좋겠다.”
이번엔 은지를 남겨두고 화영이와 듀라한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듀라한을 피해 도망쳐 오면서 은지가 제법 많은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듀라한이 타고 있던 해골마를 넘어뜨리기 위해 연달아서 그림자 직조로 만든 무기를 집어던졌으니.
“그럼 다녀올게.”
“네..”
은지는 듀라한을 상대로 도움이 못돼서 미안하다며 시무룩해했다.
난 그녀의 양 볼을 꼬집고는 괜한 생각 말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줬다.
그리고 은지의 진가는 이런 전면전이 아니라 기습과 암살에 있다.
듀라한을 상대로 어쩔 수 없었던 건 단지 상대가 나빴기 때문이다.
우린 마트에 남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다시 정찰을 시작했다. 목표는 우리에게 듀라한을 던져 주고 도망간 그 다섯 놈을 붙잡는 거다.
“킁킁... 흐음..”
“못 찾겠어?”
“그게 아니라.. 피 냄새가.. 겹쳐서..”
화영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수의 신선한 피 냄새가 맡아진다고 말했다.
“놈들 냄새는 아니고?”
“네. 처음 맡아보는 냄새예요.”
“처음 맡아보는 피 냄새라...”
공략조 놈들은 아니란 소리다. 화영이는 생판 모르는 놈들의 피 냄새에 공략조 놈들의 냄새가 묻혔다고 말했다.
“놓친 건가... 그럼 일단 그 피 냄새라도 쫓아가 보자.”
그리하여 우린 화영이의 뒤를 따라 신선한 피내음이 풍겨 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린 말하는 좀비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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